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해설
인생행로에서 창출한 시적 진실
--김태흥 제3시집 『찬란한 순간』
김 송 배
(시인. 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삶의 족적’에서 생성하는 인생 지향점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인생의 행로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아직까지 살아보지도 않고 행복할 것이냐 아니면 구차스럽게 혹은 고뇌와 갈등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불행의 삶으로 인생을 마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대체로 인생행로에서 운명처럼 수긍하는 연약한 한 인간일 수밖에 없이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일찍이 톨스토이는 그의 글 「참회록」에서 ‘삶의 의문에 대한 나의 탐구는 마치 내가 깊은 숲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 경험한 것과 똑같은 경험이다’라고 말한바와 같이 김태흥 시인이 이 시집 『찬란한 순간』에서 탐색하는 삶과 인생의 문제는 바로 그가 ‘삶의 족적’에서 미래의 지향점을 창출하는 시법을 효율적으로 구사하는 특징을 엿보게 하고 있다.
그는 이미 한 작품에서 ‘삶에서도 때때로 / 생각지도 못한 위기를 당할 수 있다 / 지난날의 삶을 회상하고 / 올바른 판단을 내려 해결한다 // 자기의 지나온 삶이 잘못되어 있고 / 왜곡되어져 있다면 / 뒤틀린 판단으로 엉뚱한 안내를 받아 / 단번에 낭떠러지로 낙하해 버릴 것이다 / 바로 그 인생은 파멸이고 끝인 것이다 / 자기의 지나온 발자취 / 삶의 족적이 미래 삶의 거울인 셈이지(「올바른 생각, 올바른 방향」 중에서)’라는 삶의 현장에서 체득(體得)한 경험들이 그의 인생 내면에서 사유(思惟)의 중심축을 형성하는 어조(語調)로 김태흥 인생론으로 발전시키고 있어서 우선 우리들의 공감을 유로(流露)하고 있다.
이처럼 삶과의 동행에는 시간성(세월)과 함께 다양한 생활 현상이 발생하고 이에 따른 복합적인 사유가 생성되어 우리들의 인생관이나 가치관을 형성하는 인생행로를 실감하게 한다. 이러한 정황(情況)의 실체는 우리들의 정신세계에 많은 영향을 제공하는 오욕(五慾)과 칠정(七情)의 현상들이 실재(實在)의 현실 상황과 상호 충동할 때 일어나는 심리적인 진실로 발흥(勃興)하는 계기를 경험하게 된다.
특히 칠정 중에서도 희노(喜怒)애락(哀樂)에서 ‘희’와 ‘락’보다는 ‘노’와 ‘애’에서 충격적으로 생성하는 분노와 슬픔 등에서 유발하는 고뇌와 갈등의 요소가 실제의 삶에서 많이 경험할 수 있으며 이러한 이미지가 시 작품 속에서 재생되는 경우를 자주 대하게 된다. 이와 같은 이미지의 창출은 대체로 그 시인이 살아온 인생 경험에서 상상력으로 의미 깊게 재생하는 진실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무거운 삶의 등짐에
짓눌린 가파른 고개
숨도 한번 제대로
못 쉬고 넘었네
뒤돌아보니
아흔아홉 고개
꼬불꼬불 산 길 이었네
아스팔트도 아닌 자갈 길
먼지투성이 길
만신창이 맨발이었네
내 아픈
과거의 초상화
찬란한 순간들이라
불러주고 싶네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그날, 그날들
바위에 새겨진
--「찬란한 순간」 전문
김태흥 시인은 이 시집의 표제시에서 그의 내적인 진실이 적나라(赤裸裸)하게 잘 표출되어 있어서 그가 지향점으로 적시하는 ‘찬란한 순간’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이 ‘순간’이라는 시간성과 ‘찬란한’이라는 형용사가 결합함으로써 그에게 정취(情趣)된 한 편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선 ‘무거운 삶의 등짐에 / 짓눌린 가파른 고개’라는 시적 상황 설정에서 감지할 수 있듯이 현실과 삶의 진행에서 이미 ‘가파른 고개’를 넘고 있으나 그 고개는 ‘꼬불꼬불한 산길’이며 ‘자갈길’이며 ‘먼지투성이 길’이었다.
이러한 ‘만신창이 맨발’로 넘어온 ‘내 아픈 / 과거의 초상화’라는 결론의 어조로 삶의 의미를 정리하고 있다. 일찍이 알베르 까뮈가 ‘삶에의 절망 없이는 삶에의 사랑도 있을 수 없다’는 말처럼 우리들의 삶에는 이러한 ‘찬란한 순간들’을 통해서 그의 시적 진실을 궁극적으로 탐색해보려는 시법이 더욱 인생론과 합치(合致)하는 정감을 현현하고 있다.
김태흥 시인은 다시 ‘무거운 삶의 등짐’과 ‘먼지투성이 길’이라는 숙명적인 행로를 화해의 언어로 극복하려는 어조가 많은 작품에서 읽을 수 있는데 ‘삶이 나를 속이고 힘들게 할 땐 / 파란 하늘은 맘을 열어 /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 나를 품어 준다 / 마치 어머니 같이(「친구 같은 하늘」 중에서)’라는 어조로 이 현실의 갈등과 고뇌를 수긍하고 이해하는 시혼(詩魂)으로 안정을 구현하고 있다.
내 인생의 최후는 어떨까?
하늘에게 물어 본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고
오늘 걱정은 오늘로 끝내고
지나간 과거사
들먹이지 말고
아직 닥치지도 않은 미래일
미리 걱정하지 말고
눈앞에 놓인
바로 지금 해야 할 일만
꼬박꼬박 충실하게 처리하면
편안한 맘
미소가 감돌고
부담이 전연 없는
좋은 세상에 왔다고 기억하는
노후가 될 거라고
--「하늘―9」 전문
김태흥 시인의 인생론은 그의 인생 체험에서 승화한 진정한 ‘인생의 최후’에 심중(心中)을 몰입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그가 현실과 이상의 행간에서 결국 긍정하고 있는 ‘지나간 과거사 / 들먹이지 말고 / 아직 닥치지도 않은 미래일 / 미리 걱정하지 말고’라는 어조로 현현되고 있다. 그는 ‘내 인생의 최후는 어떨까?’라는 의문을 스스로 그 해법을 탐색하고 다시 스스로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그는 ‘눈앞에 놓인 / 바로 지금 해야 할 일만 / 꼬박꼬박 충실하게 처리하면 / 편안한 맘 / 미소가 감돌고 / 부담이 전연 없는 / 좋은 세상에 왔다고 기억하는 / 노후가 될 거라고’ 하는 자긍심이 그의 사생관(死生觀)으로 심도(深度)있게 작용하고 있다.
그는 특이하게 ‘하늘에 투영되는 나의 맘’이나 ‘서산마루를 넘어가는 붉은 노을 / 내 삶의 마지막을 태울까(이상 「하늘」 중에서)’, ‘하늘에게 물어본다(「하늘-9」 중에서)’, ‘출렁이는 세파에 / 맘이 차이고 찟기어(「하늘-6」 중에서)’ 그리고 ‘복잡다단한 우리 인생살이 / 삶에 이리저리 차이고(「하늘-8」 중에서)’ 등과 같이 ‘하늘’과 동행하는 시법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삶의 애환에서 발단된 이미지들은 그의 작품 「가파른 고갯길」 중에서 ‘흐르는 땀방울을 훔치며 / 한 발작 두 발작 / 중단 없이 나아가고 있다 / 내일의 그날까지를 위해서’를 비롯해서 작품 「이별」 중에서 대미(大尾)를 마무리하고 있다. ‘걸어가야 하는 이 길에 남겨둔 채 / 서산마루에 반쯤 걸린 해야 / 희미한 인생 고갯길을 / 한 뼘이라도 더 비춰줘 / 절룩거리고 뒤뚱거리며 / 홀로 넘고 또 넘어가는 인생길’이라고 자인(自認)하면서 인생의 찬란했던 순간들을 정리하고 있다.
2. 자아 인식과 의식의 흐름
우리 현대시의 발상이나 주제의 투영은 대체로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삶의 범주(範疇)를 통해서 생성된 이미지의 재생으로 새로운 사유의 지향으로 보다 정선(精選)된 정서의 창출과 명징(明澄)한 주제가 도출되어 한 편의 작품이 창조되는 것을 많이 접하게 된다. 어쩌면 이러한 과정이 인생의 여과장치로 보다 새롭고 지적(知的)인 가치관을 시적 진실로 발현하려는 시인들의 욕구인지도 모른다.
김태흥 시인도 그의 내면에는 인생에 대한 생식작용으로 만유(萬有)의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통해서 ‘나’를 인식하고자 한다. 이러한 인식은 자신의 인생과 자신의 시를 위해서 반드시 고뇌의 굴레를 벗어나야 하는 과정이다. 그는 작품 「닦아도 빛나지 않는 고물」에서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있으며 / 어떤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리고 ‘인생나이 칠십이면 / 이미 고물에 접어든다 / 씻고, 바르고 꾸밀 대로 꾸며도 / 나이 칠십에 외모는 거기서 거기다’라는 자인(自認)의 어조는 ‘나’를 인식하고 긍정하는 시법을 이해하게 된다.
해가 지구의 한쪽 끝을 넘어가면
호흡하고 바라보던 공간은
어느 듯
까만 암흑의 세상이 된다
영혼도 눈을 감으면
나는 우주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우주도 내속으로 들어온다
온 우주를 감싸고 있는
고요와 평화가 나를 덮쳐온다
형언할 수 없는 자유와 해방감
생각의 나래가 춤을 추고
우주로 뻗어나간다
달도 구경하고 강처럼 흐르는 은하수
자기의 빛을 자랑하고 있는 항성들
별 속에 숨어서
“나를 찾아보라고”
술래잡기를 하자는 그
숱한 세월이 흘러 퇴색된 상념인데
나의 별에서 나를 부르고 있네
그 옛날과 같이
꿈속인 것처럼
--「밤」 전문
그렇다. 김태흥 시인이 인식하는 자신의 형상(形象)은 약간 형이상적(形而上的)인 이미지가 풍긴다. 그것은 ‘영혼도 눈을 감으면 / 나는 우주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 우주도 내속으로 들어온다’는 어조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과 우주가 동일한 시츄에이션(situation)에서 교감이 이루어지는 시적 상황은 일반 사물과의 대화보다도 가일층(加一層) 높은 경지의 흡인력(吸引力)을 발휘하고 있다.
또한 그는 ‘온 우주를 감싸고 있는 / 고요와 평화가 나를 덮쳐온다’는 그의 정감은 바로 형이상적인 최선의 인간애 즉 ‘나’를 통한 우주만물과의 소통을 확인하는 시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별 속에 숨어서 / 나를 찾아보라고 / 술래잡기를 하자는 그 / 숱한 세월이 흘러 퇴색된 상념인데 / 나의 별에서 나를 부르고 있네’에서 ‘나’를 인식하고 성찰하는 시적 전개가 우리들의 공감영역을 확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그가 자인(自認)하는 어조는 작품 「투명인간」 중에서 ‘자기가 스스로 마련해서 / 입기를 원했기 때문에 / 영겁의 세월이 흘러도 그 모습 그대로’이거나 작품 「가파른 고갯길」 중에서도 ‘흐르는 땀방울을 훔치며 / 한 발작 두 발작 / 중단 없이 나아가고 있다 / 내일의 그날까지를 위해서’라는 인생의 결론처럼 분사(噴射)하는 어조는 어쩌면 김태흥 시인의 자전적 고백이면서도 인식의 범주에서 새롭게 부상(浮上)하는 인생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잔잔하게 웃는다
눈으로
소리도 나지 않게
우주의 신비를 담고
달의 기도를 품고
별의 속삭임을 들려준다
그대의 미소에 상표를 달자
눈웃음이라고
내 맘을 읽고
내 영혼과 대화를 나누고
내 눈물을 훔치는 그대
영원으로 흐르는 지금의 시간
까만 밤에도 꺼지지 않는 촛불
환히 밝아오는 동녘의 기도에도
그대는 올 수 없고
잔잔한 눈웃음만 남는다
--「눈웃음」 전문
김태흥 시인은 여기에서도 ‘우주의 신비를 담고 / 달의 기도를 품고 / 별의 속삭임을 들려준다’거나 ‘내 맘을 읽고 / 내 영혼과 대화를 나누고 / 내 눈물을 훔치는 그대 / 영원으로 흐르는 지금의 시간’이란 어조에서 감지할 수 있듯이 ‘내’와 ‘우주’와 ‘영혼’과의 융합과 화해로서의 자아를 인식하면서 작품에 투영하고 있다.
이어령 교수의 글 「떠도는 자의 우편번호」에서 ‘내가 이 우주의 유일자(唯一者)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장작 하나를 패도 그 도끼 소리에 자신의 영혼을 담은 음악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말과 같이 자아와 타자(他者)와의 실존적 소통은 ‘영혼의 대화’라는 점에서 형이상적 시혼을 읽을 수 있게 한다.
이렇게 ‘나’라는 화자(話者-persona)는 일인칭 대명사로서 그 시인의 독백적 요소가 짙은 어조로 시법을 전개하지만 여기에서는 ‘그대의 미소’와 ‘그대는 올 수 없고’ 등과 같이 이인칭도 등장하고 있어서 상호 대칭의 상황으로 ‘나’와의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어서 시인의 자긍심을 적시하면서 표출하는 시법을 이해하게 한다.
이 밖에도 작품 「그대, 성을 내지 마오-2」 중에서도 ‘그대의 따뜻한 말 한마디 / 나를 녹이고 나를 살립니다 / 나는 녹고 싶습니다 / 지금은 너무나 추운 겨울입니다’라는 대칭적 화자의 어조를 통해서 소통과 교감과 이해를 감응(感應)할 수 있는 그의 심중을 공감할 수 있게 한다.
3. 현실 교감과 시의 시사성 또는 화해
우리 시인들도 실생활(real life) 속에서 사회 현실과 부딪히면서 살아간다. 이 사회에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다채롭게 생성하는 갈등과 분노가 시인들의 모티브 또는 주제가 되기도 하면서 직설적인 언어로 분사하거나 직유로 현현되기도 한다. 김태흥 시인도 예외일 수 없다.
시의 사회성에서는 우리 인간이 고립된 상태에서 살지 못한다. 어떤 형태의 상황에서도 서로 교류하고 집단을 이루면서 이 사회를 형성한다. 그러므로 시인도 이 사회를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현실을 직면하면서 거기에서 주제를 탐색하지만, 사회는 복합화하고 모순이 내포하고 있다. 우리의 순수시는 생활과 사회로부터 동떨어진 미(美)만을 추구하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현대라는 거대한 사회기구에서 파생하는 불합리와 위기의식, 갈등 등의 심리적인 요소들을 파기하거나 탈출하기 위해서 좀더 강력한 언어로 표현하지 않으면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우선 김태흥 시인의 사회 참여의 현장에는 작품 「태클」 중에서 ‘우리 인생의 삶에는 / 태클이 없을까? / 곳곳에 여기저기에 / 눈에 띄지 않게, 은밀히 / 또는 간혹, 눈에 띄게 / 태클이 무수히 존재한다 / 다만 그때마다 / 그걸 발견해서 상벌을 주는 / 훌륭하고 공정한 심판이 없을 따름이다’라는 의미심장한 언어로 이 사회에 먼저 ‘태클’을 걸고 있어서 주목한다.
온갖 권모술수의 꿈을 꾸면서
중소기업을 울리는
중소정당을 윽박지르는
서민의 경제를 짓밟는
가진 자의 횡포에 힘을 싣는
슬픈 자의 고통에 돌을 던지는
온갖 궁리에 머리를 굴리며
꿈을 꾸고 있다
정의란 무엇일까
무엇이 정의 일까
힘이 정의 일까
다수의 군중이 정의일까
신은 존재하는 걸까
정의 심판을 내려줄 신...
세계대전과 한국동란을 일으킨
장본인들은 아직까지 추앙받고 있다
--「불 꺼진 공룡의 도시」 중에서
자식들을 낳아서 길러서 공부시켜서
사회에 내어 놓아서
자립하게 만들어 놓으니
부모는 그동안 늙고 병들고 쭈그러지니
귀찮고 보기 싫은 존재로 퇴색해 버렸다고
인간세상도 이리 늑대의 동물세계와 뭐가 다른가
--「지독한 이기주의」 중에서
시의 사회성은 현실적으로 야기되는 사회적(혹은 정치적)인 문제들이 시사성의 중요한 이슈를 절감하게 된다. 김태흥 시인의 사유에는 ‘권모술수’와 ‘가진 자의 횡포’ 그리고 ‘슬픈 자의 고통’에서 시인의 혜안(慧眼)으로 응시하면서 분노(칠정에서 노(怒)에 해당)를 금할 수가 없다. 그러나 자신에게 아니 다중(多衆)에게 ‘정의란 무엇일까’ 묻고 있다.
우리 현대시에서 작품이 갖는 시사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시의 사회성에서 도출되는 서정시의 영역이 사회의 복잡다단과 여기에서 발생하는 불합리성, 비도덕성, 몰지각적인 모순 등에서 시인들이 스스로 각성하거나 자의식적인 분석을 통해서 정서화한 비평(혹은 비판)을 내포하는 것이 시의 본령(本領)이며 위의(威儀)일 수도 있다. 세계적인 비평가 매슈 아놀드도 시는 본질적인 면에서 인생의 비평이다라는 논지와 같이 시의 주제나 표현에서 비평적인 요소를 배제하지 못하는 것이 현대시의 특성이다.
또한 인간들의 패륜에 대해서도 강렬한 비판을 던져주고 있다. 자식과 부모간의 갈등이 그는 결론적으로 ‘에라 이 천하에 고얀 놈 / 너희도 앞으로 늙을 것이야 / 위로 잘해야 아래로부터 대접을 받지’라는 교훈적인 언술로 인본주의(humanism)로의 지향적인 의식의 전환을 요망하고 있는 것이다.
김태흥 시인은 대체로 이러한 시사적인 문제를 생존경쟁이나 자본주의 주식시장, 이기적인 투쟁, 지구촌 평화 그리고 보수와 진보의 논쟁과 이념 투쟁, 요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미투(me too)에까지 그의 사유는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지적인 혜안을 집중하여 이러한 모순을 화해하는 시법을 모색하고 있다.
매사를 부정적으로 대하고 생각하면
그대로 뇌 속에 입력이 되고
필연적으로
왜곡되고 치졸한 행동이 나온다
매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합리적인 생각으로 받아들이면
성숙되고 화합적이고 보편타당성이 있는
생각, 행동, 합의가 도출되고
만인의 찬사와 존경을 받을 결정과
훌륭한 행동이 만들어 진다
--「부정과 긍정」 중에서
김태흥 시인의 심연(深淵)에는 이처럼 해법을 찾기에 골몰한다. 매사를 부정적으로만 대할 것이 아니라, 긍정적이면서 합리적으로 수용한다면 갈등과 고뇌의 번잡스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화해의 해법을 적시하고 있다. 이러한 화해의 시법을 작품 「잔잔한 평화」 중에서 ‘이 세상 넓고 화려한 무대에 / 살고 있는 인간세상은 어떤가? / 서로 헐뜯고 비방하고 / 깎아내리고 싸움까지 하고 / 이기적인 투쟁에 날이 새는 어제와 오늘 / 질서를 지키고 평화를 유지하는 / 방법과 능력이 / 고등동물은 인간이 하등동물인 물고기보다 / 못한데서야’라거나 작품 「곰국」 중에서도 ‘합법이란 가면을 쓴 / 자본주의 꽃이라는 주식시장의 / 요지경 / 냉혹한 현실 앞에 / 할 말을 잃어버린다’는 등의 어조는 그가 침착하게 응시한 사회적인 모든 모순의 근원과 그 풍조(風潮)를 냉철하게 현현한 그의 인생적인 신념이라고 할 수 이을 것이다.
4. 사계절의 향취를 조감하는 자연 서정
김태흥 시인에게서 다시 발견할 수 있는 시점(視點)은 바로 자연 서정에의 심취이다. 그는 이 자연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는데 그는 이것을 ‘계절 앞에 설렘’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겨울의 끝자락 2월 말/ 저만큼 오고 있는 봄을 / 맞이할 설렘에 가슴이 벅차오른다’는 서정적 의식은 결국 시간성과 만유 자연의 조화를 교감하는 그의 정서에는 이미 자연과의 동화(同化-assimilation)가 서정시를 인격화로 창조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자연관에서 존재의 근원을 탐색하거나 인간정신의 원류로 함축하는 시법은 자연과 인간의 불가분의 상관성에서 섭리와 순리의 순환적 진실을 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감상적 오류라고 부른다. 그 시인의 내면으로 자연을 끌어와서 동일한 인격체로서의 교감하는 시적 진실의 탐구라고 할 수 있다.
경칩이 왔다고 손짓을 하자
봄 동산 개여울에 어미 개구리는
폴짝 뛰어 잠을 깨고
봄을 노크 한다
사각 사각 녹는 얼음조각으로
대지의 입술은 지진을 닮아 열리고
노란 생명의 숨을 토한다
두 팔을 활짝 치켜들고
살그머니 머리를 내어 미는 새싹
때맞춰 내리는 봄비는
살래살래 손짓하며 벌 나비를 부른다
봄바람 꽃바람 사이로
아지랑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꽃봉오리 속으로 꼭꼭 숨은 꿀벌을 찾아서
노랑나비 한 마리 뱅글뱅글 돌면서
애를 태우고 있다
보슬보슬 가랑비도 은구슬 금구슬 여기 저기
꽃잎에 걸어 놓고
술래야 날 잡아봐
--「봄」 전문
김태흥 시인은 자연에서도 특히 ‘봄’에 관한 이미지를 중시하고 있다. 이 봄에 대한 이미지는 잘 아는 바와 같이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주로 흡인(吸引)하지만, 새 생명과 더불어 파생하는 자연의 온기(溫氣) 속에서 우리 인간들의 활력도 만물의 소생처럼 더욱 활기가 넘치게 된다. 우리 모두가 동심으로 돌아가는 정감을 만끽(滿喫)한다.
여기에서는 봄이라는 계절에서 응시하거나 조망(眺望)하는 대상물들이 대거(大擧) 등장하고 있는데 개구리, 얼음 조각, 노란 생명, 새싹, 봄비, 봄바람, 벌 나비, 아지랑이, 꽃봉오리. 가랑비, 꽃잎 등등 봄이 선물하는 만유의 자연 현상을 접할 수가 있어서 그 정경(情景)에 도취(陶醉)하게 된다.
또한 그는 작품 「꽃잎에 내리는 봄비」 「봄비가 내리네」 「봄눈이 내린다」 등으로 봄의 정취(情趣)가 듬뿍 풍기는 그의 심저(心底)를 읽을 수 있으며 봄 연작시를 10편이나 묶은 것을 보면 그가 사랑하고 지향하는 계절(또는 시간)이 봄에 집중되어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특히 이 ‘봄비’의 이미지는 ‘안타까운 이별을 위로하듯’, ‘이렇게 조용히, 너무나 슬프게’ 그리고 ‘홀로 남겨진 그날도’ 등의 약간 슬픔이 깃든 이미지들이 많이 표출되는 특징이 있다.
예술가의 붓 끝처럼 꼬부라진
감나무 우듬지에 매달린 빨갛게 투명한 홍시 하나
아직도 까치를 기다리고 있는데...
배추들이 보는데도 부끄럼도 없이
하얀 배꼽을 쑥 내민 무우들
김칫독은 아직 비어 있는데
이 가을은 떠나려고 하네
--「가을이 서둘러 떠난다」 중에서
간간히 불어오는 계절풍의 긴긴 울음은
밑 둥의 나이테에 꼭꼭 감추고
죽음 같은 침묵으로 내일을 기다린다
무성했던 푸른 여름
화려했던 노오란 가을
발아래 쌓이는 황금 낙엽에 씨앗을 담으며
뿌리에 새겨진 튼튼한 내공으로
바짝 마른 알몸가지 하나하나로
매서운 북풍 한파를 견디고 있다
--「나목」 중에서
그는 ‘봄’에서 뿐만 아니라, 가을과 겨울에서도 많은 영감(靈感)을 얻어서 작품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먼저 가을에서는 앞에서 봄비와 동일하게 ‘이 가을은 떠나려고 하네’라는 아쉬움의 어조로 ‘가을=풍요’라는 이미지와는 약간 괴리(乖離)가 있게 표출하고 있다. ‘무엇이 그리 급한지 / 누구에게 쫓기는지 / 아직도 할 일이 많이도 남았는데 / 모두 다 팽개쳐 버리고 선걸음에 가버리나’는 등으로 계절적 별리(別離)가 현현되고 있다.
겨울은 어떠한가. ‘나목’의 인내- ‘뿌리에 새겨진 튼튼한 내공으로’ 한풍(寒風)의 고통을 견디고 있다. 이것은 겨울 이미지가 주는 결실과 함께 인내 후에 불어오는 춘풍(春風)의 기다림으로 계절의 오묘한 섭리를 실재(實在)의 상황과 함께 그의 지적인 감성(感性)이 집약되어 있다.
이처럼 김태흥 시인의 서정성은 자연이 전해주는 사계절의 향훈(香薰)에서 순수정서를 정화시키는 시법을 보여주고 있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는 ‘사계절은 추억의 기본 표지’라고 했는데 계절의 변화에서 감득(感得)하는 오브제(objet)는 다양하게 우리들의 정감을 유로하는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이제 김태흥 제3시집 『찬란한 순간』 읽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프랑스의 근대에서 탁월한 시인이며 상주의의 비조(鼻祖)라고 알려진 C.P. 보들레르는 우리 인간들의 기쁨이든 슬픔이든 시는 항상 그 자체 속에서 이상을 좇는 신과 같은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한다. 또한 영국의 비평가 I.A. 리처즈도 우리들의 일상생활의 정서와 시적 소재 사이엔 차이가 없다고 했다. 이러한 언지들은 김태흥 시인이 창출한 이미지들은 이처럼 실생활에서 체득한 칠청(특히 노와 애)을 형상화함으로써 삶과 ‘나’를 인식하고 거기에서 존재의 심오한 문제에까지 시적인 정황으로 해법을 탐색하는 탁월한 시법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것이 자아의 인식과 성찰이며 자애(自愛-self love)를 구현하는 최상의 인생관으로 정립되는 것은 자명(自明)한 일이다. 시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