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장 자부신군(紫府神君) 무영종(無影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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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 악! 까...... 악!
핏빛 황혼(黃昏) 속에서 까마귀의 무리들이 떼로 몰려 울부짖었다.
까아...... 악! 까...... 악!
소름끼치도록 섬칫한 울음소리였다.
마치 죽음의 노래(曲)인 양 붉게 타오르는 핏빛 노을 속에 중원의
대지는 점차 어둠의 적막 속으로 잠겨들었다.
밤이 오려는가, 죽음의 밤이 오려는가?
이제 해가 떨어지면 언제나 다시 날이 밝아 오려는지....... 누군
가가 절규하듯 부르짖었다.
"태양이여, 지지마라! 이제 해(日)가 지면 대지는 영원한 암흑 속
에 묻힌다, 해는 다시 떠오르지 않는다. 오호, 황혼이여! 마지막
너의 작은 빛이나마 피를 뿌리듯 영원토록 대지를 물들여라!"
이백 년(二百年) 전 천마교(天魔敎)가 전 중원을 초토화시킨 이래
처음으로 무림은 들끓기 시작했다.
마존첩(魔尊帖)이라는 죽음과 피를 부르는 한 장의 첩지(帖紙)가
무림에 뿌려진 것이다.
<마존첩을 받은 천하무림인(天下武林人)은 백 일(百日) 이내에 모
두 수라궁에 와 복명(伏命)하라. 이 뜻을 거역하면 삼족(三族)을
멸(滅)하리라!
수라혈신(修羅血神)>
이 엄청난 광언(狂言)은 전 무림인들을 아연실색케 했다. 그들은
모두 마존첩을 받고 모두 망연자실해졌다.
- 어떤 미친놈이 이런 망언(忘言)을 지껄이느냐?
- 수라혈신은 대체 어떤 놈이냐? 과거 천하를 울리던 육대천마도
중원의 정기에 한(恨)을 품고 쓰러졌다. 수라혈신 따위는 그에 비
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정사를 막론하고 무림인들은 그렇게 소리쳤다. 그것은 마존첩에
대한 두려움을 부정하기 위한 몸부림인지도 몰랐다.
이백 년 전 천마교가 붕괴되면서 무림에는 평화시대가 도래했다.
그로부터 백 년 동안은 정사무림이 균형을 이루어 지극히 평화로
왔다. 따라서 평화시대에 도전장을 낸 마존첩의 존재는 무림인들
에게 경악을 던져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무림인들은 이 마존첩을 무시했다.
하북팽가(河北彭家)의 가주 패천참인도(覇天斬刃刀) 팽천후(彭天
候), 그는 마존첩을 받자마자 그것을 전달한 수라궁의 사자를 일
도에 양단하고 그 자리에서 마존첩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사도(邪道)의 패주인 남맹, 즉 천군맹의 맹주인 구주진천도(九州
震天刀) 조천명(曺天明). 그도 마존첩을 받자마자 발로 밟아 짓이
겨 버렸다.
사도의 거두인 일교, 이곡, 일회 중 일교(一敎)인 통천교(通天敎)
의 교주 통천마군 흑고. 그는 수라궁의 사자를 불에 태워 죽였으
며 마존첩을 씹어 삼켜버리고 말았다.
황하칠십이채(黃河七十二寀)의 채주인 사해신군(四海神君) 구양
경, 그는 수라궁의 사자를 산 채로 황하 속에 수장시키고 수라궁
을 비웃으며 오히려 마존첩을 불태우는 기념으로 주위의 명가들을
초청해 대연회를 베풀었다.
이렇듯 중원무림의 수많은 방파와 고수들이 마존첩을 받았으나 어
느 누구도 마존첩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마존
첩을 찢고 사자를 죽이거나 경멸하여 쫓아 보냈다.
그 누구도 마존첩이나 수라궁, 수라혈신 따위에 신경을 쓰는 자는
없었다. 그것은 바로 삼 개월 전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 누가 알았으랴? 무서운 피의 보복이 그들에게 돌아올
줄을.
팽가의 가주인 팽천후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그의 손자였다. 첫째
아들 패의웅(彭義雄)이 젊어서 요절한 후 그는 어린 손자를 가엾
게 여겨 온갖 정성과 사랑을 다 쏟았다.
손자는 이제 겨우 십 세(十歲)로 그의 앞에서 재롱을 피워 팽천후
의 입에서 항시 웃음이 떠날 줄 모르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귀여운 손자가 죽었다.
그것도 전신이 갈기갈기 뜯긴 채로 팽가장의 대문 앞에 흩어져 있
었다. 온전한 것은 손자의 머리뿐이었으며 그 머리맡에 한 장의
쪽지가 놓여 있었다.
<받은 것은 반드시 돌려준다.
수라궁(修羅宮).>
팽천후는 미친 듯이 절규했다.
"으-- 아-- 아----!"
팽천후의 처절한 울부짖음은 하늘을 찔렀다. 사랑하는 손자의 흩
어진 시신을 부여안은 그의 노안에는 피보다 진한 눈물이 흘렀다.
이것이 보복의 시작이었다.
통천마군 흑고(黑古). 그는 대단한 호색가(好色家)로써 정력이 절
륜했다. 그리하여 그는 구순(九旬)이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초인적인 정력으로 부인이 아홉 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한결같이 요염하고 꽃같은 아홉 명 중에도 가장 사랑하는
것은 이제 이십 세 된 아홉째 애첩 애향향(愛香香)이었다.
그녀는 꽃과 달이 무색할 절세미녀였던 것이다.
그런데 애향향이 죽었다.
그것도 그녀의 침실에서 완전 나체가 된 채로 발견됐다. 뿐만 아
니라 그녀는 수십 명의 사내에게 강간당한 듯 하반신이 피투성이
가 되어 죽어 있었다.
그런 그녀의 가슴 위에 쪽지가 있었다.
<받은 것은 반드시 돌려준다.
수라궁(修羅宮).>
통천마군 흑고의 분노는 엄청났다.
그는 두 눈을 찢어질듯 부릅뜨며 외쳤다.
"반드시 복수하리라!"
구주진천도 조천명. 그는 사도 최강의 고수였다.
나이는 칠십(七十)으로 그는 패웅이자 효웅(梟雄)이었으며 무려
오백 근이나 나가는 진천마도(震天魔刀)를 자신의 신체 한 부분처
럼 사용하고 있었다.
조천명은 천군맹을 이끌며 잔인하고 악랄무비한 성품으로 흑도를
주름 잡았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좋은 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그가
만고의 효자(孝者)라는 점이었다.
조천명에게는 백 세(百歲)에 가까운 모친이 있었는데 그는 노모를
실로 극진히 섬겼다.
언젠가 노모는 갑자기 일만 리(一萬里) 서쪽의 천산(天山)에서만
나는 빙실영과(氷實靈果)를 먹고 싶다고 했다. 조천명은 그 즉시
만사를 제쳐두고 직접 수개월에 걸쳐 천산에 가서 기어이 빙실영
과를 구해다 모친에게 바쳤다.
또한 그는 노모에게 매일 문안을 드렸다. 출타할 때에도 항상 행
선지를 보고할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 노모에게 아침 문
안을 드리러 간 그는 대경실색했다.
노모가 침상에 반듯이 누운 채 죽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복부 깊숙이 바로 자신이 항상 거실에 걸어두었던 진천마
도가 꽂힌 채였다.
<받은 것은 반드시 돌려준다.
수라궁(修羅宮).>
역시 똑같은 쪽지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것을 본 조천명은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의 분노와 비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는 침상 아래 무릎
을 꿇고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않은 채 꼬박 사흘밤낮을 대성통곡
했다.
그리고 그는 이를 갈며 부르짖었다.
"수라궁을 초토화시키고 모든 수라궁 궁도들을 찢어 죽이리라!"
이같은 잔악한 보복은 전 무림을 뒤흔들었다. 마존첩을 비웃던 자
들은 반드시 이같이 처참한 보복을 당했던 것이었다.
이에 정사무림인들의 분노는 엄청났다. 수라궁에 대한 그들의 분
노는 하늘조차 무너질 정도였다. 결국 이로 인해 알게 모르게 정
사무림인들은 은밀히 회동하여 한 가지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그것은 중원에서 제일가는 모사(謀事) 일곱 명을 선발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늘도 놀라고 땅도 흔들릴 계획을 세워 수라궁을 무너뜨
리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계획이 합의되어 칠인의 모사들에게 초청장이 발부
되어 사자를 파견하자마자, 차례로 그 칠인의 모사들은 금마비(金
魔匕)의 희생물이 되고 말았다.
그들 속에는 황하칠십이채의 채주, 사해신군 구양경의 의제(義弟)
이자 오른팔 격인 신안수사(神眼秀士) 제갈천도 포함되어 있었다.
마침내 경악과 전율이 온통 무림을 횝쓸었다. 전 무림인은 차츰
마존첩과 수라궁에 대한 공포심을 느끼기 시작했다.
수라궁 개파대전(開派大典).
남칠성(南七星) 북육성(北六省)과 그 외에도 새외변방의 수많은
고수들, 마존첩을 받은 자와 혹은 받지 못했어도 호기심을 품은
자들 등.
수많은 고수들이 수라궁으로, 수라궁으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무공산(武功山).
강서성(江西省)과 호남성(湖南省)의 경계지역에 있는 이 산은 위
로는 구령산(九嶺山)을 떠받치고 밑으로는 운산(雲山)을 접한 명
산의 하나다.
때는 신록이 우거진 봄(春).
무공산의 서편에 위치한 한 봉우리로 백의청년이 오르고 있었다.
긴 머리를 묶어 허리까지 드리운 절세의 미청년, 그는 바로 하후
성이었다.
그의 걸음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매우 규칙적이었다. 가파른
봉우리를 오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관옥같은 얼굴에는 조금
도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잠시 후 그는 봉우리의 정상에 도착했다.
한 줄기 바람이 녹음(綠陰)진 숲을 스치며 그의 백삼을 휘날렸다.
이마 앞으로 흘러내린 몇 올의 머리카락이 미풍에 살랑거렸다.
'이 백안봉(白雁峯)은 무공산에서 천마봉 다음으로 높은 곳이다.'
그의 시선이 산 밑으로 향했다.
작고 큰 수많은 봉우리들이 푸른 빛을 띄운 채 운해(雲海)와 뒤섞
여 드넓은 창파(蒼波)처럼 그의 발밑에 깔려 있었다.
그러나 아득한 저 멀리 하나의 거대한 봉우리가 운무(雲霧) 속에
서 마존(魔尊)인 양 하늘을 찌를 듯이 우뚝 서 있는 것이 하후성
의 눈에 보였다.
'저것이 악의 온상인 천마봉(天摩峯)이구나.'
그 봉우리는 여느 봉우리와는 달리 나무 한 포기 없었고 운무 속
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색은 오직 칙칙한 갈색뿐이었다.
'저 봉우리에 수라궁을 건축한 자는 실로 무서운 자다. 방어하기
쉽고 공격하기는 어려우며 한 명의 고수면 능히 백 인(百人)을 막
을 수 있으니... 진정 천험의 요새다.'
하후성은 천기대사로부터 물려받은 수많은 지식으로 이 모든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수라궁 개파대전까지는 앞으로 오 일(五日). 그 동안 반드시 해
야할 일이 있다.'
날카로운 그의 검미(劍眉)가 한 순간 꿈틀거렸다.
'수라궁의 흉수는 중원의 고수들에 대해 손바닥을 보듯이 잘 알고
있고 반대로 무림인들은 수라궁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군웅들의 세력이 수라궁보다 강하다 해도 힘의 균형
이 깨진다. 이것을 막기 위해서는.......'
하후성의 현기서린 두 눈에 광채가 번뜩였다.
'수라궁에서도 전혀 예상 못한 하나의 변수가 등장해야 한다. 그
변수는 바로... 나 하후성이다.'
그는 품속에서 세 권의 책자를 꺼냈다.
'과거 하란산에서 만난 적봉우사께서 주신 감리진경(坎離眞經)과
아버님께서 돌아가시면서 전해 주신 뇌음진경(雷音眞經), 그리고
적미천존(赤眉天尊)이 마교(魔敎)의 대법으로 전수해준 무공이 있
다.'
하후성의 두 눈에 굳은 신념이 어렸다.
'이 모든 것을 오 일 안으로 완성시켜야 한다. 절대로 소림의 무
공을 쓰면 안 된다. 놈들에게 내가 누구인가를 절대 모르게 해야
한다.'
그는 한 권의 책자를 응시했다.
'불영구검은 무림사상 최강의 검법이지만 천하의 그 누구도 이것
이 소림의 검학인 줄은 모른다. 광검절심이 준 이 책자로부터 발
원심결(發元心訣)과 섬류심결(閃流心訣)을 깨쳐 불영구검의 일곱
군데 헛점을 반드시 보충해야 하며 이것 역시 오 일 만에 이루어
야 한다.'
하후성은 하늘을 응시했다. 그의 두 눈은 물처럼 고요했다.
'하늘이 나를 돕는다면 성공할 것이다. 아니, 성공해야 한다.'
하후성은 몸을 움직였다. 오 일 간 기거할 장소가 필요했던 그는
백안봉 주위를 면밀히 살폈다. 결국 백안봉 서쪽의 한 암벽 중간
에 나 있는 동혈(洞穴)을 발견했다.
동굴 안이었다.
하후성은 풀을 뜯어 동굴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정좌하고 앉았다.
그의 앞에는 세 권의 비급이 놓여져 있었다.
그는 감리진경을 그에게 준 적봉우사(赤鳳羽士)가 떠올랐다.
'적봉우사. 그 분은 정말 인자하게 생긴 분이었지. 지금 그 분은
어디에 계실까?'
하후성은 품속에서 한 개의 깃털과 옥갑을 꺼냈다.
깃털은 적봉우사의 신물(信物)인 적봉우(赤鳳羽)였다. 옥갑은 그
의 선물이었다.
하후성은 한 동안 감회에 젖다가 두 가지 물건을 품 속에 갈무리
했다.
감리진경은 공동파( 派)의 진산절예(鎭山絶藝)에 적봉우사가
스스로 창안한 절기를 기록한 희대의 무경(武經)이었다.
그렇다면 적봉우사는 어떠한 인물인가?
백 년(百年) 전 무림에 삼인의 천하 최강의 고수들이 있었는데
일도일불일존(一道一佛一尊)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 중 일도(一道)란 공동파의 적봉우사를 말했다.
일불(一佛)은 소림의 마애천불(魔涯天佛) 천뢰선사였다. 일존(一
尊)은 당시 사도(邪道)를 제패한 현천교(玄天敎)의 교주인 적미천
존(赤眉天尊)이었다.
그들은 당시 무림 최강의 고수들로써 적수가 없었다.
적봉우사는 현 공동 장문인 영천도인(靈天道人)의 사조(師祖)뻘이
었으며 그의 무공은 도가(道家)의 모든 기공을 망라한 것으로 그
깊이를 추측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하후성은 감리진경을 펼쳐보았다.
<감리신공(坎離神功)>
해서체로 쓰여진 글씨가 하후성의 눈에 들어왔다. 다음 장에는 감
리신공의 요결이 수록되어 있었다.
<감(坎)은 곧 수(水)요, 리(離)는 화(火)다. 천지 간에 가장 기본
이 되는 수화는 힘의 원천이다. 음과 양의 기에서 발생한 감리진
기(坎離眞氣)는 체내의 백회혈과 용천혈에서 동시에 운공한다. 먼
저 태음신경에 단정(丹精)을 두고 태양신경에서 원양(元陽)을 이
끈다.>
감리신공의 요결은 심오하기 그지 없었다. 만일 하후성이 타고난
오성과 절륜한 지혜를 지닌 사람이 아니었다면 평생을 참오해도
감리신공의 요결을 깨우칠 수 없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하후성은 천고의 기재였다. 그는 단 한 번 읽은 감리진경
을 외웠으며 즉시 눈을 감고 그 이치를 참오하기 시작했다.
감리신공은 불가사의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천고절학으로 이
신공을 절정에 이르도록 연마하면 전신의 반은 음, 반은 양의 기
운으로 분리시킬 수가 있었다.
따라서 음양진기를 운공하면 반은 푸르고 반은 붉은 빛을 띄게 되
는데, 외부로 드러나는 이 기鎌 현상 때문에 자칫 사공(邪功)으
로 오인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분명 감리신공은 도가(道家) 최고의 신공이었다. 그 깊이
나 위력으로 치면 무당(武當)의 태청신공(太靑神功)보다도 한 수
위였다.
감리진경에는 감리신공 외에도 한 가지 경공(輕功)과 개세의 장법
(掌法)이 수록되어 있었다.
천공제인보(天空制人步). 이는 일종의 변화무쌍하고 오묘한 보법
으로써 절정으로 연마하여 펼치면 스스로의 신형을 안개처럼 뿌옇
게 하여 감출 수가 있었다.
또한 이 보법을 경공술로 펼치면 육지비행술을 능가하는 경공술이
되었다.
이른바 천공제인환비술(天空制人幻飛術).
단 한 숨의 진기로 능히 구름을 타듯이 수십 리를 단번에 날아갈
수가 있는 실로 믿을 수 없는 경공이었다.
감리구장(坎離九掌).
이 장법은 감리신공을 바탕으로 전개하는 것으로 실로 상상도 못
할 엄청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음유(陰柔)와 양강(陽剛)의 경기를 마음대로 뻗을 수 있으며 상대
방의 장력을 뜻에 따라 이합집산(離合集散)시킬 수도 있었다. 감
리구장은 부드럽고 강맹한 특성을 골고루 갖추었으며 상대의 장력
을 형체도 없이 소멸시킬 수 있었다.
특히 내공이 강한 상대의 공격을 받아도 그 충격을 허공으로 무산
시키는 신비한 위력이 있었다.
하후성은 감리진경에 기재된 무학에 대해 감탄을 금치 못했다. 공
동파의 무학은 비록 소림과 같이 방대하고 웅후하지는 못해도 도
가(道家)의 변화무궁함과 신비한 특성이 있었다.
하후성은 온 정신을 집중해 감리진경의 무학을 참오하면서 공동의
무학에 대해 존경심마저 느꼈다.
'과연 천고의 기학이다.'
하후성은 동굴 속에서 이틀이 지나는 것을 느꼈다. 그 동안 그는
감리진경의 무학을 모두 깨우칠 수는 있었으나 워낙 시일이 촉박
하여 시전해 볼 수는 없었다.
하후성은 감리진경을 갈무리하고 이번에는 두 번째 비급을 집어
들었다.
<뇌음진경(雷音眞經)>
비단책자는 얄팍했다.
그러나 뇌음진경을 집어든 하후성은 가슴에 뜨거운 격정이 치밀어
오름을 느꼈다.
'아버님......!'
과거 부친인 하후연이 일만 리 천산을 넘어가 목숨과 바꾸어 온
책자였으므로 하후성에게 있어 뇌음진경은 부친의 혼과 한이 들어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후성은 과거 부친을 죽게 한 것이나 다름없는 외증조부에 대해
무척이나 원망하는 마음이 컸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그의 심정
은 무척이나 담담해졌다.
소림에서의 사 년 만의 수련이 그의 마음에 커다란 포용력과 깨달
음을 주었던 것이었다.
'모두 지나간 일이다.'
하후성은 잡념을 떨쳐버리고 비단으로 된 뇌음진경을 펼쳤다.
뇌음진경은 본래 천축의 뇌음사(雷音事)의 지보로써 범어(梵語)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하후성이 펼친 책에는 한어(漢語)로 적혀 있었는데 그것은
뇌음진경의 사본으로써 부친 하후연이 손수 적은 것이었다. 뇌음
진경에는 단 한 가지의 무공(武功)이 수록되어 있었다.
<뇌음신공(雷音神功).>
그것은 바로 천축 뇌음사의 가장 기본이 되는 개세신공으로
뇌음신공은 아득한 과거 불문(佛門)의 뇌정신(雷霆神)이 지옥(地
獄) 삼십삼아수라천(三十三阿修羅天)의 마귀들을 제압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전설의 신공이었다.
<천지(天地)의 모든 기운 가운데 가장 강한 것이 뇌정지기(雷霆之
氣)다. 이 뇌정지기를 흡수해 체내의 양화진력(陽火眞力)과 융화
시켜 지강(地剛)에 통하고 하늘(天)을 가르는 뇌정을 뽑는다. 진
력은 태양출하경맥(太陽出下經脈)에서 출발하여.......>
뇌음신공의 뇌음진결(雷音眞訣)은 난해하기 그지 없었다. 하후성
과 같은 천하기재조차도 꼬박 이틀 밤낮을 참오했으나 완전히 이
해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하후성은 점차 무아지경(無我之境)에 빠져들며 뇌음진결에
심취해 갔다.
뇌음신공을 펼치면 주위 방원 수십 장이 온통 번갯불의 섬광(閃
光)과 굉음에 의해 잿더미로 화하고 말며 웬만한 고수는 그 뇌음
만으로도 고막이 터지고 심맥이 끊겨 죽는다.
실로 천지 간에 가장 무섭고 패도적인 무공이었다.
하후성은 동굴 속에서 마치 석상처럼 앉은 채 심오한 무학의 경지
에 한 발 한 발 진경(進境)을 보았다.
어느덧 그는 마지막 책자마저 넘기고 있었다.
그것은 광검절심(狂劍絶心) 유무심으로부터 얻은 발원결(發元訣)
과 섬류결(閃流訣)이 적힌 광검진해(狂劍眞解)였다.
오 일은 무척 짧은 시일이었다.
그러나 하후성에게 있어 이 오 일이라는 시일은 전 생애에 비할
만큼 귀중한 시간이었다. 그 짧은 오 일 동안 그는 우주(宇宙)를
느끼고 그 우주를 이해해야만 했다.
무념무아무상무심(無念無我無常無心).......
백안봉(白雁峯) 정상.
운해(雲海)가 뒤덮이고 발 아래 창파처럼 깔린 무수한 봉우리들,
그 모든 것 위에 군림하듯 솟아 있는 것이 백안봉이었다.
그 위에 검고 긴 머리를 휘날리며 우뚝 서 있는 백의청년은 하후
성이었다. 그의 영준한 얼굴에는 이제껏 보이지 않던 신태(神態)
가 넘쳐 흐르고 있었다.
하후성은 푸르른 창공을 우러러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성공(成功)했다. 오 일 만에 원하던 만큼 성취했다."
그는 그 짧은 오 일 동안에 감리진경과 뇌음진경, 적미천존의 무
공, 그리고 광검진해를 모두 터득했으니 인간의 능력으로 불가능
한 일을 이루고 만 것이었다.
하후성의 눈빛은 마치 순백의 물처럼 고요하기만 하여 그 누가 보
아도 그의 눈에서 개세무학을 읽어낼 수는 없었다.
하후성은 멀리 바라보이는 갈색의 천마봉(天魔峯)을 응시하며 중
얼거리고 있었다.
"내일이 바로 수라궁의 개파대전이다."
그의 입가에 신비스런 미소가 어렸다.
"수라혈신, 모든 것이 그대의 뜻대로는 되지는 않을 것이다. 중원
무림의 천년정기(千年正氣)는 결코 불의(不義)를 용납지 않을 것
이다."
하후성은 준미한 눈썹을 움직이며 고요한 눈 속에서 지혜로운 빛
을 발산했다.
'천하에는 무공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이번 수라궁
과 대처하는 것은 특히 심계(心計)를 많이 사용해야 할 것이다.'
하후성은 천마봉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서서히 그의 눈
빛 속에 기이한 빛이 떠올랐다.
'그렇다. 나 하후성은 꼬리를 보이지 않는 환영신룡(幻影神龍)이
되어야 한다. 누가 지었는지 모르지만 정말 환영신룡이 되어야 한
다. 그러기 위해서는 변장을 해야겠다. 그것도 평범한 변장이 아
니다.'
하후성의 입가에 신비한 미소가 어렸다.
'이번 오 일 동안의 무공 성취는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그 무공들을 융합시켜 나는 여러 가지 기공(奇功)을 창안했으며
그 중에서도 무림사상 전례가 없는 변장술도 생각해 두었다.'
하후성의 얼굴에 일말의 자부심이 어렸으나 그것은 오만이 아니라
자기완성의 신념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이윽고 하후성은 체내의 공력을 일으켰다.
'소림의 축골환공(縮骨幻功).'
우두두두둑!
그의 전신에서 뼈마디가 부딪치는 음향이 일어나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의 체격이 변화했다. 놀랍게도 키가 더 커지고 수척
하면서도 강인한 골격으로 변한 것이었다.
원래 축골공은 소림이 원조였다. 그 후 강호에 흘러든 동자축골공
(童子縮骨功)은 골격을 줄이는 위력밖에 없었다.
그러나 소림의 축골환공은 뼈를 늘이거나 줄임은 물론이요, 탈골,
역골하여 마음대로 신체의 각 부분까지 이동시킬 수가 있었다.
하후성의 골격은 완전히 변했다. 특히 두 팔이 보통의 사람들보다
더 길어졌다.
'뇌음진경 속의 신공을 약간 운용하면 몸의 근육과 피부색을 마음
대로 바꿀 수 있다. 나는 이것을 환피공(幻皮功)이라 이름 짓겠
다.'
그의 얼굴 근육이 이동하면서 은은한 자색(紫色)의 피부가 되는가
싶더니 그는 곧 삼사십 대의 중년인(中年人)이 되었다.
하후성의 눈빛이 불꽃처럼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감리신공 중 이화공(離火功)을 극성까지 끌어올려 그것을 모발로
집중시키면 머리색이 변한다.'
그의 몸에서 붉은 기운이 어렸다가 사라지자 그의 머리칼은 순식
간에 피부빛과 같은 자색(紫色)을 띄웠고 눈썹조차 자색이 되었
다.
'적미천존의 마안공(魔眼功)을 약간 운용하면 안광(眼光)이 달라
진다.'
그의 눈도 또한 은은한 자광(紫光)을 띄게 되었다.
하후성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삼십대 후반의 청수하면
서도 자색이 감도는 기이한 중년인으로 변모된 것이었다. 누가 그
를 하후성으로 알겠는가?
전신에서 신비스럽고 기이한 느낌이 발산되는 중년기인(中年奇
人), 하후성은 자신이 아닌 완전히 다른 인물이 되어 버렸다.
그는 마침내 창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
"이제부터 나는 하후성이 아니다. 나는 저 동해(東海) 일 만리(一
萬里) 밖의 섬(島) 자부도(紫府島)의 도주(島主)인 자부신군(紫府
神君) 무영종(無影宗)이다."
일대기인(一代奇人) 하후성, 그는 웃었다.
"핫핫핫......."
그의 웅후한 웃음소리는 하늘 높이 울려나갔다.
자부도 출신의 자부신군 무영종.
이 중원천지에 그러한 존재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것은 단지 하후
성의 분신일 뿐, 그러나 이제 곧 자부도의 자부신군 무영종의 위
명은 전 중원을 진동하리라.
새로운 무림천하의 희대기인으로.......
첫댓글 항상 고맙게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