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미국식 대중음악이 유입된 경로 중 가장 중요한 곳이 바로 미 8군에서 연주하던 밴드들입니다.
미군들이 원하는 음악을 한국 밴드들이 카피하고 연주하는 동안 여러 장르의 미국 대중 음악이 한국으로 유입되었는데 펑키한 음악도 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60년대 후반과 70년대에 미군 부대를 중심으로 흑인 음악(펑키한 음악보단 소울 쪽에 가까운)을 주로 연주한 기타연주자 김명길씨가 활동한 데블스가 있습니다.
일단 이 밴드가 흑인음악을 전문적으로 연주한 사실상 최초의 밴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고고70의 주인공들로 잘 알려진 데블스>
본격적으로 펑키한 음악을 대중적으로 소개한 밴드라면 뭐니뭐니 해도 "사랑과 평화"를 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소위 말하는 7-80년대 3대 기타리스트 중 하나라는 최이철씨를 중심으로, 지금은 작고한 키보드 연주자 겸 편곡자로 유명한 김명곤씨, 베이스엔 한국 음악계에 처음 슬랩 스타일의 연주를 소개한 이탈리아인 싸르보를 비롯, 이남이씨, 송홍섭씨 등이 사랑과 평화를 거쳐갔습니다.
최이철씨 역시 미8군 무대에서 주로 활동하던 중 "사랑과 평화" 1집 앨범과 함께 우리나라 대중들 앞에도 서게 된 셈입니다..(당시엔 미8군 쪽에서 연주하던 사람들이 한국민을 대상으로 한 대중음악 쪽보다 미국 음악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좀 앞선 면이 있었습니다)
70년대 후반에 히트한 그들의 "한동안 뜸했었지"는 본격적인 펑키 음악으로서는 사실상 최초의 히트곡입니다.
80년대에는 유영선과 커넥션이라는 밴드가 퓨전풍의 펑키음악을 시도했었지만 대중적으로 큰 인기는 없었습니다.
대학가 캠퍼스그룹 출신인 송골매의 출세작인 "어쩌다 마주친 그대"(1983)는 리듬에 강한 연주자인 김정선의 기타연주와 함께 디스코 풍의 펑키한 스타일의 곡으로 기억됩니다.
"한동안 뜸했었지", "어쩌다 마주친 그대" 이후 잠시 뜸했던 펑키 리듬이 대중적 인지도 면에서 다시 크게 알려지게 된 곡은 김종진, 전태관의 봄여름가을겨울 2집에 수록된 "어떤 이의 꿈"을 들 수 있겠습니다.
대중가요에 퓨전재즈 풍의 연주와 편곡을 선보였던 봄여름가을겨울은 1~4집에 걸쳐 펑키한 리듬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어떤 이의 꿈"이 히트하긴 했지만 그 이후 90년대를 걸쳐 봄여름가을겨울이 연주한 펑키한 곡들은 당시에 인기있던 발라드, 댄스 음악, 락음악에 비해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당시엔 좀 철이 지난 복고풍의 음악으로 인식되곤 했습니다.
90년대 중반에 Jamiroquai가 한국에 소개되면서 70년대의 펑크, 힙합, 소울등의 재즈 요소들을 가진 펑키 음악
스타일인 Acid Jazz가 한 때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당시엔 이웃 일본에 비해선 그 반향이 별로 크지 않았고 Nirvana같은 얼터너티브 락, Oasis 풍의 브릿팝이 언더씬에서도 강세였기 때문에 한국에선 여전히 펑키한 음악이 크게 사랑받지는 못했습니다.
(한국에서 Acid Jazz는 80년대 중반 이후 시작된 영국이나, 90년대 초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한 일본에 비해 10~15년 정도 늦게 인기를 얻게 됩니다)
참고로 1995년엔 이전에 윤상과 함께 음악을 했던 김범수(발라드 가수 김범수가 아닌 BK김범수)가
"Guardian Angel"이라는 음반을 냈습니다.
이 음반이 아마도 한국에서 사실상 처음 시도된 Acid Jazz와 연결된 펑키한 음악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해피엔드"라는 곡이 좀 알려지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큰 인기를 얻진 못했습니다. 당시로선 대중들의 취향에 비해 너무 앞서간 면이 있지 않나 하는 평가도 있습니다.
그밖에 윤상, 손무현 등의 뮤지션들도 이무렵 종종 펑키한 음악들을 만들곤 했습니다.
1995년 라이브 편집 앨범이었던 손무현 & Double Trouble 음반에 수록된 "어린날의 기억"도 펑키한 곡의 한 예가 될 수 있겠고, 연주곡인 "시행착오", "N.E.W.S"에서도 펑키한 연주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90년대 중반에 한국에서 펑키한 음악을 한 뮤지션으로는 이적, 김진표의 "패닉"을 들 수 있습니다.
물론 처음 주목을 받은 곡은 "달팽이"같은 발라드 곡이지만 "아무도"나 "왼손잡이", "UFO", "여행" 등 펑키한 음악도 많이 했습니다.
90년대 후반엔 미국 버클리 유학파들이 주축이 된 Gigs가 펑키한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도합니다.
"펑크 마스터"로 불리는 기타 연주자 한상원, 키보드엔 강호정, 정원영, 당시 천재 뮤지션으로 불렸던 드럼의 이상민, 베이스의 정재일, 보컬엔 패닉 출신의 이적이 긱스에서 활동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이적이 90년대 우리나라의 펑키한 음악에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99년에는 Acid Jazz에 영향을 받은 밴드 "롤러코스터"가 등장합니다.
첫번째 앨범의 타이틀곡 "내게로 와"는 정말 제대로 된 펑키한 곡입니다.
이후 2~4집을 거치며 펑키에서 일렉트로니카, 라틴음악을 도입하면서 다양하게 변화했지만, 리듬을 중시하는 밴드의 성격은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때쯤부터는 그 이전까지 모던락, 얼터너티브, 브릿팝쪽에 경도됐던 클럽 쪽 인디밴드들 중에도 펑키한 음악에 관심을 갖는 밴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 결실 중에 하나가 "불독맨션"입니다.
90년대 중반 대학가요제로 등장한 이한철이 프론트맨으로 활동하는 불독맨션은 초기 EP음반에서 "Fever" 등의 펑키한 음악을 토대로 라이브 활동을 주로 하였고 1집 앨범에선 한국식의 펑키한 곡들(뽕끼있는 멜로디 + 다채로운 리듬)로 성공을 거둡니다.
그밖에 Jazz 음악 쪽에서도 "Orange"나 "Wave"같은 펑키한 리듬을 이용해 즉흥연주를 하는 팀들이 많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후 2000년대 이후엔 펑키한 음악이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으면서 꽃을 피우게 됩니다.
자칭 New School Funk라는 "얼바노", 그밖에 6-70년대 소울풀한 흑인음악 스타일에 비교적 충실한 "아소토유니온", 스스로 '라운지 음악'을 표방한다는 "클래지콰이" 등등 나름대로 펑키한 음악과 연관을 맺은 밴드들이 속속 등장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