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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찬양연습실] 스크랩 고난주간 찬송
지단 추천 0 조회 131 10.05.25 19:5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아래 글은 이번에 새로 개편된  <21세기 찬송가> 256장에 실려 있는 오소운 목사의 작사 작곡 찬송에 대한 해설입니다.

21세기 찬송가 645곡중 신곡.. - 256장 나의 죄 모두 지신 주님 | 음악을 들으려면 원본보기를 클릭해 주세요.

 

 

 나의 죄 모두 지신 주님

 

글 : 오소운 목사

 

                                                                              

                        

 


이 찬송은 1998년 10월 7일 작사 작곡된「회개와 헌신」의 찬송이다. 그 날은  성결교단의 목사로서 목회하다가 40살이라는 한창 나이에, 먼저 하나님께서 데려가신 큰아들 의환(義煥, 1952. 10. 7-1991. 9. 11) 목사의 생일날이었다. 아내는 죽은 아들의 생일이라며 아침 밥상머리에서 눈물을 지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원망을 해선 안 돼요. 무조건 감사하며 삽시다.”

 

위로를 하고, 작업실 컴퓨터 앞에 앉아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주마등 같이 지나가는 영상들….

 

너무도 가슴이 아팠고 하나님께 죄스러웠다. 머리를 흔들고 생각을 바꿔 외아들을 우리 대신 십자가에 죽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니 감사의 눈물이 났다.

 

가시관을 쓰고 몸은 만신창이가 된 채 십자가에서「아바 아버지여」하고 울부짖는 독생자를 차마 불수가 없어 외면하신 하나님…,

 

그 때「흉악한 죄는 내가 짓고 고통은 주가 당했으니」하는 생각과 함께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리다가,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가사를 쓰고, 작곡 프로그램인 ENCORE 4.21로 작곡한 찬송이다.

 

        눈물로 주께 아룁니다

        그 피로 이 몸 사셨으니

        충성된 종이 되게 하사

        주 위해 살게 하옵소서


이것이 80 고개에 올라선 오소운 목사의 마지막 소원기도다.

 

 


 

 

 <사진 설명> 맏이 의환 목사의 ROTC 제대 기념(1977), 오른쪽으로부터 맏이 의환, 셋째 진환, 막내 정환, 둘째 성환  

 

 

오소운(吳小雲, 1931- ) 목사의 본명은 신근(信根)이다.

 

위로 10남매를 잃어버린 아버지가,「믿음으로 얻은 자식」이라고 근(根)자 항렬인 그에게 믿을 신(信) 자로 이름으로 지어주었다.

 

소운(小雲)이란 이름은, 조선신학교 재학시절, 9장「하늘에 가득 찬 영광의 하나님」작사자 김정준(金正俊, 1914-1981) 목사가 지어준 아호로서,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에서 일곱 번 기도한 후에, 그의 사환이 와서 “사람의 손 만한「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왕상 18:44) 라고 보고한 성구에서 따온 것이다.

 

오소운 목사의 가정은, 1888년 조부 오인선(吳?善, 1854-1912)이, 감리교 선교사로서 이화학당을 창설한 스크랜턴 부인에게서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어, 친인척 모두 신앙가정이 되었다.

 

1895년 고향인 경기도용인군남사면 아곡리(牙谷里)에 아곡(후에 아리실) 감리교회를 세웠는데, 1905년 장 감 선교사협의회에서 전도지역을 분할할 때, 경기 북부지역은 감리교 선교지역으로, 남부지역은 장로교 선교지역으로 결정함에 따라, 1906년 장로교로 교파가 바뀌었다.

 

아곡교회는 초대 장로인 백부, 오건영(吳健泳, 1879-1937) 장로가 목회하다가, 1931년부터 부친 오연영(吳連泳, 1889-1951) 장로가 하나님이 불러가실 때까지 목회하였다.

 

부친은 아들을 주시면, 당신의 뒤를 이어 고향 아리실교회 장로로 세우겠습니다, 하고「서원기도」를 드렸는데, 아들이 진학을 하겠다는 의사를 꺾지 않자, 상상도 못할 무서운 터부를 걸었다.

 

“네가 애비의 말을 거역하고 진학을 하여, 무슨 졸업장이든 받는 순간, 너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리라.”

 

어머니는 울면서 그 터부를 취소하라고 하였지만, 부친은 막무가내였다. 하나님께 한 약속을 자식놈이 깨버렸으니 얼마나 참담하였겠는가.

 

그래서 오소운 목사는 평생 공부만 하였지 졸업장은 아무것도 타지를 않아 남사국민학교 졸업장밖엔 없다.

 

신학을 하고 목회의 길을 찾는 그에게 선친의 친구로서 집안 내력을 잘 아는 목사 장로님들이

 

“자네 가정은 장로의 가문이야. 자네가 장로로 전통을 이어 교회를 섬기다가, 나이 먹은 뒤에 목사 안수를 받아도 늦지 않네.”

 

이렇게 강권하는 바람에, 1966년 마포장로교회에서 장로 안수를 받고 10년 동안 시무하였다. 아리실 교회에서는 장로가 못 되었지만, 어쨌든 장로가 된 것이다.

 

 

오소운이 작곡을 하게 된 것은, 14살인 1944년 성탄절 때였다. 교회 청년들이 모두 징병과 징용(徵用)으로 끌려가고, 여자는 정신대(挺身隊)의 위협으로 다들 일찍 출가했기 때문에,1) 14살 어린것이 아버지 장로님의 명을 따라 주일학교 교사가 되었다.

 

1944년, 성탄절에 가르칠 노래를 찾고 있었는데「기독신보」에 난「토끼의 성탄절」이란 동시를 발견하였다. 신문사로 곡조를 보내달라, 편지를 하였더니 노래가 아니라 동시로 발표한 것이라, 는 답장이 왔다.

 

낙심한 그는 큰 매형이 준 바이올린을 들고 기타처럼 튕겨 보았다. 활은 망가졌고 줄은 D선과 A선만 남아있는 바이올린을 기타처럼 튕기며 직접 작곡을 하여,「무용 노래극 토끼의 성탄절」을 만들어, 1944년 성탄절에 공연한 것이 계기가 되어「평생 어린이 찬송가 작곡을 하겠습니다」하고 하나님께 서원하였다.

 

 

 

이후 당대의 아동문학가 강소천(姜小泉)에게 <새벗> 잡지에 추천을 받아 아동문학가로 등단하고, 작곡가 나운영(羅運榮)에게 4년 반 동안 작곡을 사사하며 기독교교육협회 계단공과와「성탄준비」등에 발표한 어린이 노래들을 모아《할렐루야, 1966, 41곡 수록》라는 작곡집을 출판한 후, 작곡발표회를 하여 작곡가로 인정받아, 계속 찬송가만 작사 작곡하였다.

 

 

                          첫 작곡집 《할렐루야, 1965》표지                           

 

 

《주일학교 찬송가, 1962》?《찬송가(어린이용), 1973》?《어린이 찬송가》(79년판-88년판-95년판),《유치부 찬송가, 1984》,「교회학교 노래집, 1983」등의 전문위원으로서, 선곡? 번역? 편집을 직접 하였고,《찬송가(신작 증보판), 1995》편집전문위원으로서 전 과정 작업을 하였으나 아쉽게도 폐기되고 말았다. 그밖에 대한가독교교육협회 편집인으로 있을 때에는 해마다 「여름학교 노래집」(1972년, 73년, 74년, 75년) 를 4년 연속 출판하여 전국 교사강습회를 통하여 직접 가르쳤다.

 

작곡집으로는「다 함께 노래를, 1962」,「할렐루야, 1965」,「오소운 어린이성가 100곡집, 1975」,「오소운 작곡 신작 찬송가(373곡), 2000」기타 등이 있다.

 

 

아무 졸업장이 없기 때문에 동문들과의 연합적인 활동은 전혀 못 하고, 현상모집에 뛰어드는 수밖에 없었다. 1985년 한국교회 선교100주년 기념가 현상당선을 계기로, 찬송가위원회에서 10년 동안 시행한「신작 찬송가 현상모집」에 매번 응모하여 16 곡이 당선되었고,《찬송가(신작 증보판), 1995》에 7곡이 채택되었다.

 

일본 어린이 찬송가인《敎會學校さんびか,1971》62장에 작곡집《할렐루야, 1965》에 실려 있는,「보고싶어 보고싶어」라는 삭개오 노래가「主イェスのおかおが」라는 번역으로 채택되었고, 미국 감리교찬송가《사방에서 부는 바람》'Hymns From The Four Winds, 1983'에, 찬송가위원회 당선곡인 박성문 목사 작사 오소운 작곡의「모라아산 제단 위에」란 찬송이, 이동일 번역으로 'Altar on Mt. Moriah' 란 제목으로 57장에 실렸고, 역시 당선곡인 오경림 전도사 작사「진리요 생명이신」이란 찬송이 이동일 교수 번역으로 'Let us Come Unto the Lord' 란 제목으로 73장에 채택되었다. 현행 일본《讚美歌21》196장에는《찬송가(신작 증보판), 1995》93장에 채택되었던「주안에 기쁨 있네」란 찬송(박성문 작사)이「主のうちにこそ」란 번역으로 채택되었고, 398장에는 역시《찬송가(신작 증보판), 1995》에 실려 있던「빛나는 아침에」란 찬송(김성호 목사 작사)이「光さす朝」란 번역으로 채택되었다.

 

 

 

 

 

 

 

 

 

미발표 곡으로는「어린이 칸타타 예수의 생애(100곡)」과「찬양대용 합창곡집」「여성 2중창곡집」기타「노래극집」등이 있다. 현재 가칭「재미있는 찬송가 역사」(전3권)과「한국 어린이 찬송가 역사」(전3권)을 탈고하고 출판 준비 중에 있다.

 

지금도 새벽 3시에 일어나 시상이 떠오르면 찬송 시를 쓰고, 악상이 떠오르면 작곡을 한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오라고 부르시는 수간까지 쉬임 없이 할 것이다.

 

 

아래 그림은 한국 선교 초기, 선교사들의 선교지역 분할 지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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