하노이에 도착해서 호텔 주변의 거리구경하고 카페에 들어가 야자수를 마시기도 하였다
카페는 작은 테이블과 유치원생용 같은 작은 의자들이 놓여서 의아했는데
주인이 손님들을 잘 보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잘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이다
과일주스는 생과일을 갈아주는데 신선하고 저렴해서 매일 사먹기로 하였다
하노이 시내 호텔에서 일박을 보내고 사파행 첫차를 타려고 에약한 사파익스프레스 앞으로 갔다
아침 일곱시..오토바이들과 과일을 양쪽 지게에 지고 나오는 행상들
거리는 또 다시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 분주하게 깨어나고 있었다
하노이에서 6시간 걸려 도착한 사파에 도착하였다
사파는 고산 지대의 휴양지로서 프랑스 식민지 시절 개발되었다고 한다
고속도로가 끝나면서 사파로 접어든 길은 험준한 산길 아래로
층층이 다랭이 논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파 시내 호텔로 갔지만 우리의 목적지는 달랐다
사파에서 택시를 타고 라오차이 따반 마을에 홈스테이를 예약해 두었기 때문이다
라오차이 마을로 가는 택시비는 20만동(한화 만원) 이었는데 고갯길에서 통과비를 2인에
14만동을 더 내야 했다
산길을 확장 공사 진행중이었는대 도로 공사비를 받는 것 같았다
아직 포장되지 않은 돌길에 자동차가 계속 털털거려서 타이어가 걱정될 정도였다
험한 산길을 내려와 아미카 하우스에 내려준 기사에게 팁 3달러를 얹어 주었다
라오차이 마을은 동양의 알프스라는 판시판 산맥 아래로 드넓은 골짜기와 구릉들이
정말 알프스에 와 있는 것처럼 전원적이었다
집 주인 퀴인 씨가 대문앞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거실이 넓은 농가인데 거실에서 사방으로 탁 트인 전원 마을
숙소는 통나무 방으로 창문을 통해서 마을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호텔처럼 흰색 시트가 잘 정리되어 있고 흰수건과 치약 칫솔,차외 커피포트도 준비되어 있었다
겨울인데도 침대에 흰색 모기장이 쳐 있어서 이곳이 남국의 산골임을 말해주었다
이 마을에는 홈스테이라고 써있는 민박집들이 중간 중간 보이고
멀리 외따로 산 기슭에 호텔같은 건물이 하나 보였다
나는 호텔보다 목가적인 이 집이 더 좋았다
들판에는 방목된 들소들이 유유히 풀을 뜯고 닭과 오리들도 떼지어 다니면 먹이를 찾고 있었다
아미카 하우스 주인 퀴인씨는 숙박비를 체크인 때 받는다고 해서 미리 계산해 주었다
이틀 숙박에 90만동으로 5만원이 채 안 되니 가성비에 점수를 주겠다
집을 나서자 많은 여행객들이 시골길을 오가는데 여행객들 곁에는
소수부족의 민속의상을 입고 따라 다니는 여자들이 함께 걷고 있었다
여행객들에게 동네 구경을 안내해주고 수고비를 받는다고 한다
우리도 길을 나서는데 한 무리의 여자애들이 따라왔다
그 중 키가 작은 여자 아이가 영어로 말을 걸어오는데 당돌해 보였다
우리는 작은 폭포를 찾아가고 있는 중이라며 길을 물었더니 안내해주면 가방을 살거냐고 물어왔다
가방을 안 사고 그냥 우리가 알아서 가겠다고 했더니 그 아이는 획 돌아서서 가버렸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폭포를 가지 못했다.
현지인들에게 물어보니 영어가 통하지 않고 방향도 서로 다르게 알려주었다
나중에 폭포길은 알아냈는데 해가 기울고 있어서 내일 큰 폭포만 가가로 하였다
그 아이의 안내를 받았으면 시간낭비 안하고 갈 수 있었는데 가방 하나 안 사 준게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그 아이들이 그런 방법으로 돈을 버느라고 학교도 빠진다는이야길 들었었다
두 말 없이 획 돌아서 가버린 그 여자아이가 그렇게 야무지게 공부만 한다면
훗날 뭐가 되어도 될 것 같았다
너무 어린 나이에 장사에 나선 이 아이의 가슴에도 동심(童心)은 살고 있을 것이다
산골이라도 방문객들이 많아서 레스토랑과 기념품 가게와 민박집들이 눈에 띄었다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망고 4개를 4만동에 사가지고 숙소로 돌아왔다
집주인 퀴인씨가 거실에 환하게 켜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페치카에 장작불을 붙여주었다
프랑스산 페치카인데 우리가 도착하기 3일 전 설치했다고 한다
주인이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손님이 우리밖에 없는 거실은 우리 별장처럼 안락했다
주인집 초등학생 아들 "밍"이 올라오더니 씩씩하게 인사를 했다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데 학교에서도 영어교육이 있다고 했다
나중에 아래층에서 영어 강의 테이프를 듣고 공부하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산골에도 교육열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오지마을인데 학교와 유치원에 아이들이 많았다
인구절벽을 염려하고 연구하는 우리나라 현실이 대비되었다
"밍"은 열두살이고 동생은 하노이 할머니 댁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다며
얼마나 이야기를 잘 하는지 정말 알밤도토리 같은 아이였다
내가 초코파이를 세개 주었더니 이튿날 과자를 가지고 올라와서
마치 어른같은 말투로 대화를 나누곤 하였다
젊은 여주인 밍의 엄마에게 우리가 저녁값을 지불할테니 현지식으로 디너를
준비해 줄 수 있는지 물어보자 간단히 사양하였다.
주부입장에서 아무래도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겠다
나는 사실 레스토랑 음식들이 느끼해서 담백한 집밥이 슬슬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조식은 이틀 간 같은 메뉴로 차려주었다
베트남식 아침식사 같은데 얇은 쌀전병 구이 한 접시와 꿀.계란 프라이 네 개,
오이와 과일 한 접시(수박 망고 바나나)그리고 티와 커피 였다퀴인 씨는 밤이 되면 대문 옆에서
집을 지키던 큰 개 도치를 거실로 들여 놓았다
동물을 사랑하는 나는 금방 도치와 찬근해졌다
남편이 무거운 카메라를 둘러메고 점점 산 위쪽으로 올라간다
가파르게 올라간 산에 다랭이 논들과 재래식 농가들이 있었다
보통의 여행객들은 동네 한 가운데로 난 길을 오가면서 마을을 둘러보지만
우리는 사진을 찍기 위해 산 위로 올라갔다
농가 집집마다 큰 개들을 길렀고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개들은 낯선 우리를 경계하며 짖어대고 바짝 다가와서 겁도 났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올라가서 내일 아침 일출시에 맞추어 올 장소를 물색해 두었다
새벽이 되었을까
꼬끼오! 꼬끼오!
잠결에 여기저기서 수탉들의 울음 소리가 들리기시작했다
어릴적 시골에서 들었던 닭 울음소리가 정겨운듯 아득한 듯 들린다
동이 트기 전 어제 봐두었던 꼭대기 다랭이 논으로 가야 되기 때문에 어둠속을 나섰다
큰 개들이 짖어대며 다가오자 남편이 앞장 설테니 뒤에 바짝 따라오고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개들이 경계적인 겁만 주지 대들어 물 태세는 아니었다
암튼 긴장을 늦주치 않고 무사히 민가를 지나 다랭이 논에 다다랐다
알프스 같은 산 저멀리 먼동이 트기 시작하였다
늘 느끼지만 일출과 일몰은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살골짜기 아래로 흰 안개구름이 밀려오고 있었다
전날 밤 비가 와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사진을 찍고 내려와서 아미카 하우스에서 준비해준 아침을 먹었다
대도시 하노이에서 목이 칼칼했는데 라오차이 마을에 와서 맑은 공기와
대자연 속에서 힐링이 충분히 되었다
아침 7시 반에 약속해둔 차와 기사 비엣씨가 집 앞으로 왔다
자가용 영업을 하는 차인데 4시간을 운전해 주고 35달러를 주기로 했다
오늘은 여기서 두시간 가량 가야 되는 긴 폭포이다
어젯밤 비가와서 공사길은 진창길이고 한치 앞도 안 보이는 비안개를 헤치고 간다
가다가 움푹 패인 길에 차바퀴가 빠져서 뚫고 나가느라고 비엣씨가 고생하였다
엄청난 고난도 산길을 빠져나와 드디어 폭포가 보이는 곳에 도착하였다
우리 일행 외에는 한 사람도 없는 폭포였다
폭포는 장엄했지만 여기까지 교통편이 없고 험난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운전기사 베엣씨가 돌아가는 길은 온 길과 다른 길로 돌아갔다
더 고산지대로 올라가지만 포장이 된 도로였다
우리는 레스토랑에서 점심과 과일주스를 먹고 마을을 한번 씩 더 돌아다니며 사진에 담았다
들소들이 찻길까지 올라와서 떼를 지어 다니고 닭들도 몰려 다니고 있었다
컴컴한 우리에는 돼지들이 있는데 어떤 돼지들은 방목되어 키우고 있었다
오늘도 많은 여행객들이 민속의상을 입은 여자들과 함께 다니고 있었다
이곳을 떠나는 날 새벽에 닭들이 또 잠을 깨워주었다
한 마리 닭이 울기 시작하면 다른 집들의 닭들도 화답하는 듯
온 마을에 메아리처럼 울려퍼졌다
열한시에 비엣씨 차를 예약해 두었는데 열시쯤 체크 아웃 하고 시간이 남아서
나는 가게에 가서 핸드 메이드 쿠션 카바를 기념으로 하나 샀다
핸드 메이드라고 20만동인데 15만동에 깎았다가 18만동에 샀다
밍의 엄마는 아침식사 때부터 도우미 아가씨를 불렀는지 그 아가씨가 숙소 청소도 하였다
그래서 그녀에게 약간의 팁을 주었다
자기 집인데도 직접 청소를 안 하고 도우미를 부르는 "밍"의 엄마가 현명해 보였다
돈을 덜 벌더라도 편하게 사는 걸 우선하는 성향의 주부이다
집 주인 키인씨, 미의 엄마와 밍 모두 똑똑해서 알밤도토리같은 가족이었다
밍의 엄마는 외출했다가 우리가 떠날 때가 되니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왔다
우리는 포옹하며 작별 인사를 나누고 비엣의 차에 올랐다
도치는 벌써 우리가 떠난다는 걸 감지하고 대문 옆 제 집에서 시무룩해 있었다
나는 3일간이지만 정이 든 개 도치에게도 작별인사를 해주었다
"도치! 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라!...
내가 영어로 이렇게 말하니까 밍의 엄마와 도우미 아가씨가 웃었다
도치는 익숙한 작별인듯 담담하면서도 눈을 떼지 않았다
내가 차에 올라 모습이 안 보일 때까지....
동물을 사랑하는 나는 주인집 개 도치와 친해졌다
낮이면 대문에서 집을 지키고 밤이면 안전상 거실로 들여놓는다
첫댓글 베트남 하노이며 사파 등 도시들, 그 열대지방 인간들의 마음..많은 산수풍경들...
형숙님의 멋진 옷모습이며 물소들의 이동.. 참말 긴 이야기를 절 쓰셨군요.
나는 베트남에는 가보지 못했지만 그 남북전쟁 때 한국군 소대장으로 전투에 참전했던
고려대출신 내 친구를 통해 월남전의 참상을 자세히 들었지요. 그리고 내가 잘 아는
중년 한국인이 지금 무역회사의 직원으로 그곳에 가있어요. 나는 열대지방에는 여행가기를
원치 않는데.... 형숙님은 넓은 세계와 인간들을 많이 접하여 정겹게 사귀고 이야기도
즐겁게 나누는...여성문인이라....지금 제2차 북미회담의 장소로 하노이가 ...
님이 먼저 그곳에 가서 안내하는 듯
네..향강선생님 긴글 읽어주셨군요!
베트남 전쟁은 우리나라도 파견되어 민족감정이 비우호적일것 같은데
그런 기류는 전혀 없더군요.. 우리나라 기업들이 진출해서 경제과학적 호응을 일으키고
발전하고 있는 영향도 무시할수 없겠지요..요즘은 베트남 축구 영웅이 된 박항서 감독때문데
한국의 국가 이미지가 한층 상승되었습니다..
며칠째 미세먼지 최악으로 집에만 있었더니 답답하네요
이런 날은 향강님께서도 외출을 자제하시겠지요?
초미세먼지는 노약자에게 더 치명적이라고 하니 조심하셔요..~~
@숲속 형숙님... 나는 어려서부터 기관지가 약해서 기침과 감기, 페염까지 걸렸어요.
그래서 한국에선 서울대 분당병원 기관지천식 전문의의 검진과 처방약으로
도움을 받고 있어요. 요즈음의 극심한 미세먼지는 내게 아주 나쁜 해욱이에요.
그래서 될 수록 외출을 자제하고 있답니다.
@향강 네..향강선생님..반짝 추위가 찾아온 대신 대기가 맑아졌네요
내일은 다시 흐려진다는...
겨울밤입니다
이렇게 춥고 맑은 날이면 옥상의 별이 잘 관찰되지요
잠깐이지만 북두칠성과 주위의 별들을 바라보면 정신이 맑아져서 좋습니다
단테의 신곡에서 지옥은 별이 없다고 나온다지요
별이 없는 하늘..
희망이 사랑이 없는 세계라고 해석한 학자의 말에 공감이 듭니다
지금 우리 서울의 밤하늘에 별이 있는지요?...
물리적으로 별은 떠 있으나 보이지 않는..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할 때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