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스 대격돌' MLB 서울시리즈 프리뷰 <2편>
조회수 9,0362024. 3. 20. 08:11 수정
다저스와 샌디에이고는 서울시리즈에 진심이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처음 열리는 무대인만큼 경기 기록이 더 각인되기 때문이다. 흑역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무리한 운영은 피하겠지만, 전력을 다해 경기에 임할 것이다.
고척돔의 다르빗슈 (샌디에이고 SNS)
양 팀이 내세운 선발 투수에서 시리즈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다저스는 타일러 글래스나우와 야마모토 요시노부를 발표했고, 샌디에이고도 다르빗슈 유와 조 머스그로브를 예고했다. 올해 각 팀의 상위 선발을 맡아줘야 하는 투수들이다. 만약, 시기가 10월 포스트시즌이었어도 1,2차전에 나올 투수들이 서울시리즈를 장식한다.
절대 질 수 없는, 두 팀의 자존심을 건 진검승부다. 지난 스토브리그를 통해 몸집을 키운 다저스는 '우승후보 0순위'다. 보는 이들의 눈높이가 더 높아진 상황에서 정규시즌 첫 시리즈부터 강팀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전력상 열세인 샌디에이고는 분위기를 가져와야 한다. 그러면 첫 맞대결에서 기선제압을 해야 승산이 있다. 마이크 실트 감독은 다르빗슈와 머스그로브에 대해 "우리 선발진의 정신적 지주"라고 말하면서 "둘보다 나은 투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낼 수 있는 최고의 카드 두 장을 꺼내든 것이다.
이번 시리즈 두 팀 선발진이 대비되는 점은 '신구 조합'이다.
글래스나우와 야마모토는 올해 새롭게 뭉친 원투펀치다. 다저스에서 첫 시즌으로, 다저스와 어떤 궁합을 보일지 지켜봐야 한다. 이와 달리 다르빗슈와 머스그로브는 나란히 샌디에이고 4년차를 맞이한다. 다르빗슈는 2021년과 2022년 샌디에이고 개막전 선발이었다. 개막전 선발이 낯선 임무가 아니다. 신관이 명관일지, 구관이 명관일지 확인할 수 있다.
1차전 선발 키워드 '구위 vs 관록'
다저스는 글래스나우가 1선발이 되어주길 바란다. 그래서, 트레이드 직후 5년 1억3650만 달러 연장 계약을 곧바로 안겨줬다. 메마른 선발 시장에서 이만한 투수를 구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것이다.
타일러 글래스나우 (다저스 SNS)
글래스나우의 매력은 폭발적인 구위다. 컨디션이 살짝 떨어져도 힘으로 밀어붙여 타자를 제압할 수 있다. 구속 혁명이 일어난 메이저리그에서, 구속으로 최상위권에 위치한 투수가 글래스나우다. 지난 3년 통산 포심 패스트볼(이상 포심) 평균 구속은 96.7마일. 같은 기간 1500구 이상 던진 선발 투수 중 5번째로 빨랐다.
2021-23년 선발 포심 평균 구속
98.6마일 - 헌터 그린
98.0마일 - 샌디 알칸타라
97.6마일 - 스펜서 스트라이더
97.3마일 - 게릿 콜
96.7마일 - 타일러 글래스나우
메이저리그는 공만 빨라서는 최고가 될 수 없다. 글래스나우는 포심을 뒷받침하는 슬라이더와 커브도 빼어나다. 특히, 지난해 서드피치로 활용된 커브는 피안타율이 1할도 채 되지 않았다(105타수 10안타 0.095). 커브 헛스윙률 52.2%는 산술적으로 타자들이 두 번 중 한 번은 헛스윙을 했다는 뜻이다. 한편, 글래스나우보다 커브 헛스윙률이 높은 투수는 딱 한 명이 있었다. 지난해 사이영상 투수 블레이크 스넬이었다(커브 헛스윙률 56.3%).
다저스로 오기 전 글래스나우의 소속팀은 탬파베이였다. 탬파베이는 돔구장 트로피카나필드를 홈으로 사용한다. 돔구장을 홈으로 썼던 측면에서 고척돔의 어색함이 비교적 덜할 수 있다. 실제로 글래스나우도 "트로피카나필드와 비슷해서 편안하다"고 밝혔다.
다저스가 글래스나우에 대해 가장 우려하는 건 내구성이다. 2016년 메이저리그 첫 선을 보인 이후 시즌 규정이닝을 충족한 적이 한 번도 없다. 한 시즌 최다이닝이 지난해 던진 120이닝이다. 본인은 건강을 자신하지만, 각별한 관리가 필요하다.
이러한 투수가 서울시리즈 개막전에 맞춰 빨리 몸상태를 끌어올린 점은 의식해야 한다. 다음 등판을 위한 투구 수 관리가 이뤄질 수 있다. 그러면 샌디에이고 타선은 경기 초반 투구 수를 늘리는 식으로 가야 한다. 참고로, 샌디에이고는 지난해 타석 당 볼넷률이 가장 높은 팀이었다(10.6%). 타석 당 지켜보는 공의 개수도 세 번째로 많았다(3.98개).
당초 샌디에이고는 1차전 머스그로브, 2차전 다르빗슈로 예상됐다. 하지만 머스그로브가 몸상태를 끌어올리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실트 감독은 반드시 잡아야 하는 경기인만큼 더 완성된 투수를 내보내기로 결정했다.
다르빗슈 유 (샌디에이고 SNS)
다르빗슈의 강점은 다양한 볼배합이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은 구종을 구사한다. 다르빗슈가 안 던지는 구종은 있을지언정 못 던지는 구종은 없다. 다르빗슈의 남다른 구종 습득력을 본 동료들은 그를 '피칭 사이언티스트'라고 불렀다.
2023 다르빗슈 구종 구사율
싱커 : 18.6%
스위퍼 : 18.5%
슬라이더 : 17.5%
포심 : 16.6%
커터 : 9.1%
스플리터 : 7.8%
너클커브 : 6.6%
커브 : 5.1%
체인지업 : 0.1%
공식적으로 찍히는 구종은 9개다. 그러나, 다르빗슈는 하나의 구종을 여러 형태로 던진다. 세분화하면 실질적인 구종은 더 늘어난다. 이 구종들을 앞세워 타자들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고, 그로 인한 수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이 다르빗슈의 피칭 스타일이다. 여기에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투수이기 때문에 특정 구종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빠르게 다음 계획으로 선회할 수 있다. 충격을 최소화하는 모습은 다르빗슈의 관록이다.
다르빗슈는 다저스에 대해 잘 알고 있다. 2021년 이후 다저스와 많이 맞붙은 선발 중 한 명이다(메릴 켈리 13경기, 블레이크 스넬 12경기, 다르빗슈 11경기). 다저스와의 통산 평균자책점도 2.38로 상당히 뛰어났다(75.2이닝 20자책).
주축 타자들도 잘 돌려세웠다. 프레디 프리먼을 상대로 피안타율이 0.286(28타수 8안타)였을 뿐, 무키 베츠(0.194)와 윌 스미스(0.190) 맥스 먼시(0.179) 등 다른 중심 타자들은 상대 피안타율이 1할대에 불과했다. 다저스에 맞서는 지침서가 있었다.
문제는 다르빗슈가 만나지 못한 상대가 다저스로 왔다는 점이다. 오타니 쇼헤이다. 닛폰햄의 직속 후배인 오타니는 평소 다르빗슈에 대한 동경심을 자주 드러냈다. 닛폰햄 시절에도 다르빗슈의 등번호 11번을 물려받았다. 지금껏 맞대결을 펼친 적이 없는 두 선수가, 서울시리즈에서 처음 승부를 겨룬다. 다르빗슈가 어떤 전략으로 나올지 벌써 궁금하다.
2차전 선발 키워드 '패기 vs 열정'
다저스가 2차전 선발로 낙점한 야마모토는 올해 메이저리그에 데뷔한다. 메이저리그 진출 전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작년 WBC 대회가 사실상 야마모토의 쇼케이스였다. 그 대회에서 야마모토가 던진 공들의 정보를 수집해 메이저리그 현역 투수들과 비교하기도 했다.
야마모토 요시노부 (다저스 SNS)
야마모토는 자타공인 일본리그 최고의 투수다. 다승과 평균자책점, 탈삼진에 승률까지 더한 투수 4관왕을 3년 연속 차지했고, 사와무라상도 지난 3년 동안 모두 휩쓸었다. 3년 연속 퍼시픽리그 MVP도 독식한 야마모토는 일본에서 더 이상 이룰 목표가 없었다.
야마모토 NPB 성적 변화
21 : 18승5패 1.39 (193.2이닝 206삼진)
22 : 15승5패 1.68 (193.0이닝 205삼진)
23 : 16승6패 1.21 (164.0이닝 169삼진)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일본에서 넘어오는 초대형 투수를 잡으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이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한 팀이 다저스였다. 다저스는 야마모토에게 12년 3억2500만 달러 계약을 보장했다. 메이저리그 투수 역대 최대 규모 계약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 공 하나 던지지 않은 투수가 메이저리그 투수 계약 신기록을 세운 것이다.
극진한 대우는 냉정한 평가가 따르는 법이다. 야마모토는 시범경기 세 경기에서 9.2이닝 9실점으로 고전했다. 탈삼진은 14개였지만, 15피안타 4볼넷으로 이닝 당 출루 허용률(WHIP)이 1.97이었다. 시범경기에 큰 의미를 둘 수 없지만, 워낙 기대치가 높았기 때문에 실망스럽다는 반응이다. 야마모토로선 2차전 등판에서 강렬한 인상을 심어줘야 한다.
시범경기에서 야마모토의 이슈는 '투구 습관 노출'이었다. 다저스 중계진은 야마모토가 스플리터 그립을 바꾸는 장면이 중앙 카메라에 포착됐다고 전했다. 2루에 주자가 있을 때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마크 프라이어 투수코치는 "걱정할 것 없다"는 입장이었다. 야마모토도 "고칠 것이 있으면 고치면 된다"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 이슈가 터진 뒤 야마모토는 부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여유를 잃지 않았는데, 그 모습이 패기일지 아니면 연기일지 알 수 있는 등판이다. 또한, 우리 입장에서는 이미 절정의 타격감을 과시하고 있는 김하성과의 대결도 절대 놓칠 수 없다.
김하성이 공수에서 도와줘야 할 머스그로브는 지난 시즌 부상 때문에 힘들었다. 스프링캠프에서 웨이트 훈련 중 케틀벨을 떨어뜨려 엄지 발가락 골절상을 입었고, 시즌 내내 어깨와 팔꿈치 부상이 끊이지 않았다. 샌디에이고 이적 후 2년 연속 180이닝을 넘겼지만, 지난 시즌은 97.1이닝에 머물렀다.
조 머스그로브 (샌디에이고 SNS)
머스그로브는 부상으로 시즌을 마감할 당시에도 "나는 던지고 싶다"고 말했다. 승부욕이 강한 머스그로브를 잘 표현하는 한 마디였다. 고향팀 샌디에이고에서 위상을 높인 머스그로브는 경기장 안팎으로 샌디에이고를 위해 열정을 쏟고 있다. 자신이 직접 샌디에이고의 첫 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을 만들고 싶어 한다.
다르빗슈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구종을 장착한 머스그로브는 지난해 포심과 커브, 커터, 슬라이더, 체인지업이 모두 두 자릿수 비중을 넘겼다. 가장 높은 포심 비중도 24.5%였다. 구종 하나에 의존하지 않고 여러 구종을 골고루 던진 투수였다. 심지어 이번 스프링캠프에서는 새 구종 스위퍼를 연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브레이킹 볼에 일가견이 있는 만큼 스위퍼가 궤도에 올라오면 머스그로브에게 중요한 무기가 될 것이다.
머스그로브는 스프링캠프 경기에서 감을 찾지 못했다. 3경기 6이닝 9실점에 그쳤다. 그런데, 머스그로브는 원래 스프링캠프 경기에서 페이스를 끌어올리지 않았다. 스프링캠프 30경기 통산 평균자책점이 5.36이다. 올스타 시즌을 보낸 2022년도 스프링캠프 3경기에서 11.1이닝 18피안타 9실점이었다. 즉, 머스그로브의 진짜 모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2022년 샌디에이고와 다저스의 디비전시리즈에서 샌디에이고는 다저스를 꺾었다(3승1패). 시리즈 마지막 경기에서 다저스 타선을 6이닝 2실점으로 막은 투수가 머스그로브다. 머스그로브의 변화구에 다저스 타선이 빠진다면 2년 전 의외의 결과는 재현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