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마가복음 5:25-34
1.
오늘 본문은 12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한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고 병을 고치는 내용입니다.
이 혈루증 여인은 한 마디로 기구한 인생을 살아가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녀의 상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구절이 25절입니다.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이 여자의 기구한 인생은 바로 혈루증이라는 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혈루증은 자궁에서 피가 흐르는 병을 말하는데
이 병은 우선 구약 율법에서는 매우 부정하게 보았습니다.
레위기 15장에서는 전체 33절에 걸쳐 이 유출병을 부정하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유출병 있는 여자가 만진 질그릇은 깨뜨려버리고 목기는 물로 깨끗이 씻을 것(레15:12)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마치 문둥병자 취급을 받는 이들은 공적인 예배에 참석할 수 없었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계속해서 피가 흐르니 냄새도 많이 났을 것이고 정상적인 성이나 임신이 불가능하여 여자로서의 생명도 끝났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괴로움과 고통을 그것도 12년 동안이나 겪었다고 하면 이 여자가 얼마나 심한 고통 속에서 살았을까? 상상이 가고도 남습니다.
이 여인은 스스로 저주받은 인생이라고 규정하며 사회에서 잊혀 진 존재요 버림받은 존재로 살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이 여인이 자신의 병을 그냥 두고만 보지는 않았습니다.
용하다고 하는 많은 의사를 찾아 자신의 병을 고치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병은 치료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중하여졌고 가진 것은 다 허비하고 말았습니다.
가진 것을 허비하였다는 말은 처음에는 재산을 꽤 갖고 있었다는 말인데요,
이제는 찾아갈 의사도 없거니와 의사에게 치료받기 위한 돈도 다 떨어지고 없어졌습니다.
이 여인에게 무슨 희망이 있고 무슨 미래가 있겠습니까?
깊은 절망의 바다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2.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원하지 않는 일들을 많이 겪게 됩니다.
나도 남들처럼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지만 나만 불행하게 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걸릴 확률이 1%도 되지 않은 희귀병에 내가 걸릴 수도 있고 내 가족이, 내 자녀가 걸릴 수도 있습니다.
나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나에게 일어나서 크게 당황할 때가 있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그렇게 많은 노력을 기우렸지만 해결되지 않아서 평생 무거운 짐으로 우리를 괴롭힐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이 여인의 운명이 다름 아닌 나의 운명이요 우리의 운명일 때가 종종 있습니다.
자신의 고질적인 약점으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나아갈 수 없어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살아가는 사람들이 오늘 본문의 여인이 아니겠습니까?
자신의 장애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 환영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각종 공과금을 낼 수 없고 최소한의 생활이 되지 않아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고 절망하고 있는 사람들은 또한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잘 산다고 다 잘사는 것이 아닌 줄 압니다.
우리가 건강하다고 다 건강한 것이 아니고요 우리가 넉넉하다고 다 넉넉한 것이 아니고 우리가 행복하다고 다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본문의 혈루병 여인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낙심하고 절망하고 고통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이러한 사람들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아 있는 무기력한 앉은뱅이를 향하여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내게 있는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합니다.
그럴 때 앉은뱅이가 일어나 걸으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 능력을 알리고 증거 하여 많은 불행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하는 삶입니다.
3.
깊은 절망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이 여인에게 한 가닥 희망의 소식이 전해집니다.
나사렛에서 온 예수라는 랍비가 각종 병자들을 고치고 귀신들린 자들을 온전하게 하고 메시아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놀라운 기적을 행한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입니다.
이 소식이 한 줄기 빛으로 비쳐졌지만 그렇다고 쉽게 예수에게 갈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습니다.
유출병은 사람들에게 가까이 갈 수 없는 제약이 있었습니다.
자신과 접촉하면 부정하게 되기 때문에 함부로 사람에게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에게도 마찬가지였고 오히려 더 조심스러웠습니다.
예수님에게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데 그 사람들의 장벽을 뚫고 예수께 나아가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예수께 나아간다고 해도 자신의 병을 이야기하면서 고쳐달라고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일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사람들에 의해 쫓겨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이 여인의 선택은 사람들 속으로 몰래 들어가서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자는 것으로 정해졌습니다.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고 생각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신명기22장 12절에 보면, “너희는 너희가 입는 겉옷의 네 귀에 술을 만들지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이 술을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로 방종치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민수기15:38-40)
이러한 말씀에 근거하여 유대인들은 겉옷의 옷자락에 술을 만들었고 이것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인이 잡은 예수님의 옷자락이 바로 이 술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이러한 독특한 문화는 하나님의 옷자락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
이사야 6장 1절에,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얼굴은 보지 못하지만 그의 옷자락을 언급함으로써 옷자락의 신성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스가랴 8장에도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고 열국 백성들이 간청하는 예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8:23절)
이런 말씀을 통하여 옷자락에서 능력이 나온다는 것이 당시 사람들의 믿음이었는데 이것의 가장 결정적인 말씀이 말라기 4장 2절의 말씀입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여기에서 광선으로 번역된 말이 히브리어로는 ‘크나프’ 즉 옷자락이라는 말입니다.
이러한 말씀들을 근거로 위대한 랍비와 메시야의 옷자락에서는 치료하는 광선, 능력이 나온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병자들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만 대어도 모든 병이 나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혈루병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았다는 말은 예수님이 메시아 혹은 위대한 랍비라는 믿음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이 가리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34절)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4.
이 여인은 내가 예수님의 옷자락만 잡아도 내 병이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 분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의사들이 고칠 수 없는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을 때 혈루병에서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는 것은 믿음으로 나아갈 때입니다.
히브리서 기자의 말씀처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이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합니다.(히11장)
①이 여인의 믿음은 세상의 실망을 극복한 믿음이었습니다.
여인은 혈루병을 고치기 위해 12년 동안 유명하다는 의사는 다 찾아다녔지만 그러나 병을 고칠 수는 없었습니다.
의사들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다는 말은 이 여인의 병을 이용하여 돈만 갈취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의사들에게 많은 실망을 경험한 여인은 의사들이 못 고친 병을 예수라는 랍비가 고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이 실망을 극복하고 예수님께 나아가 믿음으로 병을 고침 받았습니다.
여러분, 세상이 우리를 실망시켜도 예수님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 줄 믿습니다.
세상이 고칠 수 없는 병을 하나님은 고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세상이 할 수 없다고 하나님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이 할 수 없는 것을 얼마든지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의사가 고치지 못한 병도 능치 못할 일이 전혀 없으신 하나님은 고치실 수 있습니다.
세상의 실망을 넘어서서 주님께 나아가는 여러분의 믿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②이 여인은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습니다.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댄 것은 믿음의 발로에서 나온 의도적인 행위였습니다.
그저 어떻게 하다 보니까 손을 대게 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에게서 능력이 나간 것을 아시고 주위를 둘러보며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묻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고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여서 서로 밀고 밀리다보면 주님의 옷에 손을 대는 경우가 많지 않겠습니까?
왜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을 하십니까? 한 마디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한 번 물으십니다.
그러자 자신의 일을 감출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여자가 나와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똑같이 손을 대었어도 믿음으로 손을 댄 자가 있고 그저 어떻게 하다가 밀려서 손을 댄 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똑같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손을 댄 자는 구원을 받았지만 어떻게 하다가 손을 댄 자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겉으로 볼 때는 똑같이 손을 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손을 대어야 구원을 받고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똑같이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구하고 의심하지 않는 자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똑같이 예배드리는 것 같아도 믿음으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릴 때 주님이 기쁘게 받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형식적이고 습관적이고 의례적인 믿음 없는 모습은 주님이 기뻐하지 않으시고 은혜도 베풀어주지 않습니다.
이 여인과 같이 믿음으로, 내가 예수님의 옷자락만 잡아도 능히 내 병이 나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주님의 옷자락을 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5.
혈루병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옷자락을 잡았을 때 놀라운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혈루 근원이 마르고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댄 순간 그분의 몸에서 흘러나온 치유의 능력이 그 습하고 역겨웠던 혈루 근원을 끊어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 주님의 능력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주님의 능력은 수많은 의사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십니다.
세상의 어떤 과학과 기술문명이 할 수 없는 일을 우리 하나님은 얼마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어령 박사가 주님께 돌아왔고 수많은 과학자들이 하나님을 더 잘 섬기고 있습니다.
의사들은 이것은 하나님이 고쳤다는 말을 흔히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왜 숨기려고 했던 여인을 사람들에게 드러내게 하셨을까요?
34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그 여인이 병이 치유 받았음을 선포하시고 그 일을 통하여 정상적인 삶으로 살아가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여인은 지금까지 모든 일을 비밀스럽게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의 병이나 정체를 드러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제 그 여인의 병을 고쳐주시고 그를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세워주셨습니다.
이제는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있는 혈루병과 같은 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여러분을 힘들게 하고 낙심하게 하고 절망하게 하고 주눅들게 만들고 있습니까?
그 문제를 해결 받지 못하면서 실망하며 낙심하며 살고 있습니까?
이제 혈루병 여인처럼 예수님을 향하여 믿음의 손을 내미시기 바랍니다.
그 분의 옷자락을 믿음으로 잡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기에 구원을 받지 못하고 문제를 해결 받지 못합니다.
그 분 앞에 우리의 진심을 토하며 간절하게 기도의 손을 내 밀 때 주님은 ‘안심하라 평안히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네 병에서, 네 문제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말씀하십니다.
여인과 같은 믿음으로 근심과 문제와 질병에서 놓임 받고 평안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4.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