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 27. 토. 부처님 성지순례 5일차.
간밤에는 파트나에서 잤다.
“우리, 마치 유격훈련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라는 일행 중 누군가의 볼멘소리처럼 강행군이다.
새벽 3시~4시에 호텔 알람소리에 후다닥 일어나 한 시간, 짐을 꾸리고 준비해서 체크아웃, 호텔 지하식당에서 밥 먹고 그길로 버스에 올라 출발하는 일정... 7시 40분대에 해가 뜨는 한국시간을 살다가 갑자기 새벽 4~5시에 아침밥을 먹는 나날들... 우리, 대단하다.
심지어 어떤 날은 새벽 1시 30분에 일어나 2시 30분에 출발하기도 했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아침 도시락을 싸들고. 그야말로 심신단련 동계캠프가 따로 없다. 부처님 자취를 따라 순례하는 여정이 아니라면... 어찌 가능한 일이겠는가?
며칠 새 적응되면서 일종의 성취감이랄까, 묘하게 감격스러운 기분마저 드는 순간도 있다.
오늘도 축축하고 차가운 안개장막이 둘러쳐진 길을 약 2시간 정도 달려, 먼저 부처님 마지막 설법지인 바이샬리로 향했다.
바이샬리, 안개극심, 1미터 앞 부처님 사리탑 원형 유적지가 보일까 말까 할 정도로 엄청난 안개다.
태어나 처음으로, 안개가 비처럼 쏟아져 사선으로 내리는 풍경을 경험했다.
안개는, 큰 파라솔을 살짝 접어 새워 둔 모양을 한 아쇼카나무(무우수/無憂樹) 잎사귀를 타고 흘러내렸다.
아쇼카나무는 룸비니 동산에서 마야부인이 싯달타 태자를 출산할 때 붙잡았던 나무로, 부처님 성지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젖은 안개에 둘러싸인 부처님 사리탑을 우요삼잡(右遶三匝)했다.
우요삼잡은 부처님(불이나 탑)의 오른쪽을 세 번 돈다는 뜻으로, 부처님 재세 시에 제자들이 법을 청할 때 존경심의 표시로 부처님 오른편으로(그러니까 부처님이 탑 등을 중심으로 시계방향으로) 최소 세 번 이상 합장하여 부처님을 둘러싸고 돌면서 예를 표한 데서 나온 예법이다.
사르나트 다메크스투파에서도, 보드가야의 마하보디대탑에서도 합장하여 ‘나무석가모니불(혹은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등 각각등보처...)’을 칭명하며 우요삼잡의 예를 올렸었다.
사리탑 유적지에서 나와 대림정사 원숭이연못, 아난다 스투파, 아쇼카 석주를 참배하고 다시 버스를 달려 싯달타 태자가 사냥꾼의 가사와 태자복을 바꿔 입으시고 직접 삭발하셨던 곳이며, 열반의 길에 리차비족에세 발우를 건네셨다는 케사리아대탑(발우탑)을 참배하고,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땅 쿠시나가르(Kushinagar/Kusinagara/鳩尸那)로 향하는 중이다.
버스가 하천을 지나고 있다.
모래사장에 대여섯 명의 남자들이 강렬한 울긋불긋한 천을 덮은 들것을 내려놓고 있고 바로 옆에서는 몇 사람이 무언가를 옮기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누군가의 장례가 시작되는 모양이다.
양쪽 모래사장은 넓고 중앙 물줄기는 빈약한, 이맘때 건기(乾期)에 흔히 볼 수 있는 말라가는 하천변에는 검은 재로 그을린 자그마한 흔적들이 군데군데 있다. 화장(火葬)터였음을 말해준다. 갠지스처럼 큰물도 아니고 가트(ghat:계단) 같은 시설도 없는, 흐름이 느껴지지도 않을 정도의, 저런 보잘것없는 물길에 화장한 재를 띄워 보낼 수 있을까? 유골 등 뒷수습은 어떻게 하는지... 자못 걱정스런 상념에 젖어 있는데 마이크를 잡고 현지 가이드 루카스가 버스 통로에 서서 좌중을 향해,
“지금 우리가 지나고 있는 다리 아래가 바로 부처님께서 마지막으로 목욕하신 카쿠타강입니다.”
한마디 던지고는, 덧붙이는 설명 없이 다시 자리에 앉는다. 곧이어
“카쿠타, 스펠링이 어떻게 돼요?”
유일하게 관심 가지고 질문하는 사람, 역시 목사님이다.
아, 부처님께서 물을 드시고 목욕을 하셨다는 카쿠타강.
스펠링을 묻는 목사님 덕분에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카쿠타는 Kakuttha, 또는 Kakutthā인 걸 보니 발음은 ‘까꿋타’쯤 되는 모양이다. 한역 열반경에는 가굴차(迦屈嗟)로 음차하고 있다. “쿠시나가르의 석가모니 부처님 열반당 인근에 있는 강”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기도 하고 ‘파트나와 쿠시나가르 가는 도중에 있는 강‘이라고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