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를 방치하면 자칫 사회적응이 어려운 청소년으로 발전할 수 있으므로 조기에 발견 치료해야 한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함. [중앙포토]
‘우리 아이는 모터가 달려 있는 걸까’. 초등학교 3학년인 성진이(가명) 엄마는 아이와 실랑이를 하며 아침을 시작한다. 침대에서 끌어내 아침밥을 억지로 먹이기까지 마치 전쟁을 치르는 듯하다. 밥을 먹던 성진이가 거실로 뛰어들어가 TV를 켜더니 목청을 높여 노래를 부른다. 꾹 참고 가방을 메어주며 아이를 향해 웃어준다. 아이는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소리치며 달려나간다. 사랑스럽다는 생각은 잠시, 이제 곧 성진이와 함께 지낼 겨울방학이 두려워진다.
전두엽에 문제 … 전체 어린이의 5% 해당
아이들에게 선비가 되기를 기대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부모의 통제가 불가능하고, 집단생활이 어려울 정도라면 한번쯤 아이의 정신건강을 점검해보는 것이 좋다. 버릇없는 아이의 행동이 ‘뇌의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는 전체 어린이의 5%가 앓고 있을 정도로 흔한 질환이다. 한림대 성심병원 정신과 홍현주 교수는 “앞쪽 뇌(전두엽)에서 집중력과 자기통제 기능을 하는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여기에 유전적 요인, 뇌신경 손상, 환경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남자 아이 중 특히 장남에게 더 자주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3세 이전에 발병하지만 부모가 아이의 이상 행동을 발견하는 것은 정규교육을 받기 시작하는 초등학생 이후다.
국내에선 아직 이 병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이 부족하다. 제대로 치료를 받는 아동은 10% 수준이다.
부부싸움 등 가족 갈등도 심해져
초등학교 2학년 아이를 둔 맞벌이 엄마 김모(39)씨. 퇴근 길에 학원 교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숙제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 친구와 다투고 수업을 방해했다는 것. 얼굴에 생채기가 난 채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아이를 보고 타일러보지만 그때뿐이다. 퇴근한 아빠가 엄마의 느슨한 훈육태도를 탓하자 부부싸움으로 비화한다.
ADHD 어린이가 있는 가족은 시한폭탄을 안고 있듯 늘 불안하다. 아이를 둘러싸고 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많기 때문. 지난해 ADHD 어린이의 부모 995명을 대상으로 한 영국 던디대학 데이비드 코힐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ADHD 어린이는 또래, 또는 가족관계에서 하루 종일 갈등과 충돌 등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런 현상은 점심 때보다 늦은 오후로 갈수록 더 심했다.(『소아청소년 정신의학 및 정신건강』)
수업을 받는 낮 시간에 증상이 호전되는 것은 약물과 행동요법의 효과 때문. 상대적으로 약효가 떨어지고, 관리를 받지 못하는 저녁 시간에 증상이 악화되고, 이로 인해 가족의 고통이 심해지는 것이다.
최근 효과 좋은 치료제 속속 나와
ADHD 어린이는 학교생활이 어렵고, 학업성취도 역시 떨어진다. 집단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해 학업을 포기하는 일도 잦아 성인이 된 뒤 사회활동에 어려움을 겪는다. 조기 발견과 치료, 그리고 적절한 관리가 필요한 이유다. 방학은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의 진단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아이의 행동이 정상을 벗어나 ADHD 범주에 들어가는지 DSM-IV 척도(표 참조)를 활용해 자가 점검해 보자.
신촌세브란스 어린이병원 소아정신과 송동호 교수는 “24시간 ADHD 증상을 억제하는 치료제가 국내에도 출시됐다”며 “감정의 기복이 심하지 않아 가족이나 또래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24시간 지속형(성분명 아토목세틴)은 종래 메틸페닐데이트 계열의 약과 작용 메커니즘이 다르다. 홍현주 교수는 “기존 약이 도파민에 작용하는 것과는 달리 아토목세틴은 노르에프네프린(주의력을 높이고, 충동을 통제)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재흡수해 농도를 높인다”고 설명했다. 또 기존 약은 효과가 30분 이내에 나타나지만 24시간 지속형은 2~3주 지나야 발현되는 특성이 있다.
ADHD 치료는 행동요법과 병행해야 하므로 전문의와 충분한 상담을 통해 치료전략을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