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역사
5월 27일
1937년 : 금문교 개통
한때 "건설이 불가능한 다리"로 여겨졌던 다리가 오늘날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가 되었다. 샌프란시스코의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인 이 장엄한 다리는 계속되는 바람과 안개, 바위, 종잡을 수 없는 조류에 맞서 4년간 고군분투 한 끝에 마침내1937년 5월 27일에 개통되었다. 금문교(Golden Gate Bridge)는 1964년 뉴욕의 베러자노내로스 다리가 생기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였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골든 게이트 해협을 가로질러 마린 반도를 연결하는 1.7마일(2.7km)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금문교이며, 인터내셔널 오렌지 컬러로 되어 있어 쉽게 알아볼 수 있다.
토목기사 스트라우스의 감독아래 1933년 착공하여 이날 개통됐다. 6차선의 자동차 전용 현수교인 금문교는 2줄의 케이블에 매달려 길이 2,825m이고, 다리위의 탑의 높이는 227.5m이며, 주탑과 주탑사이의 거리가 1,280m이다. 다리의 중앙부는 해수면으로부터 81m나 되는 높이여서 다리 밑을 대형선박과 비행기도 통과 할 정도이다. 금문교는 붉은색의 교량으로 주위의 경치와 장관을 이뤄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이 되었다. 기둥간 거리의 기록이 깨진 지금에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현수교라고 봐도 무방하다. 여담이지만 세계에서 알아주는 자살 명소라고도 한다.
1937년에 개통된 이 다리의 건축 비용으로 원금 3천5백만 달러와 이자 3천9백만 달러가 소요되었으며 공사 중 11명의 인부가 희생되었다. 단일 경간이746피트에 이르는 2개의 타워에 고정되어 있는 형태이며 이것이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빌딩보다도 높았던 적도 있었다. 떠있는 다리의 도로를 지탱하기 위해서 2개의 케이블이 타워의 꼭대기로 뻗어 팽팽하게 당기고 있으며 양쪽 끝은 해안가의 콘크리트 정박지에 고정되어 있다. 케이블 한 개의 길이는 7천 피트에 이르고, 2개의 케이블은 총 8만 마일의 와이어를 포함하고 있다. 심한 반대 의견 때문에 계획하는 데에만 10여 년이 걸렸지만 실제 다리의 건설 기간은 4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또한 금문교의 완공은 샌프란시스코와 마린 카운티 지역이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해안에 놓인 다리라 필연적으로 소금기를 잔뜩 머금은 바닷바람과 수시로 맞닥뜨리고 있어서, 샌프란시스코 시 당국이 다리 관리와 유지에 매년 엄청난 돈을 투자한다고 한다. 특히 철제 다리라 부식 방지를 위한 도색 작업을 수시로 해줘야 하기 때문에 이걸로 깨지는 돈도 장난이 아니고, 자살 기도 방지를 위해 안전 요원 투입을 늘리는 등의 대책을 마련해도 별 성과가 없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알고 있나요?
1937년 개통된 이래 금문교의 무게가 7천5백 톤 줄었다.
금문교를 새로 페인팅 하는데 매년 5천-1만 갤런의 페인트가 사용되는 걸로 추정된다.
금문교 위에서 3명의 아기가 태어났으며 모두 남자 아기였다.
금문교는 골든 게이트 해협 (존 프리몬트가 명명함)이 태평양에서 샌프란시스코로 들어오는 입구라는 사실에 착안해 지어진 이름이다.
인터내셔널 오렌지 색이 금문교의 색으로 선택된 이유는 지나가는 선박들이 안개 속에서도 잘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며, 이 색상이 다리의 형태 및 주변 자연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금문교가 날씨로 인해 폐쇄된 적은 개통 이래 단 세 번이었으며 모두 시속 70마일이 넘는 돌풍이 불었던 때 이다.
금문교는 현직이었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과 프랑스 샤를 드골 대통령이 방문했던 때에 폐쇄되었으며 개통 50주년과 75주년 때에도 폐쇄되었다.
1703년 :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시(市) 건설
전통적인 러시아의 영역은 아니었으며, 스웨덴령 핀란드에 속한 지역이었다. 대북방전쟁에서 승리한 러시아 제국의 차르 표트르 1세가 전쟁으로 스웨덴에게서 새로 얻은 이 발트해와 통하는 교통의 요지를 서구화 정책의 일환으로 새로운 수도가 될 땅으로 선정, 늪지대를 매립해 1703년 5월 27일 도시가 건립되었다.
표트르 대제는 스웨덴과의 전쟁 승리 후 발트해(海) 진출을 위해 1712년 제정(帝政) 러시아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옮겼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서구 문명을 도입, 여느 유럽도시 못지않은 아름다운 도시로 변모했다. 네바강 자연과 어울리는 경관은 유럽 최고 관광지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1917년 사회주의 혁명 이후 ‘레닌그라드’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991년 러시아 민주화 과정에서 다시 ‘상트 페테르부르크’라는 원래 지명을 되찾았다. 레닌 혁명 다음해 수도를 모스크바로 옮겼지만 시민들은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러시아의 영원한 수도’로 기억하고 있다. 레닌그라드라는 이름은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둘러싸고 있는 행정구역인 레닌그라드 주에 아직 남아 있다. 모스크바에도 이곳으로 오는 열차가 발착하는 역의 이름은 여전히 상트 페테르부르크가 아닌 레닌그라드 역이다.
시인 푸슈킨이 ‘유럽을 향해 열린 창’으로 묘사한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정권 탄생지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900일 동안 도시를 포위하고 공격하는 바람에 80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처절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출신으로 ‘제2의 표트르’를 자처하는 푸틴 대통령은 표트르 대제가 그랬던 것처럼 친(親)서방 정책을 내세우며, 강한 러시아 건설의 야심을 보여왔다. 푸틴 대통령은 행정수도를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옮기는 구상을 하고 있는 등 이곳을 러시아 중심지로 부각시키려는 강한 의욕을 보였다. 시민들은 ‘표트르 대제 이후 300년이 지난 지금 표트르가 환생했다’며 푸틴 대통령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냈다.
주변 도시를 제외한 상트페테르부르크 자체만의 면적은 605.8 km2. 지형적으로는 핀란드 만에 접한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저지대에 위치해 있다. 모스크바에 비하면 약 4도 정도 북쪽에 위치해 있다. 위도가 북위 59°57로 북유럽권의 노르웨이 오슬로나 스웨덴 스톡홀름과 비슷한, 절대적으로 봐도 북쪽에 있는 도시다. 위도가 높다보니 낮의 길이가 계절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난다. 비록 북극권처럼 낮만 있거나 밤만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낮 길이가 짧으면 5시간 53분, 길면 18시간 50분일 정도로 계절별로 낮의 길이가 많이 차이난다. 도시 일부는 해발 4미터 밖에 안 될 정도로 도시가 낮은 곳에 위치해서 홍수가 잦았다. 특히 1824년의 홍수는 해발 4미터가 넘게 차오르는 큰 규모의 홍수로서 이로 인해 300개 이상의 건물이 파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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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가보고 싶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