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처럼 분주한 아침으로 아이들을 등교시킨 뒤 일터로 향한다.
차창밖으로 스치듯 마주했던 풍경이
마치 꿈인듯 싶게 금방 도착한 곳에는
햇살에 견줄 휘황한 불빛이 지하를 밝히고 있다.
내방객 의 많고 적음이나 판매실적에 상관없이
다리가 뭉근히 저려올 즈음이면 어느덧 나의 근무도 끝나간다.
지상으로 나와 큰 호흡부터 해본다.
빛바랜 해넘이로 차츰 하루를 접고있는 어둑한 공기를 가르며 귀가를 서두른다.
'또 하루가 가는구나'
늘 반복되는 익숙한 나날에서 한번쯤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아득해 보이던 바램이 현실로 다가와 온전한 하루를 선물받으니
또다른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어디로 갈까, 무엇을 할까, 그래 일단 집을 나서보자'
평소이면 한창 분주할 시간에
갑작스레 생긴 여유가 내자리가 아닌 낯설음 처럼이나
유월의 햇살도 이미 한여름 뙤약볕을 닮아있다.
이제쯤이면
봄을 지나와 풋풋하고 싱그러운 초여름을 기대했는데...
요즘들어 뚜렷하지 않은 계절의 모호함이나
나의 더딘 계절감각을 지적하지 않더라도 순간 당황스럽다.
문득 주변을 둘러볼 여유없이 이제에이른 자신에
씁슬한 미소를 지어본다.
때마침, 일주일에 한번씩 열리는 장날이라
공터에는 울긋불긋 휘장두른 천막이 세워지고
여러가지 물건들이 진열되어 오가는 사람들과 섞여 분주하다.
딱히 목적한 행선지도 없거니와 구입하려는 물품이 있는것도 아니어서
무심히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지나치다가 화초판매장 에서 한동안 머물렀나보다.
"찾으시는 꽃이 있으세요?"
"그런건 아니고...구경좀 하다 갈께요."
크고 작은 화분에 심어져 단장을 끝내고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는 화초보다,
까만 비닐 용기에 뭉턱 담겨진 꽃무더기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이 꽃이름이 한련화 맞죠?"
쪼그리고 앉아 바라보자니 잊고있던 그리움들이 두서없이 다가와 눈앞에 펼쳐진다.
노란색 페인트칠로 흠뻑 옷입은 대문을 들어서면
왼쪽으로는 야트막한 평상이 놓여있고, 오른쪽으로는 장독대가 한켠 자리했었어.
그 주변을 호위하듯 푸르른 텃밭에는
금방 뜯어와 풍성한 식탁을 만들어주던 여러가지 푸성귀들이 심어져
옹기종기 모여있는 항아리속 내용물과 함께 맛있게 익어갔었지.
길다란 판자쪽을 덧대어 안마당과 텃밭의 경계를 긋던 작은 울타리에는
저 한련화가 색색으로 무리지어 넘나들고
돌절구안의 돌나물꽃, 분꽃, 맨드라미,이름모를 꽃들이 자태를 뽐내며
이웃들에게 꽃집으로 불리워지는 이유에 보탬이 되었었는데....
손바닥에 한웅큼 물을 담아 한련화 이파리에 뿌려보면 물젖은 흔적없이 태연하다.
애써 적셔보려고 연신 물세례에도 요리조리 몽글거리다가
또르륵 굴러버리는 뽀송한 이파리가 신기해서
자꾸만 반복했던 기억이 아직도 영롱한 물방울로 맺혀져있다.
대부분 시작이 그러하듯,
모든이 서툴고 어설픔에, 부족한 현실까지 보태어져
살림집을 구하느라 전전긍긍 하던 신혼 당시
선뜻 삯월세방을 내주셨던 따뜻한 분들이 사시던 주인집 풍경이다.
"어쩌나 깔끔한 새댁이 살기엔 방이 너무나 누추한데..."
이불장과 옷장을 빼면 얼마안되는 살림살이라
먼저 살던곳에서 리어카에 실어와
아무래도 좋으니 무작정 방을 달라고 떼쓰던 내게
주인집 아주머니는 오히려 미안해하시며 한동안 끄덕임을 망설이셨다.
물이 안나오던 턱높은 부엌을 넘나들며 마당에서 물을 길어다먹고
응달진 구석방에 피어나던 곰팡이 꽃과 함께 내내 살았지만
철마다 모습을 달리하던 안마당 풍경과 나무울타리 담이 너무 좋아
생활의 불편함은 묻혔다.
쪽마루에 무심히 걸터앉아 바라다본 마당풍경은
얼마나 정겹고 예쁜 모습이었던지,
일부러 나들이를 가지않아도 집이 천국이고 별천지였다.
더구나 인심 좋으신 주인 내외분 덕분에
해마다 큰아이 생일잔치 와
세살터울 동생의 백일잔치 돐잔치 때는 안방과 부엌을 흔쾌히 내어주시고,
당신네 손주인양 진정으로 축하해주셨다.
만나는 이웃들에서 더러는 우리가 정말 한가족인줄 알았다고 부러워했다.
그렇게 3년여의 세월을 함께 살다가 떠나오던날.
그분들은 헤어지는 아쉬움과 작으나마 내집을 장만해 이사한다는 대견함으로
그렁한 눈물그득 뒤로 쓸쓸한 미소를 지으셨다
섭섭함을 달래려 떠나기 며칠전부터
송별회니 전야제니 갖가지 이유를 붙여 축하자리를 만들어 이웃에 자랑을 하셨었다.
"우리 저 방에 살던 새댁인데 인자 번듯한 새집사서 이사가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우..."
함박웃음 지으시던 모습이 선연하여 금방 눈가가 촉촉해져온다.
그후,
가끔씩 안부전화로 때론 명절이나 생신때 찾아뵈며 이어지던 인연이
어느때인가부터 멈췄다.
개발이 시작되어 정든곳을 떠나야한다는 전화를받고 한번 찾아뵌다 한것이
한참 후에나 가보니 이미 집은 사라진 뒤였다.
옆에 있던 구멍가게도 주인이 바뀌었고 집전화번호마저 바뀌어
아직까지 소식을 모른다.
'주인 할머니 성씨가 특이해서 조회를 해보면 금방 알수있을거야.
다시 한번 시간넉넉히 찾아가 이웃들에 수소문하면 모를라고..아무렴 찾을수 있을거야'
그렇게 세월이 흘러 이제에 이르고보니,
그동안 고난한 삶을 핑계로, 게으름으로
찾아뵙기를 미루기만 했던 자신이 한없이 못나고 후회스럽다.
생전 의 친정엄마는
당신딸을 친자식처럼 아껴주시며 친절히 대해주셨던
주인집 내외분 의 고마움을 노래하셨다.
아프신 와중에도 줄곧 그분들 의 안부를 물으시며
자주 찾아뵙고 절대 고마우신 은혜를 잊지말라 하셨다.
며칠뒤면 엄마 의 두번째 기일이다.
난 다른 무엇보다 엄마와 의 약속을 지키려 벌떡 일어나 정거장으로 발길을 옮긴다.
봄이면 개나리꽃 담장이 대문과 어우러져 민들레꽃 땅으로
온통 노란색 지천이던 정든집 생각으로 사무치다가
다시또 흐르는 세월따라 언제 그랬냐는듯 슬그머니 잊혀지고는 했다.
문득문득 생각만 의 그리움이다가
오늘 난,
한련화꽃 모임에 화들짝 마음이 바빠진다.
초여름이면,
유월이 오면,
텃밭의 채소들과 갖가지 꽃으로 만발하던
마당 풍경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어본다.
그분들은 어떤 기억으로 나를-우리를 기억하실까
아마도 모른척 찾지않는 무심함에 슬퍼하고 계실지도 몰라.
어쩌면 그분들 의 소박하고 진정한 마음보다
주변 풍광으로 그시절을 그리워 하고있는
지금 의 내모습에
많이 서운해 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멈칫 부끄러워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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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다는 핑계로 산행도..책읽기도..글쓰기도 게으름으로 일관 ㅠ.ㅠ
엊그제 귀빠진날 막둥이가 끓여준 미역국을 먹으면서
늘 챙겨주시던 엄마생각.. 옛날 생각...에 문득, 이전에 썼던 글 올려봅니다.
첫댓글 가슴이 짜안![~](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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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네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옛 기억들도 새록새록 떠올리게 해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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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치고![~](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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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구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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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졌어요.
시나브로님의 글이 마음을 뭉클하게 하고
어릴적 앞마당의 풍경도 보이는듯
감동 마이마이
마음이 말캉말캉
시나브로님이 저와는 또다른 감성의소유자란건 알았지만 글솜씨가 이정도일줄이야.....너무 이쁜글 잘읽고갑니다.....오늘따라 내 댓글다는솜씨가 더 허접해보이네....ㅠㅠㅠ
어디 글쓰기 뿐이겠습니까... 읽기에도 게을러진 것이 더 이상 삶의 열정이 느껴지지 않는 사람도 있답니다.
스스로 찾을 생각은 않고 인디언 썸머같은 열정이 찾아오길 기다리는...
시나리오 한편을 읽는 기분입니다. 시나브로님 발걸음 옮기는 모습이 다 보이네요.
엊그제 생신(귀빠진날)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무언가 돌이켜볼 시간조차 없는 요즘 이지만 시나브로님의 글을 읽으면서 잠시 어린시절로 돌아가 보았습니다.
흙냄새도 맡아 보았고.... 한련화꽃도 보았고.....널브러진 장독대도 그려보았구.....
잔잔하게 가슴에 와닿는 글임다. 다시 한번 삶에 묶여 사는 자신을 되돌아 보는 시간![~](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늘 고마움을 잊지않고 사는 사람이 될게여![~](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오늘도 또 한번![~](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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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브로님![~](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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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마음에 물을 주러 와서 읽고 갑니다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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