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주요 온라인 유통망을 알아본다
소비재 수출은 재고용보다 실수요 겨냥해야
인구 2억1500만 명의 세계 7번째 인구 대국 브라질은 복잡한 세금 체계와 비싼 물류비용 때문에 수입제품 가격이 높아 우리 소비재 기업들이 진출에 어려움을 겪곤 한다. 이럴수록 현지 유통망을 잘 살펴보면 길이 열릴 수 있다.
◆온라인 유통망의 영향력=온·오프라인을 불문하고 브라질 유통망은 메르카도 리브레, 아마존, 매거진 루이자, 쇼피가 5강을 형성하고 있다. 이 중 4개는 온라인으로만 판매하는 플랫폼이다. 온라인 판매만 하는 데도 전체 유통망 순위에서 최상위권을 차지했으니 브라질 소비시장에서 전자상거래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이마트, 쿠팡, 롯데쇼핑, GS리테일, 홈플러스, 신세계 순으로 온·오프라인을 병행하는 업체가 주로 상위권을 차지한다. 반면 브라질은 온라인만으로도 유통시장 전체를 장악하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한국은 국토가 좁아 오프라인 시장에 대한 접근성이 우수한 것도 있지만 브라질에서 온라인 유통망의 영향력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하다.
시장조사업체 이커머스DB는 브라질 온라인 유통망의 올해 매출 성장률과 연간 매출을 각각 25%와 476억 달러로 예상하고 2027년에는 823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2022년 기준 품목별 매출은 전자·미디어 부문이 전체의 26.8%로 가장 높았고 식품·퍼스널 케어와 패션이 각각 25.3%와 20.1%로 뒤를 이었다. 브라질 유통망에 진출한 우리 소비재 기업의 매출이 뷰티 제품과 K-팝 굿즈 위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온라인 유통망의 강자들=메르카도 리브레는 우루과이에 본사를 둔 아르헨티나 기업으로, 1999년에 설립됐다. 한국에서는 아마존이나 알리바바, 쇼피 등에 비해 인지도가 뒤지지만 중남미에서는 그 어떤 온라인 유통망도 메르카도를 쉽게 넘어서지 못한다. 2007년 8월에는 중남미 기업 최초로 미국 나스닥에 상장되기도 했다. 멕시코 등 중남미 주요국의 온라인 유통망 순위표 맨 위에는 언제나 이 회사가 있다.
메르카도는 물류창고를 직접 운영하지 않으면서도 ‘메르카도엔 비오스’라는 독자적인 물류·배송 시스템을 내세워 빠르게 시장 점유율을 확보했다. 또한 선진국만큼 금융 체계가 건실하지 못해 현금 결제 비율이 높은 중남미에서 ‘메르카도 파고’라는 전자결제 시스템을 개발해 전자상거래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회사명 자체가 ‘자유 시장’을 의미하는데 이름에서 암시하듯 기업이 아닌 개인의 명의로도 판매가 가능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아마존이 브라질에 진출한 때는 2012년으로, 이미 메르카도가 시장을 선점하고 있었다. 블룸버그 등 세계 주요 언론은 아마존이 중국에서는 알리바바에, 인도에서는 플립카트라는 로컬 온라인 유통망에 밀렸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브라질 시장에서의 성공을 낙관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마존은 메르카도와 달리 e-북,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사업을 내세워 빠르게 메르카도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미국 회계법인 딜로이트의 조사에 따르면 아마존은 2022년 매출액 기준 세계 온·오프라인 유통망 순위에서 월마트에 이어 2위였다. 이런 네임밸류에서 오는 신뢰도는 비관적인 전망을 뒤엎고 브라질에서 높은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는 원동력이 됐다.
매거진 루이자는 홈페이지 방문자 수 기준 브라질 유통망 ‘톱5’ 가운데 유일한 토종 기업이다. 한동안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장을 함께 운영했지만 코로나19로 브라질 내 오프라인 유통매장의 매출이 급감하면서 온라인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매거진은 다른 유통망과 차별화되는 독특한 마케팅으로 브라질 최대의 로컬 유통망으로 발돋움했는데 배경에는 올해로 태어난 지 20년이 된 ‘루 도 마가루’라는 캐릭터가 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만 630만 명이 넘는 이 캐릭터는 제품 홍보와 사용 후기 등을 담당하는 가상 인플루언서로, 매거진 루이자를 통해 원하는 물품을 주문하면 왓츠앱으로 배송 상황을 알려준다. 이커머스DB에 따르면 매거진 루이자는 가상 인플루언서를 활용한 사회공유망서비스(SNS) 마케팅 효과로 작년에만 39억 달러가 넘는 순이익을 기록했다.
싱가포르 국적의 쇼피는 2021년 4월 브라질 시장에 등장해 경쟁 플랫폼에 비해 진출 역사가 짧다. 하지만 진출 2년 만에 브라질에서 가장 많이 다운로드된 상위 10개 앱에 선정될 정도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 진입 첫해인 2021년 이미 17억 달러의 수익과 쇼핑 앱 중 접속자 수 1위라는 기록을 남겼다.
쇼피는 판매자가 영어로 상품을 등록하면 포르투갈어로 번역한 뒤 웹페이지에 공개해 판매자가 직접 포르투갈어로 상품을 설명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어준다. 또한 쇼피물류서비스(SLS)라는 자체 시스템을 제공하는데 판매자가 쇼피의 국내 집하지까지만 배송하면 이후에는 통관부터 현지 배송까지 원스톱으로 진행한다. 브라질은 쇼피가 SLS 시스템을 통해 배송할 수 있는 10개국 중 한 곳이다.
◆오프라인 유통망의 변신=브라질 유통시장에서 온라인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커지는 상황에서 고전적인 방식으로 매출을 늘려왔던 오프라인 유통업체의 대응 방식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형 마트나 슈퍼마켓으로 대표되는 오프라인 유통망도 온라인 판매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1년 매출을 기준으로 5대 슈퍼마켓 중 까르푸 브라질과 GPA는 각각 ‘까르푸’와 ‘팡 데 아수카르’라는 명칭으로 상파울루 시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면 나머지 3개사의 매장은 상대적으로 드문데 이는 모든 유통망이 전국 단위로 운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브라질 전체 유통망의 67.7%는 전국 단위, 7.8%는 몇 개의 주를 묶어 지역 단위, 6.9%는 특정 주에서만 운영된다. 슈퍼메르카도스BH의 ‘BH’는 미나스 제라이스주의 주도 ‘벨루 오리존치’라는 도시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이 회사는 미나스 제라이스주에서도 벨루 오리존치를 중심으로 매장을 운영하는 대표적인 지역 유통망이다.
프랑스의 까르푸그룹은 1975년 브라질에 진출했으며 대형 슈퍼마켓 체인 중에서는 마케팅 쇄신을 위해 노력하는 기업으로 평가된다. 까르푸는 브랜드와 고객 가치, 미디어, 고객관계관리(CRM), 가격 책정 등 총 4개의 세부 마케팅 부문에서 새로운 총괄책임자를 선임해 마케팅 구조를 재정리하기도 했다.
역설적이지만 오프라인 슈퍼마켓 시장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까르푸의 마케팅 전략은 디지털화다. 자체 앱을 출시해 품목 정보 이외에 구매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조리 방법 등을 제공해 2019년에는 식료품을 제외한 일반 소비재의 매출의 34%가 전자상거래 부문에서 발생했다. 2020년 9월에는 오프라인 매장을 다시 열었지만 온라인 판매는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브라질 유통망 홈페이지 방문자 수 7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팡 데 아수카르는 1959년 설립된 슈퍼마켓 체인으로, 브라질 전역에 약 2100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1200개 정도를 보유한 까르푸를 넘어 브라질에서 매장이 가장 많다. 초창기에는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아 매장마다 고객의 경험이 다르다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자연스레 고객의 만족도가 높은 매장과 낮은 매장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는 매출에도 영향을 주었다.
팡 데 아수카르는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모든 매장 입구를 녹색으로 통일하고 매장에 들어서면 꽃과 과일을 가장 먼저 마주할 수 있도록 했다. ‘젊고 건강한 유기농의 이미지’를 내세우는 브랜드 마케팅 덕분에 소비자로부터 신뢰를 얻었고 이 결과 브라질 최대의 식료품 유통업체이자 리테일러로 성장했다.
자체 앱을 출시해 까르푸와 마찬가지로 슈퍼마켓의 디지털화에 힘쓰고 있다. 앱 회원이 되면 할인 품목 정보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실제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앱 회원에게만 제공하는 할인 품목이 다수 있다.
메르세아리아는 브라질 내 한인 인구를 비롯해 아시아인을 주 타깃으로 삼아 성장한 대표적인 틈새시장 성공사례다. 브라질은 중남미에서 동양인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로, 국가통계포털(KOSIS)이 발표한 한국 재외동포 자료에 따르면 2021년 브라질에 거주하는 한인은 3만6000명이며 일본인은 무려 200만 명에 달한다. 흔히 브라질 내 한인 사회에서는 ‘오뚜기’라는 별칭으로 통하는 이 회사는 한국 식품 전문 유통사로, 한국 이외에도 동아시아 국가의 식품도 유통하고 있다.
브라질 유통망 중에는 지역이나 주 단위로 운영되는 곳도 있는데 메르세아리아는 이보다도 작은 범위에서 운영되는 유통망이다. 상파울루시는 다수의 한국인이 거주하는 봉헤찌로, 일본인이 많이 사는 리베르다데 등 여러 구역으로 나뉜다. 메르세아리아는 봉헤찌로 거주 인구를 주 소비자로 삼으면서 상파울루시와 상파울루주, 나아가 브라질 전역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중이다.
KOTRA 상파울루 무역관은 지난해 메르세아리아와 협력해 오뚜기 마트에서 한국 우수상품 판촉전을 진행했다. 브라질에서 인지도가 높은 뷰티 인플루언서를 초청해 시식 행사 등을 가졌다. 인플루언서 마케팅 덕분에 시간이 지날수록 브라질에서 K-푸드와 동양 식료품의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고 브라질 내 한인을 주 고객으로 했던 매장에는 현재 국적과 혈통을 가리지 않고 많은 소비자가 방문하고 있다.
옥쏘는 멕시코의 펨사가 운영하는 편의점 체인으로, 펨사의 올해 1분기 영업 보고서에 따르면 옥쏘는 중남미 전역에 2만1000개 이상의 매장을 가지고 있다. 브라질에는 비교적 늦은 2020년에야 상파울루주의 상파울루, 캄피나스 등 5개 도시를 중심으로 진출했다. 브라질 시장에 진입할 때 타깃은 바쁜 도시인이었는데 당시는 코로나19로 대면 경제가 큰 타격을 받던 상황이었다.
코로나19 초기 소비자들은 식료품을 사기 위해 멀리 떨어진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결제를 위해 긴 줄을 서는 것에 지치는 한편 매장 직원이나 다른 사람과의 대면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옥쏘는 편의점이 흔치 않던 브라질에서 이런 경향을 놓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매장을 늘려나가고 있다.
옥쏘의 브라질 마케팅 전략은 소비자 친화적인 슬로건에 있다. 불안한 치안으로 밤에 영업하는 소매점이 거의 없는 브라질에서 ‘24시간 열려 있는 마켓’이라는 슬로건과 옥쏘를 발음하기 어려워하는 현지 소비자를 위해 ‘오끼쏘’로 부를 것을 제안했다. 이 결과 옥쏘는 브라질에 진입한 지 3년밖에 안 됐지만 정체성을 내세우는 슬로건 마케팅으로 도시인들 사이에서 빠르게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있다.
◆온·오프라인 유통망 트렌드=브라질 온라인과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추구하는 트렌드는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오프라인 기반의 대형 유통사들이 영업의 초점을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캐릭터, 브랜드 고유의 컬러, 슬로건 등 이미지를 쉽게 각인시키기 위한 브랜드 마케팅을 실시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특정 커뮤니티, 특정 시간대의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틈새시장 진입이 잦아지고 있다.
이밖에 브라질에서는 옥쏘 같은 편의점 말고 아파트 건물 내부에 무인 간이 편의점 형태의 매점이 증가하고 있다.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 편의점이 있는 우리와 달리 아예 아파트 건물 안에 있어서 아파트 주민들만 이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소비자가 아파트 주민으로 한정되다 보니 무인으로 운영하더라도 도난 등 안전 이슈가 발생할 가능성이 낮다.
◆우리 기업 시사점=브라질 돔카브랄재단의 물류·공급사슬 연구팀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재고 기반의 유통이 감소하는 반면 실수요 기반의 유통은 나날이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재단이 주요 유통망 102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0% 이상이 공급자가 최종 소비자에 직접 유통하는 형태이며 도매상 등 중간자의 역할은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그나마 소매상이 존재하는 유통채널은 32%이지만 도매상이 존재하는 채널은 21%에 그쳤으며 이 수치는 브라질 유통망이 성장함에 따라 지속적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까르푸 브라질의 다니엘 밀라그레스 브랜딩 디렉터는 “마케팅의 핵심은 소비자의 불편함을 이해하고 이를 극복하는 것이며 온라인과 대면 경제에서 발생하는 고객 경험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코로나19의 영향이 과거에 비해 약해지면서 오프라인 매장이 부활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온라인 시장이 위축되지 않는 점을 고려할 때 상당수 슈퍼마켓 체인이 디지털 혁신을 통해 고객 경험의 질적 향상을 추구하는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KOTRA 무역관에 따르면 행정 처리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까다롭고 복잡한 인증 절차를 기다려주며 수입통관부터 비싼 창고 보관비와 내륙 운송비까지 감당하면서 한국 제품을 수입할 브라질 바이어를 찾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 따라서 돔카브랄재단의 조사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 소비재 기업들은 재고보다 실수요 기반의 현지 유통망에 입점하는 방식으로 진출을 꾀해볼 만하다.
특히 브라질은 유통망마다 운영 범위, 마케팅 전략, 주요 소비층 등이 제각각이다. 따라서 섣불리 특정 유통망의 특성을 브라질 시장 전체의 특성인 것처럼 한정적으로 정의해서는 안 된다. 회사의 판매전략이 브라질의 어느 형태의 유통망과 가장 잘 맞을지 확인하면서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KOTRA 상파울루 무역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