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의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한 주간 동안 보낸 말씀에 대한 정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이젠 예수 이름으로 살아야 합니다
월(月)요 17:11-14 / 골 3:15-17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지켜주셔서 우리가 하나인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요 17:11)
내 이름으로 사는 것, 내가 주체가 되어 사는 것은 거짓 자아의 삶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에게서 힘을 얻어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골 3:17).
주님을 힘입어 예수 이름으로 살 때만 주님이 나타나 일상의 삶이 기적이 됩니다. 신앙의 목적은 주님이 나타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가 나타나는 것이 영광의 실제입니다.
거짓 자아는 자신의 육체와 동일시합니다. 내게 주어진 사회적 위치(사장, 교수, 정치인 등)는 내가 아닙니다. 진정한 나는 영혼이지 나를 알리는 타이틀이 아닙니다. 이것들은 사명으로 주신 것입니다. 내 이름으로 살면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 결핍과 두려움이 옵니다. 세상에서 결핍을 채우려면 채워지지 않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참 자아를 찾을 때 결핍에서 해방됩니다.
우리는 목숨이 끊어질까 두려워합니다. 그러므로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영생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영생에 들어가면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자연 생명으로 살면 실존적 두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예수 믿으면 내 인생은 없고, 예수 인생만 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주님의 의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주님의 의로 사는 것이 예수 이름으로 사는 것입니다.
구원은 거짓 자아에서 참 자아로 나가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현상과 사실(거짓 자아)의 종이 아닌 실재(말씀, 참 자아)의 종입니다. 자연 생명, 거짓 자아의 삶은 돈의 포로가 됩니다. 현재는 가난하지만, 실재이신 말씀을 붙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부요하나 여러분을 위해서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것은 그의 가난으로 여러분을 부요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실재로 붙들어질 때 믿음대로 부요가 나타납니다.
영적 거룩한 상상력으로 보면 말씀이 그려진 대로 이루어집니다. 일상의 기적은 주님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꽃이 있습니다. 꽃의 실재는 말씀이신 예수님이십니다. 꽃을 볼 때 그 실재, 본질이신 주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는 만유이시고, 만유 안에 계십니다. 예수 생명으로 사는 길은 참 자아를 찾는 것입니다.
우리의 환경은 마귀가 지배합니다. 우리의 환경은 무덤입니다. 그러므로 환경을 보지 말고 예수를 보아야 합니다. 예수는 죽음에서 살아난 부활의 권세입니다. 예수가 나타날 때 승리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신 목적은 이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고, 다스리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담은 창조되지 않은 생명(예수 생명)이 없어 죄의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사단의 생명이 들어와 사단의 형상이 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창조되지 않은 생명은 하나님 생명뿐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생명 나무를 먹는 순간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온 것입니다. 이것이 영생입니다.
자연 생명이었을 때 사람들은 세상 풍조를 따라 불순종하였습니다.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았기 때문에 본질상 진노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런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이 땅에 오셔서 죽음을 깨트리고 사망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믿는 자 속에 오셨습니다. 내 속에 창조되지 않은 하나님 생명이 들어온 것입니다. 아담 생명으로 살면 날마다 두려움 속에서 살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 생명이 들어와 예수 이름으로 살고 있습니다.
‘육신의 나’는 마귀의 종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아닌 사단의 조종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나 중심으로 살던 옛사람이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었습니다. 나의 죄도 함께 못 박힌 것입니다. 이제는 죄의 종노릇 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예수 생명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 생명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말하고 행할 때 주님이 나타나십니다. ‘내 이름(예수)으로 아버지께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하늘 문은 예수님만 열 수 있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구할 때 주님이 나타납니다.
예수 이름은 천국열쇠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통해 천상 사역을 하십니다. 내가 하나님의 그릇으로 살 때 예수 이름을 사용할 자격을 주십니다. 천국열쇠는 베드로에게 주신 열쇠입니다. 세상(마귀, 사단, 귀신)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일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악한 존재를 물리쳐야 합니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하나님, 예수 이름으로 하는 기도만 하나님께 올려집니다.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내게 있는 것 네게 주노니’라고 말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일으켰습니다. 베드로의 손과 입은 예수의 손과 입입니다. 베드로를 통해 주님의 천상 사역을 이루신 것입니다. 내가 죽고 나를 통해 예수가 사실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내가 예수께, 예수는 하나님께 소원을 구해서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날(성령이 오시면)에는 내가 하나님께 예수 이름으로 직접 구하면 됩니다. 예수께서 보증하십니다. 예수 이름은 통로가 됩니다. 내가 말씀을 믿을 때, 내 안에 계신 주님이 나를 통해 말씀을 이루십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예수 이름으로 귀신, 가난을 내어 쫓습니다.
And...
예수 이름은 참으로 능력이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감당할 수 없는 문제가 내게 다가왔습니다. 마음에 불안과 염려가 왔습니다. 그 순간, “주님 현상과 사실은 그림자입니다. 현상과 사실에 붙들리지 않고 말씀의 실재이신 주님께 붙들리겠습니다. 주님께서 이 문제를 주시기 전, 먼저 내게 은혜를 주신 것 감사합니다. 나의 주인 되신 주님이 이 문제를 맡아주십시오. 주님께서 내게 이 문제를 주신 것은 내가 감당할 수 있기에 주신 것입니다. 나는 주님을 신뢰합니다. 내가 주님의 일을 행할 때 주님께서 내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라고 그 문제를 주님께 올려드렸습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비록 악한 상황이지만 이렇게 인도하신 것은 하나님의 섭리라고 믿습니다.
요셉의 일상을 묵상하였습니다. 의도하지 않게 감옥에 갔지만 그는 억울하다고 말하지 않고 그 일 또한 하나님의 섭리라 믿고 주님의 도구로서의 삶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주님은 그의 가장 열악한 환경 속에서 총리의 길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택하여 이스라엘 국민 만들기를 계획하셨고, 그 과정에 그를 애굽의 총리로 세우기 위해 형들에 의해 애굽으로 팔아넘기게 하셨고, 보디발의 가정 총무가 되게 하셨지만, 부인의 유혹을 통해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죄수들에게 애굽의 정치를 배우게 하셨고, 결국 꿈해몽을 통해 애굽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모든 계획은 하나님이 세우셨고, 요셉을 통해 그 일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 관점에서 나의 문제를 바라보면 해답이 나옵니다.
말씀이 묵상 되면서 나의 지금 이 환경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과정이란 믿음이 왔습니다.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한 번의 흔들림이 없이 평안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평안하다는 것은 주님이 이미 기도를 응답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타이밍에 현상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위기가 기회가 될 것을 믿고 믿음의 말을 선포합니다. 주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우리는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열악한 환경은 주님이 오시는 길입니다. 환경의 종이 되지 않고 믿음의 말을 선포할 때 예비하신 길을 여는 기회가 됩니다.
예수 이름에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 이름은 내가 주인 된 자리를 포기할 때 쓸 수 있는 유일한 이름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현상과 사실(마귀)의 종이 아닌 실재(하나님)의 종이 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https://youtu.be/PsP6Q4a7Sr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