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백파] ☆ 낙동강 1300리 종주 대장정 (12)
생명의 물길 따라 인간의 길을 생각한다! 강은 드디어 바다가 되어 하늘과 만나게 되나니!
☆ [종주순례(연 4일째)] * 제5구간-② (원천마을→ 이육사문학관) ☆
▶ 2020년 08월 17일 (월요일)
☆… ‘단천교’에서 이육사 문학관이 있는 ‘원천마을’까지는 3.3km이다. 차가 많이 다니지는 않지만, 가끔 오가는 차들이 위협적으로 질주한다. 그 팍팍한 아스팔트 도로의 가장자리를 걷는다. 강을 따라 숲길을 걷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를 실감하게 한다. 속도를 중시하는 문명의 이기가 불안한 소음으로 다가오는 길목이다. 작열하는 8월의 태양이 길을 뜨겁게 달구고 외롭게 길을 걷는 내 몸까지 달구었다. 물병의 물이 거의 바닥이 났다. 배도 고파오기 시작했다.
단천리 뒷재
* [시인 이육사가 태어나고 자란 ‘원천마을’] — 이육사 시비공원 그리고 목재고택’
☆… 오전 1시 20분, ‘원천마을’에 도착했다. ‘원천마을’은 진성(眞城) 이 씨 집성촌으로 시인 이육사(李陸史)의 고향마을이다. 큰 길에서 마을로 들어가면 ‘목재고택(穆齋古宅)’이 있다. 목재고택은 조선 후기의 문신 목재(穆齋) 이만유(李晩由, 1822~1904)가 살던 집이다. 진성 이씨, 퇴계 이황 선생의 후손으로 형조참판 사은(仕隱) 이구운의 증손자로, 철종 9년 식년시 문과에 급제하여 승지, 대사관 등을 역임하여 종2품 가선대부(嘉善大夫)의 칭호를 받았다. 외직으로 영해도호부 부사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그래서 택호를 ‘영해댁’, 혹은 ‘영감댁’이라고 불렀다. 건물구조는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사랑채가 어울려 전체가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소박하고 깔끔한 느낌이 들었다. 소슬대문을 겸한 행랑채가 있었으나 수몰로 인해 유실되었다.
목재고택(穆齋古宅)
목재(穆齋, 온 가족이 화목한 집)
이헌(怡軒, 기쁨이 넘치는 집)
* [원천마을 이육사 시비공원] — 육우당유허지비, 시비「청포도」「초가」
☆… 건지산의 남쪽 기슭의 끝에 자리한 원촌은, 너른 들판과 저만큼 낙동강이 조용히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른다. 안동의 북쪽 낙동강 강변마을이다. 원촌은, 지사시인 이육사를 비롯한 6형제가 태어나 자란 곳이다. 집터 자리에 조성된 시비공원에는「六友堂遺墟址碑」(육우당유허지비)가 있고, 육사의 시「청포도」「초가」를 새긴 정갈한 시비가 세워져 있다. 파란 잔디밭 사이로 산책길이 나 있고, 육각정 쉼터도 있다.
이육사시비공원
靑葡萄
내 고장 七月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려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靑袍(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 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 이육사(李陸史, 1904~1944)는 본명은 원록(源綠)이며 퇴계 이황(李滉)의 14대 지손으로, 선비 집안의 엄격한 가풍 속에서 유년시절 한학을 공부했으며, 결혼 후 한때 처가가 있던 영천의 백학학원에서 공부하고, 이후 일본과 중국에서 수학했다. 귀국하여 장진홍(張鎭弘)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3년형을 받고 투옥되었다. 이 때 그의 수인(囚人) 번호가 ‘264번’이었는데 ‘李陸史’는 이를 호(號)로 삼은 것이다. 출옥 후 조선혁명군사정치학교를 졸업하고 기자생활과 항일투쟁을 함께 펼친다. 주로 육사(陸史)와 ‘활(活)’이라는 필명으로 시와 산문을 비롯한 다양한 글을 발표했고, ‘자오선(子午線)’, ‘영화예술’, ‘풍림(風林)’ 등의 동인으로 활동하다가, 40년 짧은 삶 가운데 20여 년 동안 조국의 광복을 위해 투쟁하였으며 1943년 가을에 체포되어 베이징으로 압송, 이듬해인 1944년 1월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나는「이육사 시 연구」(1989, 연세대)로 학위를 받은 바 있어, 그 감회가 남다르다.
「六友堂遺墟址碑」(육우당유허지비) : 이육사 생가 터
* [이육사문학관] — 시비「절정」이육사 동상 그리고 복원된 육우당
☆… 그리고 시비공원에서 조금 떨어진 산록에 ‘이육사문학관(李陸史文學館)’이 있다. 문학관 앞에는 시「絶頂」의 시비 곁에 이육사 선생이 동상으로 앉아 있다. 깔끔한 신사의 풍모를 지니고 있다.
絶 頂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北方)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서릿발 칼날 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이 시는 시인이 시대 상황과 맞서 싸우면서 치열한 갈등을 통해 도달한, 비극을 초월하려는 정신적 경지를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화자를 이 ‘절정’의 극한적 상황에 이르게 한 것은 ‘매운 계절의 채찍’인데, 이때 ‘매운 계절’은 ‘겨울’을 가리키며, 가혹한 추위가 지배하는 시간인 일제 강점기의 고통스러운 시대 상황을 암시한다. 마지막 연은 극한 상황에서 참된 삶을 추구하는 의지와 희망을 회복하는 화자의 현실 인식을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 라는 역설적인 표현으로 나타내고 있다.
시인의 날카로운 시선
☆… 이육사문학관 왼쪽 산록에 ‘육우당’이 있다. ‘六友堂’(육우당)은 이육사 생가(生家)를 복원한 것이다. 원래의 생가는 저 아래 ‘청포도 시비공원’ 안 육우당유허지비(六友堂遺墟址碑) 자리에 있었으나 안동댐으로 인한 수몰로 인해, 1976년 안동시 태화동(포도골)으로 이건 되었다가, 소유주가 바뀌면서 원형이 변질되어 생가로서의 기능이 훼손되었는데, 고증을 거쳐 이곳에 복원하게 되었다. ‘육우(六友)’는 육사의 맏형 원기, 원록(육사), 아우 원일. 원조, 원창, 원홍 등 6형제를 말한다. 육사는 이 집에서 태어나 열여섯 살 되던 해까지 성장했다. 6형제의 우의(友誼)를 기리는 뜻에서 당호를 ‘六友堂’이라고 지었다.
六友堂(육우당)
* [이육사의 시「광야(曠野)」] — 불굴의 민족정신을 장엄하게 노래한 육사의 대표작
☆… 이육사(李陸史)의 시는 식민지 치하의 민족적 비운 소재로 하여 강렬한 저항의지를 나타냈고, 꺼지지 않는 민족정신을 장엄하게 노래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꺼지지 않는 민족정신을 장엄하게 노래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曠野(광야)」는 육사 시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육사는 원촌의 문학관에서 하계마을로 넘어가는 고갯마루 ‘윷판대’에서「광야」를 구상하였다고 한다. … 저 아래쪽에 낙동강이 흘러가고 앞에는 너른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장소이다. 육사는 안동댐으로 수몰되기 전, 원촌(원천마을) 앞에 넓게 펼쳐진 들판을 바라보며, 미명의 천지개벽에 광야가 생성되면서 헤아릴 수 없는 장구한 세월이 흐른 뒤, 비로소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는 생명의 강(江)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당대는 일제강점기라는 냉혹한 현실, 그러나 시인은 절망하지 않는다. 가난한 시인의 절절한 염원을 노래의 씨로 뿌린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광야의 주인인 민족의 후예들이 자유를 구가할 것을 그리고 있다. …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 육사 시혼의 근본은 바로 낙동강이다.
曠 野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유고시집 『육사시집(陸史詩集)』(서울출판사. 1946)-
이 시는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장엄한 스케일을 지니고 있는 시상이다. 장구한 역사와 고난의 현실을 통해 아름다운 내일을 꿈꾼다. ‘광야(曠野)’라는 광활한 공간과 현실 초월적인 시간 인식을 바탕으로, 일제 강점기의 암담한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와 조국의 광복을 염원하는 미래지향적인 신념을 노래하고 있다. 시인은 광야에서 태초를 포함한 역사를 생각하고, 현재가 민족적 비극의 시기이지만 반드시 밝은 미래가 올 것이라고 확신하며, 한 알의 밀알처럼 자신을 희생할 것을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도로의 가장자리에 나 있는 나무테크 탐방길 고갯마루에서, 육사의 뜨거운 목소리로 시「광야」를 소리내어 낭송했다. 비장하고 당당한 시인의 영혼이 온몸을 전율하게 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아올랐다. …♣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