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川, 귄진규 미술관을 다녀와서
글-德田 이응철(春川産)
고장 이름이 봄내(春川)라서인지 대설(大雪)이 코앞인데도 날씨는 마냥 포근하다.
국민교육헌장을 발표했던 지난 12월 5일, 이고장 동면 금옥길에 우뚝 개관한 권진규 미술관을 늦게 다녀왔다. 춘천고(春川高) 전신인 춘천고등보통학교 5년제를 나온 권진규 조각가는 일본에 건너가 유명 스승에게 사사를 받고 다시 한국에 와서 살다 간 조각가라는 것이 최근 귀동냥으로 들은 전부였다. 그렇다고 이곳이 작가의 고향도 아니다. 1922년 함흥에서 태어난 그의 작품을 이날 실제 육안으로 접하면서 수밀도처럼 한 커플씩 훌훌 벗기며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게 되었다.
예전 학창시절, 미술교과서나 체육교본에 빠짐없이 수록된 활을 쏘는 헤라클레스 조각 그림을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그 작품은 근대 조각의 거대 기둥인 로댕과 제자 부르델, 마이욜 중 부르델의 대표작이다. 호쾌한 영웅이 새를 쏘려고 전력을 다해 활을 당기고 있는 긴박한 순간을 표현한 조각품-. 씩씩한 헤라클레스 팔다리에 넘치는 남성적인 격렬한 풍모가 후세에 각종 체육행사 데드마크로 쓰이기도 한다.
프랑스 작가 부르델의 제자가 일본 무사시노 미술학원 시미즈 타카시였고, 그에게 미술공부를 해서 가장 뛰어난 동문으로 추앙받는 이가 바로 권진규조각가이다.
옥(玉)의 정기를 한 몸에 받은 동면 월곡리에 말쑥하게 차려입은 미술관은 4층이었다. 우선 1, 2층만 개관되었다. 1층은 현대 미술작품으로 2층부터 정중히 안내한다. 권진규 작품세계는 한마디로 타임머쉰을 타고 고대 이집트나 삼국시대를 돌아본 느낌이었다.
그는 한국 근대미술의 3대 거장이라고 팜플렛은 강조한다. 박수근, 이중섭, 그리고 권진규, 그의 조각품을 돌아본다. 주로 자소상과 여인 두상, 흉상, 마두(馬頭), 고양이 그리고 작품을 위한 크로키 등이었다. 테라코타나 석조가 주로 많았다. 흙이라는 원초적인 재료를 써서 마지막까지 작가의 손에 다루어진 테라코타가 순수한 분위기로 맛을 더한다.
질박한 그릇이나 원시적인 토기, 순장, 관습 부장품 같은 느낌을 안겨준다. 그의 작품은 고대 이집트 조각처럼 목 길이도 의도적으로 늘리고, 어깨 이하를 과감히 생략했다. 자소상의 귀도 부처처럼 눈 아래 위치하고, 불교조각 보살상에 접근하기도 한다.
부르델의 제자가 사부님이라서인지 재회(再會)란 작품에서 목판에 오른 여신상 두 명에서 근대 서양의 신상 조각 내음도 느껴졌다. 자소상이나 여인상들이 부르델 작 밀레부인의 머리 모양과 긴 목이 닮았고, 선입견인지 부르델의 베토벤 청동상들의 솜씨가 권작가의 두상에서 번득여 친근감을 더했다.
그의 작품은 인간 원형을 탐구해간 치열한 작가 정신의 기록에 가깝다고 한다. 우리 것을 강조한 그는 서양미술에 편승한 우리 미술을 개탄했다. 바람의 얼굴에 신라 석공의 혼과 전통의 맥이 흐른다고 도록은 전한다.
52세로 1973년 고려대 박물관에서 전시작품을 돌아보고 그는 스스로 생을 마쳤다.
2층에 오르니 긴 의자에 앉은 그가 반긴다. 곁에 앉아 찬찬히 돌아본다. 진정 일제 식민지 시대 우리 한국미술계에 근대 조각의 다리 역할을 한 그는 위대하다. 1949년 일본 가서 미술을 배우고 최고상도 수상했다. 59년 혼자 돌아온 그는 터를 잡고 최후의 불꽃을 피우려 했으나 비운의 작가로 막을 내렸다. 세속과 타협 않는 정결한 작가란다. 6년간 일본 처와 살다가 후손 없이 오직 그의 누이 동생이자 미술관 명예관장 권경숙(88)님만이 오라버니의 생애를 생생히 증언하신다.
달아실(月谷) 갤러리-.인생은 공(空)이고 파멸이라 했다. 허(虛)를 그 역시 느끼고 갔지만, 평소 그는 말했다. 인간의 아이는 언젠가 죽지만 내가 만든 아이들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참이다. 30년 만에 홍안서생이던 춘천에서 새로 손으로 빚은 작품들은 진정 죽지않고 부활했다.
1층으로 내려온다. 요술, 미술 3D의 현대 미술작품들이 착시현상을 최대 이용해 한시적으로 새 미술관을 빛내준다. 춘천 유명작가 백윤기님을 비롯한 18명의 작품들을 돌아보며 설핏한 동절기 햇살 한 자락을 받으며 퇴실을 했다.
비운과 고립과 소외와 고통의 천재 조각가의 둥지-.
밖으로 나오자 또 다른 작가의 폐타이어로 만든 거대한 사자 두 마리가 싸우기 일보직전의 조각품이 중량감과 생동감에서 압권이다. 3층은 로봇, 4층은 고서자료로 완성될 때 오리라. 아름다운 예술혼으로 춘천은 또 하나의 명소로 펄럭이게 됨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이다. 한 수집가의 오랜 집념으로 불후의 명작 백여점 이상을 모아 미술관이 성사됨이 그 얼마나 다행인가!
박주가리 홀씨가 어디선가 고공비행하더니 내 깃에 앉는다 혹시 작가의 영혼인가!ㅎ (끝) 2015. 12. 9作
첫댓글 로댕-부르델-시미트 타카시-권진규로 이어지는 거장의 계보군요.
그 작품세계가 궁금합니다.
미술 대가의 미술관이 있는 춘천, 그곳 분들은 행복하시겠습니다.
네 정통의 맥이 흐르고 있는 미술관 150점이 전부이지만 느낄수 있습니다.ㅎㅎ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