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주기가 지났다. 여전한 문제들 속에 대통령은 외유를 떠났고, '진실을 인양하라'는 거리의 외침은 사회의 총체적 숙제로 남았다. 하지만 어떤 언론들에겐 남은 문제가 ‘태극기 훼손’ 논란 밖에 없어 보인다.
시작은 조선일보였다. 조선일보는 20일자 1면에 <태극기 불태운 시위대>라는 기사와 함께 큼지막한 사진을 실었다. 채널A의 화면을 캡처한 이례적인 사진이었는데, 이에 대해 조선일보는 '18일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세월호 1주년 시위 참가자 중 한 명이 태극기에 불을 붙여 들고 있다. 통신사 뉴스1에서 촬영한 사진을 채널A가 19일 오후 뉴스 및 저녁 종합뉴스에서 방송했고, 이를 캡처했다'고 설명했다. 자사가 직접 찍은 사진도 아니고 경쟁사 매체의 방송을 캡처해서 쓴 편집이었다. 조선일보는 그만큼 이 사진을 간절히 쓰고 싶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국면 전환이다. 세월호 추모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을 반국가 폭력시위자로 가두려는 의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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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20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
그 후, 경찰은 ‘태극기 훼손’을 부각시키며 “끝까지 추적해서 처벌하겠다”며 엄중 처벌 방침을 천명했다. 이후 조선일보의 논조를 보면, 이 사진을 기점으로 더이상 '거리의 추모'는 그만두고 세월호에 대한 추모 분위기를 흐리려는 의도가 역력해보인다. 조선일보의 노림수는 맞아 떨어졌다. 지상파 방송들이 조선일보가 시작한 태극기 훼손 선동에 동참했다.
MBC 뉴스, 태극기 불태우는 장면 ‘자극’ 보도
‘태극기 훼손’을 가장 적극적으로 부각시킨 지상파 방송뉴스는 MBC <뉴스데스크>였다. MBC는 20일 저녁 13번째 <태극기 불태운 시위 참가자 추적> 리포트를 배치했다. 앵커 뒤에 걸리는 배경화면에 태극기가 불 태워지는 사진을 배치했다. MBC 배현진 앵커의 첫 마디는 “세월호 추모 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태극기를 불태워서 논란이 일고 있다”며 “검찰과 경찰이 신원 확인에 나섰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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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20일 MBC '뉴스데스크' |
MBC는 “지난 토요일, 서울 광화문 광장은 세월호 1주기 추모집회로 아수라장이 됐다”며 “유가족을 만나겠다는 집회 참가자들과 이를 막아서는 경찰의 충돌이 커져가는 사이, 20대로 추정되는 흰색 점퍼의 뿔테 안경을 쓴 한 집회 참가자가 갑자기 태극기를 꺼내 불을 붙였다”고 전했다. 이어 “<형법> 105조에 따르면 ‘국가를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를 손상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게’ 돼 있다”며 “경찰은 즉각 이 참가자의 신원 파악에 나섰고, 검찰은 태극기에 불을 붙인 것이 ‘국가를 모욕할 목적'에 해당되는지 법리 검토에 나섰다”고 덧붙였다.
MBC는 황교안 법무장관의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고, 검찰 수사기관과 철저하게 수사하도록 지도 감독하겠습니다”라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질의내용을 그대로 전하며 사태에 엄중함을 보탰다. 그러곤 “뿐만 아니라, 일부 집회 참가자들이 차벽으로 세운 경찰 버스와 보호 장구를 빼앗아 파손시킨 행위도 논란이 되고 있다”며 시위대의 ‘폭력’을 크게 부각시켰다.
MBC는 “집회를 주도한 시민단체들은 경찰이 물대포와 캡사이신까지 동원해 시민들에 뿌려댄 것은 명백한 과잉진압이란 입장”이라며 세월호 유가족 법률대리인 박주민 변호사의 “애초에 요건 자체가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차벽을 설치한 것입니다. 당연히 위헌입니다”라는 멘트를 추가했으나 기계적 중립을 위해 주장을 실어준 것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면피성 배치였다. ‘차벽 설치에 대한 요건’, ‘위헌’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해석은 전혀 없었다.
MBC는 곧바로 “경찰은 지난 주말 집회현장에서 100명을 연행해 94명을 입건하고 불법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5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또 오는 주말 역시 대규모 집회가 예정돼 있고 더 격렬한 충돌이 우려되는 만큼 불법에 대한 엄정 대응방침을 거듭 밝혔다”고 덧붙였다.
KBS와 SBS도 ‘태극기 훼손’ 부각하긴 마찬가지
SBS <8뉴스>의 <폭력으로 얼룩진 시위..태극기 소각까지> 리포트는 “태극기까지 소각한 지난 주말 세월호 1주기 추모 집회를 둘러싸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로 시작됐다. SBS는 “지난 토요일 밤 서울 시내 한복판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며 “경찰 추산 1만여 명의 시위대와 1만 3천여 명의 경찰이 밤 11시까지 무려 4시간 넘게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경찰 74명과 수십 명의 집회 참가자들이 다쳤다”고 보도했다. 경찰 ‘74명’과 집회 참가자 ‘수십 명’이 시청자들에게 주는 의미는 분명하다.
SBS는 “경찰관 폭행, 경찰 버스 파손에 이어 시위대가 태극기를 불태우는 상황까지 벌어진 주말 시위 상황은 묵과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라고 덧붙였다. SBS는 “세월호 가족대책위 측은 경찰이 추모조차 할 수 없도록 물대포와 캡사이신 등을 동원해 과잉 대응했다고 주장했다”며 “이미 위헌 결정이 내려진 차벽을 이용해 시위대의 행진을 막고 세월호 유가족들을 사실상 가둔 것이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것”이라며 기계적 중립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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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8뉴스'와 KBS '뉴스9' 화면 |
KBS <뉴스9> 보도 역시 큰 틀에서는 다르지 않았다. <‘태극기 훼손’ 수사…“무리한 진압”> 리포트를 통해 KBS는 “지난 주말 열린 세월호 참사 추모 집회에서 참가자 백 명이 경찰에 연행됐다”며 “경찰은 이 중 불법행위 증거가 확보된 사람들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태극기를 훼손한 참가자 추적에 나섰다. 집회 주최 측은 무리한 진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태극기 훼손’이라는 문구는 앵커멘트부터 등장했다.
KBS는 “경찰은 또 집회 과정에서 한 참가자가 태극기를 불태운 것을 확인하고, 신원 추적에 나섰다”며 “한 시민단체는 세월호 추모식에서 일부 참가자들이 태극기를 태우고 대통령을 협박했다며, 국기모독죄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발장을 제출했다”고 전했다. KBS는 “시위대가 경찰 버스 위에 올라가고 도로를 점거한 채 행진을 시도하자, 경찰은 살수차로 대응한다”고 설명했다. ‘경찰의 살수차’가 등장한 것은 시위대의 행위에 대한 대응차원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도한 박재진 경찰청 대변인의 “많은 시민들에게 교통 불편을 초래하고 다수의 부상자를 발생케 하는 등 불법 폭력시위로 변질된데 대해 엄중 대응할 방침”이라는 멘트를 그대로 포함시켰다.
KBS는 “유가족을 포함한 집회 주최 측은 기자회견을 열어 경찰이 무리하게 진압했다고 주장했다. 또,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유가족을 포함해 백여 명이 다쳤다고 밝혔다”고 덧붙였다. 이 또한 기계적 중립 차원으로 보는 게 맞다. KBS는 세월호 유가족 법률대리인 박주민 변호사의 “헌화, 추모(는) 집시법의 적용 대상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을 막기 위해서 차벽을 설치했다고 하는 것은, 애초에 요건 자체가 충족되지 않은 상태”라는 멘트를 포함시켰다. 그렇지만 ‘차벽’에 대한 위헌성 여부에 대한 자체적인 언급은 없었다.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의 의미는 ‘태극기 훼손’ 논란으로 변질되고 있다. 조선일보가 선창을 하니, 지상파 3사가 후창을 하는 모양새다. 유가족들의 요구이자, 참사 1주기를 둘러싼 본질적 논쟁이라고 할 수 있는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폐기’와 ‘세월호 원형 즉각 인양(유실방지 대책)’은 더이상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다.
한 개인의 일탈적 행위라고 할 수 있는 태극기 훼손 행위가 세월호 추모의 의미 전체를 퇴색시키고 참가자들을 반국가 집단을로 내몰 문제인 것일까. 그렇게 범죄적 행위에 민감한 언론이 왜 이미 위헌판결이 난 ‘차벽’과 2008년 촛불 당시부터 위험성 논란이 일고 있는 ‘물대포’의 문제는 제대로 보도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 조선일보와 지상파 뉴스의 선동에 새누리당 이군현 사무총장은 “태극기를 불 태우는 것은 국모를 불태운 것과 똑같다”는 비유로 화답했다. 이게 정녕 민주공화국에서 적절한 표현인가.
집권 여당의 사무총장이 사뭇 비장한 어투로 문제를 물고 늘어지기 시작한 상황에서 오늘 자 뉴스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다. 국가가 때론 언론이 '애국'을 강조하는 것을 그 자체로 나무랄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만 앞뒤를 따져보자. 세월호 참사는 정부가 국민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 벌어진 사건이자 참극이다. 그 반애국적 상황에서 언론은 무얼 했는가, 정부여당의 핵심 관계자가 ‘애국’을 강요할 자격이 있는지 말이다.
‘세월호 참사 범국민대회’에서 태극기를 불태워 논란이 된 20대 남성이 입을 열었다. 이 남성은 20일 인터넷 매체 슬로우뉴스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무자비한 공권력에 대한 울분을 참지 못해 순국선열이 피로써 지킨 태극기를 공권력을 남용하는 그들은 가질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고, 그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자신을 20대 초반이라고 밝인 이 남성은 “집회에 참석했다가 경찰이 공권력을 이용해서 (시민들이)이동하는 것 조차 막고 최루가스, 마구잡이 연행하는 상황이 너무 답답했고 화가났다”며 “경찰차에 A4로 뽑은 태극기가 붙어있었고 현장에서 주웠다”고 설명했다.
2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 세월호희생자 유가족이 ‘경찰의 세월호 1주기 추모제 탄압 규탄과 시민 피해상황 발표 긴급 기자회견’도중 경찰을 규탄하는 손피켓을 들고 서 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이 남성은 “국가나 국기를 모욕할 거창한 의도는 전혀 없었다”며 “태극기가 순국선열들이 죽음으로 지킨 가치, 상징이라는 것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며 “내 취지는 그렇게 공권력을 남용하는 일부 권력자들은 순국선열이 피로써 지킨 태극기를 가질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고, 그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나 한 명의 행동으로 유가족들에게 심려를 끼쳐서 죄송하다”면서도 “적어도 세월호 집회에 한정해서 말하면, 경찰은 태극기와 함께 할 자격이 없다.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앞서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추모집회가 지난 16일부터 17일, 18일 사흘연속 열렸다.
이 남성은 18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범국민대회’에서 유족과 시위 참가자들이
경찰차벽에 막혀 대치하던 중 태극기를 불태워 논란이 됐다.
이후 보수언론들을 중심으로 ‘태극기도 불태우는 시위대’라는 제목의 기사와 사설 등이 쏟아져나오면서 세월호 참사 추모집회를 불법폭력집회로 규정하고 나섰으며, 경찰은 해당 남성을 국기모독죄 혐의로 처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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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무엇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 지 이해 할 거 같습니다..그런데 한가지 물어 보고 싶은 것은..이 기사를 쓴 기자는 양심적인 기자고 나머지 이것(태극기 태운 기사)을 보도 한 기자들은 비양삼적일까요?..그리고 피흘려 지킨 태극기를 정부가 가질 자격이 없어서 태웠다고 하지만..그 청년은 과연 가질 자격이 있었나요?..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누가 잘하고 잘못하고를 떠나서 인정을 받을려면 중용을 지켜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만 옳고 자기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은 다 틀렸다고 이야기 하는거..그게 바로 큰 문제점입니다.
제가 이글을 올린건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려고 올린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꼭 이글이 옳다고 생각해서 올린건 더더욱 절대로 아닙니다
사노라님께서 올린 조선일보의 기사도 있지만 이런 다른기사도 있다는걸 알아야
진정한 중용의 판단을 할때 더 유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올렸습니다
@샤롯테 그래요..이쯤에서 그만 해야 할 거 같습니다..서로의 생각이 다르니....
경찰국가로 변한지 이미 오래...
다양한 형태의 불만 표현인데 아직도 구태의연한 색깔논쟁과 무감각해지는 공권력 남용이 안타깝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