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의 계통은 무엇인가?
알타이어족설은 18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언어학계에서 통용되던 가설이다. 그러나 어족에 속한 언어들 끼리, 같은 어족임을 입증할 수 있는 공통적인 요소가 그리 많이 발견되지 않아서, 이제는 받아들여지지는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한 언어가 다른 언어와 같은 계통인가 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공통되는 270여 가지의 기본 언어 중에 공통되는 요소가 있어야만 한다. 이 기본 언어는 해, 달, 별, 신체 부위, 친척에 대한 호칭, 수사(數詞)에 대한 명칭을 말한다.
우리가 서양어를 보면 가족간의 호칭, 숫자 세는 방식 등 기본 어휘에 동일성이 있는 것을 쉽게 파악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말은 일본어, 터키, 몽골, 만주어와 유사한 점이 많은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같은 계통이라고 말하기에는 기본 언어가 단 하나도 다른 언어와 같은 것이 없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적어도 어떤 언어군과 같은 계통이라고 하려면 기본 어휘 중에 상당 부분이 같거나 비슷해야만 같은 계통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터키어와, 몽골 그리고 만주어 사이에는 기본 어휘가 같은 것이 많이 있다. 그러나 한국어에는 하나도 그 예가 없다. 차라리 일본어에는 터키, 몽골어와 기본어가 같은 것이 몇 개 발견되었으나 한국어에는 단 하나도 없으니 문제다. 순수 한국어와 비슷한 것은 좀더 연구해 보면 차용어(借用語)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민족이 한반도로 이동해 오는 도중에 터키, 몽골, 만주어 쓰는 민족과 가까이 사는 과정에서 빌려온 말에 불과 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확실히 터키어와 몽골어가 우리나라 말에 차용된 경우는 있다. 한국어의 ‘도통 모르겠다’의 ‘도통’은 터키어다. 그 외 ‘송골매, 인두, 무두질 등은 몽골어에서 왔다. 그외 ‘벼슬아치’ 하는 ‘아치’라는 접미사도 몽골어에서 유래한다. 영조의 어머니는 궁궐에서 하찮은 일을 하는 ‘무수리’ 출신인데 이 말도 몽고어에서 온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예는 차용에 불과하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말하는 ‘빵, 보당, 뎀뿌라, 토마토’ 등이 일본을 경유한 포르투갈어나 마찬가지인 경우다.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큰 도움을 주었으며 띄어쓰기를 한글에 최초로 도입했던 헐버트((Homer B. Hulbert 1863∼1949) 박사는 한국어와 인도의 드라비다어간의 유사함을 비교한 적도 있다. 드라비다어에는 한국어와 비슷한 낱말이 약 1,000개가량 있는데 이것은 드라비다족이 시베리아에 살다가 아리안족이 인도에 들어오기 훨씬 전에 인도로 남하하여 살았기 때문이란 이론도 있으나 하여튼 한국어는 세계 언어학자들이 아직도 속 시원히 해결하지 못한 미스터리이다.
독일의 언어학자 슐라이허(August Schleicher 1821~1868)는 여러 언어를 어족(語族)이 아니라 구조나 형태의 관점에서 굴절어(屈折語), 교착어(膠着語), 고립어(孤立語)의 세 종류로 분류하였다. 이 분류방식에는 여러가지 이론도 있지만 현재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분류에 따르면 한국어는 교착어라고 할 수 있다. 교착은 아교와 같이 단단히 달라붙는다는 뜻으로, 단어의 중심이 되는 형태소(어근)에 조사(助詞)나 접사(接辭)가 덧붙어 단어가 구성되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그 단어의 핵심이 되는 어근의 형태 자체가 변하는 굴절어와는 달리 어근의 형태는 변하지 않고, 각자 고유한 의미를 지닌 형태소들을 병렬적으로 이어 하나의 구(句)와 문장을 만든다.
굴절어와 교착어는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나 실제로는 상당히 다르다. 굴절어는 기본적으로 형태를 바꾸어 의미를 완성시키고, 교착어는 접사를 붙여서 의미를 완성해나간다. 예를 들면, “나는 집에 간다”에서 나는의 ‘는’과 집에의 ‘에’는 조사로서 어근에 붙이면 문장에서 주어, 목적어, 부사로 기능을 하고, ‘간다’의 원형인 ‘가다’를 ‘간다’ 가고‘ ’가니‘ 등으로 변형시켜 서술어나 수식어 기능을 한다. 그런데 한국어가 순수한 교착어인 우랄알타이어로 보기에는 문제점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특징이 서술어와 수식어의 형태가 다르다는 점이다. 즉 ’아름답다‘라는 서술어를 수식어로 쓰면 "아름다운"이 된다. 교착어이면서 굴절어라는 사실이다. 문장구조상 한국어는 조사를 붙이거나 어미를 변형한 문장의 어순을 바꿔도 전달하려는 뜻에 변함이 없다는 장점이 있다.
굴절은 단어의 형태가 바뀐다는 뜻으로, 교착어와는 달리 어근(語根)과 접사(接辭)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따라서 어휘 자체에 격(格), 품사(品詞) 등을 나타내는 요소가 포함되어있다. 예를 들면, 영어의 Have 동사 활용을 배울 때 have, has, had 가 ha- + -ve, -s, -d로 배우지 않았다. 그냥 have, has, had 로 배웠다. 라틴어의 잡다 라는 의미의 단어가 원형은 Capere 이지만, 1인칭으로 사용될 때는 Capio가 되고, 과거형 1인칭으로 사용될 때는 Cepi로 변한다. 그러나 이것이 접사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단어 자체가 형태가 바뀌어서 문법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이런 것을 굴절이라고 한다. 교착어인 한국어는 이와 달리, 어근에 어떤 접사가 붙는가에 따라서 문법적인 의미를 갖는다.
고립어는 어형 변화를 하지 않고, 어순과 위치만으로 문법적인 형태를 나타내는 언어이다. 즉 단어가 변형되지 않기 때문에, 단어의 통사적 위치를 나타내기 위해 어순이 중요하다. 중국어, 타이어, 미얀마어, 티벳어 등과 남태평양의 사모아어가 고립어에 속한다. 이 외에도 동사의 앞뒤로 형태소들이 계속 붙어나가는 에스키모어 같은 것들을 포함어라고 부르는데 아직 일반적인 학설은 아니다. 굴절도가 심하다는 면에서 굴절어에 가깝다.
요즘 언어학자들은 진화적으로 모든 인간 언어가 적어도 생물학적으로는 동일한 종류의 언어 능력을 반영하는 것이라 보고 있다. 그렇지 않고 어떤 언어가 다른 언어보다 생물학적으로 더 복잡하거나 덜 복잡한 정신 능력의 산물이라면, 언어 간 비교나 범언어적 보편 논리를 구축하는 기획들의 기초가 의심받게 되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말해, 내재적으로 더 우월하거나 열등한 언어는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