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全 세계 주부 사로잡은 비결은"
휘슬러(Fissler)는 압력솥, 냄비, 프라이팬, 나이프, 조리 도구 등을 파는 주방용품 브랜드다. 전 세계 72개국에 약 500여종이 넘는 주방용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1845년 발명가 출신 카를 필리프 휘슬러(Carl Philipp Fissler)가 창립한 이 회사는 독일의 작은 마을인 이다-오버슈타인(Idar-Oberstein)에 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열차로 3시간이나 들어가야 하는 곳이지만 170년 동안 본사와 공장을 한 번도 옮기지 않았다.
모든 것을 독일에서만 만드는 독일제(Made in Germany) 전략을 구사하는 이 회사는 굳건한 '장인'의 이미지를 구축해 왔다.
그런데 이 회사의 마케팅은 더 독특하다. 명품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예술로 주방용품을 표현하는 '아트 마케팅'을 도입했다.
마커스 케프카(Kepka) 사장이 한국을 찾은 것도 여러 예술인과 협업, 음식을 만드는 행위를 예술로 표현한 전시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이런 것을 이른바 '비자트(bizart)'라고 하는데, '비즈니스'와 '아트'를 합성한 말이다. 과연 밥솥이나 냄비 같은 분야에 이런 마케팅이 의미가 있을까.
비자트 또는 아트 마케팅을 활용하는 이유는 '항상 소비자를 즐겁게, 행복하게 해주자'것이다.
단순히 제품의 질만 가지고는 안 된다. 주부들이 매일같이 접하는 주방용품에 애착을 갖게 해야 한다. 단순히 사용하는 것을 넘어서 이 제품을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는 얘기다. 휘슬러는 꾸준히 예술을 활용해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한다. 소비자와 브랜드의 친밀도, 애정은 생각보다 강력한 마케팅 전략이기 때문이다.
비지트 마케팅에는 돈이 많이 들어가지만 여기서 얻는 홍보 효과는 텔레비전에 광고를 내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다.
남들과 똑같은 방식으로만 일한다면, 절대 차별화된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아트 마케팅은 고비용 전략이다. 하지만 휘슬러를 알리고, 제품을 판매하는 데 더 효과적인 전략이다. 휘슬러는 '사고 싶은 제품'이 아니라 '원하는 대상'(a product wanted than bought)이 되는 게 목표다.
브랜딩보다 제품 자체가 더 중요하지만 브랜딩 없이 소비자에게 기억되고 오랜 세월 사랑받기는 어렵다. 브랜딩은 소비자와의 약속이며, 그리고 그 약속은 제품의 퀄리티(질)로 지켜져야 하기 때문이다.
전시회에 온 사람들이 감동을 해서 '이렇게 예술을 중시하는 회사는 어디지?'라며 휘슬러에 대해 궁금해할 것이다. 그리고 제품을 산다. 그리고 나서 제품의 질을 통해 휘슬러에 가졌던 기대와 애정에 보답을 받을 것이다. 만약 전시회에 왔고 휘슬러에 대해 알게 됐는데, 이후 제품을 접해보고 실망하게 된다면, 배신감은 더 클 것이다. 다시는 그 브랜드의 제품을 사지 않을 것이다.
170년 동안 휘슬러의 브랜드가 지속될 수 있던 비결은, '품질이 첫째'라는 원칙 덕분이다.
휘슬러는 혁신에 기반을 둔 제품을 만든다. 제품에 어느 정도 자신이 생긴 다음에 브랜딩에 힘쓰는 것이 맞다고 케프카 사장은 말한다.
그는 다른 업종인 애플의 기업 전략을 참고하기도 한다.
애플이 브랜드 가치가 매우 높고 제품의 질도 우수하기 때문이다. 연구·개발(R&D) 부서의 직원들은 늘 그에게 '제품 개발을 위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는 그들에게 제품만큼 브랜드에 대한 투자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삼성이 더 나은 제품을 가지고 있지만, 애플이 더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이 팔리는 것만 봐도 브랜딩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그는 구치와 루이뷔통 등 력셔리 브랜드의 전략도 연구한다. 가격이 비싸도 소비자들은 명품을 원한다. 수백, 수천 배의 가격 차이에도 소비자들은 명품 가방을 원하기 때문이다.
♡ 휘슬러만의 성공 방정식
휘슬러가 170년간 성공적으로 기업을 유지할 수 있었던 요인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브랜드에 대한 일관된 투자다.
휘슬러는 같은 공장에서 170년 동안 제품을 생산하며 '독일에서 만들어진 제품(made in Germany)'이라는 브랜드 정체성을 확립했다. 장인 정신을 내세워 이 제품을 '명품'으로 시장에 각인시켰다.
상당수의 유럽 회사는 국가 이미지를 브랜드 마케팅 전면에 활용해 왔다.
명품 의류업체 로로 피아나는 이태리 특정 지역의 모직을 사용한다는 점을 활용해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었다.
스위스 시계도 오랜 시간에 걸쳐 스위스에서 제품을 생산한다는 점을 내세운다.
사실 휘슬러도 베트남 등지에 현지 공장을 지은 뒤 철저한 품질 관리를 통해 생산하는 것이 원가 경쟁력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회사는 독일에서 170년 동안 생산해왔다는 것을 '높은 품질'과 동일시했고 이를 장시간 브랜드 이미지에 주입해왔다.
실제 생산에 비용을 더 쓴 만큼 제품 가격도 높게 책정했다. 이를 효과적으로 브랜드 이미지에 각인시켰기 때문에 프리미엄 제품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같은 주방용품 업체이지만 테팔은 프랑스 업체라는 점보다 제품의 기능성을 알리는 데 초점을 맞춘다. 중저가 시장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의 힘이다. 프리미엄 브랜드는 소비자에게 그 가치를 설명하는 스토리를 전달하고 그 제품을 소비하고 싶도록 환상을 심는다. 이는 제품의 부품이나 성능 등에 대한 장황한 설명과 다르다.
휘슬러는 전시회 마케팅 등을 통해 주방이 일상적인 일을 수행하는 공간이 아니라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공간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합리적으로 소비자를 설득하는 것이 아니다. 소비자에게 환상을 심어주고 이를 통해 정서적 교감을 시도하는 것이다.
소비자는 현실에는 없는 주방의 이미지를 만들고 그 안에서 해당 제품을 사용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이는 소비자가 제품의 필요성을 고민하기보다 무조건적인 갈망을 갖게 하고자 하는 방법이다.
고객은 수요의 합리성을 따지기 전에 '제품을 간절히 원한다'는 생각으로 지갑을 열게 된다. 통상적인 가격보다 비싸도 개의치 않는다. 이것이 명품 브랜드들이 흔히 쓰는 마케팅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을 성공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주방용품은 나라별로 다른 식습관과 그에 따른 주방 환경, 요리법 차이로 수요가 다양하다. 이 때문에 보통 해당 국가의 토종 브랜드들이 강세를 보이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전 세계적으로 브랜드의 정체성은 일관되게 끌고가면서 시장별로 제품과 마케팅은 현지화하는 것이 좋다.
휘슬러는 이 부분에서 '글로컬라이제이션'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제품의 현지화를 위해서 해당 국가 고객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실시하고 독일 공장에 한국 주부 전용 라인까지 갖췄다는 것은 인상적이다.
실제로 한국, 중국, 일본의 휘슬러 홈페이지를 조사해 본 결과, 같은 아시아권 내에서도 국가별로 마케팅 전략이 조금씩 달랐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는 한국보다 더 프리미엄 제품으로 이미지를 만들고 명품 소비층을 공략하고 있었다. 실제 휘슬러는 한국, 중국 등 아시아 시장에서 감성 마케팅을 통해 얻은 성공 방정식을 독일 및 유럽 시장에 거꾸로 적용하려고 시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