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대전에서의 지난주 '전통가곡 연주회'를 마치고, 지역 신문(대전일보)에 연주회 후기로 실린 글입니다. 우리 식구들과도 연주회의 감동을 함께하기 위해 올리니, 이 글과 더불어 이 계절과 어울리는 제 강의 방에 실려있는 전통 가곡을 다시 한번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느려서 아름다운 음악 ․ 여백이 있어 넉넉한 음악 ․ 전통 가곡 연주회.
좋은 계절, 가을의 한가운데인 요즈음 이곳저곳에서 다양한 장르의 음악회들이 열리고 있다. 여러 음악회들 중에 예로부터 많은 선비들을 배출한 이 고장 대전에서 더욱 그 존재 가치가 빛나는 《해설이 있는 전통 가곡 연주회》를 지난 주 이틀에 걸쳐 ‘엑스포 아트홀’과 ‘카이스트 대강당’에서 가졌다.
연주는 서울대학교 김정자교수가 회장을 맡고 있으며, 올바른 전통 가곡을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2003년도 설립되어 서울을 중심으로 연주활동을 하고 있는 ‘전통가곡연구회’의 회원들과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4호 가곡 예능보유자인 한자이선생과 역시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가곡 이수자인 김재락씨가 맡았다. 연주회가 열리고 며칠이 지났지만, 가슴 가득 그 음악의 여운이 남아 있어 감동을 추스르는 마음으로 가곡에 대한 지적인 배경을 몇 자 적어본다.
‘님은 갔습니다. 아 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로 시작하는 만해 한용운님의 시에 선율선을 붙인 창작가곡 <님은 갔습니다>와 조선조 숙종 시기 문인(文人)인 남구만의 평시조 <동창이 밝았느냐>를 그 노랫말로 가지고 있는 전통가곡 <우조 초수대엽>을 시작으로 모두 15곡이 두 곳의 공연장에서 연주되었다.
가곡(歌曲)은 전통적인 정가(正歌)에 속하는 우리나라 고유의 가악(歌樂)으로, 불교음악인 범패(梵唄)와 민속성악인 판소리와 더불어 우리나라 삼대 성가(聲歌)를 이루고 있다. 정가는 본래 정악(正樂)에 포함되는 가곡 ․ 가사 ․ 시조를 모두 일컬어 부르는 이름이며, 이 세 장르의 성악곡들 중에 예술적으로 가장 정제된 음악이 바로 이번에 연주된 가곡이다.
성악곡에서 가장 중요한 음악적 요소는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가사인데, 가곡에서의 가사는 우리에게 익숙한 시조시(時調詩)들이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시조시는 초장 ․ 중장 ․ 종장의 삼장 형식을 취하고 있는 반면, 가곡은 그 삼장을 다섯으로 나누어 노래하는 오장 형식으로 되어 있다. 물론 성악곡의 기본 틀을 갖추기 위해 본 곡 전에 관현악으로만 연주되는 전주격인 ‘대여음(大餘音)’이 연주되고, 1 ․ 2 ․ 3장이 불려 진 다음 간주격인 ‘중여음(中餘音)’이 연주된다. 그 ‘중여음’에 이어서 나머지 4장과 5장의 노래 말이 불려진다.
이렇게 진행되는 전통 가곡은, 매우 격조 높은 음악으로, 같은 정가에 포함되지만 장구 반주 하나로만 아니면 몇몇 악기의 반주로만 연주되는 ‘가사’나 ‘시조창’과는 달리 관악기와 현악기, 그리고 타악기인 장구가 구비된 관현악 반주에 의해서만 연주되는 격식을 갖춘 악곡이다.
그 음악적 얼개인 선법에 있어서는 크게 우조와 계면조로 나뉘는데, 각 선법에 따라 악곡의 분위기가 달라지기 때문에 각 음악에 적용되는 노랫말의 내용 역시 상이하다. 즉, 우조는 담대하고 힘찬 느낌을 지니고 있고, 계면조는 다소 쓸쓸하며 한적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노래는 남창(男唱)과 여창(女唱), 그리고 남녀창(男女唱)으로 불려지는데, 나라에 대한 충(忠)과 남아(男兒)들의 원대한 이상의 내용을 담고 대인군자(大人君子)의 넉넉함을 표현하는 내용은 남창(男唱)으로 불리며, 그 내용이 주로 서정적인 것은 속청으로 가늘고 곱게 불리는 여창(女唱)으로 불리고 있다.
이 처럼 두 선법에 따라 곡의 분위기와 노랫말이 다르지만, 가곡의 곡태(曲態) 즉 그 음악의 표현 기법을 통해 우리 옛 선비들의 생활철학이나 사고방식의 근본 등을 엿볼 수 있다. 바로 기뻐도 넘치지 않고(樂而不流), 슬퍼도 비통해 하지 않는(哀而不悲), 절제와 중용(中庸)의 도(道)를 실천하는 우리 옛 선비들의 담담하고 고아한 정서를 이 음악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이 때문에 우리 조선조 선비들께서는 이 음악 ‘가곡’을 즐기기 위해 그들의 사랑방을 풍류방으로 만들어서 벗들과 어울려 직접 연주도 하며 그 토록 아끼고 사랑하셨던 것 같다. 이 때 형성된 풍류방 문화는 지금까지도 대표적인 선비의 고장 이 곳 대전에서 그 맥이 잘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이와 같이 풍류음악의 저변 확대가 이미 잘 구축되어 있는 대전에서의 이번 ‘전통가곡 연주회’는 숨겨져 있는 지방문화 되찾기의 실현의 장이 되었으며, 다시 한번 예(禮)의 고장 우리 대전의 음악미적(音樂美的) 성향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음에 틀림이 없다.
마지막 연주곡인 남녀창(男女唱) ‘태평가’의 내용처럼 우리 고장 대전에 나아가서는 온 나라에 태평성대(太平聖代)가 이루어지길 기원하고, 연주회장에서 차마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그 자리에 한참을 머물러 있던 몇몇 청중들을 뒤로 하며 전통가곡 연주회의 감회를 이쯤에서 접기로 한다.
첫댓글 "기뻐도 넘치지 않고, 슬퍼도 비통해 하지 않는 절제와 중용(中庸)의 도(道)를 실천하는 선비들의 담담하고 고아한 정서"....교수님 오랫만에 들르셨네요...고맙습니다...읽고 또 읽을게요...그리고 저희 성가대로 담아갑니다...^^*
잠깐 수정을 하고 있는데, 그 사이에 글을 읽으셨군요... 역시 그 부지런하심, 대단하십니다~~ 오랫만입니다, 어린양님^^
이구...그러면 수정된 부분이 있겠네요...다시 담아가서 이전것과 비교를...넘 행동이 빨라도 아니되겠구만요...흐흐흐...^^;;
오래전, TV에서 새벽 5시 쯤 국악프로그램을 방영했는데 시간대가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김소희 선생님의 가곡 연주를 많이 보여주었었지요. 물론 다른 장르의 음악도 함께였지만 가곡연주가 제일 좋았어요. 꼭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였는데 이젠 어림없겠지요? 더구나 지난 광주배움터 때 신부님의 시조 한소절은 함께했던 사람 혼을 쏙 빼셨구요. 오죽하면 어떤 분은 꼭 한번 가곡을 배우겠다고 다짐했겠어요? 개인적으로 어릴때 자랐던 고향집이 한적한 저수지 바로 옆이었는데 지금처럼 TV나 라디오가 없었던 시절인지라 저수지 물이 풀리면서부터 얼어붙기 전까지 어둑어둑한 새벽이면 낙싯대
물에 담그고, 아스라한 물안개 걷혀올라가는 느낌따라 시조소리가 새벽을 열고 아침을 맞아주었었지요.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였지만 소리따라 저수지에 가서 세수라도 할라치면 어느듯 동창은 환해지고 물안개 자취없어질 즈음이면 낙싯대 걷어들고 돌아가시던 선인같던 분들 덕분에 가곡이 더 좋은지도 모릅니다. 교수님, 서울에서는 언제 연주회 하지 않으시나요? 꼭 가서 보고 싶습니다. 지금같은 형편이었다면 대전도 내려갔을텐데~ 며칠 전 상황으로는 허락질 않았거든요. 감사합니다~~
참으로 좋은신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셨군요... 부럽습니다~~ 저는 서울 토박이라서 그런 추억은 없어요, 하지만 몇번 방학 때 친척 시골집에 머문 적이 있는데, 가끔 굉장한 평화로움과 함께 그 때 기억이 나곤 한답니다...지금이라도 가곡을 배우시면되지요, 전문가가 되실 것은 아니지요? 그렇다면 지금부터 배워도 충분히 그 음악을 즐기실 수는 있습니다... 시도해 보세요~~ 서울에서도 가곡 연주회가 가끔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제가 해설을 맡았었기 때문에 소개를 해드린거구요... 혹시 가까이에서 그런 기회가 또 있으면 다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반가웠습니다^^
이런 멋스러운 연주회가 곳곳에서 수시로 기획되고 연주되어 남녀노소 모두 누리며 우리 삶이 윤택해지고 풍요로워지길 바랍니다. 좋은 연주 소개와 감동을 실은 감상글 올려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희재님의 바람이 바로 저의 국악 사랑 실천의 으뜸 이유입니다. 가곡과 같은 음악으로 충분히 그런 삶,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잖아요... 감사합니다^^
아주 오랜만에 인사 드립니다 그날의 감흥이 다시 살아나는 듯 합니다 멋진 저녁이었습니다
좋은글에 감사와 함께 정중히 모셔갑니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러브](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exticon74.gif)
합니다
감사드리며....즐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