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34년 전 1972년에
아리따운 만 18세의 어린나이의 아가씨가
인문계 진학을 원했지만 가정 형편상
간호학교를 가야만 했던 너가
배운 간호사직을 가지고
가난했던 우리나라의 경제발전과
동생들 공부에 도움이 되고자
낯설고 물설며 언어와 문화가 다른 이 이국땅에
부모 형제 멀리하고 바다건너 떠나온 너.
살아가는 삶 속에 그중 하나로
사랑하던 남편 Hans를 만나 아름다운 가정을 꾸미고
그 사이 태어난 딸 Sonja를 예쁘게 열심히 키우면서
병원에서 능력 있는 수술실 간호사로 인정받으며
이웃의 사랑과
후배들에게 언니로 대우받고
친구들과 함께 항상 명랑하고 깨끗한 목소리로 우정을 나누던 너!
조금만 더 일하다가 한국 나가서
양동에 계시는 늙으신 어머니를 모시고
엄마 곁에서 살고 싶다고 하던 너!
하나있는 Sonja 가 너무 똑똑하고 예뻐서
걱정이 없다고 좋아하면서
사과같이 빠알간 볼에 환한 웃음을 짓던 너!
지난 6월에 너의 집에서 모인 동기회는
어느 때 보다도 길게 하룻밤을 더 연장하며
마지막 날 너의 손으로 직접 잔칫집국수를 해 주면서
맛있게 먹는 우리를 보면서 성공했다며 기뻐하던 너!
10월 20일에 34년 만에 처음으로 있을 동문회에 참가하기 위해
비행기표를 제일먼저 준비하고
출국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너!
너의 집 주위는 공기도 좋고 새 울음도 좋다고 뽐내며 자랑하더니
들국화 피는 이 가을 이 시간에
너의 딸이 전해주는 너와의 영원한 이별의 소식은
우리들의 귀를 의심하며
진실이 아니길 바랬다.
이렇게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다니
3년 전 사랑하던 남편을 잃어버리고
그 빈자리가 얼마나 아프고 외로왔으면
너의 심장이 마비가 될 정도였을까.
조금은 슬프더라도
조금은 외롭더라도
혼자서 꿋꿋이 잘 살아가리라 믿었는데
그렇게 가버리다니
다시는 볼 수 없다니
너무 슬프구나
너무 허무하구나.
조금은 더 행복하게 살아야 할 권리가 있는데
조금은 더 누리고 살아야 하는데
경아!
우리가 나란히 걷던 유월은 저 만큼가고
지금 너를 보내야 하는 목이 메이는 이 10월에
너의 카랑한 목소리와 환한 웃음이 물안개처럼 피어 나오는데
마지막으로 너에게 편지를 띄운다.
사랑하는 원경아!
우리 이 세상에서 만나
친구로 지내던 것을 감사한다.
우리 모두
정이 많고 늘 따뜻하던 너를
너와의 추억을 잊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았던 너를
그렇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우리들을 남겨놓고
한줌의 흙이 되어 고향땅을 찾아가게 된 너에게
하느님 품에 안겨 평안하고 영원한 안식을 얻기 바란다.
다시 한번
한줌의 흙이 되어
고향을 가는
원경이에게
안녕을!
2006년 10월 6일에 동기생들이
PS : 순희의 글과 선희의 글을 합쳐서
내 나름대로 조문을 만들어 보았다.
장례식때 낭독한 글을 여기 올려본다.
첫댓글 그렇게도 원하던 고향땅에 안식하지 못하고 뭐가 급해 서둘러 떠나야만 했나요. 하늘나라에서 평안하고 영원한 안식얻기 기도드립니다.
하나님 품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하고 계실 겁니다.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기다리겠지요. 평안히 쉬세요~`
구구절절 너무나 애통한 사연들이구나...... 걱정없고 평안함만 있는 저세상에서 편히 쉬길 기원 한다 옴 아모카 바이로 차나 마하 무드라 마니파드마 즈바라 프라 바를 타야 훔......
너무나 슬프고 아프고 가슴이 울컥거립니다. 억울하고 애통하고 우린 어쩌라고 언니.......고이 잠드소서!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원경이의 커다란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듯 하구나....
그래 너의 말이 맞다. 아직도 내 마음이 허전하며 이상하다. 영희야 하고 부르는것 같기도 하고. 오래 가겠지?
영희야 고맙다..이렇게 친구들이 올린 마음의 글을 모아서 원경이의 영전에 담아 주었다니..역쉬 영희는 책임성과 열성이 뚜렷한 내 친구다,,,원경이의 발간 볼과 자지르지듯 웃던 웃음소리...귀에 쟁쟁하다...고마워!!
삼가 애도의 뜻을 전합니다. 하늘나라에서 고이잠드소서, 저의 친언니가 원경언니랑 초등동기죠, 어쩜 둘다 그렇게 짧은 운명을 타고 났을까요. 통곡하고싶습니다~~~ 카페가 없었다면 어찌 알았을까요. 양순언니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