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초이스한 음악때문에...

[독로]

화양연화 : 로맨스｜멜로, 드라마 : 프랑스, 홍콩 : 97 분 : 2000

감독 : 왕가위

주연 : 장만옥. 양조위

5회 부산국제 영화제 (2000) 초청 폐막작

53회 칸 영화제 (2000) 수상, 남우 주연상 (양조위)

1962년 홍콩, 상하이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에 두 가구가 동시에 이사를 온다. 무역 회사의 비서로 일하고 있는 리첸 (장만옥)과 그녀의 남편, 그리고 지역 신문의 데스크로 일하는 차우 (양조위)와 그의 아내. 리첸의 남편은 사업상 일본 출장이 잦다. 차우의 아내 또한 호텔에서 일하는 관계로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차우와 리첸은 자주 부딪히게 되고 가까워진다. 차우는 리첸이 아내와 똑같은 핸드백을 가지고 있으며 리첸은 차우가 남편과 같은 넥타이를 매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자신들의 배우자가 자신들 몰래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리첸은 사랑하는 이의 곁을 떠나지도 못한 채 슬퍼하고 차우는 그런 리첸을 위로하며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영화의 주인공인 차우와 첸.

[화양연화]는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의미하며 또한,

왕가위 감독이 홍콩의 황금기라고 생각하고 있는 1960년대를 상징한다.

왕가위는 아마도 요즘 감독들 중 페티시즘을 가장 잘 활용하는 감독이면서 그 자신이 페티시즘의 대상이 되는 감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화양연화]에서 이런 형태의 숭배를 주제로 택한다. [화양연화]는 시간이라는 것의 마지막 순간을 드러낼 뿐 아니라 표현 불가능한 어떤 주제를 둘러싸고 있는 꼬이고 꼬인 영화, 과감하면서도 놀라우리만치 섬세한 영화다.

여기서 무드 (Mood)야말로 열쇠가 되는 중요한 단어다.  [화양연화]의 영어 제목이 In The Mood For Love 다). 감정적이라기보다는 지성에 호소하는 바가 훨씬 큰 러브 스토리로서, [화양연화]는 자신의 열정을 영화 만들기에 대부분 사용한다. 뭔가를 더해 가면서가 아니라 주로 뭔가를 빼내 가는 감산을 통해서 말이다. 일종의 고착된 망상 속에서 애매한 사건들이 펼쳐진다. 기억을 만들어 내는 것과 영화를 만들어 내는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도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과거란 볼 수는 있으되 만질 수는 없는 것임을 메인 캐릭터들은 끊임 없이 설명한다. [화양연화]는 선별된 기억상실증이라는 원칙 하에 세워진 작품인 것이다. 아마도 추정만 할 수 있는 영화의 타이틀 곡만이 이 영화의 유일한 부재 요소는 아닐 것이다.

왕가위의 이야기는 주로 이주해 온 상하이인들 사이에서, 60년대 초반 홍콩을 배경으로 일어나는데 이것은 감독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무대이기도 하다. 첸과 차우는 같은 붐비는 건물 안에, 서로 붙어 있는 아파트 방을 동시에 빌린다. 그러고는 그 좁은 복도 안에서 끝없이 서로 마주친다. 병치되는 일련의 대화를 통해 그들은 그의 아내와 그녀의 남편 (이들의 목소리는 여러 번 들을 수 있지만 얼굴은 절대 안 보인다) 이 잦은 외국출장을 이용해 바람을 피우고 있음을 알게된다. 그 결과 첸과 차우는 종종 외로워지며 또 끊임 없이 서로에게 끌린다.

첸과 차우는 함께 식사를 하며 각자의 배우자가 서로 바람을 피우고 있음을 알게 되는 동시에,

서로에게 비밀스러운 감정들을 털어놓고 소설을 함께 쓰며 조금씩 끌려가게 된다.

이 과장된 대칭관계는 1928년에 만들어 진 무성영화와 같은 도시 러브스토리를 왕가위식으로 바꾼 것이다. 외로운 젊은 연인이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러다가 서로를 대도시 대중사회 속에서 잃어 버리지만, 알고 보니 이름없는 여인숙 바로 옆방에 살고 있었더라는 식 말이다. 왕가위는 그런 이야기가 끝나는 지점에서, 그 이야기를 앞으로 끌고 가고 뒤로 되돌리기도 하며 다루고 있다 (때때로 첸과 차우는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배신자 배우자들인 양 행동해보기도 한다. 마주칠 일 없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언젠가 맞닥뜨릴지 모르는 상황을 위해서, ㅎㅎ). 노골적으로 고안된 수도 없는 우연으로 빚어진 화양연화는 매우 실험적인 캐릭터 드라마인 동시에 시간이라는 신화에 관한 의식이기도 하다. (첸이 고용된 회사의 사장은 자신의 부인과 정부 사이에 미묘한 줄타기를 하고 있으며, 그 관계들은 영화에 또 다른 보여지지 않은 캐릭터를 더한다.)

두 스타들 사이에 오가는 불완전한 감정들로 나뉘는 짧은 신들이 매끄럽게 연속되는 화양연화는 드라마틱한 생략을 구사하는 한편, 특별한 순간들은 길게 지연시킴으로써 뛰어난 리듬을 만들어낸다. 왕가위는 사소한 일상 속에서 내러티브를 끌어내고자 하는 의지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이 이야기꾼은 화가가 화폭에 직접 모든 대상을 드리내지 않은 채 공간을 구성하듯 내러티브를 만들어 가는데) 모더니스트라고 부를 수 있다. 우아하게 불행하고 비현실적일 만큼 아름다운 그의 두 패배자들의 관계에 섹스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관객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이 영화는 그 장면 (Primal scene)이 없는, 가족 로맨스다.

두 주인공의 몸은 단 한번도 농밀하게 닿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오히려 그들 사이의 공기는 전기장같은 강렬한 느낌을 자아낸다. 마이클 갈라소의 엄격하고 절제된 음악과 함께, 장면 사이사이에 막간극처럼 등장하는 슬로우 모션들은 첸의 움직임을 환상적이고 상징적으로 - 그녀를 조용히 찬미하는 숭배자의 관점에서 - 만들어 준다. 그로 인해 그녀는 마치 천천히 과거로 침잠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영화는 첸이 입고 나오는 다양한 치파오를 통해 그녀의 깊은 내면의 사려와 우울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듯 하다. [화양연화]에는 다양한 시계들이 나오지만 시간의 흐름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관객은 오히려, 시간의 흐름을 주연 여배우의 신마다 갈아입는 의상을 통해 깨닫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 많은 옷들을 보관하는 첸의 옷장은 얼마나 클까. 영화 외적인 미스터리다).

첸이 여러 번 갈아입고 나오는 치파오는

영화에서 계절별 음식과 함께 흘러가는 시간을 상징하며,

장만옥의 아름다움을 더욱 더 돋보이게 하는 옷,

그 자체로 충분히 매혹적이고 예술적이다.

[화양연화]는 이전의 왕가위 작품들보다 덜 급진적이고 더 차분하지만, 영화의 시대 표현만은 그의 초기작품인 [아비정전 : Days of Being Wild]으로 돌아온 듯 하다. 기존의 크리스포터 도일식 촬영과는 달리, 카메라는 상대적으로 조용히 관조한다. 그럼으로써 영화는 이야기를 연출한 것만큼이나 각각의 장면을 디자인한 것 같은 - 마치 비가 낡은 아파트 건물의 외관을 부드럽게 침식해 들어가는 듯한 매력적인 가상의 재건축 같은 - 느낌을 준다 (왕가위와 오랜 시간 함께 한 예술 감독이자 의상 디자이너인 장숙평 또한 이 영화의 편집을 공동으로 맡았다.). 영화의 장면들은 기본적으로 좁은 복도, 프레임화된 출입구, 그리고 주의 깊게 배치된 구식 자동차들이 있는 어두운 뒷골목 등으로 구성된다. 그들이 LA 느낌의 싸구려 커피숍에서 서양 음식을 먹을 때, 첸이 입은 꽃무늬 치파오는 큰 플라스틱 메뉴판에 그려진 야자나무와 대응한다. 왕가위는 화면 앞에 장식품들을 죽 늘어 놓았지만, 오래된 음악들은 - 냇 킹 콜이 스페인어로 부르는 몇 번의 반복되는 노래를 제외하고 - 여기가 아닌 저 멀리 떨어진 어딘가에서 들려오는듯 하다.

첸이 입고 있는 꽃그림의 치파오는 메뉴판의 야자나무 그림과 연결된다.

[화양연화]는 연결되고 숨어 있는 교묘한 장치들을 이용하여 말하지 않으면서 많은 것을 얘기한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화양연화]에는 숨막히는 분위기와 정적인 장면들이 의도적으로 편집되지 않은 것처럼 남겨져 있다. 영화 속 교묘한 장치들은 모두 다 불길의 연료가 되어, 바람결에 흩어지는 시간의 재로 화한다. 그리고 남는 마지막 정조는 그 시절은 지났다는 것. 그 시절의 모든 것들이 이제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화양연화]는 더글라스 서크의 고전 멜로드라마를 닮아 있을까? 아니면 마르셀 프로스트의 소설과 가까울까? 우리는 왕가위이즘이란 것을 얘기할 수 있을까? 이 43살의 필름메이커는 가장 아방가르드적인 팝 필름메이커랄 수 있을 것이다. 혹은 가장 팝 필름메이커적인 아방가르드거나. 접근과 회피, 실재와 부재 사이에서, [화양연화]는 관객에게 아낌없이 주면서 동시에 몸을 사리며 물러난다. 옛날 할리우드 프로덕션 코드만큼이나 엄격한 법칙들의 지배를 받으면서, [화양연화]는 랩소디처럼 승화한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숭고해진다.

영화의 많은 부분에서 카메라는

창문이나 문, 또는 침대와 같은 소품으로 만들어진 프레임 안에 숨어 주인공들을 엿본다.

엄격하게 만들어진 틀 안에서 첸과 차우는

그들의 정제된 감정과 비극적인 결말을 최소한의 몸짓과 표정으로 표현한다.

차우가 홍콩을 떠나기로 결심했을 때, 카메라는 사무실에서의 그를 찾아 보여 주는 동시에, 그의 몸짓을 보여주면서 이미지는 더 이상의 설명 없이 멈춘다. 이와 같이, [화양연화]의 내러티브는 직접적이지 않으나 눈에 띄는 수많은 장면의 연속 - 싱가폴로 걸려 온 말없는 한 통의 전화, 홍콩의 아파트 문 너머를 한순간 바라보는 모습과 같은 - 들로 재구성된다. 거대한 사치와 같았던 앙코르와트 사원을 배경으로 촬영된,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 언젠가 누군가에겐 영원이었겠지만 이제는 텅 빈 폐허가 된 앙코르와트를 카메라가 조용히 훑어갈 때, 불멸은 덧없음과 하나가 된다.

불멸은 덧없음과 하나가 된다.

화양연화 - 여자의 가장 아름다운 한 때, 혹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의미한다.

냇 킹 콜의 "Quizas, Quizas, Quizas"와 함께 [화양연화]의 실질적 주제가 같은 음악,  우메바야시 시게루의 Yumeji's theme... 국수를 사러 스쳐 지나가는 잠깐의 시간에서도 두 사람의 견딜 수 없는 감정의 무게가 슬로우 모션으로 느껴진다. 아, 음악이란 연출이란 영화란 이런 것인가. 강렬하고 고혹적이고 숭고하고 섹시하고 아름답다.... (리뷰 : 펌후 정리)

화양연화 (花樣年華) OST 중에서 5#

1. Yumeji's Theme - Sergei Trofanov (01:49)

2. Itmfi III - Michael Galasso (01:31)

3. Te Quiero Dijiste - Nat King Cole (02:35)

4. Quizas Quizas Quizas - Nat King Cole (02:48)

5. Aquellos Ojos Verdes - Nat King Cole (02:09)

[독로]

음원 3번은 안들린다는 소문이.......ㅡ..ㅡ
영화를 본적은 없지만 음악이 좋아서 가끔 찾아서 듣곤합니다

[물푸레]

인수분해해보니 3번째 음원이 끊겨있군요.
http://user.chol.com/~sykim16/music/Te_Quiero,_Dijiste.mp3으로 바꿔서 해보시죠.

[독로]

고맙습니다 ...^^~

[글마]

저는 2번인지 4번인지 전혀 모르겠습니다...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