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질문의 책 12권. 세계 평화를 위해 '좋은 전쟁'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미국. 과연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전쟁에 참가했을까? 저자 자크 파월은 단호하게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파월은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가한 이유는 자유와 정의,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대기업과 파워엘리트의 이익을 위해 참전한 것이라고 말한다.
파월은 제2차 세계대전은 파시즘과 군국주의에 대항한 미국의 위대한 성전, 즉 '좋은 전쟁'이 아니라 돈과 사업 관계, 그리고 이윤에 따른 충돌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진실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는 이 기념비적인 작품에서 저자 파월은 미국의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를 발가벗기고, 전쟁의 진실이 무엇이었는지를 하나씩 들춰내고 있다.
저자 자크 파월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며 하나씩 답을 제시한다. 왜 그렇게도 많은 미국의 파워엘리트들이 전쟁 전에는 파시즘에 호의적이었을까? 미국이 나치 독일을 공격하기로 결심하기까지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던 걸까? 일본이 진주만 공격을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20~25만 명이나 살상된 드레스덴 폭격은 굳이 할 필요가 없었는데 왜 이뤄졌을까? 미국은 왜 독일을 분단국가로 만들었을까? 미국 대기업은 어떻게 전쟁 중에 막대한 부를 얻었을까?
그리고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지금까지도 미국의 국내 및 대외 정책은 근본적으로 자유와 정의와 민주주의의 이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산업과 '대기업(자본)', 즉 미국 파워엘리트들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소개
역사학자이자 정치학자. 1946년 벨기에에서 태어났고 현재는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다. 토론토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요크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토론토대학, 요크대학, 워털루대학에서 유럽사를 가르쳤다. 제2차 세계대전의 진실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는 이 기념비적인 작품은 그동안 독일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네덜란드어로 출판되었으며, 여러 나라에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자크 파월은 이 책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파시즘과 군국주의에 대항한 미국의 위대한 성전, 즉 ‘좋은 전쟁’이라는 전통적인 방식이 아니라, 돈과 사업 관계, 그리고 이윤에 따른 충돌로서 기술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 《엄청난 계급전쟁THE GREAT CLASS WAR 1914-1918》 《시간의 먼지 아래BENEATH THE DUST OF TIME》 등이 있다.
역자 : 윤태준
한양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카네기멜론 대학교에서 논리학을 공부했다. 지금까지 옮긴 책으로 《사회주의, 생동하는 유토피아》 《유행의 시대》 《역사를 기억하라》 《단단한 공부》 《법가, 절대 권력의 기술》 《긍정 지능》 《동양의 생각지도》 《공부책》 《공부해서 남 주다》 등이 있다.
목차
개정 영문판 서문
서문: 목적과 방법론
1장 서론: 미국과 ‘위대한 십자군’이라는 신화
2장 미국의 파워엘리트와 파시즘
3장 미국과 공산주의의 위협
4장 유럽의 전쟁과 미국의 경제적 이익
5장 1941년 가을: 모스크바에서 전세가 뒤집히다
6장 일본, 독일과 전쟁하는 미국
7장 미국에서 벌어진 계급투쟁
8장 스탈린을 위한 제2전선, 또는 하늘 위의 제3전선?
9장 스탈린의 소련: 사랑스럽지는 않지만 쓸모 있는 동반자
10장 이탈리아의 해방: 치명적인 선례
11장 1944년의 길었던 여름
12장 붉은 군대의 성공과 얄타회담
13장 드레스덴: 엉클 조에게 보내는 메시지
14장 스탈린을 어떻게 다룰까?: 루스벨트의 ‘온건노선’에서 트루먼의 ‘강경노선’으로
15장 반소비에트 십자군?
16장 독일의 항복(들)
17장 미국의 걱정과 자신감
18장 원자외교, 그리고 냉전의 시작
19장 유용한 새 적
20장 나치와 미국 기업들의 이익 1
21장 나치와 미국 기업들의 이익 2
22장 미국과 소련, 그리고 독일의 운명
23장 1945년 이후: 좋은 전쟁에서 영구 전쟁으로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미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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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미국의 파워엘리트는 왜 파시즘에 호의적이었는가?
저자는 1939년 유럽에 전쟁이 발발하자 처음에는 중립을 지키는 것이 미국 파워엘리트들에게 이익이 되었다가 나중에는 참전하는 것이 더 큰 이익이 된 이유와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처음 미국의 파워엘리트들은 파시즘에 호의적이었다. 1930년대 대부분의 미국 기업체들은 대공황이라는 극심한 경제 위기를 겪으며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이와 반대로 소련은 1930년대 완전고용과 노후 연금 등 사회보장 제도로 ‘노동자들의 천국’으로 불렸다. 1930년대 미국의 노동자, 지식인들은 소련의 이런 사회주의 실험을 일종의 대안으로 받아들이며 굉장히 호의적으로 반응했다. 그러나 미국의 파워엘리트는 나치의 파시즘보다 이런 소련의 사회주의를 훨씬 더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파워엘리트들은 히틀러를 영혼이 통하는 친구로 여겼고, 그를 혜안을 지닌 사람이자 과감하게 진실을 말하는 정치인, 그리고 사회주의를 파괴하는 정책을 주저 없이 추진하는 지도자로 칭송했다. 그들은 히틀러의 두 가지 업적에 특히 깊은 감명을 받았다. 첫째, 1933년 초 정권을 잡자 그 즉시 사회주의 정당과 공산주의 정당을 없애버리고 노동조합을 해체한 것이다. 둘째는 이후 몇 년에 걸쳐 고속도로 건설을 비롯한 다양한 공공사업과 재무장 등으로 독일을 대공황의 사막에서 빠져나오게 했다는 점이다. 미국의 파워엘리트들은 이런 히틀러의 파시즘을 대공황에 빠진 자본주의의 탈출구이자 소련 공산주의를 물리칠 대안세력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미국 대기업의 경제적 활로를 열어줄 유력한 세력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의 파워엘리트들은 히틀러에게 호의적이었고, 나치 독일에 많은 투자를 했다.
나치 독일은 미국 대기업의 가장 매력적인 투자처?
미국의 대통령 캘빈 쿨리지는 “미국이 할 일은 비즈니스”라고 말했다. 미국이라는 국가는 기업에게 최대한으로 돈을 벌 계기를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무엇이 미국의 산업, 사업, 그리고 기업들에게 이익이 되는지, 그것을 보호하고 증진시키기 위해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고 실행하는 것이 미국의 존재 이유인 것이다. 미국의 기업가들은 예나 지금이나 나라의 국내외 정책이 사업활동을 제약하는 규제를 없애고, 노동자들을 가능한 한 온순한 채로 유지하고, 임금을 최대한 낮추는 것을 원한다. 이런 의미에서 히틀러 치하의 독일은 미국 기업들에게 매력적인 투자처였다.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하자 미국 기업의 대독일 투자는 크게 증가했다. 1941년 말에는 투자액이 4억 7,500만 달러에 이를 정도였다. 코카콜라의 대규모 병입 시설, 제너럴모터스 오펠 자동차 공장, 포드의 포드-베르케, IBM 공장, 또는 스탠더드오일의 악명 높은 독일 협력사 이게파르벤 등 미국 기업들의 독일 자회사들과 협력사들은 노동조합을 쓸어버리고 재무장 계획으로 주문이 빗발치게 만든 히틀러 집권기에 크게 번영했다. 약 20개 정도의 유력한 미국 거대기업이 1930년대에 독일과 연관되어 큰 이윤을 남겼는데, 포드, 제너럴모터스, 뉴저지 스탠더드오일, 듀퐁, 유니언카바이드, 웨스팅하우스, 제너럴일렉트릭, 굿리치, 싱거, 이스트먼 코닥, 코카콜라, IBM, 그리고 ITT 등이 바로 그 기업들이다.
이 기업들은 히틀러에게 전쟁을 계속하도록 기술을 전해주기도 했다. GM과 포드는 전쟁에 필요한 모든 수송 장비뿐만 아니라 탱크와 장갑차 같은 전쟁 무기도 제공했다. IBM은 “추방 대상자인 유대인과 다른 희생자들의 명단을 작성하고, 강제수용소의 수감자를 등록하고, 강제노동자를 찾아내는 데” 사용된 홀러리스 계산기를 비롯한 여러 장비들을 히틀러 정권에 제공해 엄청난 규모의 홀로코스트가 발생하는 데 책임이 있다. 또 최첨단 정보처리 기술을 제공해 독일군이 전격전을 신속하게 수행할 수 있게 했고, 진주만 습격 이후에도 계속해서 나치 독일에서 사업을 이어갔으며, 그 과정에서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친파시스트주의자인 소스신스 벤이 이끄는 ITT는 1930년대에 독일 군용기 포케불프의 4분의 1을 생산했다. 진주만 공습 이후, ITT는 미국의 외교 암호문을 해독할 수 있는 통신 시스템을 독일에 제공하여 미국에 해를 입히기도 했다. 미국의 석유 회사는 스페인을 통해 독일에게 석유를 공급했으며, 이 연료가 없었다면 나치는 모스크바 부근까지 진격할 수 없었을 것이고, 프랑스를 점령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미국 대기업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그 어떤 것도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미국 정부는 이 기업들이 이익을 얻는 데 꾸준히 지원을 해주었다. 전 세계 주요 국가 중 어떤 나라도 미국만큼 ‘기업’에 완전한 ‘자유’를 주고 자본주의가 진정으로 어떠한 제한도 받지 않게 해달라는 요구를 충족시켜주는 국가는 없다.
이익이 된다면 전쟁이라도 상관없다?
당시 미국 기업가들은 히틀러의 반유대주의 정책에 아무런 불만을 갖지 않았다. 사실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당시에는 인종주의 국가이기도 했다. 군병원에서는 ‘백인’과 ‘흑인’의 혈장을 구분했으며, 아이젠하워와 마셜과 패튼을 포함한 장군들 상당수는 나치와 마찬가지로 백인의 우월성을 확신했다. 전쟁이 끝난 다음에는 다른 인종 간의 결혼과 출산을 금지하는 법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던 미국의 여러 주들에서 유럽의 백인과 결혼한 흑인 참전용사들과 아시아인과 결혼한 백인들의 정착을 허용하지 않기도 했다. 그런 까닭에 미국은 반유대주의를 이유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독일을 탈출한 유대인들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헨리 포드는 악명 높은 반유대주의자였고, 그가 펴낸 반유대주의 책은 히틀러에게 많은 영감을 주기도 했다. 또한 이들은 전쟁 중에 독일과 독일이 점령한 곳의 유대인들의 운명에 거의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체계적인 집단학살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점점 더 명백해지고 있음에도 그랬다. 1945년 미국이 독일을 정복하고 독일이 항복한 바로 직후, 미국 정부 당국은 홀로코스트의 수많은 생존자들을 계속 강제수용소에 남겨두었으며, 생존자들은 그곳에 조직적으로 방치된 채 심지어 학대당하기까지 했다. 또 포드 독일 자회사는 노예노동을 통해 이윤을 남겼다. 외국인 강제노동자 수천 명은 일요일 12시간 휴식을 제외하고 매일 노예처럼 일하고도 임금은 아예 받지도 못했다.
유럽에서 발발한 전쟁은 미국 경제에 전례가 없는 기회의 창을 열어주었다. 이 수익성 높은 거래에서 이익을 얻을 기회에 몸을 던졌던 수많은 미국 기업들의 경영자와 소유주들이 히틀러에게, 민주주의보다 파시즘에 더 공감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1940년 6월에는 미국에서 나치나치 승전 축하 기념 파티를 열기도 했다. 기업의 이윤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과도 협력한다는 자본주의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정신은 미국 정치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전쟁 후 기업 출신들이 대거 정부 요직에 임용되었고, 사실상 미국은 ‘기업국가’가 되었다. 미국 정부의 주된 기능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기업가의 요구를 들어주고 그들의 이익을 증대시키는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는 곧 전쟁국가로 나아가는 길을 열었다. 이 시스템 덕분에 종전 후 미국의 산업은 다시 위기를 겪지 않았다. 꾸준히 전쟁을 해야 미국 경제가 유지되는 이 시스템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시대에 빛을 발했고, 미국이 영구 전쟁을 도모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물론 이 시스템의 주된 수혜자들은 워싱턴에 항상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기업들이었다. 전쟁 중에 그들은 펜타곤과 함께 대단히 수익성 높은 사업을 벌이는 법을 배웠고, 냉전 덕분에 더욱 엄청난 부를 쌓았다. 전쟁국가 시스템은 결국 일반 대중이 낸 세금으로 개인과 사기업들이 엄청난 수익을 올리게 해주는 계획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히틀러는 서방세계를 구원해줄 구세주?
1939년 히틀러는 뮌헨협정을 깨고 폴란드를 침공했고, 이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이때 영국과 프랑스는 히틀러의 영토 확장을 용인했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바로 히틀러가 소련을 물리칠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미국을 비롯한 영국과 프랑스는 나치 독일보다 소련을 더 위험한 적으로 느꼈고, 히틀러가 소련을 공격할 것을 부추긴 것이다. 소위 ‘유화 정책’이라 불리는 이 정책을 눈치챈 스탈린은 1939년 독소불가침조약을 맺는다. 침략을 방어할 귀중한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고, 동유럽의 방위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영국과 프랑스, 미국은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하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히틀러를 돕기 위해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 미국의 주류 언론도 모스크바를 본부로 하는 국제적 공산주의가 독일이나 이탈리아식 파시즘보다 자국에 훨씬 더 위험하다는 확신을 미국인들에게 심어주고자 열심히 노력했다. 개신교 정기 간행물뿐만 아니라 가톨릭에서도 “공산주의의 국가 전복”을 “국가의 큰 위협”으로 여겼고, 반대로 히틀러는 “볼셰비즘에서 구원해줄 구세주”로 찬양했다.
히틀러는 1940년 프랑스를 점령했고, 영국 정벌에 나선다. 이때부터 나치 독일은 상업적으로 미국의 ‘가장 귀찮은 경쟁자’가 되었다. 나치 독일은 프랑스와 북유럽, 동유럽 경제권을 장악했고, 그 이후로 독일은 더 이상 하나의 나라가 아니라, 미국의 수출 상품이 들어올 문을 닫아버린 나라일 뿐이었다. 그러자 미국은 영국으로 눈을 돌린다. 1941년 영국과 렌드리스(무기대여 할부)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이로써 영국은 미국의 최
책속으로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구한다. 왜 그렇게도 많은 미국의 유력자들이 전쟁 전에는 파시즘에 호의적이었을까? 미국이 나치 독일에 대항하여 민주주의를 지지하기로 결심하고 나서기까지 왜 그렇게 오래 걸렸던 걸까? 미국이 자의로 나치 독일과의 전쟁에 뛰어드는 대신 의도치 않게 끌려들어가는 데 일본의 미국령 하와이 공격이 필수적이었던 이유는 무엇일까?2 사실 독일이 미국에 전쟁을 선포했지 미국이 독일에 전쟁을 선포한 것도 아니었다. 미국의 정책 결정권자들은 1945년 이후 전후 시기에 독일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왜 모든 종류의 파시즘적 형식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은 걸까? 왜 오히려 반파시스트에 반대하기로 한 걸까? --- p.14
미국 사업가들은 히틀러의 두 가지 업적에 특히 깊은 감명을 받았다. 첫째, 1933년 초 정권을 잡자 그 즉시 사회주의 정당과 공산주의 정당을 없애버리고 노동조합을 해체한 것이다. 둘째는 이후 몇 년에 걸쳐 고속도로 건설을 비롯한 다양한 공공사업과 재무장 등, 정통적이지는 않지만 매우 효과적으로 보이는 방법으로 독일을 대공황의 사막에서 빠져나오게 했다는 점이다. --- p.40
미국의 파워엘리트는 일본과의 전쟁을 원했고, 자기 집안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중국과의 아편 거래로 부를 쌓은 루스벨트 대통령도 상당히 적극적으로 그 전쟁을 추진하고자 했다. 그러나 워싱턴은 고립주의로 명성이 자자한 의회와 전쟁을 별로 원하지 않는 미국 국민들에게 방어전 외에는 납득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전쟁을 시작하려는 모습을 보일 수가 없었다. --- p.111
미국의 드레스덴 공습 참여는 정말로 불필요했다. 영국 공군 혼자서도 드레스덴을 쓸어버릴 수 있는 능력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불필요한 미국의 가세로 인한 ‘과잉살상’ 효과는 영국과 미국 공군력의 치명적인 힘을 (소비에트에) 과시한다는 목적에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또한 처칠이 끔찍한 도살자라는 악명을 영국 혼자 지게 되기를 원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것은 ‘공범’이 필요한 ‘범죄’였다. --- p.205
미국의 지도층은 미국의 수출 상품뿐 아니라 그에 수반되는 개인의 자유, 민주주의, 자유기업, 그리고 자유무역의 기치를 든 미국의 세계관으로 세상을 범람시키기로 작정했다. 이것이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 그리고 당사자인 미국에서 자신들의 새로운 경제 질서를 장려하기 위해 이용된 이데올로기였다. 미국의 노골적인 자본주의 체제와 는 다른 사회적 경제적 ‘대변혁’을 꿈꾸던 유럽의 레지스탕스 전사들 같은 사람들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미국 지도층에게는 고려할 가치도 없는 일이었다. --- p.266
대신 그들은 원자폭탄으로 일본을 초토화시키기로 결정했다. 민간인 수십만 명의 목숨을 대가로 치른 이 치명적인 결정은 미국에 상당한 이점을 제공해주었다. 첫째, 그 폭탄으로 소련이 아시아의 전쟁에 뛰어들기 전에 도쿄로 하여금 항복을 선택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럼으로써 종전 후 (한국과 만주국 등) 일본이 점령하고 있던 영토나 극동 및 태평양 지역 전체에 대한 처우를 결정할 때 모스크바에게 발언권을 줄 필요가 없어졌다. 그리하여 미국은 그 지역의 완전한 패권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것은 워싱턴이 겉으로는 말할 수 없는 일본과 싸운 진짜 목적이었다. --- p.278
이런 의미에서 20세기의 마지막 10년은 미국의 세기였다.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사회주의적 ‘대안’이 소멸함으로써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자본주의가 더 이상 노동자 등 여러 피지배자들의 충성심에 대해 걱정하며 (오직 필요한 곳에만) 상대적으로 더 높은 임금을 주거나 사회복지를 확대하는 방법으로 충성심을 유지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사실이다. --- p.3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