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현 - 엄마의 노트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께 이 책을 바칩니다
어머니의 밥상
우리 집엔 큼지막한 둥근 상이 있었다. 둥근 상을 펴고 밥을 먹을 때면 꼭 우리 식구가 아닌 누군가도 같이 식사를 하곤 했다. 어느 날은 옆집 아저씨나 아줌마들, 다음 날엔 동네 이장님이시기도 했고 쌀이 온 날은 쌀 배달 아저씨랑 함께 밥을 먹고 연탄이 온 날엔 연탄 배달 아저씨랑 같이 밥을 먹었다.
요리 솜씨가 뚝딱 좋았던 엄마가 텃밭에 나가 겉절이할 야채를 뜯어 수돗물에 푸르륵 씻고 숭숭 무쳐서 양푼에 푸짐하게 올리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기가 막힌 밥상이 되었고 마당에서 장작불에 끓인 칼국수를 한 대접씩 더 먹기도 하고 반찬이 없는 날엔 김장 김치 머리를 뚝 잘라 금방 지은 밥에 척척 올려서 머리를 뒤로 젖히고 먹다 보면 한 가닥은 씹고 있고 반은 목에 걸린 김치를 켁켁 거리며 서로 머리가 부딪칠 듯 재밌고 맛있는 밥상이었다.
밥을 다 드시고 나면 어떤 아저씨는 꼭 우리 방에 가서 입을 푸우 푸우 불며 낮잠을 한숨씩 자고 가셨는데 학교에 다녀온 우리는 그게 싫어서 성냥불 심지로 그 아저씨들 팔목이나 발목에 불침을 놓고 문 뒤에 숨어서 가슴을 조이며 아저씨가 놀라 깨기를 기다렸는데 용케 쓰윽 문지르고 주무시기 일쑤였다.
인심 좋고 솜씨 좋으셨던 엄마가 수많은 날 오가는 이들에게 밥상을 차려드리며 쌓아 둔 공과 덕이 모여 우리 형제들이 오늘날 이만큼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어려운 시절에 힘드셨을 텐데 뚝딱뚝딱 음식을 만들어 오가는 사람들까지 대접했던 우리 엄마는 생각할수록 대단하고 유능한 요리사였다.
하재현
■ 2001년 건국대교육대학원석사과정 졸업
■ 전)여성인력개발센터 강사
■ 전)한국무용 강사
■ KBS1 시니어토크쇼 ‘황금연못’ 자문단 출연 중
※ <하재현 - 엄마의 노트>는 교보문고에서 판매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