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의 짧은 남해 여행기

[예소담(김광술)]

어느 봄날의 짧은 남해 여행기

경부고속도로에서 대진고속도로로 빠져 달리다가

남해고속도로 그 끝자락에서 만날 수 있는 남해.

‘보물섬’이라는 새로운 브랜드로 거듭 태어난 곳이기도 하지요.

고작 이틀을 돌아다녀 남해를 다 알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일출과 일몰 그리고 야경까지 모두 찍어볼 수 있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출사 여행코스도 찾아보기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

이른 새벽 집을 나서 고속도로를 이용해 남해로 줄달음을 칩니다.

대진고속도로 진주분기점에서 남해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사천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삼천포로 향합니다.

“우리말에 삼천포로 빠져버렸네”라는 말이 있지요.

참고로 이곳 사람들은 이 소리를 굉장히 싫어하니 유념을 해야 합니다.

사천 -삼천포를 잇는 도로는

아직도 예전의 모습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여

중간 중간 공사구간을 비켜 운전이 조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사실 삼천포는 사천시에 통합되면서 이제는 잊혀져가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전에도 그러하듯이

사천읍내보다 훨씬 더 번성하고 활기찬 지역임이 분명합니다.

휘황찬란한 조명이 모두 꺼져버린 삼천포대교를 건너

초양도와 늑도를 지나니 창선도입니다.

창선면의 아래로 오목하게 자리 잡은 창포항은

관광지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조그만 항구입니다.

나 역시도 이번이 두 번째 가보는 곳이지요.

“작지만은 참 아름다운 곳이었다.”는

기억이 다시금 나의 발길을 이곳으로 이끌고 있었지요.

수산리에서 국도를 빠져 나와 모상개해수욕장 방면으로 좌회전하여

꼬불거리며 지그재그로 오르다 보니 어느 덫 창포항이 보입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는 아빠가 아이를 안을 때처럼

팔을 벌리고 바다를 보고 있는 듯 보이는 창포항은

아직도 곤한 잠에 빠져 꿈나라 세상입니다.

새벽 바닷가는 한적하고 고요하기만 합니다.

제 차의 엔진 소리 때문에 동네 사람들이 잠을 깨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 얼른 주차를 하고 시동을 끕니다.

그리고서는 바닷가로 나아가 삼각대를 세워 구도를 잡아봅니다.

파도가 좀 있었으면 노출 시간을 많이 주어

은은한 느낌으로 만들어 보고 싶었는데

유난히 잔잔한 바다는 꼭 작은 호수마냥 잠잠하기만 합니다.

처음에는 창포항의 오목한 지형 때문에 그런 줄 알았으나

하루 종일 남해의 해안도로를 달려보니

섬 전체가 그렇게 파도가 잠잠하고 포근합니다.

남해의 공식 관광명칭을‘보물섬’이라고 붙인 이유가

그런 자연적인 영향도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맑디맑은 서쪽 하늘로 손톱달이 지기 시작하면서

동쪽 먼 하늘 위로는 붉은 기운이 조금씩 솟아오릅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해가 떠오른 다음의 하늘보다는

해 뜨기 직전의 붉으레한 하늘빛이 참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특히 맑은 날에는 하늘의 푸른 기운과 수평선 너머의 붉은 색이

조화를 이뤄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거든요.

검지 손끝을 맞붙이고 서로 마주보는 등대 사이로

투명한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지나는 작은 고깃배는

부지런하게 하루를 시작합니다.

조금 자리를 옮겨 방파제 끝으로 다가가니

멀리 산허리에서 올라오는 태양과 맑은 하늘 때문에 눈이 부실 지경입니다.

이런 때는 해를 똥그랗게 그려내기가 참 힘들거니와

또 하늘색 역시 은은하게 만들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시간은 아침 여덟 시를 넘어가고 있지만

작은 어촌은 여전히 한가롭고 조용하기만 합니다.

오늘도 남해의 구석구석을 쏘다녀야 하기에 부지런히 움직여야 합니다.

남해 본토와 창선도를 이어주는 창선대교가 개통이 되면서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창선도는 섬이 아닌 섬이 되었지만

그 다리를 사이에 두고 목 좁은 바닷길 속에는

이상한 말뚝이 초록색 깊은 물속에 가지런히 줄을 맞춰 박혀있습니다.

삼각형 모양의 말뚝이 모이는 지점에

둥그런 모양으로 나무가 박혀 있는 이것은 죽방렴입니다.

보물섬 남해를 대표하는 것들 중

단연 으뜸이기도 한 죽방멸치가 바다 이곳에서 만들어집니다.

섬과 섬 사이를 흐르는 바다 물길에 커다란 그물을 펴놓고

그곳을 지나는 멸치들은 점점 좁혀지는 통로를 따라 끌려 들어가게 되고

이윽고 둥근 바가지 모양의 통속으로 모여들게 되지요.

이렇게 자연스레 그물 속에 모여서 잡힌 멸치는

스트레스를 덜 받아서 멸치 맛이 뛰어나 멸치 중에서 최상급으로 치니

선조들의 지혜에 또 한 번 놀라게 됩니다.

3번 국도를 따라 계속 미조항 방면으로 가다보니

아침 식사가 된다고 쓰인 작은 간판이 도로의 한쪽 옆으로 놓여 있습니다.

인적이 뜸한 고장에서 이른 아침 시간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니 식사가 된다고만 하면 맛은 뒷전이고 무조건 들어가야 하지요.

넓은 홀 안에 손님이 딸랑 저 혼자입니다.

하지만 큼직한 홍합, 바지락과 대합이 가득한 해물 된장찌개가

뚝배기에 담겨 보글거리고, 미역무침과 멸치, 콩나물, 시금치 등

깔끔한 반찬에 먹으니 밥 한 그릇이 뚝딱입니다.

아주머니 여어기 ~~~ 밥 한 공기 추가요. ~~

창선도의 끝에 자리 잡고 있는 미조항을 못 미쳐 물건마을이 나옵니다.

물건마을이라는 지명이 약간 이상하기는 하지만

드라마‘환상의 커플’에서 보았던 독일마을과 바닷가 마을이 이곳입니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타고 가다보니

산 아래 바닷가에 펼쳐지는 물건마을 풍경은

마을 앞 몽돌해수욕장을 따라 가지런히 심어진 방풍림 때문에

나그네의 시선을 사로잡는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특히 아침 햇살을 받고 있는 그 풍경이야말로

언어나 글로는 형언할 수 없을 만큼 환상적입니다.

수령이 무려 300 년이나 되는 팽나무와 느티나무를 비롯하여

여러 종류의 나무들로 구성된 이 방풍림은

해일이나 태풍 등의 피해로부터 마을과 농작물을 보호하기 위해 심어졌는데

어부림(漁付林)이라고도 불리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럼 어부림이란 무슨 말일까요?

이 방풍림을 만들어 놓음으로써 물고기들에게

살기 좋은 바다 환경이 조성되어

고기를 부르는 숲으로도 활용이 된다고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여름이면 짙푸른 녹음으로 더욱 싱그러움을 줄 것이지만

때 이른 봄 풍경은 조금은 스산하기도 합니다.

미국에는 <미조리주>라는 지방이 있고

그리고 미국 군함 이름에 <미조리함>이 있으며

또 비슷한 이름의 <미저리>라는 호러물이 있어서 그런지

마을 이름이 왠지 낯설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남해의 미조는 작은 목이라는 뜻의 마을로

서울을 거쳐 평안북도에 이르는 3번 국도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는 지점이면서

남해의 가장 남쪽에 자리 잡은 끄트머리 지방이기도 합니다.

마을의 규모도 주변마을보다 제법 크고 여러 가지 편의시설이 눈에 띱니다.

망운산이 떡하니 한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미조항을 한 바퀴 돌면서

다시 굴곡이 심한 창선의 설리해수욕장을 지나니

곧이어 넓은 백사장을 뽐내는 송정해수욕장이 펼쳐집니다.

보물선 남해는 몽돌해수역장도 많지만

고운 모래밭을 가진 해수욕장도 여러 곳에 있어서

취향에 따라 바닷가도 선택할 수가 있어서 좋아 보입니다.

송정해수욕장을 거쳐 언덕을 넘으니

산 아래에 또 다시 시원한 바다 풍경이 펼쳐집니다.

송정해수욕장보다도 더 넓은 새하얀 상주 은모래 해수욕장입니다.

남해를 대표하는 해수욕장이라고 하는데 좋기는 정말 좋습니다.

남해는 동해의 맑고 깨끗함과 서해의 잔잔함을 함께 갖춘 듯

아름다운 매력을 한껏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처럼 바다가 잔잔한 날이면 외국의 유명 관광지가 부럽지 않습니다.

상주에는 유람선 운항을 하고 있는데

배를 타고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어

시간이 허락한다면 빼놓지 말아야할 것이지만

나로서는 짧은 시간에 돌고 돌아야하니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요.

그러나 작은 바람이 있다면

베트남의 하롱베이나 태국의 진란과 같이

주변의 섬들을 연계하여 관광코스로 개발이 되었으면 합니다.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변에는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인 동백꽃이 한창입니다.

짙은 초록의 무성한 잎사귀 사이로 숨어서 고개를 내민

노란 수술을 품은 빨간 꽃잎의 동백꽃이

아침 햇살을 받으며 예쁜 눈인사를 건넵니다.

삼다도라 불리는 제주도에는 검은 색의 현무암으로 돌담을 쌓아

논과 밭의 경계를 만들기도 하고, 집 마당의 울타리를 만들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곳 남해에서도 돌담이 눈에 많이 띱니다.

물론 시커멓고 구멍이 숭숭 뚫린 마그마 덩어리의 현무암은 아니지만

넓적하고 평평한 돌들을 차곡차곡 잘도 쌓아서 만든 돌담은

쳐다볼수록 정감이 넘치기만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남해는 작은 제주도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산이 유독 많은 남해에서는

최고의 조망을 가진 산이라면 바로 금산을 들 수 있습니다.

상주해수욕장 뒤편으로 정상부근이 바위로 뒤덮인 산이 바로 그곳입니다.

산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보리암은 한려수도의 장관을 내려다보며

태조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드렸다고 알려진 절이기도 합니다.

해수관음상과 삼층석탑이 아름다움을 더하는 보리암은

양양 낙산사, 강화 보문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기도처로 알려져 있는데

등산로 말고도 차를 타고 금산의 8부 능선까지 오를 수도 있습니다.

금산 제 2주차장까지 차로 올라간 뒤 보리암까지 약 1km를 걸어가면

보리암에서 시원한 남해의 풍광을 훨씬 수월하게 보고 즐길 수 있습니다.

제 1주차장에서 제 2주차장까지는 가파른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제 2주차장은 장소가 협소하기 때문에 셔틀버스가 운행되고 있습니다.

자가용을 이용하려면 내려오는 차량만큼만 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차가 많을 경우 조금 기다리는 수고를 감수해야 합니다.

하지만 기름 값도 비싸고 하니 기다리는 시간이면 다리 운동 삼아....

산의 면적이 전체의 3분의 2가 넘는 남해에서는

절대적으로 농지가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 방울의 물도 아껴야 하고,

한 뼘의 땅이라도 놀릴 수 없었던 지리적 열세인 남해에서

다랭이 논은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근면함을 잘 반증해 주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천면에 있는 다랭이 논은

국가 명승으로 지정이 되었을 만큼 놀랍도록 잘 정비되어 있습니다.

심하게 경사진 산비탈을 계단처럼 깍고 다듬어서

겨울엔 마늘농사로, 봄부터 가을까지는 벼를 심는 논농사로

농업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든 끈기와 부지런함을 보면

쉽게 포기해 버리는 요즘 세태가 부끄럽기만 합니다.

가천마을의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바닷가로 내려가면

풍요와 다산을 안겨다준다는 암수 바위가 있어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서쪽 해안을 따라 남해읍 방면으로 가면

봄철 하얀 왕벚꽃과 알록달록 꽃밭으로 화려함을 뽐내는 다초지가 나옵니다.

해 뜰 무렵의 풍광이 가히 환상적인 곳으로

나 같은 사진 찍는 이들에겐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다초지는 실제 이름이 아니고

장평저수지가 원래의 이름이랍니다.

다정마을 입구에 자리 잡고 있는 다초지는

남해읍에서 상주를 잇는 국도변에 자리하고 있어

찾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올 봄은 지난겨울에 눈이 조금 왔지만은 지난가을까지 이어진 가뭄으로

남해의 모든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어

물 부족 사태의 심각함을 느끼게 합니다.

아름다운 갈대밭과 갯벌생태체험을 할 수 있는 문항마을을 지나

벚나무가 양쪽으로 도열해 있는 해안도로를 따라가니 노량마을이 나옵니다.

바로 남해대교 바로 아래 마을이지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전적지로도 유명한 노량에 들어서니

거북선 모양의 전시관, 그리고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횟집이 즐비합니다.

한 때 남해대교 아래를 당시 최고속도로 물살을 가르던 배가 있었으니

그 이름이‘엔젤호’인가 하는 쾌속선이었습니다.

배 앞쪽에 뾰족이 튀어나온 날개가 속도를 다하면서 물 위로 올라오는 엔젤호는

여수에서 남해대교 바로 아래의 이곳 노량을 중간기점으로 삼아

부산까지 오가는 정기여객선이었습니다.

부글부글 끓던 시절에 뜨겁던 가슴을 몸으로 태워버리려

모 여인네와 애정행각을 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나저나 하루해가 너무 빠르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서두르지 않으면 삼천포 실안 해안가의 낙조를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는 해안도로를 타지 낳고 내륙을 가로질러

제일 빠른 길로 왔던 길을 되돌아갈 생각입니다.

남해대교에서 삼천포대교 북단의 실안까지는 40km가 조금 넘습니다.

산이 많은 지역임을 감안하면 1시간은 족히 걸릴 거리입니다.

남해읍과 상주를 지나 창선대교를 건너니

이내 늑도, 초양도를 잇는 연륙교가 나오고

길이 430m의 삼천포대교가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삼천포대교의 서쪽이 해질 무렵에

그 아름다운 풍광으로 유명한 실안 해안도로입니다.

죽방렴과 등대로 인해 그림 같은 풍경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실안 각산 정상의 봉수대에서 바라보는 야경도 환상적이지만요.

이윽고 저 멀리 설천면 쪽으로 지는 태양이

유유히 흐르는 남해를 붉은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가창오리 떼는 서둘러 보금자리로 날개 짓을 재촉합니다.

태양은 순식간에 태산 너머로 숨어버리고

하늘은 다시 보랏빛 그라데이션을 만들며

아름다운 서쪽 하늘을 장식합니다.

서둘러 카메라와 삼각대를 챙겨 자리를 조금 옮겨봅니다.

삼천포대교 바로 아래 야경사진을 멋지게 찍을 곳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역쉬 좋은 자리는 미리 오신 분들이 모두 접수를 마치고

대신하여 저는 멋진 일몰을 볼 수 있었으니 아쉽지는 않습니다.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만 대교의 아름다운 경관조명을 볼 수 있으니

혹시라도 찾으실 분들은 미리 확인해 보는 센스도 필요합니다.

해가 진 서쪽 하늘에 여명이 남아 있을 무렵

다리에서 형형색색의 조명들이 빛을 뿜어내기 시작합니다.

조명의 밝기와 하늘의 밝기가 일치하여

아름다운 하늘색과 야경이 함께 찍히는 시기를

흔히들 ‘매직아워’라고 부릅니다.

그 시간은 매우 짧아서 10분 정도 밖에 되질 않기 때문에

이때를 놓치지 않고 슈팅을 하여야 합니다.

이내 매직아워가 끝나면 하늘색은

이제 더 이상 푸른색을 내지 못하고

그냥 컴컴한 검은색만 보여줄 뿐입니다.

짧기만 한 보물섬 남해기행.

비록 시간을 잊고 보낸 느긋한 여행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즐겨본 혼자만의 사진여행이었기에 더없이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에메랄드빛 바닷물이 주먹만 한 몽돌에 부딪혀 들려주는 자그락거리는 소리.

멀리 아기자기한 섬들로부터 밀려오는 바다 향기.

그리고 돌담 너머로 보이는 바닷가 마을의 소박함까지

남해의 아름다움을 제 가슴에 한가득 담아 왔습니다.

보물선 남해는 그렇게 나에겐 작은 제주도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