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두 조각상이 있습니다(원문으로 들어가서 사진을 직접 보시기 바란다 – 옮긴이 ‘잉걸’, 아래[이하] ‘옮긴이’). 왼쪽은 바티칸박물관에 소장 중인 ‘프리마포르타의 아우구스투스상’입니다. 서기 20년경(그러니까, 서기 – 기원후 – 1세기 초 : 옮긴이) 로마 최초의 황제인 아우구스투스를 조각한 이 작품은 로마 미술의 손꼽히는 걸작입니다. 근사한 개선장군의 옷을 차려입고 환호하는 군중을 향해 제국의 영광을 선포하는 아우구스투스의 모습이 위엄 넘치네요.
그럼 이제 시선을 강탈하는 오른쪽 조각을 얘기해 볼까요. 왼쪽 조각에 색(빛깔 – 옮긴이)을 입혔을 뿐인데, 영 시원찮네요. 초등학생이 장난으로 물감을 칠한 것 같기도 하고, 망해가는 놀이공원에서 색이 벗겨져 가는 싸구려 조형물 같기도 하고요.
(중략)
사실 2000년 전 이 조각상이 만들어졌을 당시, 실제 조각상은 왼쪽보다 오른쪽에 가까운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순백의 대리석 조각’인 줄 알았던 작품이 사실 ‘풀 컬러(총천연색. 온갖 빛깔이 다 칠해진 작품 – 옮긴이)’였다는 거죠. 다른 대부분의 그리스(올바른 이름은 ‘헬라스’ - 옮긴이)/로마 조각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만들어졌을 당시엔 알록달록하게 채색돼 있었다는 게 최근의 연구 결과입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우리는 왜 그리스/로마 조각이 무조건 희다는 오해를 하고 있었을까요?
☞ 맨눈으로도 보이는 색칠 자국인데 …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서른일곱 해 전인 – 옮긴이) 198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독일(올바른 이름은 ‘도이칠란트’다. ‘독일’은 ‘도이칠란트’를 왜국식으로 읽은 한자말이라, 쓰지 않는 편이 좋다 – 옮긴이) 뮌헨대학교 고고학과 석사 과정에 재학중이던 ‘빈첸츠 브링크만’은 그리스 조각가들이 작품을 만드는 데 사용한 도구들을 주제로 논문을 쓰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물체에 자외선을 비춰 표면의 상태를 자세히 알아볼 수 있는 특수 기구를 만들었지요. 그런데, 조명을 비추자, (조각상에 – 옮긴이) 다양한 색을 칠한 흔적이 뚜렷하게 발견됐습니다.
깜짝 놀란 브링크만은 특수 조명으로 다른 조각상들을 비춰 보기 시작했습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죠. 대부분의 조각상에 색을 칠한 흔적이 남아있었던 겁니다. 더 놀라운 건, 그에겐 이제 조명 없이 맨눈으로도 색칠 자국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브링크만이 갑자기 초능력을 얻은 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저 눈을 가리고 있던 편견이 사라졌을 뿐인데, 모든 게 다르게 보였습니다.”
브링크만은 조각들의 색 연구를 계속하다가, 1990년대 들어 고고학자인 아내와 함께 그리스/로마 조각들의 원래 색을 복원하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저 백설공주 복장을 입은 것 같은 아우구스투스상은 그 결과물 중 하나입니다. 누가 봐도 결과물이 보기 좋지는 않지요. 실제 색칠되어있던 모습은 분명히 저것보다 훨씬 진짜처럼 보였을 겁니다.
하지만 조각상의 색을 복원하는 게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는 사실도 감안해야 합니다. 남아있는 물감 흔적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습니다. 또 당시 화가들이 대리석에 색을 칠할 때 쓰던 재료나 기술에 대한 정보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조각상의 일부를 떼어내서 검사해볼수도 없었죠. 그래도 브링크만 부부는 X선을 비롯한 갖은 수단을 동원해 원래 색을 추적했습니다. 도구와 재료도 당시 사용했을 법한 것만 골라 썼죠.
부부는 2003년부터 복원을 마친 조각상들을 모아 ‘Gods in Color’라는 순회 전시를 시작했습니다. 국내엔 온 적이 없지만 지금까지 전 세계 28개 도시에서 300만명의 관람객들이 전시를 봤습니다. 색이 유치하다는 등 비판도 많이 받긴 했습니다만, 이들의 노력은 결국 결실을 맺어 지금은 많은 미술사 교과서가 ‘컬러풀한 조각상’을 정설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금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채도 : 색이 있는 고대 조각상’(Chroma: Ancient Sculpture in Color) 전시도 이런 전시의 일환입니다. 지난 5일 개막했고, 내년 3월 26일까지 이어집니다.
☞ 사람들은 왜 몰랐을까
사람들은 도대체 왜 그리스/로마 조각상이 흰색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이런 오해는 사실 우연한 계기에서 비롯됐습니다.
그리스/로마 조각상이 본격적으로 발굴되기 시작한 건 르네상스(문예부흥 – 옮긴이) 시대. 처음 만들어졌을 때 다채로운 색을 띠고 있었던 조각상들은 1000년 넘는 시간을 견디며 색을 잃었습니다. 그나마 색이 남아있던 조각상들도 발굴 과정에서 빛과 공기에 노출됐고, 흙을 털어내는 청소 과정까지 거치면서 금세 물감이 벗겨져 버렸죠.
결정적인 사건은 1489년 벌어졌습니다. 로마시대 대리석 조각인 ‘아폴로 벨베데레’가 로마에서 발굴돼 바티칸 ‘벨베데레의 정원’에 있다는 소식이 들리자, 온 유럽의 학자와 예술가들이 조각상을 보러 몰려들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색이 다 벗겨진 흰색 조각이었죠.
모인 사람들은 조각상의 완성도와 아름다움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죠. '이렇게 멋지고 근본 있는 그리스/로마 조각상들이 모두 흰색이니, 우리(근세 유럽인, 그러니까 문예부흥 시대에 살았던 유럽인들 - 옮긴이)가 만드는 조각도 근본이 있어 보이려면 무조건 흰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야겠구나.'
르네상스 최고의 조각가인 미켈란젤로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대리석 산지인 이탈리아의 카라라까지 가서 흰 대리석을 직접 사오기도 했죠. '피에타'를 비롯한 그의 걸작들은 이런 오해 덕분에 더욱 아름다웠을지도 모릅니다. 하얀 대리석이 몸의 형태와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건 사실이니까요. 아무래도 색이 있으면 조각의 세부적인 형태에는 눈이 덜 가게 되죠.
문제는 이런 편견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너무 깊이 박혀버렸다는 겁니다. 발굴 기술이 발전한 18~19세기, 그리스의 아테네를 비롯한 여러 유적지에서 색이 있는 조각품들이 쏟아져 나오는데도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20세기 말까지도 이런 분위기는 이어졌고요.
조각에 색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죠. ‘생각하는 사람’으로 유명한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은 자신의 가슴을 퍽퍽 치며 “나는 원래부터 그리스/로마 조각상에 색이 없었다는 사실을 여기 이 가슴으로 느낀다”고 했습니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조각과 그 흰색은 완벽한 아름다움의 모범 사례’라는 편견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너무나도 깊이 박혀버렸던 겁니다.
근대 미술사에 큰 영향을 미친 독일의 고고학자 요한 요아힘 빙켈만이 “흰 것일수록 아름답다.”고 한 게 대표적입니다. 괴테는 “야만인이나 무식한 사람, 어린이들은 선명한 색을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했죠.
조각상에 물감 자국이 너무 선명해서 빼도 박도 못할 정도가 되면 이들은 “그리스가 등장하기 전 다른 문명의 유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미국 아이오와대학의 사라 본드 교수는 “당시 학자들은 그리스/로마에서 비롯된 서구 미술이 이집트 등 다른 문화권의 미술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했고, 흰색 조각상을 그 증거로 여겼다.”며 “인종차별적인 인식이 눈을 가린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리스/로마 시대에서 다채로운 색은 건강과 지성, 성실성 등 긍정적인 요소를 상징했습니다. 현대인들과 달리 (고대의 – 옮긴이) 그리스/로마인들은 마냥 흰 피부보다는 햇빛에 그을린 갈색 피부를 선호했죠.서사시 『 오디세이아 』 에서 아테나 여신이 오디세우스의 모습을 노인에서 젊은이로 바꿀 때 나오는 대목이 이런 인식을 잘 보여줍니다. “그의 피부는 다시 검게 변했고, 턱수염은 푸른색으로 돌아왔다.”고요.
반대로 당시 사람들에게 흰색은 죽은 자가 있는 지하세계를 상징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큐레이터인 숀 헤밍웨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당시 사람들이 요즘 (박물관에 전시된, 새하얀 – 옮긴이) 그리스/로마 조각상들을 본다면, 자신들이 '귀신의 집'에 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 『 한국경제 』서기 2022년 양력 7월 30일자 기사
- 기사 원문 :
https://www.hankyung.com/life/article/202207293489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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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옮긴이(잉걸)의 말 :
결국, 서로마가 망한 지 즈믄 해(1000년) 뒤에 헬라스/로마 조각상들을 찾아낸 근세 유럽인들이, 조잡한 기술로 유물을 발굴했고, 그 때문에 망가진 유물들이 ‘원래 그대로인 모습’이라고 잘못 판단했기 때문에, ‘헬라스 – 로마 조각상들은 다 하얀색이며, 색칠한 것이 아니다.’라는 고정관념이 생겨난 것이다. 후세 사람들의 잘못된 연구와 오해가 고대사를 뒤틀어 버린 것이다.
(고백하거니와, 한국인인 나도 이와 비슷한 오해를 한 적이 있다. 나는 소년/청년시절에는 청동기가 처음부터, 그러니까 그것들이 처음 만들어진 때부터 짙푸르고 어두운 빛깔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옛날 지배층들은 저런 “초라한” 물건들이 뭐가 보기 좋다고 만들어서 가지고 다녔을까?’하는 의문을 품기도 했다.
나는 열 두 해 전에야 청동검이나 청동거울이 처음 만들어졌을 땐 황금처럼 빛나는 노란 빛이었다는 걸 알았고, 그래서 고대인들이 그걸 만들어서 위세품으로 갖고 다닌 건 당연했음을 깨달았으며, 청동이 시퍼런 색이 된 건 오랜 세월 땅속에 묻혀 녹이 슬었기 때문임을 알았고, 지금도 그 일[그러니까, 청동이 처음부터 시퍼런 색인 줄로 잘못 알았던 일]은 내게 부끄러운 과거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후손(오늘날의 한국인인 나)이 조상(아사달, 그러니까 ‘고조선’ 사람들)을, 이민자(문예부흥 시대의 유럽인들은 켈트인이나 게르만족이나 슬라브족이나 바이킹의 후손이었으니까)가 선주민(헬라스인/로마인)을 잘못 알 수도 있다는 것은 인정하고, 그런 위험성을 조심하면서 갈마(‘역사’를 일컫는, 순수한 배달말 낱말)를 연구해야 하는 건 아닐까? 나는 이 오해(이자 역사학의 실패)가 가르쳐주는 교훈들 가운데 하나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할 말은 또 있다. 미켈란젤로나 로댕 같은 위대한 유럽의 예술가들조차도 헬라스/로마 조각상의 본질을 잘못 알았고, 그래서 그 조각상들의 ‘흰색’에 집착했다는 사실, 그리고 빙켈만 같은 고고학자나 괴테 같은 위대한 작가/과학자/정치인도 – 유럽 백인 남성으로서 – ‘흰색’을 찬양하며 인종주의에 바탕을 둔 주장을 했다는 사실은 평범한 북방 황인종(‘몽골로이드’) 남성이자 동아시아인이고 한국인인 내게 큰 실망을 안겨준다는 사실이다.
결국 나는 나를 비롯한 비(非)서구세계의 사람들이 ‘위대하고 훌륭한 사람들’이라고 배웠던 유럽 백인들, 그것도 예술가/고고학자/작가/과학자들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그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결점이 있고, 상황을 잘못 알아차리며, 선입견에서 자유롭지 않고, (설령 많이 배웠다 하더라도) 잘못된 주장을 할 수 있다.’는 진실을 받아들여야 하며, 그들의 업적이나 좋은 점은 인정하되, 그들의 결점이나 판단착오나 한계는 엄격하게 비판/반박하고 ‘토’를 달아야 하는가?
어느 시인이 말했듯이, 인간이나 기구나 조직에 대한 “우상화는 죽음이니/(결코) 우상화하지 말라.”는 말을 마음속에 새기며 이 ‘뛰어난 사람들’의 갈마(그러니까, 개인사)를 파헤쳐야 하는가? 우리는 ‘위인’을 무작정 따르고 섬기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하는가? 지금으로서는 그것 말고는 달리 내릴 수 있는 판단이 없다.
이것도 이 기사가 나와 여러분에게 주는 ‘깨달음’ 가운데 하나이리라.
끝으로 세 마디만 더 하자면, 나는 이 기사를 인용하는 까닭을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이 기사는 한국과 서양에 강하게 뿌리내린 ‘흰색 숭배’가 올바른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을 알려준다. 유럽 백인인 옛 헬라스/로마 사람들부터가 흰 조각상이 아니라 다채로운 빛깔을 입힌 신상/조각상을 좋아했고, 헬라스 사람들이 같은 헬라스 사람인 오디세우스의 피부색을 ‘젊고 건강한 검은 색’으로 노래하며 찬양했으니 말이다(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흰색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피부색까지 하얘야 한다는 한국인들의 생각은 인종주의와 백인에 대한 사대주의와 유럽 중심주의에 무릎 꿇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어서 위험하다! 나는 흰색을 좋아한다는 것이 검은색이나 갈색이나 구릿빛이나 노란색을 싫어하는 것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 자리를 빌어 분명하게 말하고 싶다).
둘째, 이 기사는 “과거는 낯선 나라다.”라는 격언이 사실임을 입증한다. 오늘날의 한국인/서양 백인들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믿는 ‘하얗디하얀 헬라스/로마 조각상들’이 정작 그것을 만들어내고 색을 입힌 옛 헬라스/로마 사람들에게는 ‘귀신의 집에나 어울리는 무서운 물건’으로 여겨지니 말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도 찾을 수 있다. 중세/근세의 동아시아 사람들, 그러니까 황인종들은 검은 머리에 쌍꺼풀이 없고 가늘며 날카로운 눈을 미남미녀의 기준으로 여겼지, 오늘날처럼 ‘노란 머리에 쌍꺼풀이 있고, 눈이 크고 둥근 얼굴’을 미남미녀의 기준으로 여기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갈마와 과거의 참모습을 알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오늘날과 똑같을 것이다.’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그때에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말했고, 무엇을 추구했을까? 그때는 오늘날과는 – 좋은 쪽이건 나쁜 쪽이건 – 많이 다르지 않았을까? 모든 것은 직접 파헤쳐 보고 나서야 제대로 알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하며 다가서야 한다. 우리는 갈마와 과거 앞에서는 겸손해져야 하고, 그것들을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
셋째, 이 기사에 나오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조각상이 색을 입히자 ‘민망한’ 모습이 되었던 것처럼, 석굴암의 불상도 색을 입히자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낯설고 이상한 모습’이 되었는데, 이로 미루어볼 때 우리가 상상하던 과거는 정확한 것이 아닐 수도 있고, 우리가 아름답다고 여긴 것들은 생각했던 것처럼 아름답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그렇다면 옛 헬라스/로마의 신전들은 오늘날의 절이나 힌두 사원처럼, 화려하게 물들인 장식과 신상들로 가득 찬 곳이었단 말인가? 그건 내가 이제까지 봐 왔던, “새하얗고 깨끗하며 깔끔한 신전의 복원도”와는 많이 다르네?’하고 생각했고, ‘어쩌면 석굴암과 앙코르와트도 원래 모습은 그랬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렇다면, 어쩌겠는가? 우리가 판타지를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역사책을 쓰는 이상, 원래의 모습을 보다 정확하게 되살린 ‘복원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나아가 우리가 ‘옳다.’고 여겼던 미의식과 미학도 그 복원도에 맞춰 조금씩조금씩 바꾸는 수밖에.
나는 이 기사에 나온 아우구스투스 상 채색과 ‘색칠한 조각상들’을 보여주는 전시회가 그런 일을 하는 ‘시작’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어쩌면 한국의 역사학계와 고고학계와 미술학계도 – 나아가 그들에게서 배달민족의 미술사와 갈마를 배우는 한국의 대중들도 – 이 일을 참고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는 말을 덧붙이며 이 글을 매듭짓는다.
- 단기 4355년 음력 12월 4일에, ‘우리는 고정관념과 선입견으로 갈마를 배우거나 이해하면 안 된다. 믿을 건 믿되, 이상한 건 의심해야 한다.’ 고 생각하는 잉걸이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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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역사 마을 원문보기 글쓴이: 잉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