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살아 있는 물과 죽어 있는 물
물은 생명과 관련된 이야기를 전개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또한, 물을 주제로 하여 글을 쓴다면 책 한 권의 분량으로도 채우기 힘들 것입니다. 물은 식물과 동물의 생명 유지 활동 뿐만 아니라 인류 문명의 발달에 근본적인 영향을 끼쳐 왔으며, 장래에는 수자원 고갈의 문제로 인하여 국가 간 분쟁의 불씨로 자리 잡을 수도 있는 무서운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물과 관련된 담화는 무궁무진할 수밖에 없겠지만, 여기에서는 식물을 살리는 물(= 氣水)과 죽이는 물(= 死水)에 대하여서만 간단하게 살펴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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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자료 출처: 박우정, 분재 이야기, 실생원, 1992, 40쪽
2. 살리는 물과 죽이는 물
사람을 포함한 일체의 동물은 물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식물 또한 그렇습니다. 태아가 양수에서 생명의 탄생을 준비하듯, 식물 또한 바다에 자신의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물은 이처럼 생명을 낳기도 하지만 죽이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물에 빠지면 숨을 쉬지 못하여 죽음을 맞이하듯, 식물 또한 그렇습니다. 생물이 물 속에서 죽음에 이르는 이 과정에는 어쩔 수 없이 '호흡'과 '산소'가 개입합니다. 예를 들어, 물 속에서 살아 가는 물고기를 어항에 두어 방치하면 죽게 됩니다. 나무 또한 5일 이상 물 속에 뿌리를 담가 두면 살 수 없습니다. 동물인 물고기도, 식물인 나무의 뿌리도 모두 산소를 흡수하고 이산화탄소를 방출하는 호흡을 하지만, 제한된 공간의 물 속에 녹아 있는 산소가 모두 소비된 결과입니다.
하지만, 흐르는 물 속에서는 사정이 다릅니다. 물고기도 나무도 모두 살아 갑니다. 흐르는 맑은 물 속엔 호흡에 이용할 수 있는 산소가 충분히 녹아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혈액 또한 흐르는 물과 같습니다. 혈중 알콜 농도처럼 혈중 산소 농도 또한 존재하며, 이것을 간단히 줄여서 '산소 포화도(= 산소가 혈액 속에 녹아 있는 정도)'라고 합니다. 사람의 생명이 위급할 때에는 혈중(血中) 산소포화도가 떨어집니다. 사람의 목을 조르면 숨이 찬 후 죽게 되는 까닭 또한 호흡곤란, 즉 폐에서 공급되는 산소가 차단된 결과 혈중 산소포화도가 떨어져서 신체의 기관, 그 중에서도 뇌의 활동에 필요한 산소를 공급하지 못한 것이 중요한 원인이 됩니다. 결국, 정상적인 사람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까닭은, 몸 속에서 순환을 반복하는 혈액 속에 산소가 충분히 녹아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혈액 속에 산소가 없으면 사람은 죽게 되며, 식물의 뿌리 또한 물 속에 산소가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물의 오염도를 측정하는 기준 중 하나인 BOD(Biological Oxygen Demand: 생물학적 산소 요구량)는 물 속에서 생물이 살기 위해 필요한 산소의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가 되며, BOD가 높다는 것은 요구되는 산소가 많다는 뜻이기에 그만큼 생물이 그 물속에서 살기 어려움을 알려 줍니다.
* BOD: Biochemical Oxygen Demand(생화학적 산소 요구량)이라고도 표현하며, 호기성 미생물이 수중 유기물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소비하는 산소의 양을 뜻하기에, 수질의 부영양화 정도를 나타냅니다. 수질 오염의 또 다른 척도로 사용되면서 현재 한국의 주요 하천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COD(Chemical Oxygen Demand)는 지면 관계상 언급을 생략합니다.
* 산소 포화도: Oxygen Saturation, 또는 SPO2(Saturation of Peripheral Oxygen)
그래서, 기수(氣水)는 공기 중 산소가 풍부한 물임과 동시에 BOD가 낮은 물이기 때문에 생명을 돌보는 물입니다. 반면에, 사수(死水)는 산소가 부족한 물이고 BOD가 높은 물이기 때문에 생명체가 살기 어려워 죽음에 이르게 하는 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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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포화도 측정기
(출처: http://blog.naver.com/yao1968/130045309669)
3. 뿌리의 기능과 산소 호흡
뿌리는 양분과 수분을 흡수하는 기능만 담당하지 않습니다. 뿌리는 가장 먼저 식물을 지탱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나무의 경우, 지하부의 뿌리가 지상부의 줄기와 가지가 성장하는 만큼 자라주지 못한다면 바람에 쉽게 쓰러질 것입니다. 다음으로, 뿌리는 호흡을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 점을 간과하는 것 같습니다. 어항 속 금붕어가 죽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인 물에서는 식물의 뿌리도 살아 갈 수 없다는 생각을 쉽게 망각하곤 합니다.
원효로의 백송이 고사하게 된 까닭은 배수펌프가 고장이 난 결과, 뿌리 호흡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평소 펌프의 작동이 천연기념물인 소중한 나무의 목숨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뿌리의 산소 호흡이 갖는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면, 배수 펌프 관리에 많은 신경을 썼을 것입니다.
소나무를 키우는 사람들은 소나무가 습지를 꺼려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산을 다니다 보면 가끔 물가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가는 소나무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 소나무가 신기하다고 생각하여 밭으로 옮겨 심었던 분이 계십니다. 그 소나무를 가리키시면서 소나무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리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간과한 점이 있습니다. 산비탈을 타고 흘러 내리는 물은 고인 물과 달리 흐르는 물이며, 그 속엔 산소가 녹아 들어 있는 기수(氣水)였기에 그 소나무는 살아 갈 수 있었다는 점을...
4. 사수의 두 가지 종류: 죽은 물과 죽이는 물
위 글의 저자인 박우정은, '분갈이 직후 자주 주는 물' 또한 식물에 해가 되기에 사수(死水)라고 말합니다. 결국, 산소가 부족한 물은 '죽은 물'로서의 사수이며, 산소가 있어도 식물에 해가 되는 물은 '죽이는 물'로서의 사수가 됩니다.
그렇다면, 왜 분갈이 직후 또는 이식 후 자주 주는 물은 식물에 해가 되는 사수가 되는 것일까요? 그 답은 절단된 뿌리의 활착력에 있다고 봅니다. 즉, 자주 물을 주게 되면 절단면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못하면서, 즉 살아 있는 세포벽과 죽어 있는 세포벽을 차단하는 작용이 방해를 받으면서 병균의 침투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식물의 뿌리 뿐만 아니라 사람의 상처 역시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는, 뿌리의 활착에 영향을 미치는 온도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옮겨 심기 후 뿌리가 새로운 성장을 하여 수세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토양 온도가 적절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주 물을 주게 되면 토양 온도를 떨어 뜨리게 됩니다. 그래서, 자주 주는 물은 빠른 회복을 꾀하는 새뿌리들의 의지에 찬물을 끼 얹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처치는 사람의 의도와 달리 식물에게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상처 또한 추운 겨울에 아무는 기간이 길어지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경우에 속하지만, 사람들은 이 점 또한 자주 놓치고 있습니다. 조기 수확을 위하여 검정 비닐을 사용하지 않고 가운데가 투명한 비닐을 사용하는 까닭 또한, 지온의 빠른 상승에 따른 뿌리 발달의 촉진에 있음을 떠올려 봅니다.
죽이는 물과 지온(地溫)의 관계를 신중하게 고려한다면, 봄철 나무 이식 후 자주 관수하거나 특히, 해가 지는 오후에 관수하는 행위는 적절하지 않을 줄로 압니다. 더불어, 이식 후 주는 물 중, 차가운 물은 기수보다 사수가 될 수 있기에 상온수가 바람직스럽다 할 수 있겠습니다. 국림산림과학원의 실험에 따르면, 냉수를 사용하는 것과 상온수를 사용했을 때, 활착에 걸리는 시간이 서로 약 15일의 차이를 보여 주었습니다. 참고로, 토양의 적정 온도는 20~25℃이며, 삽목상의 경우 빠른 뿌리 내림을 위하여 열선을 지중에 매립하기도 합니다.
첫댓글 한솔님의 자료입니다. ^^
세세히 잘 읽어 보았습니다. 참고하겠습니다.^^
여름철 사정상 밤늦게도 한차례 관수를 하는데.. 이것도 문제가 되겠군요
아침에 물주고 출근하고 밤에 퇴근해 보면 다 말라있어 어쩔 수없이 주거든요...
잘 배우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