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우
「세계 문학 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책이라고 불리는 <월든>을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1817년 7월 12일 메사추세스 주의 콩코드에서 태어나 1862년 5월 6일, 결핵으로 45세의 나이에 눈을 감은 미국의 저술가이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으나 부와 명성을 좇는 안정된 직업을 갖지 않고 측량일이나 목수일 등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글을 썼다. 1845년 그는 월든 호숫가의 숲 속에 들어가 통나무집을 짓고 밭을 일구면서 모든 점에서 소박하고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2년간에 걸쳐 시도한다. 소로우의 대표작 <월든>은 이 숲 생활의 산물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한 숲 생활의 기록이 아니라, 자연의 예찬인 동시에 문명사회에 대한 통렬한 풍자이며. 그 어떤 것에 의해서도 구속받지 않으려는 한 자주적 인간의 독립 선언문이기도 하다. 1854년에 출간된 <월든>은 당시에는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했지만, 그의 문학적 사상적 영향력은 날로 커져 오늘날에는 19세기에 쓰인 가장 중요한 책들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으며, 수십 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많은 독자에게 읽히고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인두세 납부를 거부하여 수감되었던 사건을 통해 개인의 자유에 대한 국가 권력의 의미를 깊이 성찰한 그의 또 다른 저서 <시민의 불복종>은 세계의 역사를 바꾼 책으로 꼽히고 있다.」 월든 호수<출처:https://sylph58.blog.me/221207498490> 1. 숲 생활의 경제학
이 책(이라기보다는 정확히는 이 책의 대부분)을 썼을 때 나는 메사추세츠 주의 콩코드 마을 근처에 있는 월든 호숫가의 숲 속에 집 한 채를 지어 홀로 살고 있었다.
거기서 나는 2넌 2개월 동안을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시 문명생활권의 체류자로 돌아왔다.
비교적 자유로운 이 나라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지와 오해 때문에, 부질없는 근심과 과도한 노동에 몸과 마음을 빼앗겨 인생의 아름다운 열매를 따보지 못하고 있다.
인간에게는 신성이 있다고 흔히들 말한다. 그러나 밤낮으로 장터를 돌아다니는 저 짐 마차꾼을 보라! 그의 몸 안에서 조금이라도 신성이 작동하고 있는가? 그의 가장 큰 의무는 자기 말에게 먹이와 물을 주는 것이다.
얼마 전에 한 인디언 행상이 우리 마을에 사는 유명한 변호사의 집으로 바구니를 팔러 왔다. “바구니를 사지 않겠습니까?” 하고 그는 물었다.“ 아니오, 살 생각이 없습니다.” 라는 것이 대답이었다. “뭐요? 우리를 굶겨 죽일 생각이오?” 하고 대문을 나가면서 그 인디언이 외쳤다. 자기 주위의 부지런한 백이들이 모두 잘 사는 것을 보고, 특히 변호사는 변론을 엮어내기만 하면 무슨 마술처럼 재물과 지위가 뒤따르는 것을 보고 이 인디언이 생각했던 것이다. 나도 사업을 시작해야지. 바구니를 짜야겠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니까. 그 인디언은 바구니를 만들어 놓으면 자기 일은 끝나고, 바구니를 사는 것은 백인의 임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가끔 다음과 같은 테스트로 나의 친지들을 시험해본다. 즉, 당신들 중의 누가 무릎 위를 깁거나 또는 두어 번 박음질을 한 옷을 입어볼 용기를 가졌느냐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옷을 입으면 자신의 앞날이 망쳐질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떨어진 바지를 입기보다는 차라리 다리가 부러져 거리를 절룩거리며 걷는 것을 택할 것이다. 한 신사의 다리에 사고가 생기면 치료를 받을 수 있지만, 그 비슷한 사고가 그의 바짓가랑이에 생기면 치료 방법이 없다. 그는 무엇이 진실로 존경할 만한 것인가 보다는 세상 사람들이 존경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더 염두에 둔다.
당신이 마지막 입었던 옷을 허수아비에게 입혀놓고 그 옆에 알몸으로 뱅충맞게 서 있어보라. 그러면 누구나 곧 허수아비에게 먼저 인사를 할 것이다. 요 전날 나는 어느 옥수수 밭을 지나가다가 나무말뚝에 모자와 외투를 입혀놓은 것을 보고 그 밭주인이 누구인가를 알았다. 그는 내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조금 더 풍우에 시달려 보였다.
헌 신발은 영웅이 신으면 그의 하인이(만약 영웅에게 하인이 있다면) 신을 때보다 더 오래갈 것이다. 맨발은 신발보다 더 오래된 것인 데다 영웅은 맨발로도 다닐 수 있으니 말이다.
사람의 몸에서 일단 벗겨진 옷은 보잘 것 없고 우스꽝스럽다.
병사가 포탄에 맞아 쓰러지면 갈기갈기 찢긴 군복은 왕후의 자주 빛 의상보다 더 그에게 어울리는 것이다.
1845년 3월 말경, 나는 도끼 한 자루를 빌려 들고 월든 호숫가의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내가 집을 지을 장소로 봐둔 곳이었는데, 나는 집터 바로 옆에 자라던 곧게 뻗은 한창때의 백송나무들을 재목감으로 베어 넘기기 시작했다.
마침내 5월 초순에 이르러 나는 몇몇 친지들의 도움을 받아 집의 상량을 했다.
벽을 붙이고 지분 올리는 일이 완료되자마자 나는 입주를 했는데 그날은 바로 7월 4일이었다.
겨울이 닥치기 전에 나는 굴뚝을 완성했다.
2. 나는 어디서 살았으며, 무엇을 위하여 살았는가
인생의 어느 계절에 이르면 우리는 모든 장소를 자신이 살 집터로 생각해보는 습관을 갖게 된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사는 곳으로부터 사방 12마일 이내에 있는 모든 땅을 살펴보았다.
옛날에 어떤 왕자가 있었는데, 갓난아이 때 왕궁에서 쫓겨나 숲의 나무꾼에 의하여 길러졌다. 그는 이런 상태에서 어른이 되었는데, 스스로를 같이 사는 미개 부족의 한 사람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부왕의 대신이 그 젊은이를 발견하여 그의 신분을 알려 주었으며, 그는 자신의 신분에 대한 오해를 풀고 자신이 왕자임을 알게 되었다. 그 힌두교 철인은 계속해서 말했다. 이와 같이 영혼도,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으로 인해 자기의 본성에 대하여 오해를 한다. 그러다가 어느 거룩한 스승이 진리를 밝혀주면 그때서야 자신이 브라흐마라는 것을 알게 된다.
3. 독서
우리가 우리 자신이나 자손들을 위해 재산을 모으고 가문이나 국가를 창설하고 명성까지 얻는다고 해도 우리는 결국에는 죽게 되어 있다. 그러나 진리를 다루면 우리는 불멸의 생명을 얻게 되며 변화나 재난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된다.
나는 여름 내내 호머의 <일리아드>를 책상위에 놓아두었다. 그러나 이따금씩 반 밖에는 책장을 들추지 못했다.
당신이 젊은 날의 소중한 시간을 바쳐 몇 마디나마 고전 어휘들을 공부하는 것은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이 어휘들은 거리의 천박함을 넘어서서 당신에게 영원한 암시와 자극을 줄 것이다. 농부가 자신이 주워들은 라틴어 몇 마디를 기억하고 되뇌어보는 것은 결코 쓸데없는 짓이 아닌 것이다.
고전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유일한 신탁이며, 그 안에는 가장 현대적인 질문에 대하여 델포이에 있는 아폴로 신의 신탁이나 도도나에 있는 제우스의 신도 신탁을 밝히지 못한 해답들이 들어있다. 고전 연구를 그만 두는 것은 자연이 낡았다고 해서 자연 연구를 그만두는 것이나 다름없다.
독서를 잘한다는 것, 즉 참다운 책을 참다운 정신으로 읽는 것은 고귀한 운동이며, 오늘날의 풍조가 존중하는 어떤 운동선수보다도 독자에게 힘이 드는 운동이다. 그것은 운동선수들이 받는 것과 같은 훈련과, 거의 평생에 걸친 꾸준한 자세로 독서를 하려는 마음가짐을 요한다. 책은 처음 쓰였을 때처럼 의도적으로 그리고 신중히 읽혀야 한다.
우리 마을의 순회도서관에는 <리틀 리딩> 이라는 제목이 붙은 몇 권으로 된 책이 있는데, 나는 처음에 그것이 내가 가보지 못한 어떤 마을의 이름인 줄로만 알았다. 세상에는 가마우지나 타조처럼 고기와 야채를 실 컨 먹은 다음에도 이런 잡동사니 책들을 얼마든지 소화해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무엇이든지 버리는 데 아까운 것이다. 이런 종류의 여물을 만들어내는 기계 같은 사람들이 있다면 이 사람들은 이런 여물을 읽어치우는 기계들이다. 그들은 제블론과 세프로니아에 관한 9천 번째의 이야기를 읽으며, 이 젊은 두 연인이 그 누구보다도 진한 사랑을 했다느니, 이들의 참사랑이 순탄한 길을 걷지 못했다느니, 아무튼 그 사랑이 어떻게 앞으로 가다가 넘어졌고 다시 일어나서 앞으로 또 갔던가 하면서 넋을 잃고 있다. 그밖에도 어떤 운 나쁜 친구가 어떻게 교회의 첨탑에 올라가게 됐는가(이 녀석은 애초부터 종루까지 올라가질 말았어야 했다)에 대한 이야기도 있는데, 주인공을 쓸데없이 높은 곳으로 올려놓은 다음 신이 난 소설가는 종을 쳐서 온 세상 사람들더러 모이라고 해놓고는, “큰일 날 뻔했지!”, “그 사람 참 아슬아슬하게 내려왔어!”하는 식의 감탄을 자아내는 그다음 이야기를 들으라고 한다. 내 생각으로는 옛날에 영웅들이 하늘의 별자리 사이에 두었던 것처럼, 소설 왕국의 이들 오르기 좋아하는 주인공을 인간 풍향계로 만들어 녹이 슬 때까지 그 높은 곳에서 뱅글뱅글 돌게 하며 다시는 지상으로 내려와 쓸데없는 장난으로 선량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다음에 그 소설가가 종을 칠 때는 나는 공회당에 불이 나서 다 타버리더라도 꼼짝하지 않을 생각이다.
4. 숲의 소리들
첫 번째 여름에는 책을 읽지 못했다. 콩밭을 가꾸어야 했던 것이다.
나는 내 인생에 넓은 여백이 있기를 원한다. 여름날 아침에는 간혹, 이제는 습관이 된 멱을 감은 다음 해가 잘 드는 문지방에 앉아서 해 뜰 녘부터 한낮까지 한없이 공상에 잠기곤 했다. 그런 나의 주위에는 소나무, 호두나무와 옻나무가 자라고 있었으며 그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고독과 정적이 사방에 펼쳐져 있었다. 오직 새들만이 곁에서 노래하거나 소리 없이 집 안을 넘나들었다.
이런 계절에는 나는 밤사이의 옥수수처럼 무럭무럭 자랐다. 정말이지 이런 시간들은 손으로 하는 그 어떤 일보다 훨씬 소중한 것이었다. 그런 시간들은 내 인생에서 공제되는 시간들이 아니고 오히려 나에게 할당된 생명의 시간을 초과해서 주어진 특별수당과도 같은 것이었다. 나는 동양 사람들이 일을 포기하고 명상에 잠기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대체로 나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든 개의치 않았다. 하루는 마치 내가 해야 할 일을 덜어주려는 듯이 지나갔다. 아침이구나 하면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그렇다고 특별히 해놓은 일은 없었다. 새처럼 노래 부르는 대신 나는 나의 끝없는 행운에 말없이 미소 지었다. 참새가 집 앞의 호두나무에 앉아 지저귈 때 나는 혼자서 키득키득 웃었다. 이 웃음은 차라리 새처럼 노래 부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른 것으로 참새는 내 둥지에서 나는 그 소리를 들었으리라.
나는 푸리족 인디오처럼 살았다. 그들에 관해서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 이 사람들은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나타내는 데에 한 가지 말박에 없다. 그래서 어제를 의미할 때는 등 뒤를 가리키고, 내일은 자기 앞을, 그리고 오늘은 머리 위를 가리켜서 뜻의 차이를 나타낸다.”
내 모든 살림 도구가 풀밭 위에 나와 집시의 못짐처럼 한 무더기로 쌓이고, 내 삼각 탁자가 책과 펜과 잉크가 그냥 놓인 채로 소나무와 호두나무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유쾌한 일이었다. 그 물건들도 밖으로 나온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고 다시 안에 들어가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았다.
나의 집은 언덕의 중간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커다란 숲이 바로 거기에서 끝나고 있었으며, 집 주위에는 한창때의 리기다소나무와 호두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호수까지의 거리는 30미터쯤 되었으며 , 집에서 호수로 가는 길은 언덕을 내려가는 작은 오솔길로 되어 있었다. 집 앞의 뜰에는 딸기와 검은 딸기, 보릿대국화, 물레나물, 미역취, 떡갈나무의 관목, 모래벚나무, 원굴나무와 감자콩 등이 자라고 있었다.
모래벚나무는 짧은 줄기 주위에 원통형의 산형꽃차례로 피어난 섬세한 꽃들로 길 양편을 장식했다. 가을이 되면 이 나무의 줄기는 꽤 큼직한 보기 좋은 열매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방사선 모양의 화환처럼 사방으로 휘어졌다.
나는 반시간 전부터 보스턴에서 시골로 손님들을 실어 나르는 기차의 바퀴 소리를 듣고 있었는데, 그 소리는 들꿩의 날개 짓 소리처럼 이제는 안 들리겠거니 하면 다시 들리곤 했다.
기관차의 기적은 여름이고 겨울이고 내가 사는 숲을 뚫고 들려오는 데, 그 소리는 어느 농가 위를 나르는 매의 울음소리 같기도 하다.
생선들은 어찌나 철저하게 소금으로 절여놓았는지 어떤 일이 있어도 썩지 않을 것이며, 그래서 도를 닦는 성자들도 그 앞에서는 낯을 붉히게 될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의 참된 성품을 알게 되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그 성품을 더 좋게 든 혹은 더 나쁘게 든 바꿀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전혀 갖지 않는다. 동양 사람들이 말하듯이 “개의 꼬리를 뜨겁게 한 다음 눌러서 노끈으로 묶는 일을 12년간이나 되풀이하더라도 그것은 원래의 형태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이들 소꼬리나 개꼬리를 하듯이 이것들을 끓여서 아교로 만드는 것인데, 아교가 된 다음에는 붙여놓은 대로 붙어있을 것이다.
5. 고독
그런데 무슨 까닭으로 나는 사람들로부터 버려져 있는 이 광활한 영역을, 이 몇 제곱마일이나 되는 인적 드문 숲을 혼자서 차지하고 있는 것일까? 나의 가장 가까운 이웃도 1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살고 있으며, 언덕 꼭대기에 올라가지 않는 한 내 집 주위의 반마일 이내에는 사람 사는 집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늘 내 콩밭을 적시면서 한편으로 나를 집에 머물도록 하는 저 보슬비는 지루하고 우울한 느낌을 주지 않고 오히려 내게 좋은 일을 해주고 있다. 비 때문에 콩밭을 매지 못하지만, 비는 밭 매는 것보다 훨씬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 비가 계속되어 땅속의 종자들이 썩고 낮은 지대에서 감자 농사를 망치더라도 높은 지대의 풀에게는 좋을 것이며, 풀에게 좋다면 나에게도 좋은 것이다.
때때로 나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보면, 내가 그들에 비해 분에 넘치게 신의 총애를 받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마치 내가 남들이 갖지 못한 면허증과 보증서를 신들로부터 받았으며, 신들에 의해 각별한 지도와 보호를 받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 나는 스스로를 추어올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만약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신들이 나를 추어올리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나는 외로움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으며 고독감 때문에 조금이라도 위축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꼭 한 번, 내가 숲에 온 지 몇 주일 되지 않아서였는데, 그때 나는 주변에 사람들이 있는 것이 명랑하고 건전한 생활의 필수 조건이 아닌가 하는 생각 속에 약 한 시간쯤 빠져 있었다. 혼자 있는 것이 언짢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나는 내 기분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식했으며 이 기분에서 곧 벗어나게 되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이웃에 사람이 있음으로써 얻을 수 있다고 생각되던 여러 가지 이점이 대단치 않은 것임을 느꼈고 그 후로는 두 번 다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솔잎 하나하나가 친화감으로 부풀어 올라 나를 친구처럼 대해주었다. 나는 사람들이 황량하고 쓸쓸하다고 하는 장소에서도 나와 친근한 어떤 것이 존재함을 분명히 느꼈다. 나는 나에게 혈연적으로 가장 가깝거나 가장 인간적인 것이, 반드시 어떤 인ㄱ나이거나 어떤 마을 사람이지는 않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부터 어떤 장소도 나에게는 낯선 곳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
사람들은 늘 나에게 이런 말을 하곤 한다. “그곳에선 무척 외롭겠군요, 특히 눈이나 비가 오는 날이나 밤 같은 때는 이웃이 그립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대답해주고 싶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자체가 우주의 한 점에 불과합니다. 저 별의 폭은 인간이 만든 기계로는 측정할 수 없는데, 저 별에 살고 있는 가장 멀리 떨어진 두 사람의 거리가 얼마쯤 된다고 생각하시오? 어째서 내가 외롭게 느끼리라고 생각하죠? 우리의 지구는 은하수 안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댁이 나에게 한 질문은 핵심을 찌른 질문은 아닙니다. 사람을 그의 동료들로부터 분리시켜 그를 고독하게 만드는 공간은 어떤 종류의 공간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무리 발을 부지런히 놀려도 두 사람의 마음이 가까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나는 압니다. 사람은 그 무엇에 가장 가까이 살고 싶어 한다고 생각합니까? 많은 사람들 가운데는 분명 아닐 겁니다. 기차역이나, 공회당, 학교, 잡화점, 술집, 비컨힐이나 파이프포인츠 같이 사람들이 많이 몰려드는 곳은 아닐 것이오. 물가에 서 있는 버드나무가 물 쪽으로 뿌리를 뻗듯 우리의 온갖 경험에 비추어보아 생명이 분출되어 나오는 곳, 즉 영원한 생명의 원천이라고 생각하는 곳에 가까이 살기를 원할 것이오. 사람마다 본성에 따라 다르겠지만 현명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그곳에 지하 저장실을 팔 것이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지내는 것이 심신에 좋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사람들이라도 같이 있으면 곧 싫증이 나고 주의가 산만해진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좋다. 나는 고독만큼 친해지기 쉬운 벗을 아직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대체로 우리는 방 안에 홀로 있을 때보다 밖에 나가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닐 때 더 고독하다. 사색하는 사람이나 일하는 사람은 어디에 있든지 항상 혼자이다. 고독은 한 사람과 그의 동료들 사이에 놓인 거리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버드 대학의 혼잡한 교실에서도 정말 공부에 몰두해 있는 학생은 사막의 수도승만큼이나 홀로인 것이다.
농부는 하루 종일 혼자 밭에서 김을 매거나 숲에서 나무를 베면서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일에 몰두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밤에 집에 돌아오면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라 방 안에 가만히 혼자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하루 종일 혼자 있었던 것에 대해 스스로를 보상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하여 사람들을 만나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그러므로 농부는 학생이 밤과 낮의 대부분을 집에 있으면서 어떻게 권태와 우울증을 느끼지 않나 의아해 한다. 농부는 학생이 집에 있더라도 농부처럼 그 나름의 밭을 갈고 그 나름의 나무를 베고 있으며 그런 다음에는 좀 더 집중된 형태이긴 하지만 농부와 똑같은 휴식과 사교를 찾는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대체로 사람들의 사교는 값이 너무 싸다. 우리는 너무 자주 만나기 때문에 각자 새로운 가치를 획득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우리는 하루 세끼 식사 때마다 만나서 우리 자신이라는 저 곰팡내 나는 치즈를 서로에게 맛보인다. 이렇게 자주 만나는 것이 견딜 수 없게 되어 서로 치고 받는 싸움판이 벌어지지 않도록 우리는 예의범절이라는 일정한 규칙들로 협의해놓아야 한다.
우리는 우체국에서 만나는가 하면 친목회에서 만나며 매일 밤 난롯가에서 또 만난다. 우리는 너 얽혀 살고 있어서 서로의 길을 막기도 하고 서로에게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그 결과 우리는 서로에 대한 존경심을 잃어버렸다. 조금 더 간격을 두고 만났더라도 중요하고 흉금을 터놓는 의사소통에는 전혀 지장이 없을 터인데도 말이다.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저 여공들을 생각해보라, 그들은 꿈속에서까지 혼자 있는 일이란 없다.
내 집에는 무던히도 많은 친구들이 있다. 특히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아침에는 더욱 그렇다. 나의 처지가 이해될 수 있도록 몇 가지 비유를 들어 보겠다. 마치 웃는 것 같은 특유의 울음을 큰 소리로 우는 호수의 저 되강오리가 외롭지 않다. 저 고독한 호수가 도대체 어떤 벗들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그러나 저 호수는 그 감청색의 물속에 푸른 악마들이 아닌 푸른 천사들을 가지고 잇는 것이다. 태양은 혼자이다. 안개가 자욱한 날에는 태양이 두 개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하나는 가짜 태양인 것이다. 하나님 역시 홀로 존재한다. 그러나 악마는 결코 혼자 있는 법이 없다. 그는 많은 패거리들과 어울려 대군을 이루고 있다. 목장에 핀 한 송이 우단현삼이나 민들레꽃, 콩잎, 팽이밥, 등에 그리고 뒤영벌이 외롭지 않듯이 나도 외롭지 않다. 밀브록이나 지붕위의 풍향계, 북극성, 남풍, 4월의 봄비, 정월의 해동 그리고 새로 지은 집에 자리 잡은 첫 번째 거미……. 이런 모든 것들이 외롭지 않듯이 나도 외롭지 않다.
숲 속에 눈이 펑펑 내리고 바람이 세차게 부는 긴 겨울밤이면 호수의 옛 개척자며 원래 주인이었던 이가 이따금 찾아온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이 양반이 월든 호수를 파서 돌로 기반을 단단히 다진 다음 주변에 소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그는 나에게 옛날에 있었던 일과 새로운 영원에 대하여 이야기해준다. 우리 두 사람은 사과나 과일즙 없이도 사교적인 유쾌한 잡담을 나누면서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내곤 한다. 나의 친구는 몹시 현명하고 유머 감각이 풍부해서 나는 그를 무척 좋아한다. 그는 고프나 휠리 보다도 더 사람 눈에 띄지 않게 돌아다닌다. 사람들은 그가 이미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디에 묻혀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만병통치약은 엉터리 의사가 저승의 강과 사해의 물로 조제해서는, 병의 운반용으로 제작된 것을 종종 볼 수 있는 저 길고 납작한 검은 배 같은 마차에 싣고 다니면서 파는 물약 병이 아니다. 내가 진정 아끼는 만병통치약은 희석되지 않은 순수한 아침 공기 한 모금이다. 아, 아침 공기! 만약 사람들이 하루의 원천인 새벽에 이 아침 공기를 마시려들지 않는다면, 그것을 병에 담아 가게에서 팔기라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침 공기는 아무리 차가운 지하실에 넣어둔다 해도 정오까지 견디지 못하고 그 전에 벌써 병마개를 밀어젖히고 새벽의 여신을 따라 서쪽으로 날아가 버린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6. 방문객들
내 집에는 세 개의 의자가 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한 것이고 둘은 우정을 위한 것이며 셋은 사교를 위한 것이다.
집이 너무나 크고 웅장하기 때문에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그곳의 거주자라기보다 차라리 그 안에 기생하는 해충들처럼 보인다.
세상에는 큰 소리를 쳐서는 결코 표현할 수 없는 섬세한 것들이 있다.
오늘 아침 나의 집을 찾아온 사람은 진실로 호머의 작품 속에 나오는 인물이나 파플라고니아 인 같은 사람이라 할 수 잇을 것이다. 이 사람은 너무나 그럴듯한 시적인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이 자리에서 그 이름을 밝힐 수 없는 것이 유감일 뿐이다. 그는 캐나다 태생의 나무꾼이며, 나무 기둥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하루에 50개의 기둥에 구멍을 팔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자기 개가 사냥해 온 우드척을 요리해서 어제 식사로 먹었다고 했다.
그의 나이는 스물여덟쯤 되었는데, 12년 전에 캐나다의 고향 집을 떠나 미국으로 왔다. 이곳에서 일을 하여 돈을 벌어서는 농장을 마련할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그때는 아마 고국으로 다시 돌아갈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아침 일찍 나의 콩밭을 가로질러 지나다녔으나 미국인처럼 무엇에 쫓기는 듯이 서둘러 일을 시작하지는 않았다. 그는 무리하게 일을 하지 않았으며 그날의 하숙비만 벌어도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내가 그에게 흥미를 가진 것은, 그처럼 말이 없는 외톨이면서도 몹시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쾌활한 만족의 샘 같았는데 그 샘의 물은 그의 눈을 통해 철철 흘러넘쳤다. 그의 기쁨은 순수한 것이었다.
길을 가던 사람들 중 많은 사람이 나와 내 집의 내부를 보려고 일부러 길을 돌아왔으며, 찾아온 구실로 물 한잔을 청했다. 나는 그릇을 빌려주겠노라고 했다.
나는 병아리를 기르지 않으므로 솔개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사람을 귀찮게 하는 인간 솔개는 두려워했다.
7. 콩밭
그러는 동안 밭두둑의 총 연장 길이가 7마일 정도나 되게 심어놓은 나의 콩들은 김매기를 갈망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심은 콩들은 마지막 콩을 심기도 전에 상당히 자랐을 것이다. 사실 김매기를 더 이상 늦출 수는 없었다. 이 지속적이고 자존심을 요하는 노동, 이 헤라클레스의 고난의 축소판 같은 노동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콩밭과 거기에 심어놓은 콩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콩은 나를 대지에 연결시켜주었으며 나는 안타이오스처럼 대지로부터 힘을 얻었다. 그러나 내가 왜 콩을 길러야 하는가? 오직 하늘만이 알 것이다. 여름 내내 내가 몰두해 있던 이 신기롭기 짝이 없는 일은 그전엔 양지꽃과 검은 딸기와 물레나물 같은 향기로운 야생 열매와 아름다운 꽃들만이 자라던 땅에서 이제는 대신 콩이 나오도록 하는 일이었다. 나는 콩들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이며, 콩들은 나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나는 콩들을 아껴주며 김을 매주고 아침저녁으로 살펴준다.
콩밭을 가꾸는 데 돕는 조수들이 잇다. 이 마른 땅에 물기를 공급해주는 이슬과 비 그리고 척박한 땅에 다소라도 남아있는 생산력이 바로 그것이다. 반대로 나의 적들로는 벌레들과 서늘한 날씨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우드척을 들 수 있다. 우드척이란 놈들은 4분의 1에이커나 되는 콩을 깨끗이 갉아 먹었다. 그러나 내가 무슨 권리가 있어 물레나물과 그 밖의 풀들을 쫓아내며 그들이 예부터 이룩해놓은 잡초의 정원을 망가뜨린단 말인가?
8. 마을
이발소와 구둣가게와 재봉사는 각각 여행자의 머리털과 발목과 치맛자락을 잡으려고 했다.
때로 깜깜하고 무더운 밤늦게 보이지 않는 길을 발로 더듬으며 오면서 몽상에 빠지거나 다른 생각에 깊이 몰두할 경우에는 문의 걸쇠를 올리려고 손을 들 때에야 비로소 정신이 드는데, 이런 때는 내가 걸어온 길이 한 발자국도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손이 아무런 도움 없이도 입을 찾듯이 내 몸도 주인이 버리더라도 집을 찾아올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몇 번인가, 나를 찾아온 손님이 저녁 늦게까지 있다가 돌아가는 경우가 있었다. 깜깜한 밤에는 집 뒤쪽으로 난 수레 길까지 그를 안내하고 그가 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었는데, 그런 때 그는 눈이 아니라 발로 길을 더듬으면서 돌아가야만 했다. 어느 칠흑같이 어두운 밤, 나는 호수에서 낚시질하던 두 청년에게도 그런 식으로 길을 가르쳐 주었다. 그들은 숲속으로 해서 약 1마일 쯤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으며 평소 그 길을 잘 알고 있는 터였다. 하룬가 이틀 후엔가 두 청년 중 한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그들은 자기네 집 근처에서 거의 온 밤을 헤맸으며, 새벽녘에야 겨우 집에 돌아갔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밤새 몇 차례 심한 소나기가 내리고 나뭇잎들이 젖어있어서 완전히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다고 덧붙이는 것이었다.
잠에서 깨어나든 몽상에서 깨어나든, 사람은 그때마다 나침반의 위치를 다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길을 잃고 나서야, 다시 말하면 세상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시작하며, 우리의 위치와 우리의 관계의 무한한 범위를 깨닫기 시작한다.
9. 호수
과일은 그것을 사먹는 사람이나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하여 재배하는 사람에게는 결코 참다운 맛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 맛을 보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뿐인데, 이 방법을 택하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허클베리의 참 맛을 알려거든 소 모는 소년이나 들꿩에게 물어보라. 허클베리를 손수 따보지 않은 사람이 허클베리 맛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흔히 범하는 잘못된 생각이다.
허클베리는 보스턴까지 결코 오지 않는다. 예전에는 보스턴의 세 언덕에 허클베리가 자생했지만 지금은 그 도시에서 참다운 허클베리를 찾아볼 수 없다. 장사꾼의 수레에 실려 오면서 허클베리의 과분만 문질러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 과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불사의 성분도 같이 사라지는 것이다. 남은 것은 식품으로서의 딸기일 뿐이다.
어떤 때 나는 그날의 김매기 작업이 끝나면 아침부터 호수에서 성급한 마음으로 낚시질을 하고 있던 친구에게로 가서 어울렸다.
가끔 우리는 호수에 배를 띄우고 제각기 배의 한쪽 끝을 차지해 앉아 있곤 했다. 최근에 와서 노인의 귀는 거의 들리지 않았으므로 두 사람 사이에는 별로 말이 없었다. 노인만이 이따금씩 찬송가를 흥얼거릴 따름이었다. 이것이 나의 철학과도 어울리는 것이었다. 그와 나의 친교는 깨어지지 않는 조화의 친교였으며, 말이 개입된 경우보다 뒷날 회상하기에 더 즐거운 것이 되었다. 거의 늘 그랬지만 혼자라서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없을 때는 나는 노로 뱃전을 침으로써 메아리를 울리게 하곤 했다.
날씨가 훈훈한 밤에는 자주 보트를 띄우고 그 안에 앉아 피리를 불었다. 내 피리 소리에 매혹된 듯 한 퍼치들이 배 주위를 떠나지 않고 헤엄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10. 베이커 농장
나무들은 너무나도 부드럽고 푸르른 데다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있었으므로 드루이드교의 승려들이 보았더라면 떡갈나무 숲을 버리고 이 소나무 숲에서 예배를 보려고 했을 것이다.
11. 보다 높은 법칙들
고기 잡은 것을 줄에 꿰어 들고 낚싯대를 끌면서 숲을 지나 집으로 돌아올 때는 제법 어두워졌을 때였다. 이때 우드척 한 마리가 내 앞길을 살짝 가로질러 지나갔다. 나는 야만적인 기쁨의 야릇한 전율과 함께 그놈을 잡아 날것으로 먹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배가 고파서가 아니었다. 그 우드척이 나타내는 야성에 식욕을 느낀 것이다. 나는 호숫가에 사는 동안 굶주린 사냥개처럼 어떤 야생동물이라도 있으면 잡아먹으려고 이상한 무아의 경지에서 숲 속을 헤멘 적이 한 두 차례 있었다.
호숫가에 사는 동안 나는 변화를 줄 겸 식단에 물고기를 추가할 경우가 있었다. 사실 나는 인류 최초의 어부들과 똑같은 필요 때문에 물고기를 잡았다. 내가 낚시에 대하여 어떤 인도적 차원의 반대론을 제기한다면 그것은 인위적인 것이며, 나의 감정보다는 나의 철학에 더 관계된 것이다. 여기서 나는 단지 낚시에 대해서만 말하고 잇다. 새 사냥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다른 견해를 갖고 있어 숲 속에 들어오기 전에 엽총을 팔아버렸다. 낚시에 대해선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자비심이 덜해서가 아니라,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물고기나 지렁이에 대해서는 가여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습관적으로 그러했다.
12. 이웃의 동물들
어느 날 내가 긴 의자 위에 팔꿈치를 대고 기대어 앉았노라니 그 생쥐가 내 옷 위를 타고 올라온 다음 다시 옷소매를 따라 기어와서는 내 손에 든 종이로 싼 점심을 노리는 게 아닌가? 나는 점심을 싼 종이를 꽉 쥐고 녀석을 피하면서 숨바꼭질 놀이를 했다. 마침내 내가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 사이에 치즈 한 조각을 쥐고 가만히 있자, 녀석은 내 손바닥 위에 올라오더니 거기에 앉은 채로 치즈를 갉아 먹었다.그러고는 파리처럼 자기 얼굴과 앞발을 깨끗이 하고는 사라져버렸다.
13. 집에 불 때기
북풍은 이미 호수에 냉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러나 호수를 완전히 차갑게 하려면 적어도 몇 주일간은 쉬지 않고 불어야 할 것이다. 월든 호수는 그렇게 깊다. 저녁에 불을 처음으로 지필 무렵에 굴뚝은 연기를 아주 잘 뽑아냈다. 왜냐하면 집의 회벽칠을 하기 전이라서 판자와 판자 사이에 무수한 구멍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서늘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집에서 여러 날 즐거운 저녁을 보냈다. 옹이가 많이 박힌 거친 판자들로 된 벽이 나를 둘러싸고, 껍질이 덜 벗겨진 대들보가 머리 위에 높게 자리 잡고 있는 그런 집에서 말이다. 내 집은 자그마했으나 그 안에서 메아리 소리는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방 한 칸으로 된 집이고 이웃집과도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한결 더 커 보였다. 주택의 모든 편의 시설들이 방 하나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것은 부엌이자 침실이었고, 거실이자 안방이었다. 어른이나 아이, 주인이나 하인이 집에 거주함으로써 얻게 되는 온갖 만족감을 나는 실컷 즐기고 있었다.
로마의 원로 카토는, 한 집안의 가장이라면 시골집에 “유류와 술이 저장된 지하실과 식료품이 담긴 많은 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면 어려운 시기가 와도 마음이 든든할 것이다. 그것들은 그의 이익이 되고 힘이 되고 영광이 될 것이다.” 하고 말했다. 나는 내 지하 저장실에 감자가 들어 있는 작은 통 하나와 바구니가 섞인 완두콩 두 되 정도를 가지고 있으며, 선반에는 약간의 쌀과 한 병의 당밀 그리고 각각 한 말가량 되는 호밀가루와 옥수수 가루를 가지고 있었다. 얼음이 얼 정도의 추운 날씨가 닥치고서야 나는 집의 회벽 칠을 시작했다. 그것 대문에 호수 건너편으로 가서 희고 고운 모래를 배로 실어서 날라왔다. 이 수송 방법은 필요하다면 배를 한없이 저어 나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그동안에 나의 집은 사면이 바닥까지 널빤지로 이어졌다. 윗가지를 붙일 때는 망치질 한 번에 못이 재대로 탁탁 들어가 박혀 나 자신의 솜씨에 으쓱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나의 껍질 속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가 앉았으며, 집 안에도 나의 가슴속에도 밝은 불을 지펴 그것이 활활 타오르게 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장작더미를 일종의 애정을 가지고 바라본다. 나는 장작더미를 창문 밖에 쌓아놓았는데, 장작더미가 높으면 높을수록 나무를 할 때의 즐거운 시간이 더 잘 회상되었다. 나는 주인 없는 헌 도끼 한 자루를 가지고 있었다. 겨울에는 종종 양지바른 곳에 나가 내가 콩밭에서 캐낸 나무 그루터기에 그 도끼를 휘두르면서 시간을 보냈다. 밭에서 처음 쟁기질을 할 때 소를 몰던 사람이 예언했던 대로 이 그루터기들은 나를 두 번 따뜻하게 해 주었다. 즉 한 번은 내가 그것들을 쪼개느라고 도끼질을 할 때였고, 다른 한 번은 그것을 땔감으로 썼을 때였다.
겨울날의 오후에 산책을 나갈 때 나는 잘 피워놓은 불을 때로는 그대로 남겨놓은 채 집을 나섰다. 서나 시간 후에 돌아와서 보면 불은 여전히 잘 타고 있었다. 내가 나가 있을 때라도 집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쾌활한 가정부라도 한 사람 고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와 불은 한 집안에 사는 동거인인 셈이었다.
14. 전에 살던 사람들 그리고 겨울의 방문객들
내 콩밭의 동쪽 편으로 길 너머에는 카토 잉그램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는 콩코드 마을의 유지였던 던컨 잉그램 씨의 노예였는데 주인은 그를 위해 월든 숲 속에 집 한 채를 지어주고 거기서 살도록 했다.
어떤 사람의 얘기에 의하면 서아프리카의 기니에서 잡혀온 흑인 노예였다고 한다.
호두나무 숲 가운데에 있던 그의 작은 밭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아직도 몇 있다. 카토는 그 호두나무들을 길러 늙었을 때의 생계수단으로 삼을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호두나무 숲은 결국에는 좀 더 젊고 피부가 하얀 투기꾼의 손으로 넘어가 버렸다.
카토의 지하 저장실은 반쯤 땅속에 묻힌 채로 지금도 남아 있는데, 소나무 몇 그루에 가려져 길에서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는 풀밭을 가로질러 뻗어있는 철로 옆의 긴 둑길을 걸어서 마을에 가노라면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을 만나기가 일쑤였다. 이곳에는 바람을 막아줄 것이라고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냉기가 한쪽 뺨을 때리면 나는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다른 쪽 뺨도 내밀었다.
15. 겨울의 동물들
16. 겨울의 호수
17. 봄
이렇게 해서 내 숲 생활의 첫 번째 해는 끝이 났다. 그다음 해도 첫해와 큰 차이는 없었다. 1847년 9월 6일 나는 드디어 월든을 떠났다.
18. 맺는말
아픈 사람에게 의사는 현명하게도 공기와 장소를 바꾸어볼 것을 권한다. 여기 이곳만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니 천만다행한 일이 아닌가? 칠엽수는 뉴잉글랜드에서는 자라지 않고 흉내지빠귀의 울음소리를 이곳에서는 거의 들을 수 없다. 기러기는 인간들보다 더 세계인에 가깝다. 그는 캐나다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점심은 오하이오 강에서 먹으며 밤에는 남부 지방의 늪에서 날개를 가다듬고 잠자리에 든다.
그러나 우리는 농장의 나무 울타리를 헐고 돌담이라도 쌓으면 그 후로는 우리의 인생에 한계가 그어지고 운명이 결정된 것으로 생각한다. 만약 당신이 읍의 서기로 선출이라도 된다면 당신은 이번 여름에 티에라델푸에고에 가는 일은 불가능할 것으로 단정해 버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지옥의 불의 나라에는 가게 될는지 모른다. 우주는 우리들이 보기보다는 광대한 것이다.
우리는 호기심 많은 선객처럼 우리가 탄 배의 난간 너머로 자주 밖을 내다보아야 할 것이며, 뱃밥이나 만들고 있는 우둔한 선원처럼 항해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구의 반대편은 우리가 시선을 주고받는 사람의 고향일 뿐이다.
어떤 사람은 기린을 사냥하러 남아프리카로 달려가지만, 분명 그것은 그가 쫓아야 할 사냥감은 아닌 것이다. 정말이지 그렇게 할 수 있다 하더라도 얼마동안이나 기린을 쫓아다닐 것인가? 깍도요나 멧도요도 조은 사냥감이긴 하겠지만 자기 자신을 사냥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좀 더 고귀한 스포츠가 아니겠는가?
진실로 바라건대 당신 내부에 있는 신세계를 발견하는 콜럼버스가 되라
나는 숲에 들어갈 때나 마찬가지로 어떤 중요한 이유 때문에 숲을 떠났다. 내게는 살아야할 또 다른 몇 개의 인생이 남아있는 것처럼 느꼈으며, 그리하여 숲 생활에는 더 이상의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얼마나 쉽게 어떤 특정한 길을 밟게 되고 스스로를 위하여 다져진 길을 만들게 되는지는 놀라운 일이다. 내가 숲 속에 산지 일주일이 채 안되어 내 집 문간에서 호수까지는 내 발자국으로 인해 길이 났다.
당신의 인생이 아무리 비천하더라도 그것을 똑바로 맞이해서 살아나가라. 그것을 피한다든가 욕하지는 마라. 그것은 당신 자신만큼 나쁘지는 않다. 당신이 가장 부유할 때 당신의 삶은 가장 빈곤하게 보인다. 흠을 잡는 사람은 천국에서도 흠을 잡을 것이다. 당신의 인생이 빈곤하더라도 그것을 사랑하라. 당신이 비록 구빈원의 신세를 지고 있더라도 그곳에서 유쾌하고 고무적이며 멋진 시간들을 가질 수 있다. 지는 해는 부자의 저택이나 마찬가지로 양로원의 창에도 빌게 비친다. 봄이 오면 양로원 문 앞의 눈도 역시 녹는다. 인생을 차분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그런 곳에 살더라도 마치 궁전에 사는 것처럼 만족한 마음과 유쾌한 생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샐비어 같은 약초를 가꾸듯 가난을 가꾸어라. 옷이든 친구이든 새로운 것을 얻으려고 너무 애쓰지 마라. 헌 옷은 뒤집어서 다시 짓고 옛 친구들에게로 돌아가라. 사물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것은 우리들이다.
옷은 팔더라도 생각은 그대로 간직하라. 신은 당신이 외롭지 않도록 보살펴줄 것이다. 만약 내가 날마다 온종일 거미처럼 다락방의 한구석에 갇혀 있더라도 나의 생각만을 잃지 않는다면 세상이 조금이라도 좁아진 것으로 생각되지 않을 것이다. 철학자는 말했다. “3군으로 된 군대라도 그 우두머리를 사로잡으면 무너뜨릴 수 있으나, 필부일지라도 그의 지조를 빼앗을 수는 없다” 고
어떤 나그네가 한 소년에게 자기 앞에 있는 늪의 밑바닥이 단단한지 아닌지를 물어보았다는 예기를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소년은 밑바닥이 단단하다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 앞으로 나간 나그네의 말은 이내 복대 끈까지 빠져 들어갔다. 나그네는 소년에게 물었다. “너 이 늪의 밑바닥이 단단하다고 하지 않았느냐?” 소년은 대답했다. “밑바닥은 정말로 단단해요, 하지만 아저씨는 아직 절반도 못 들어가셨어요.”
나는 산해진미와 맛 좋은 술이 넘치고 하인들이 아부하듯 시중드는 잔칫상에 앉아 있었지만, 성실과 진실을 찾아볼 수 없었기에 그 냉랭한 식탁에서 배 고품을 안고 떠났다. 손님 접대는 어름처럼 차가웠다. 음식을 차갑게 하기 위하여 구태여 얼음을 넣을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Review] 도심에서 작은 텃밭 하나만 가꾸어 보아도 우리는 자신의 본성이 자연과 얼마나 친밀한 교재를 원하고 있는지 경험할 수 있다. 때로 불연 한 생각에 마음을 쏟다가도 고요하고 평화롭게 자라는 밭에 곡식들을 바라보면 그 고요와 평화가 내 속으로 들어온다. 이처럼 작은 손바닥만 한 텃밭에서도 큰 만족감을 느끼는데 2세기 전 원시의 숲속에 있는 월든 호수는 얼마나 감동을 주었을까!
소로는 1845년 봄 그의 나이 스물여덟 되던 해, 도끼 한 자루를 빌려 들고 월든 호숫가로 들어갔다. 그곳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 동안을 살았다. 침대와 주방, 생활 도구가 한 방에 있는 단칸집에서 그는 콩밭을 가꾸고 물고기를 잡고 때로는 명상에 잠기면서 19세기에 쓰인 최고의 책이라고 불리는 이 책을 써냈다. 그가 묘사한 풍경의 사실적인 묘사가 너무나 생생해서, 독자는 이 책 한 권을 읽는 것만으로도 이미 월든 호숫가에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노후가 되면 무슨 일이든 하지 않고 있다는 것에 대한 불안을 느낀다. 그래서 보내는 시간이 늘 아쉽고 조바심이 든다. 그러나 우리가 좀 더 자신을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그 시간에 조바심 대신 주어진 환경에서 그 무언가 다른 것을 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사소한 것, 내게 소용이 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당시에 하버드 대학까지 공부한 소로가 남들이 다 가는 순탄한 길을 마다하고 측량 기술자가 되어 생계를 유지하며, 어느 날 숲으로 들어간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그가 정신이 돌았거나 무언가 잘 못 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소로는 비가 와서 콩밭을 매지 못하는 날이면 진종일 방 안에 있어야 했지만, 오히려 그 낭비와 같은 시간에 진종일 명상에 잠기면서 스스로가 밤사이의 옥수수처럼 자라고 있음을 느꼈다. 소로는 숲에서 보낸 2년 남짓 시간을 자신의 인생에서 공제된 시간이 아니라 특별수당과도 같았다고 했다.
적어도 그가 사는 오두막집에서 사방 1마일 되는 거리에는 인가가 없었다. 그곳에서 그는 자연이 주는 참다운 맛을 경험했으며 주옥같은 사상의 감성을 창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연은 그 속에 들어가 호흡하고 만져보지 않고는 참 맛을 모른다고 말했다.
“과일은 그것을 사먹는 사람이나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하여 재배하는 사람에게는 결코 참다운 맛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 맛을 보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뿐인데, 이 방법을 택하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허클베리의 참 맛을 알려거든 소 모는 소년이나 들꿩에게 물어보라. 허클베리를 손수 따보지 않은 사람이 허클베리 맛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흔히 범하는 잘못된 생각이다.”<본문>
소로는 인생의 여백을 얻기 위해 숲으로 들어갔다고 말했다. 여백은 삶의 한 부분이며 우리는 그 여백이 있으므로 더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무언가 할 수 없다고, 할 것이 없다는 조바심이 들 때 그 시간을 인생의 여백이라고 생각한다면 좀 더 평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백은 인생의 아름다운 열매를 따는 시간이다. 우리는 무언가 해야만 한다는 부질없는 강박관념으로, 삶의 근심과 과도한 노동에 하루하루를 보내며 인생을 한탄하지만 정작 여백을 만들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여백은 고독과 씨름하는 시간은 아니다. 여백은 우리가 원하는 것에 더욱 몰두하는 시간이며 영혼의 갈급함을 채워주는 시간이다. 소로는 월든 호수에서 습관처럼 멱을 감고 해가 잘 드는 문지방에 앉아서 해 뜰 녘부터 한낮까지 한없이 공상에 잠겼다. 그러나 그 시간이 그에게는 하버드에서 열심히 공부에 열중하던 그 시간처럼 여겼기에 고독을 느끼지 않았다고 했다.
“농부는 온종일 혼자 밭에서 김을 매거나 숲에서 나무를 베면서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일에 몰두해 있기 때문이다.”<본문>
자연을 목말라 하거나 아니면, 그렇게 목이 마를 정도로 그리워하지 않더라도 무엇인가 삶에 갈증을 느낀 사람이라면 이 책 한 권으로 시원하게 갈증을 덜어줄 것이다. 젊은이들보다는 나이가 좀 든 그래서 가슴에서 마른 바람이 휭휭 불 때 곁에 두고 다시 보고 싶은 책이다.■
<본문> “나는 내 인생에 넓은 여백이 있기를 원한다. 여름날 아침에는 간혹, 이제는 습관이 된 멱을 감은 다음 해가 잘 드는 문지방에 앉아서 해 뜰 녘부터 한낮까지 한없이 공상에 잠기곤 했다.”
“인생의 어느 계절에 이르면 우리는 모든 장소를 자신이 살 집터로 생각해보는 습관을 갖게 된다.”
“1845년 3월 말경, 나는 도끼 한 자루를 빌려 들고 월든 호숫가의 숲속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나는 2넌 2개월 동안을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시 문명생활권의 체류자로 돌아왔다.” “나는 숲에 들어갈 때나 마찬가지로 어떤 중요한 이유 때문에 숲을 떠났다.” “이런 계절에는 나는 밤사이의 옥수수처럼 무럭무럭 자랐다. 정말이지 이런 시간들은 손으로 하는 그 어떤 일보다 훨씬 소중한 것이었다. 그런 시간들은 내 인생에서 공제되는 시간들이 아니고 오히려 나에게 할당된 생명의 시간을 초과해서 주어진 특별수당과도 같은 것이었다.”
“기관차의 기적은 여름이고 겨울이고 내가 사는 숲을 뚫고 들려오는 데, 그 소리는 어느 농가 위를 나르는 매의 울음소리 같기도 하다.”
“오늘 내 콩밭을 적시면서 한편으로 나를 집에 머물도록 하는 저 보슬비는 지루하고 우울한 느낌을 주지 않고 오히려 내게 좋은 일을 해주고 있다. 비 때문에 콩밭을 매지 못하지만, 비는 밭 매는 것보다 훨씬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 비가 계속되어 땅속의 종자들이 썩고 낮은 지대에서 감자 농사를 망치더라도 높은 지대의 풀에게는 좋을 것이며, 풀에게 좋다면 나에게도 좋은 것이다.”
“농부는 하루 종일 혼자 밭에서 김을 매거나 숲에서 나무를 베면서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일에 몰두해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사람들의 사교는 값이 너무 싸다. 우리는 너무 자주 만나기 때문에 각자 새로운 가치를 획득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우리는 하루 세끼 식사 때마다 만나서 우리 자신이라는 저 곰팡내 나는 치즈를 서로에게 맛보인다. 이렇게 자주 만나는 것이 견딜 수 없게 되어 서로 치고 받는 싸움판이 벌어지지 않도록 우리는 예의범절이라는 일정한 규칙들로 협의해놓아야 한다.”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저 여공들을 생각해보라, 그들은 꿈속에서까지 혼자 있는 일이란 없다.”
“내 집에는 세 개의 의자가 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한 것이고 둘은 우정을 위한 것이며 셋은 사교를 위한 것이다.”
“집이 너무나 크고 웅장하기 때문에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그곳의 거주자라기보다 차라리 그 안에 기생하는 해충들처럼 보인다.”
“내 집은 자그마했으나 그 안에서 메아리 소리는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방 한 칸으로 된 집이고 이웃집과도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한결 더 커 보였다. 주택의 모든 편의 시설들이 방 하나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것은 부엌이자 침실이었고, 거실이자 안방이었다. 어른이나 아이, 주인이나 하인이 집에 거주함으로써 얻게 되는 온갖 만족감을 나는 실컷 즐기고 있었다.”
“겨울날의 오후에 산책을 나갈 때 나는 잘 피워놓은 불을 때로는 그대로 남겨놓은 채 집을 나섰다. 서나 시간 후에 돌아와서 보면 불은 여전히 잘 타고 있었다. 내가 나가 있을 때라도 집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쾌활한 가정부라도 한 사람 고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와 불은 한 집안에 사는 동거인인 셈이었다.”
“이렇게 해서 내 숲 생활의 첫 번째 해는 끝이 났다. 그다음 해도 첫해와 큰 차이는 없었다. 1847년 9월 6일 나는 드디어 월든을 떠났다.”
“당신의 인생이 빈곤하더라도 그것을 사랑하라. 당신이 비록 구빈원의 신세를 지고 있더라도 그곳에서 유쾌하고 고무적이며 멋진 시간들을 가질 수 있다. 지는 해는 부자의 저택이나 마찬가지로 양로원의 창에도 빌게 비친다. 봄이 오면 양로원 문 앞의 눈도 역시 녹는다. 인생을 차분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그런 곳에 살더라도 마치 궁전에 사는 것처럼 만족한 마음과 유쾌한 생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샐비어 같은 약초를 가꾸듯 가난을 가꾸어라. 옷이든 친구이든 새로운 것을 얻으려고 너무 애쓰지 마라. 헌 옷은 뒤집어서 다시 짓고 옛 친구들에게로 돌아가라. 사물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것은 우리들이다.”
“옷은 팔더라도 생각은 그대로 간직하라. 신은 당신이 외롭지 않도록 보살펴줄 것이다. 만약 내가 날마다 온종일 거미처럼 다락방의 한구석에 갇혀 있더라도 나의 생각만을 잃지 않는다면 세상이 조금이라도 좁아진 것으로 생각되지 않을 것이다. 철학자는 말했다. “3군으로 된 군대라도 그 우두머리를 사로잡으면 무너뜨릴 수 있으나, 필부일지라도 그의 지조를 빼앗을 수는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