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앞에서 신은 인격체가 아니라 에너지라고 말했다. 이 말을 명심하면 아무 어려움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신을 하나의 인격체로 생각한다면 그대는 큰 곤경에 처할 것이다. 신을 에너지로 받아들이면 아무 어려움도 없다.
신을 하나의 인격체로 간주하는 개념이 큰 어려움을 초래한다. 마음은 신을 인격체로 만들고자 한다. 그래야만 모든 책임을 그에게 돌릴 수 때문이다. 우리는 그에게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아주 사소한 일들까지 그의 탓으로 돌린다. 어떤 사람이 직업을 구하면 그는 신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직업을 잃어버리면 신에게 화를 낸다. 종기가 난 사람은 그것을 신의 탓으로 돌린다. 그리고 종기가 다 나으면 신에게 감사한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신을 이용한다. 신이 우리의 종기에 대해서까지 걱정해야 하는가? 이 얼마나 이기적인 발상인가? 그러나 우리는 이런 점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길에서 동전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았을 때 우리는 ‘내가 동전을 찾은 것은 신의 은총이야.’라고 말한다. 우리는 신이 우리의 돈 1원까지도 지켜주기를 원한다. 이런 생각이 우리의 마음을 흡족하게 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면 우리가 세상의 중심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신을 대하는 태도는 주인이 하인을 다루는 태도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신이 우리의 문 앞에 보초를 서면서 단 돈 1원까지도 지켜주기를 바란다. 이렇게 신을 하나의 인격체로 생각하면 많은 이득이 있다. 모든 책임을 쉽게 그에게 덮어씌울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구도자는 스스로 책임지는 사람이다. 사실, 구도자가 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지는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대의 삶이 슬프다 해도 그것은 그대의 책임이다. 그대의 삶이 행복한 것도 그대의 책임이다. 그대가 평화롭다면 그 평화는 그대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그대가 불안하다면 그 불안은 그대 스스로 만든 것이다.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져도 그것은 그대의 실수이지 중력을 탓할 수는 없다. 이런 자세를 가지면 이때 그대는 올바르게 이해한 것이다. 이때에는 재난의 의미가 전혀 달라진다.
그러므로 준비가 된 사람에게 은총은 커다란 축복이라고 나는 말한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모든 일에는 적합한 순간이 있다. 이 순간을 놓치는 것이 큰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