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행복... 내 다시 오리라. 설악산 [끝청~중청~대청]
[리메이크]
2019. 10. 6 [일]
평택 이화산악회 40명
한계령 휴게소 → 전망바위 1 → 서북능선 삼거리 → 전망바위 2 → [전망대] → 전망바위 3 →
전망바위 4 →[끝청] →[중청] →[대청봉]→ 설악폭포 → 남설악탐방지원센터 (오색) [7시간 50분]
1.
달빛의 화려함보단 먹빛이 좋고, 햇빛의 따스함보단 청명한 바람이 좋다. 새벽녘 찬 공기는
달빛과 햇빛을 넘고 산위에 합장한 채 가을을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을 등진, 외롭고 고독한 밤을
이어 바람을 여문 채 소멸을 생애로 살아가는 설악의 모순(矛盾). 아, 우리에게는 영원함이
되어있었다.
2.
철따라 길을 떠나는 나뭇잎들의 순환적 생명이 무수한 시간 속을 애태우듯 산벽에 메말라있다.
희미한 산군무의 소란도 어느새 멈춰져 설악골을 채우고 있다. 그립고 먼 밤 깊은 듯 고요에 찬
협곡도 가을의 장생과 같이 검은 빛을 스치고 있다. 한숨처럼 번져오는 바람이 그 위에서 설운소리
지치듯 옛날에 온 밤 사람 같다.
3.
진홍색 고깔에 황금빛 석봉은 하늘빛처럼 내려 작은 가을을 두르고 있다. 구름바다에 갇힌 서북의
능금은 푸른 고요를 잃고 산방의 갈색으로 매몰중이다. 밤이슬을 키우며 골짜기를 청춘으로 키우던
옛 시절이 이제는 등 굽은 늙음이 되어버렸다. 그 옛 생각에 이별이 물들어버린다.
4.
시기의 풍운아처럼 우뚝 선 귀때기청이 안개를 멀리 잦으며 옛 산 같이 떠오른다. 검붉은 나무사이로
그 산등 길을 메운 마른 잎들은 서북의 이단아답게 허허롭게 차있다. 지워지는 세월 속에 그 생의 과제는
무엇으로 대신할까. 다시 피어오르는 길뿐이다.
5.
하늘과 산을 포갠 기암의 몸둥이는 가을의 문에 몸을 실었다. 그 귀태가 황갈색을 띠며 가지런한
긴 황새목처럼 넓은 품을 받들고 있다. 유연한 허리를 튼 채 푸른 풍경은 무한으로 넘쳐 하늘 길로
뻗쳐있다. 저 가을세상 볼만하다.
6.
변함을 피한 채 시기를 숨기며 하늘아래 몸을 감춘 용아는 붉은 톱날을 선 설악의 강렬함이었다.
사계를 버리고 오로지 두꺼운 껍질만을 쌓으며 먼 세월의 성으로 선을 그어놓았다.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장장의 영암(影岩). 무쇠처럼 세월을 꿈꾸듯 설악의 기억이 돌촉이 되어 하늘을 찌르고 있다.
7.
붉은 적벽과 푸른 천이 피어난 내설악에 적막한 하늘 강이 흐른다. 서릿발의 능선은 숱이 짙은
가을 길을 물들여 운무를 모신다. 돌기둥에 박힌 채로 피어나 절정을 이루고 있는 붉은 석꽃은
다닥다닥 모여 꽃밭을 가꿔놓았다. 석벽이 넘실댄다. 그 따라 바람도 넘실댄다. 검붉은 톱니바퀴처럼
살아 움직이는 용아도 넘실댄다. 차마 두 눈이 시려지기까지... 붉은 빛이 총총 모여든다.
「가을의 존재는 뭐니뭐니해도 감성이 든 고독한 풍경입니다. 우연히 만난 설악의 가을풍경이
그 존재라 느껴집니다.」
「오늘 하루는 그 풍경의 순간을 마음껏 담는 그리운 날일지도 모릅니다. 하여 모두들
‘내 다시 오리라’는 여운을 남깁니다.」
8.
공룡 릉. 특별함과 우월감에 장엄함이 더하여 눈을 부르르 떨게 하는 세월의 얼굴이다. 단 하나 존재하는,
단 한편의 무소유가 서린 설악의 百態이다. 젊은 설악의 頌歌를 불러보고 싶다. 자연의 초상처럼 푸른
숨결을 심어준 그 칸타타여... 점점 부풀어 오른 석화의 화신처럼 부드러운 가을의 울림이 마음 속 깊이
전해진다.
9.
끝청에 섰다. 비바람에 씻긴 산맥의 상처는 긴긴 세월 저문 시간을 견뎌왔다. 외롭고 고독한 검은 잿빛에도
비탄의 표정을 버리고 모든 광채를 쏟아냈다. 빛바랜 그늘과 세파처럼 깊이 스며든 각인의 존재 속에서도
용해되지 않는 세월의 각진 모서리를 현실의 풍화를 통하여 매 거듭나 있었다. 고고한 산맥이여! 그 자화상은
없는 것인가... 설악의 성좌인... 龍牙와 恐龍이다.
10.
흘림과 칠형제봉, 서북릉과 귀떼기청봉, 주억봉, 가리봉이 구름옷을 입고 시기의 진리를 지킨 채 청정한
가을을 맞이한다. 풍성한 붉은빛과 연한 연노랑색 틈으로 10월의 진미를 가득 일어준다. 모든 꿈결이다.
좀 쉬어가렴... 화사한 복사꽃처럼 피어오르는 가을빛이 중천에서 알몸을 떨구고 있다.
설악의 戀歌가 흐른다.
11.
산면에서 거슬러오는 민감한 촉감이 마른 잎들의 작은 생명체를 서리에 흡수시켜 색동잎을 만들어놓았다.
그 한 몸, 하늘을 향해 생을 들추고 있다. 듬성듬성 나무숲이 환해졌다 이글어지는 등불 같다. 석빛과 노니는
그 맑은 웃음은 길지 않겠다. 짧은 여운이 없도록 조금만 웃어라. 더 웃다가는 바람이 채갈지 모르겠다.
12.
중천 해는 외롭게 떠있다. 어느새 밤에 온 가을텃밭은 붉게 물들어 해만 바라보고 있다. 어스름한 군무는 몸을
내리며 굽은 골골로 향하는 중이다. 기운차게 들어찬 산굽이는 하늘아래매여 높은 꿈을 지어댄다. 북풍이
서늘해진다. 불붙은 가을꽃이 지천이다.
13.
서북, 공룡, 화채, 울산, 달마, 황철과 권금, 유장(悠長)한 동해 ... 내안의 가을 속 소묘다. 설악의 존재가
느껴진다. 지친 연무가 옛일을 기억하듯 생의 전말을 닫는다. 골과 골, 바위와 바위, 능선과 능선 위에서
헤집다 사라지는 아득한 포말이다. 연한 그림자는 설악에 홀로이 가을처럼 살다 시기에 흡수되는 전설적인
초연이 되어버렸다. 허공은 슬픈 공허를 남기고, 공허는 한 잎의 여운을 남겼다. 몇 가닥 줄기에 지는 잎들이
건사를 하는 듯 쉼 없이 흐르는 바람이 통속을 가른다. 해마다 시월이 오면 그런 생각을 갖곤 한다.
「어찌 표현을 할 수 있단 말인가요. 간간한 홍엽에 산중은 그 냄새에 취하여 졸다 웅장한 산맥 속에
갇혔으니 구름행렬이 맹렬하게 몰려듭니다.」
「유정한 동해와 푸른 기운에 아스라이 덮여있는 속초시가지의 허공은 가을의 법칙이 짙게 배여
있습니다. 저 아득한 곳에 마음을 저어보고 싶습니다.」
「그 위로 흰 실구름이 새처럼 날고 있습니다. 어느새 붉은 그림자가 해무를 간질여 바다에서 흰 그림을
그리게 하고 있습니다.」
「10월의 기억을 일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14.
스러지는 고운 빛을 가슴속에 담는다. 연풍 잎에 갇힌 돌부리는 사이사이에 계절을 부침 없이 담아 적막만을
만들어 놓았다. 고요히 딛는 발걸음이 시간을 쫒는다. 얼굴에서 발열이 솟으며 붉은 잎과 계곡수 속으로
한숨이 잠기어간다.
◈◈◈
잿빛 소슬한 가을빛을 머리에 이고 엽록에 솟은 수려한 시간을 안으며 함박한 호흡을
함께 하였습니다.
고문님, 회장님, 산대장님, 총무님, 회원님, 산우님께 장시간의 수고,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 모두 수고 하셨습니다.
2019. 10.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