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남 김해시에 사는 40대 부부 A씨는 지난 2017년 한 다세대주택을 보증금 9500만원에 전세로 임대했습니다. 당시 부동산 계약을 중개한 건 중개보조원 B씨였습니다. B씨는 “집주인으로부터 전세계약 체결을 모두 위임받았다”고 자신을 소개하는데요. 전세임대차계약서 임대인과 대리인 연락처란에는 모두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적었습니다. B씨는 또 집주인에게 전해주겠다면서 A씨로부터 보증금 일부인 3000만원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모두 계획된 범죄였습니다. A씨는 2년 기간의 전세계약이 끝나갈 무렵 집주인 C씨로부터 뜻밖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집주인은 A씨에게 왜 그 집에 살고 있냐며 자신은 B씨에게 계약을 위임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데요. 이어 A씨에게 퇴거를 요청하며 건물 인도 소송을 제기합니다.
알고 보니 B씨는 상습 사기범이었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 같은 방법으로 사기 행각을 벌였고 결국 꼬리가 밟혀 대법원에서 징역 4년이 확정된 상태였습니다. 부동산 중개업무를 직접 수행하거나 임대차 등 부동산 계약서를 작성할 수 없는 중개보조원 신분임에도 유사한 범행을 거듭해왔던 거죠.
이 일로 A씨 부부는 결국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기초생활수급자 신세가 됐습니다.
#2. D씨는 지난 2020년 보증금 6000만원에 전세계약을 맺고 충남 천안의 한 주택에 입주합니다. 그런데 1년 뒤 한통의 우편물이 D씨에게 배달됩니다. D씨가 살고 있는 집이 경매에 부쳐진다는 내용의 금융기관 통보서였는데요. 알고 보니 피해자는 D씨만이 아니었습니다. D씨와 같은 상황에 처한 전세계약자만 수십명에 달했습니다.
무엇부터 잘못됐을까 계약과정을 살펴보던 중 D씨는 또다른 비밀을 알게 되는데요. 자신있게 집을 소개해준 공인중개사 E씨가 진짜 중개사가 아니었던 겁니다. E씨는 공인중개사가 아닌 중개보조원이었는데요. 계약 당시 임대인이 재력이 충분하기 때문에 전세보증금 떼일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건넨 것도 E씨였습니다.
수도권과 지방을 막론하고 전세사기 사건이 잇달아 불거지면서 전세계약을 둘러싼 불안감이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특히 상당수 전세사기가 공인중개사를 사칭한 중개보조원이 가담해 벌어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중개 과정에 대한 불신도 상당한데요. 공인중개사가 아닌 중개보조원이 소개하는 매물은 아예 처음부터 계약할 생각을 말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중개보조원의 매물 소개는 불법?
홍기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공인중개사협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한해 동안 공인중개사법 위반으로 기소된 43건 중 29건이 중개보조원과 관련된 사건이었는데요. 전체 공인중개사법 위반 사건 중 3분의 2 가량이 중개보조원이 이유가 된 셈입니다.
공인중개사법은 중개보조원에 대해 공인중개사가 아닌 자로서 개업공인중개사에 소속돼 중개대상물에 대한 현장안내, 일반서무 등 공인중개사의 업무와 관련된 단순 업무를 보조하는 자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중개사무소에 소속돼 매물 현장을 안내하거나 일반 서무를 돕는 등 공인중개사의 보조 역할을 하는 사람이 중개보조원인 건데요.
이처럼 중개보조원이 전세 매물을 소개하는 행위는 불법이 아닙니다. 사실 매물 안내는 중개보조원의 가장 주된 업무 중 하나인데요. 공인중개사가 직접 매물을 안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를 대신해주는 역할로 중개보조원을 고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위 사례들처럼 선을 넘는 경우입니다. 중개보조원이 직접 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하는 등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는 공인중개사 고유의 업무를 수행할 경우, 부동산 사기 가능성은 급증합니다.
공인중개사법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2. “공인중개사”라 함은 이 법에 의한 공인중개사자격을 취득한 자를 말한다.
6. “중개보조원”이라 함은 공인중개사가 아닌 자로서 개업공인중개사에 소속되어 중개대상물에 대한 현장안내 및 일반서무 등 개업공인중개사의 중개업무와 관련된 단순한 업무를 보조하는 자를 말한다.
◇공인중개사법 개정…중개보조원 사실 알려야
중개보조원은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없어도 소정의 의무교육만 수료하면 업무가 가능합니다. 별다른 자격 제한 요건이 없는 만큼 중개보조원이 수행할 수 있는 업무는 극히 제한적입니다. 매물 안내나 단순 사무 보조 등이 법이 허용하는 보조원의 역할인데요. 계약서 작성이나 부동산거래 신고, 매물 등록 등의 업무는 중개보조원에게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는 공인중개사만이 할 수 있는 업무인데요. 이를 어길 경우, 그 책임은 모두 해당 중개보조원을 채용한 개업공인중개사가 져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중개보조원이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매물을 단순히 소개하는 것을 넘어 중개에 가까운 행위를 하기도 하고 심지어 공인중개사 명함을 들고 다니며 직접 부동산 계약서를 작성하는 일도 있습니다. 이런 행위가 불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경제적인 이유로 눈감아주는 공인중개사도 적지 않다고 하는데요. 급여가 낮은 중개보조원을 활용해 더 많은 수수료 수입을 올리려는 일부 악덕 공인중개사들의 욕심이 불법적인 상황을 양산해내고 있는 겁니다.
이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막고자 공인중개사법이 개정됐습니다. 오는 10월부터 시행에 들어가는 개정 공인중개사법은 중개보조원으로 하여금 현장 안내 등 중개 업무를 보조할 때 반드시 자신이 중개보조원이라는 사실을 알리도록 명시하고 있습니다. 중개보조원임을 알리지 않을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는데요.
아울러 개업공인중개사의 중개보조원 고용에도 제한을 뒀습니다. 지금까지는 중개보조원 고용에 아무런 제약이 없었는데요. 오는 10월부터는 개업공인중개사와 소속 공인중개사의 5배까지만 중개보조원을 둘 수 있습니다.
다만 공인중개사법은 개업공인중개사가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기울인 경우에는 소속 중개보조원이 고지 의무를 위반하거나 정해진 수를 초과해 보조원들 둬도 개업공인중개사를 처벌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는데요. 해당 조항에 대해 법 개정의 취지를 반감시킨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무너진 부동산 중개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어느 때보다 엄격한 법 집행이 필요해 보입니다.
개정 공인중개사법(2023년 10월19일 시행)
제15조(개업공인중개사의 고용인의 신고 등) ③ 개업공인중개사가 고용할 수 있는 중개보조원의 수는 개업공인중개사와 소속공인중개사를 합한 수의 5배를 초과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18조의4(중개보조원의 고지의무) 중개보조원은 현장안내 등 중개업무를 보조하는 경우 중개의뢰인에게 본인이 중개보조원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려야 한다.
제51조(과태료) ②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에게는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1의4. 제18조의4를 위반하여 중개의뢰인에게 본인이 중개보조원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리지 아니한 사람 및 그가 소속된 개업공인중개사. 다만, 개업공인중개사가 그 위반행위를 방지하기 위하여 해당 업무에 관하여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하지 아니한 경우는 제외한다.
글: 법률N미디어 강창한 객원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