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부 : 비망록(備忘錄)
비망록(1)
비망록(2)
비망록(3)
비망록(4)
비망록(5)
비망록(6)
비망록(7)
비망록(8)
비망록(9)
비망록(10)
비망록(11)
비망록(12)
비망록(13)
비망록(14)
비망록(15)
비망록(1) / 박얼서
사막을 걷는 내내
포기해 버리고 싶은 맘, 주저앉고 싶은 맘
굴뚝같지 않았더냐
그러나, 끝내 완주해내지 않았느냐
시시각각 마음 졸여가며
기필코 완주하지 않았느냐
지독한 극한의 외로움 앞에서
끊임없이 흔들어대던 온갖 갈등들
눈물의 위대한 효능까지도
인생길 든든한
그림자로 남지 않았더냐.
비망록(2) / 박얼서
현관문을 나서기 전에
절대 빠뜨려선 안 될 것이 하나 생겼다
교통카드나 휴대전화처럼
반드시 챙겨야 하는 필수품이다
어느 누구라도 예외일 수 없다는
악성 바이러스와의 전쟁,
방역과 위생이야말로
COVID-19에 대항할 보검이로다
마스크 착용이야말로
오늘날 너와 나, 인류 앞에 들이닥친
시대적 소명인 셈이다.
비망록(3) / 박얼서
월드오미트 집계치로
전 세계인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3억여(328,432,861)명을,
사망자는 5백만여(5,557,074)명을 기록하고 있다
또 한 번의 새벽을 맞는다
2022년 1월 19일(수) 아침이다.
비망록(4) / 박얼서
후포항을 떠난 지 어느새 정오가 눈앞이다
무려 두 시간 반을 내달렸다
창밖은 여전히 짙푸른 수평선, 사막일 뿐이다
이런저런 생각들로 일탈이 깊어간다
섬에 내리면
왁자지껄 작은 초등학교가 있고
작은 교회도 있겠지
울릉도가
외갓집 같은 아담한 동네라 치면
독도야말로
순희네집 같은
외로운 외딴집일 거야
이끼 낀 돌담 틈 사이로
노을빛 바람소리
서툰 내 휘파람소리 제맘껏 드나들던
머나먼 내 동심을 빼닮은
너른 바다 위의 그린 섬
오아시스, 해상 낙원일 거야.
비망록(5) / 박얼서
행글라이더에 몸을 실었다
짚라인 경험 때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그땐
구명줄이라도 연결되어 있었는데
이번엔
잠시 지구를 떠난 셈이다
강둑을 넘고
청보리밭을 지나고
"우리는~ 말 안 하고~ 살 수가 없나~
날으는~ 솔개처럼~"
우화등선(⽻化登仙)이로다!
봄바람을 가르며 호수 위를 날고 있었다
날개가 돋아 신선이 되어 있었다.
비망록(6) / 박얼서
며칠 전부터, '함미 집 전주에 가자'며
낱말을 꿰맞추던 소율이가
벚꽃이 만개한 날
4월 8일(금) 함미집에 왔다
가로수 꽃길 화사한 벚꽃들마다
구이저수지 왕벚꽃까지도
서울놈 소율이를 환영하느라 아우성이다
좋아하는 장난감 인형도
뽀로로마저도 잠시 기억을 놓아버린
천사의 봄날이로다
소율이는
매일매일이 경이로운 두 살배기 천사다
오늘은 문득
녀석의 외조부를 뵙는 자리였다
바로 그때
불쑥 터져 나온 즉석 유레카
"하비가 두 개다!"
천사의 궁금증
그 예쁜 신비로움, 또 한 송이
화들짝 꽃 핀 날이다
엄마 아빠, 함미 하비, 모두
햇봄 햇살 같은 녀석에게 흠뻑 취해버린 날이다.
비망록(7) / 박얼서
유리 강철
같았던 지난겨울
아슬아슬한 빙판길
밤낮없이 걸어서 도착해 보니
새하얀 백목련
낯익은 저 얼굴.
비망록(8) / 박얼서
길을 가다, 땅바닥이 꺼져버린 것도 아니고
기둥뿌리가 무너진 것도 아닌데
생기발랄한 백오십육 명의 꽃다운 목숨들이
비명 압사하는 대참극이 발생했다
히말라야 극한 설산도 아니고
동굴 속 암흑에 갖힌 고립무원도 아닌
도심 서울의 한복판에서
벼랑 끝에 매달린 위험 위급 상황은커녕
하늘길도 바닷길도 아니었다
세계 10위권 선진국이라는 위상에서
이게 무슨 변고란 말이냐
왜 이런 황당한 참사가 벌어졌단 말인가
2022, 10, 29(토) 그날 밤
무고한 청년들이 우리 곁을 떠나던 날
예방, 출동, 응급, 비상..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선진화 시스템들이
세계 속의 자부심들이
하룻밤 사이에 와르르 무너져버린 날이다
외신들은 발 빠르게 전하고 있었다
"(accident was Bound to happen)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사고였다고"~가디언
"(Absolutely Avoidable) 절대적으로 피할 수 있었다고"~뉴욕타임즈
비망록(9) / 박얼서
- 코드를 꽂고
- 세제 1/2스푼을 넣고(맨 왼쪽)
- 전원을 눌러 점등된 눈금을 확인하고
- 급속에 맞춘 뒤
- 운전스윗치를 누르면, 끝
입원 전날, 아내가 내게 건네준 쪽지 한 장
세탁기 작동법이었다
뒤척뒤척 밤새껏 생각해 보니
이런 게 바로
'근심일지'
아내의 빈자리였다.
비망록(10) / 박얼서
약 먹는 시간을 깜박했다
오전을 조금 넘기고서야 그걸 알았다
이를 어쩌나
지금 이제라도 약을 챙겨 먹어야 하나
오늘은 그냥 빼먹어야 하나
고혈압은
약효가 딱 24시간이라는데,
약을 안 먹으면
오늘 남은 19시간 동안 고혈압이 불안하고
약을 먹게 되면
내일 아침에 겹칠 5시간의 약효 중복
저혈압이 걱정인 셈
모자라도 걱정, 넘쳐도 걱정
이것 참, 인생살이
어차피 갈등에 빠진 딜레마로다.
비망록(11) / 박얼서
예전엔 필수품 소지품 같은 것들이 있었다
손목시계
수첩과 필기구
비상금,
이 외에도
낱말사전과 옥편은
늘 손닿는 가까이에 두었다
요즘엔
넘쳐나는 역할들을 휴대폰이 대신하는 세상이다
날짜 요일 시간
일정 장소 약속 메모 예약
길 찾기 안내
카메라 영상 녹음 녹화 화상통화
지식백과는 물론
주식 거래와 통장 입출금 및 잔액
주간 일기예보
실시간 지구촌 반대편까지
넘치는 정보 속에
심지어 가짜 뉴스까지 설치는 세상이다
한 마디로 모바일 만능시대다
이것 하나만 손에 쥐면
온갖 일상들이 손쉽고 편리해지는 셈이다
뭐든지 궁금하다 싶으면
아무 때고 두드려 물어보는 구글링
즉문즉답에 익숙하다
누구는 휴대폰을 분실한 뒤
그때 그 불안감이 공황장애까지 이어져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단다
문명이라는 편리성들이
습관적 의존성으로 악순환 되는
인공지능의 시대다
첨단 문명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다
인간성 상실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다.
비망록(12) / 박얼서
상강 무렵에
큰 장마가 닥쳤지
물난리와 산사태
설상가상으로
윗동네 댐까지 터지는 바람에
무너지고 마구 떠내려가고
난리도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네
이승과 저승 사이라는 게
겨우 문턱 하나 차이라더니,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목숨만큼은 건졌다는 거야.
비망록(13) / 박얼서
내 발길에 짓밟힌 야생의 풀꽃들에게
문득이라도 미안해 보았던가
억겁에 지친 세월에게
단 한 번이라도 위로해 본 적은 있는가
잘못된 역사라며
마치 남의 일처럼 탓할 줄만 알았지
나는 또 어떤 존재인가
백사장 모래알 같은
우리는 또 어디서 온 존재인가
친구야,
우린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걸까
흐르고 흘러
여긴 지금 어디쯤일까.
비망록(14) / 박얼서
여명 새녘부터 '찍찍' '짹짹'
울안의 감나무 우듬지를 찾아온 산까치 한 쌍
오늘을 크게 환호하더니
그래서 였을까
화들짝 낭보가 날아들었다
화양연화 시절 내내
스스로 선택한 것들 마냥 동경하고 사랑하더니
Never give up, Never give up,
고독한 그 발길
자나깨나 멈추지 않더니
천금 같은 젊음을 내걸고
자신을 향한 채찍질 한층 더 가혹하더니
끝내 정상을 밟고 섰구나!
온갖 시름 몽땅 다 앗아가 버린 날
백발 명중을 확인한 기쁨의 순간이 이러했을까
잊지 못할 엄청 큰 선물이었다.
비망록(15) / 박얼서
2023년도, 대학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가 견리망의(見利忘義)란다
시비곡직 그마저도 내팽개쳐진 시대
오늘을 통찰하고 일갈한 셈이다
황금만능에 순치된 세상사 경제 논리
탐욕을 늘 경계할 일이다
의욕은 과욕을, 노년은 노욕을
시시때때로 경계할 일이다
새벽을 좇는 선각들이여, 여명을 여명답게
오늘을 마치 내일처럼 조각하라.
epilogue(1)
한때는 우러러뵈던 것들이 있었다. 사시(司試) 혹은 행시(行試)를 패스했다느니, 개천에서 용이 났다느니, 하는 소문들이었다. 누구든 한 번쯤 도전하고픈 꿈이었을 터이다. 하루아침에 판사 혹은 검사 또는 사무관으로 임용되는 벼락출세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사실 고시 합격이란 신언서판을 능가하는 신분상 보증서 같은 거였다.
그런데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고시(高試) 패스를 했어도, 대학교수, 의사, 건축사, 변호사, 회계사라는 고급 직함을 내밀어도, 그저 다양한 전문직종 중에 어느 하나라는 생각이 들 뿐, 어떤 신분적 위상이나 권위는 느낄 수 없음이다. 사회적 인식과 기능들이 진화 발전하는 과정에서 자리잡은 선진적 의미로 해석된다.
우린 지금 GDP 세계 10위권의 선진국으로 부상했다. 거기 더해 지구촌이 부러워할 만한 문화 강국으로서 세계 무대를 누비며 꾸준히 위상을 높여가고 있다. 하지만 여기저기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나날이 불어나는 외형적 몸집에 비해 왠지 모르게 불확실성에 대한 허전함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심리적 불안 때문이다. 신비감이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그동안의 여러 희망과 의욕들도 신비로부터 비롯된 것들이다. 신비감이야말로 희망을 싹 틔울 미래 가치의 씨앗이라는 생각이다. 인생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탐미는 신비로움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잠시 벤젤피터(Wenzel Peter)의 작품 『에덴동산』 속으로 발길을 옮긴다. 아담과 이브가 동식물 자연과 함께 하나의 가족을 이룬 낙원이로다. 원시 생태를 잘 묘사한 작품이다. 사자와 토끼, 독수리와 닭이 함께 어울리고, 경쟁과 다툼이 없이도 의식주 걱정 없는 무위자연의 세상, 평화로움 그대로였다.
하지만 에덴동산을 쫓겨나게 된 사람들, 인류의 역사는 그런 식으로 시작되었다. 인류 스스로 신비로움을 지켜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함께 나누려는 노력보다는 그걸 소유하려는 욕망이 더 큰 탐욕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인간의 탐욕은 천지창조 정신과 맞물린 예견된 숙명이었을 수도 있다.
이처럼 인간의 본질은 욕망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욕망이 바라봐야 할 지향점은 언제나 선(善)을 추구해야 함이다. 선을 이탈한 욕망은 위선이 되어 거악으로 발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탐욕인 셈이다. 그러한 위험성 앞에, 시비곡직의 가치 그것의 경계선마저 모호해져 가는 작금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오늘날 자연 생태가 신음하고, 악성 바이러스가 출몰하고, 불신이 깊어가고, 가정이 붕괴되고, 인간관계는 점점 더 멀어지고, 인구는 나날이 급감하고 있으나 갈등은 점점 더 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몹시 아파하는 모습이다. 괴로워하는 모습이다. 무언가 처방이 절실해 보이는 것이다.
마음이 없으면 바라보아도 보이지 않고, 귀를 열어도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먹으면서도 그 맛을 아예 모른다고 했다. 마음과 마음들을 활짝 좀 열어둘 일이다. 곁에 다가가 세상을 귀담아들을 일이다. 우리 다함께 공감을 회복할 때이다. 초심을 회복할 때이다.
젖먹이 시절부터 모성을 익히고, 체온을 익히고, 사랑을 배웠던 선한 잠재력을 되찾아야 할 때다. 아름다움을 신비로움을 감성 깊이 되찾을 일이다. 인류 사회가 추구하는 공동선, 행복의 기준 또한 슬기로움에서 찾을 일이다. 선함이 가장 큰 가치인 셈이다.
epilogue(2)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1968)는 '장애는 불편하다, 그렇지만 불행한 건 아니다'라면서 우리에게 위대한 희망을 가르쳤다. 그녀는 평생을 보고 듣고 말하지 못했어도 한 시대의 스승처럼, 모성처럼 기억되는 인물이다. 여기서 잠시 헬렌 켈러의 『사흘만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을 함께 공유해보자.
“첫째 날, 나는 친절과 겸손과 우정으로 내 삶을 가치 있게 해 준 설리반 선생님을 찾아가, 이제껏 손끝으로만 보았던 그녀의 얼굴을 몇 시간이고 물끄러미 느껴보면서 그 모습을 마음속 깊이 간직해 두겠다. 그리곤 밖으로 나가 바람에 나풀거리는 아름다운 나뭇잎과 들꽃들 그리고 석양에 빛나는 노을을 보고 싶다.
둘째 날, 먼동이 트며 밤이 아침으로 바뀌는 웅장한 기적을 보고, 서둘러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박물관을 찾아 인간이 진화해 온 궤적을 눈으로 확인해 볼 것이다. 그리고 저녁엔 보석 같은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하루를 마무리하겠다.
셋째 날에는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 아침 일찍 큰 길가에 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살펴보고, 점심땐 오페라하우스와 영화관에서 공연을 보고 싶다. 어느덧 밤이 오면 반짝이는 네온과 쇼윈도의 아름다운 광경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삼일 동안 눈을 뜨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겠다. 그리고 다시 암흑의 세계로 돌아가겠다.”
윗글을 펼칠 때마다 'Turn your scar into a star (상처를 별로 바꿔라)'라는 격언을 떠올리곤 한다. 생각해 보면, 헬렌 캘러는 이미 밤하늘에 영원한 별이 되어 세상을 널리 밝히고 있는 셈이다.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고 언어마저도 불가능했던 그녀였지만, 절망을 초월한 심미적 혜안과 염결한 상상력들이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명상이다.
어느 누구든 눈만 뜨면 마주하는 것들이었는데, 평범하기 짝이 없는 소소한 일상들이었는데, 헬렌 켈러에겐 일생일대의 간곡한 버킷리스트였다는 점이다. 읽는 내내 그녀와 함께 영롱한 별밤을 지새운 느낌이다. 그 청순함이 하늘을 감복시키고도 남을 만큼 순수하고 소박하여, 눈물샘 가득가득 그렁그렁하기 일쑤다.
단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우리네 인생살이다. 어찌 보면 장애인이라는 상처도 예측 불가능에서 시작된 셈이다. 누구에게나 신체적 장애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마음의 상처다. 삶의 아픔인 셈이다. 설령 운 좋게 오랜 장수를 누렸다손 치더라도 늙음이라는 노년의 장애를 비켜 갈 수 없는 게 생로병사의 이치다. 여기엔 그 어떤 예외적 존재도 있을 수 없음이다.
아침에도 문득 길 위에서 교통사고를 목격할 수 있었다. 눈뜨면 떠밀려야 하는 시대적 급류 속에서 우리를 위협하는 요인들은 점점 더 늘어날 수밖에 없고, 각종 사고의 위험성은 나날이 더 누적될 수밖에 없다는 게 현실이다. 너와 나 할 것 없이 우리 다 함께 극복해야 할 불확실성이다.
80억 인류의 약 15%가 사회적 약자라는 통계다. 분류상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고통과 어려움을 감수해야 할 취약계층은 장애인일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더 깊게 고민하고 더 충분한 배려를 통해 접근해야 할 사회적 현안들이다.
장애인의 날이 제정된 지도 어언 40여 년을 훌쩍 넘겼다. 장애인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를 높이고 장애인들의 재활 의욕을 돕기 위해 법정 기념일로 제정된 이후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과 인식도 크게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모두의 꾸준한 노력의 결실이라는 생각이다.
육교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저상버스가 운행되고, 뉴스 속에 수화가 등장하고, 도서관마다 점자책이 비치되는 등.. 장애인을 위한 생활 밀착형 도움시설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음은 우리 모두가 염원하는 세상, 건강한 복지사회를 계측하는 가늠자다. 우리들 스스로의 자부심일 터이다.
하지만 미진한 부분도 없진 않다. 신체적 장애를 거론하기에 앞서 장애를 바라보고 대하는 너와 나의 인식의 장애가 더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들이 겪는 고통과 불편을 눈앞에 바라보면서도, 내 작은 불편을 앞세운 적은 없었는지? 스스로 자신을 먼저 살펴볼 일이다.
우리 다 함께 꼭 기억해야 할 게 있다. 어느 누구든 장애인이고 싶은 사람은 없다는 점이다. 어느 누군가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나와 내 가족에게도 반드시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좀 더 다가가 보면, 우리 국민의 약 5%나 되는 250만 명 정도가 장애인이라는 현실이다.
오랜 세월 동안 인류는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이라는 야생의 법칙을 놓고 끊임없는 갈등과 경험을 축적해왔다. 쉼 없이 이를 순치시켜 온 셈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야말로 우리 다 함께 추구해 온 보편적 가치로서 경천애인(敬天愛人) 즉 위대한 박애정신과 맞닿아 있는 셈이다.
epilogue(3)
그러고 보니,
만 2년만이다. 2022년도 1월에 출간했던 제7시집 『숲길을 거닐며』를 내놓은 뒤로 많은 일들을 겪었다. 그 중에서도 이곳저곳 동분서주하며 가장 빈번히 드나든 곳이 병의원이었다.
하지만 요즘엔
무리하지 않기 위해 등산이나 섬 여행은 좀 자제하는 편이다. 가벼운 동네 산책을 자주 즐기는 편이다. 어쨌든 서두르지 않으려 더 노력하는 중이다. 더 느린 걸음으로 일상의 여유를 찾아가는 중이다.
해묵은 2년 전의 원고를 펼쳤다. 다 때가 있는 법이라, 저서 또한 출간의 시기를 놓치면 트렌드와 콘텐츠가 제각기 따로 노는 셈이다. 늦게나마 허겁지겁 서둘러 보았다. 교정하고, 끼워 넣고, 줄 세우고..
보름간의 작업 끝에 한 권의 시집으로 엮어낼 수 있었다. '삐~삐~경고음(1)(2)(3)(4)'를 담고 있는 제3편 『중병(重病)을 앓는 지구촌』을 이번 시집의 문패로 내걸었다.
단 하나뿐인 지구별, 우리가 이를 꼭 지켜내야 하는 이유다. 눈앞에서, 죽느냐 사느냐를 다퉈야 하는 응급 상황만큼은 절대적으로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생태와 환경, 이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의무인 셈이다. 우리 모두의 관심이 절박한 시점이다. 미래 세대로부터 빌려 온 내일을 어김없이 되돌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갑진년 정월에, 박얼서 배상
▼박얼서 약력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
한국문인협회 전자문학위원
'문예가족' 동인
에세이집으로
<새벽을 쓰고, 아침을 전하다> 外
詩集으로는
<중병(重病)을 앓는 지구촌> 外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