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삶
2022년 8월 23일 불성실한 아브람 신실하신 하나님
(창 12:10-30, 개역)
【10】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11】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를 때에 그 아내 사래더러 말하되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12】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13】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 하니라
【14】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의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15】 바로의 대신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취하여 들인지라
【16】 이에 바로가 그를 인하여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약대를 얻었더라
【17】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연고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18】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대접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느냐
【19】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나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20】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 아내와 그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갈대아 우르를 떠난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 땅 하란에서 아버지 데라가 죽자
형 나홀과 밀가의 자손들처럼 메소포타미아 땅에 정착할 것이냐?
아니면 아버지 데라가 말한 것 처럼 하나님이 지시한 가나안 땅으로 갈것이냐?
하는 중대한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아버지 데라의 믿음을 따라가던 아브라함이 이제 스스로 하나님앞에 서서 자기 길을 물어야 하는 중요한 상황을 대면하게 된 것이다.
아브라함은 나이 75에 아직 자식이 없지만
너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가나안땅으로 가기로 한다.
히브리서 11장에서 사도바울은 이것을 아브라함의 믿음이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면서
처음부터 그가 완전하고 그 믿음이 확실한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자신의 믿음으로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인 갈대아 우르를 떠난게 아니었다.
아버지 데라가 아브라함과 모든 가족을 이끌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신 가나안으로 갔고
하란에서 아버지 데라가 죽자 그때부터 아버지 데라의 뜻을 이어받아 아브라함이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였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아직 하나님을 잘 몰랐다.
너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받았지만 자신은 벌써 75세가 넘었고 아내 사라도 벌써 65세인데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그 약속이 이루어진다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아브라함은 사라가 안되면 하갈이나 그두라 같은 다른 아내를 통하여 아들을 얻을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또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지시를 받았지만 구체적으로 가나안땅 어디에 정착을 해야하는지도 몰랐고
이미 그 땅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그 땅이 내것이 된다는 것인지 아브라함은 알지 못했다.
아브라함은 아직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였고 또 말그대로 아직 구체적으로 갈바을 알지 못하였다.
가나안땅에 도착한 아브라함은 세겜에서 벧엘과 아이를 거쳐 가나안땅 남쪽 네게브 지역으로 내려갔다. (창 12:5~9)
때마침 네게브 지역에 가뭄이 들었다.
먹을 것을 찾아 아브라함은 가족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가야만 했다. (10절)
어쩔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브라함은 애굽왕 바로가 아내인 사라를 빼앗고 자신을 죽일까봐 두려워하여 사라를 여동생이라고 속였다.
65세가 넘었지만 사라는 여전히 매력적이고 아름다웠던 것이 분명하다.
아내를 다른 남자에게 내어주다니...
비겁하고 비윤리적인 일이지만 아브라함은 생존을 위하여 어쩔수 없다고 생각했고
사라도 가족들을 위하여 받아들였다. (11~13절)
아브라함의 생각대로 바로는 사라의 아름다움을 보고 사라를 왕궁으로 불러들였다. (14~15절)
그러나 그 밤에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그 일을 막으셨다. (17절)
아브라함의 자손을 통하여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했는데
그것이 아브라함의 씨가 아니라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손상받지 않게 하시기 위해 그 일에 개입하셨다.
바로는 크게 두려워하여 사라를 돌려보낸다. (18~20절)
우리가 잘 하면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시고
우리가 잘 못하면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시지 않아도 되는... 그런게 아니다.
그런걸 두고 신실함~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느헤미야는 우리는 하나님앞에 악을 행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신실하게 그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라고 말하고 있다. (느 9:32~33)
우리의 어떠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하나님의 약속을 이룬다.
우리가 할 것은 하나님의 약속과 그 약속을 이루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 것... 그 뿐이다.
이 일은 아직 하나님을 잘 모르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첫번째 일이었다.
아브라함도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분명 바로는 나보다 강한 사람이고 그가 힘으로 아내를 빼앗는다면 자신으로서는 어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이 어떻게.....
나중에 아브라함은 그랄왕 아비멜렉에게 사라를 누이동생이라고 속이고 내어주는 일을 다시 저지른다. (창 21장)
한번 겪어봤으면 됐지 왜 똑같은 실수를 2번을 저지를까...
아브라함을 보면서 우리는 이렇게 말을 하지만
내가 감당할수 없는 눈에 뻔히 보이는 현실앞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던가?
그런데 그것이 믿음이다.
우리의 믿음은 구체적인 상황을 통하여 평가받게 될 것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그게 처음부터 그렇게 쉽게 되었던게 아닌 것이다.
창세기 중에서 아브라함처럼 한 인물의 일대기를 이렇게 길게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이 없다.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주목하고 보아야할 것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얼마나 믿음이 좋고 위대한 사람인가 하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믿음이 좋고 위대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잘 알지 못했다.
하나님을 몰랐으니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있을수가 없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주목하고 보아야할 것은
우리와 똑같이 믿음이 없는 인간 아브라함을 위대한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가시는 '하나님의 열심"이다. (하나님의 열심 / 박영선 저)
아버지 데라가 죽고 가나안 땅으로 향하는 아브라함은
웅장한 믿음을 가지고 담대하고 씩씩하게 출발했던 것이 아니었다.
아브라함은 아직 연약했고 아직 하나님을 잘 몰랐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선택하셨고
그 일을 이루시기로 작정하셨으며.... 이미 그 일을 시작하셨다는 것이다.
작은 믿음으로 출발하는 우리의 연약한 그 출발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을수 있기를 바란다.
아직 내눈에 보이지 않을지 모른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인정하지 못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없는게 아니다.
내가 살아가며 만나는 그 모든 상황 순간순간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의 증거들이 나타날 것이고
그 증거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그 크신 약속에 걸맞는 믿음의 사람으로 빚어나가실 것이다.
이제 겨우 씨가 뿌려지고 자그만 싹이 났다.
우리는 여전히 연약하고 우리 자녀들의 믿음은 아직 미약하다.
그러나 눈을 들어 우리를 통하여 큰 일을 행하시기로 약속하시고 그 일을 이루시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바라보자.
그리고 이미 하나님이 그 일을 시작하셨슴을 믿음으로 선포하며
신실하신 하나님의 열심이 그 일을 이루실 것을 믿고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