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는 크게 두가지 종류의 영웅들이 있다. 하나는 총을 중심으로 하는 ‘무기류’를 애용하며 화끈한 스펙타클을 이루어내는 할리우드의 액션 영웅들. 그리고 또 하나는 무기보다는 주로 ‘몸’으로 상황을 연출해가며, 보는 이로 하여금 육체의 역동성과 아름다움을 깨닫게 만드는 홍콩의 무술 스타들.
물론 이들에게는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홍콩의 액션 영웅들은,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저렇게는 못한다는 '절대적인 강건감' 때문에 더더욱 짜릿한 쾌감이 있다. 내가 수십년에 걸쳐 무술 연마에 정진을 한들, 어떻게 이소룡처럼 쌍절곤을 휘두를 것이며, 성룡처럼 아크로바틱 대묘기를 펼칠 수 있을 것이며, 이연걸처럼 대나무 사다리를 육교 계단 오르락 내리락하듯 할 수 있을 것인가? 할리우드 액션 영웅은 주로 '총'을 위주로 화려한 모습을 보이기에, 잘만 하면 어느 정도 따라할 수 있을 것 같은 '현실감'이 있다. 그렇지만 홍콩의 무술 스타들은 완전히 다르다.
이들은 서로 너무도 이질적인 존재라서, 한동안 평범한 관객들은 할리우드와 홍콩이 ‘짬뽕’이 되는 경우를 상상하기 어려웠다. 왜 그랬을까. 우선 할리우드 영화의 배타성 때문이었다. 아무리 무술의 대가들이 온 몸을 바쳐 스크린 안과 밖을 넘나들어도, 그들은 결국 ‘동양인’일 뿐이다. 지독한 백인 중심 주의의 수호자 할리우드에서 이들을 주연급으로 활용하는 경우를 상상하기란 대단히 힘들었던 것이다. 하긴, 이러한 비극은 굳이 홍콩 배우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Bruce 'Cosmopolitan' Lee
하지만 ‘예외’는 있었다. 홍콩 무술 스타의 절대지존 이소룡. 그는 동양 시장에서뿐만이 아니라 미국에도 진출하여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용쟁호투>(1973)가 가장 대표적인 예. <사망유희>(1978)는 막상 그가 출연한 씬이 얼마 안 되는 일종의 ‘유작’이지만, 그럼에도 역시 상당한 성공을 거둔다.
이소룡이 미국에서도 그토록 커다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다소 복합적이다. 우선 이소룡이라는 존재 자체가 풍기는 무한대급의 카리스마와 신비감이다. 그는 동서양을 통틀어 유사한 경우를 찾아볼 수 없는 독보적인 스타일을 갖추고 있다. 고독과 분노에 휩싸여 있으면서도 그 감정을 행동으로 옮기는 있어 결코 침착함을 놓치지 않는 이소룡의 풍모는, 보는 이를 얼어붙게 만든다. 그가 무술을 하며 내지르는 괴조음은, 그 소리 자체의 우스꽝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처절함이 담겨있어 보는 이를 움찔거리게 만든다. 이것은 동서양을 초월하는 신비의 공감대를 이룬다.
더구나 <용쟁호투>는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홍콩식의 무술 영화라기 보다는,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전형을 따르고 있다. 영화 제작 자체를 워너 브라더스가 주도하는데다, 감독도 로버트 클라우스로 미국인이다. 배우들도 이소룡만의 ‘독무대’라기 보다는, 존 색슨이라는 충실한 ‘서포터’가 이소룡의 뒤를 받쳐주고 있다.
<용쟁호투>는 홍콩의 액션 스타가 할리우드에서 입지를 다지기 위한 ‘교과서’가 되었다. 즉 충분히 서구 액션의 전형을 이루는 스토리에, 반드시 홍콩 배우가 몸으로 펼치는 활약상을 돋보이게 만들면서도 서양 관객들에게 상당히 친숙한 할리우드 배우가 등장해야 한다는 것. <용쟁호투>의 존 색슨의 경우 이소룡의 냉철한 이미지와 어느 정도 부합되는데다, 이소룡의 현란한 무술을 ‘관찰자적’인 입장에서 살피는 역할을 맡고 있다. 즉 서구 관객의 입장에서 ‘감정이입’의 대상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했다는 뜻이다.
Jackie Chan, His Pilgrim's Process
이것은 매우 중요한 공식이다. 우리가 액션 영화를 즐기는 까닭은, 평소에는 우리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을 ‘대리 만족’으로 화끈하게 즐기는 데 있다. 화끈한 액션 영화를 통해 쌓인 스트레스를 날리자면, 주인공에게 철저한 감정이입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백인 관객들의 입장에서 동양인 주인공에게 감정을 투영하기는 몹시 버거운 법이다. 직접적으로 동양인 액션 영웅에게 다가갈 수 없으니, 자신들과 흡사한 관찰자라도 곁에 두어야 스크린에 몰두할 수 있는 것이다. 단 할리우드 영화에 충분히 길들여진 동양 관객의 경우, 백인 히어로를 마치 나 자신인 양 여기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의 마음을 휘젓는 영웅이 동양인이건 양키이건 구애받지 않는 우리는, 역설적으로 행복하다.
성룡이 처음에 이 공식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 큰 낭패를 보았다. 성룡의 경우, 1980년대 초반 할리우드로 진출코자 피 눈물 나게 노력한 시기가 있었다. <배틀 크리크>(1980), <캐논볼>(1981), <프로텍터>(1985) 등이 대표적. 하지만 각 영화에서 혼신의 힘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만 해도 서양 관객들은 '동양에서 온 무술 스타'하면 딱 이소룡만을 떠올렸고, 당연히 그것은 선입견이 되어 다른 배우들도 그와 같기를 원했던 것이다.
하지만 성룡은 이소룡과는 대단히 다른 캐릭터다. 성룡은 아무리 애를 써도 이소룡이 품은 '비장미'를 갖출 수 없었던 것이다. 폼에 죽고 폼에 사는 이소룡의 진지한 액션과는 달리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연스러운 유우머가 배어나오는 성룡의 씩씩한 연기는, 서양 관객들에겐 ‘장난’으로 여겨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다이 하드>가 나오기 전,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정도를 제외하고 할리우드 액션 영화에서 코믹함이란 찾기가 쉽지 않았던 상황이다. 더구나 이들 영화는 완성도가 미흡하다는 것 이외에, ‘관찰자’로서의 백인 보조 캐릭터가 빈약했다는 치명타까지 존재했다. 물론 <캐논볼>에서는 호화찬란한 할리우드의 스타들이 대거 등장하지만, 오히려 여기서 성룡의 존재는 빛이 바랠 수밖에 없었다. 줄거리가 산만한데다 인물들까지 중구난방으로 등장하다 보니, 도통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발휘할 기회를 못 찾아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월은 흘러 1990년대 중반, <홍번구>(1995)가 뜻하지 않게 대성공을 거두었다. 당시 영화계의 ‘시대정신’이자 잡식성에 가까운 취향을 지녔던 쿠엔틴 타란티노의 시기적절한 소개, 관객 취향의 변화, 그리고 국제 무대 진출을 위한 성룡의 꾸준한 노력이 혼합된 결과다. 물론 이 영화의 배경이 대다수 관객들에게 친숙한 뉴욕이라는 점도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성공 요인이다.
그리하여 미국에서 본격적인 성룡의 성공시대가 열린다. <러시 아워 1,2>(1998, 2001), <샹하이 눈>(2000), <턱시도>(2002), <샹하이 나이트>(2003) 등이 그것. 이 영화들은 이소룡에게서 효과를 발휘했던 ‘공식’이 충실히 반영되었다. 즉 서구 관객들의 입맛에 맞는 제작진과 스타일에, ‘감정 이입’을 전담하는 서포트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 ‘샹하이’ 시리즈의 오웬 윌슨과 ‘러시 아워‘ 시리즈의 크리스 터커가 대표적이다. 크리스 터커는 ‘흑인’이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아프로 아메리칸의 전형적인 캐릭터 중 하나인 ‘떠벌이’의 이미지로 서구 관객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간다. 샹하이 시리즈의 오웬 윌슨 역시 수다쟁이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렇게 보조 캐릭터들이 ‘말(영어)’로 상황을 무르익히는 사이, 성룡은 이제는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특유의 아크로바틱 묘기를 마음껏 펼친다.
<턱시도>(2002)의 경우는 조금 독특하다. ‘파트너’가 제니퍼 러브 휴이트로 여성인데다가, 성룡의 묘기 또한 고유의 ‘아날로그’식 고난도 스턴트 액션이 아닌 할리우드의 인공적인 스타일을 많이 따라가기 때문이다. 성룡이 이젠 나이가 들어 예전같은 날렵함을 보여주지 못하게 된 것인지, 아니면 이젠 할리우드 액션 무비 공식에 완전히 익숙해진 것인지는 아직 명백하지 않다. 아마도 다음 영화로 보다 뚜렷한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Jet Lee, Dark Side of Hong Kong Diaspora
이렇게 확고한 명성을 구축해가는 성룡과는 다르게, 할리우드에서 이연걸의 입지는 조금 미묘하다. ‘월드 엔터테이너’의 면모를 과시하는 성룡과는 달리, 이연걸은 아직은 ‘동양에서 온 액션 스타’의 이미지로만 국한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연걸이 상대적으로 불운하다기 보다는 그가 지닌 이미지 자체에 한계가 있는 탓이다. 즉 이연걸은 정통적인 무술의 달인임은 흔들리지 않는 사실이지만, 그의 능력은 여기서 그치고 만다. 또한 이연걸의 무술 솜씨는 훌륭하지만, 이소룡과 같은 비장미나 처절함은 덜해보인다. 그렇다고 성룡처럼 부담 없이 친근하고 코믹한 상황을 연출할 수 있냐면 그것도 아니다. 홍콩에서는 신출귀몰한 무술 능력만 가지고도 이연걸의 매력을 한껏 드러낼 수 있었던 영화 환경이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할리우드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육체는 강건하되 얼굴마저 굳어버린 미국의 흔하디 흔한 액션 스타들과 이연걸이 구분되는 점이라곤, 그가 탁월한 무술가라는 점을 빼놓고는 별로 없는 것이다.
물론 이연걸이 출연한 할리우드 영화에도 ‘공식’이 자리잡고 있다. <로미오 머스트 다이>(2000)는 알리야가, 최신작인 <크래이들 2 그래이브>(2003)에서는 디엠엑스가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성룡의 출연작들과는 달리 이 영화들은 ‘전형적인(평범한)’ 액션 영화인데다가, 이연걸의 매력도 단순히 고감도 액션 묘기에 그치고 만 감이 있어 아쉽기만 하다. 하긴 <황비홍>이나 <동방불패>에서 우리를 사로잡았던 그의 매력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꼭 이 정도의 수준이긴 하지만 말이다(풍부한 인간적 매력을 드러내는 ‘연기’는 다른 배우들이 도맡지 않았나?).
하지만 성룡이나 이연걸의 경우는 행복한 편이다. 영화마다 완성도는 들쭉날쭉해도, 그래도 광범위하게 선전, 개봉되는 ‘할리우드 영화’들 아닌가? 무술이 주특기가 아닌 중화권 배우들은 이들처럼 지속적인 기회를 얻기 힘들다. 여기서 <와호장룡>(2000)이 전세계적으로 거둔 엄청난 성공은 매우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영화가 예술적 경지에 다다른 무협을 간판으로 한, ‘동양의 신비’를 한껏 자아내는 ‘이국적’인 소재의 작품이라는 것. 아울러 감독 이안이 그동안 <센스 앤 센서빌리티>(1995)와 <아이스 스톰>(1997) 등으로 미국 영화계에서 쌓아왔던 풍성한 커리어가 절묘하게 첨가되었다는 점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Today's-and-Tomorrow's Asiatics in Hollywood
또하나 중요한 점은, <와호장룡>에 출연한 주연급 배우들이 양자경을 제외하고는 ‘무술 스타’와 비교적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다. 주윤발이나 장즈이, 장진 등은 대체로 ‘정격 배우’들이라는 중대한 특징이 있다. 이들은 나름대로 활발하게 할리우드 진출을 꾸준히 도모해왔지만, 결국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게된 결정적 계기는 <와호장룡>이라는 ‘무술 영화’였던 것이다. 홍콩 액션의 여왕 양자경 또한 일찍이 <007 네버다이>(1997)에서 ‘쿵푸하는 본드걸’로 유명세를 탔던 바 있다.
이제는 할리우드 영화가 눈이 열렸는지 어쩔 수 없는 자구책인지 아무튼 ‘다양화’를 꾀한다는 시대이다.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여전히 할리우드가 소재나 배우를 활용하는 방식에는 완고한 ‘스테레오 타입’이 내재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부드러운 눈매와 매너로 스크린을 낭만적 분위기로 탈바꿈시키는 성룡이나 이연걸을 예상조차 할 수 있겠는가? 광동어를 쓰나 어색한 영어를 구사하나, 환경은 바뀌어도 그들의 몸짓은 근본적으로 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보면, 묘하기도 하고 다소 착잡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반드시 할리우드의 영악한 용병술만을 탓할 수도 없다. 애당초 ‘고정관념’을 형성하게 만든 장본인이 자의든 타의든 바로 배우들 자신 아닌가. 그러나 보다 우려할 점은, ‘1국가 1특기’만을 장려하며 색다른 스타일의 연기를 좀처럼 허용하지 않는 할리우드의 완고함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느새 관객인 우리의 마음속에도 침투하여 굳어져버린, 쉽게 깨지기 어려운 선입견과 똑같은 의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