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4호 하나님께서 보내신 세 명의 천사 권두언 세 천사가 전하는 중대한 복음 긴급상황일 때 소식을 보내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우편 마차로 소식을 보냈고, 조금 발전하자 전보를 쳐서 알리기도 했지요. 그런데 요즈음에는 직접 문자 메시지를 날려서 전혀 시간이 걸리지 않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놀라운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어떤 때는 두려운 생각이 들 만큼 세상이 너무나 빨리 흘러가고 신속하게 소식이 전달되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도 참 급하신 모양입니다! 특별 임무를 띤 천사들을 급파하시는 것을 보니 말입니다. 이 지구를 향해서 급하게 날아오는 천사들을 보노라면 하나님의 간절하신 심정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대마다 꼭 필요한 현대 진리가 있었습니다. 그 세대를 깨우고, 그 세대의 사람들을 시험하는 특별한 복음이 인류 역사의 중요한 굽이굽이 마다 전달됐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이 세대, 역사의 그 마지막을 장식할 이 중요하고도 긴박한 세대를 향해서 하나님께서 급히 보내시는 소식이 있습니다. 이 소식으로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되고 아니면 멸망을 하게 될 그러한 치명적인 복음입니다. 이 세 명의 천사들이 가지고 날아오는 복음은 세 가지 다른 복음이 아닙니다. 한 가지 중요한 복음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주는 파급이 너무나 크고 중요하므로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강조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의 운명을 좌우할 소식, 세 부분으로 나누어 강조하신 긴급한 메시지, 우리는 이 세 명의 천사들이 도대체 무엇을 전달해 주고 있는지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분명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옛날 노아 시대에 살던 사람들이 그 세대에 주신 긴급한 복음을 무시하다가 다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침례 요한이 전하던 그 세대의 긴급한 복음을 무시하다가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을 박았습니다. 우리는 우리 세대를 위하여 주신 복음을 어떻게 취급하여야 할까요?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께서 우리가 사는 이 세대를 향하여 보내시는 그 긴급한 복음을 이해하고 알 수 있을까요? 우리와 우리의 가족들을 저 하늘로 옮기게 하는 그 시험하는 진리를 말입니다. 이번 호가 여러분께 그 중대한 복음에 대하여 설명해 드릴 것입니다! 신앙 1부: 세 명의 천사가 전하는 현대 복음 하나님께서 이 세상 마지막에 그분의 참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급하게 이 땅에 보내시는 복음이 있다. 그 복음은 너무 중요하고 급한 것이기 때문에 조용하게 전해지면 안 된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들을 수 있도록 세 천사를 통해 공중에서 힘차게 선포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14장 6절에서부터 12절에 나오는 이 세 명의 천사가 외치는 복음은, 마지막 시대에 반드시 전해져야 할 진리, 곧 현대진리이다. 현대진리란 바로 그 당시, 그 시대에 해당되고 전해져야 할 중요한 진리를 가리킨다. 그것은 그 시대 사람이 반드시 듣고 결정을 하도록 촉구하는 복음이다. 시대마다 현대 진리로 그 당시 사람들이 심판을 받고 그들의 구원이 결정지어졌다. 노아 홍수 때와 소돔과 고모라 멸망 때, 출애굽 때와 바벨론 포로 때, 또한 침례 요한과 예수님 때와 초대교회의 복음 확산 때, 종교 암흑시대와 종교 개혁 때 그리고 세계 재림 운동 때와 세계 복음 전파의 시대 때, 그 시대마다 전해지는 현대진리가 있었다. 노아 홍수 때의 현대진리는 방주로 들어오라는 것이었고, 소돔과 고모라 멸망 때의 현대진리는 그곳을 떠나 나오라는 것이었듯이 시대마다 구원받는 데 필요 되는 각각 다른 복음이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이 마지막 시대, 성경의 예언이 다 성취되어 가는 인류 역사의 마지막 시대에 꼭 전해져야 할 현대진리가 있는가? 그렇다. 시대마다 그때 필요한 현대진리를 보내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사는 인류의 역사가 마쳐지려고 하는 이 마지막 때, 복음이 가장 널리 전파되어 있지만 참된 복음과 진리가 전혀 없는 이 절박한 시대에 우리에게 주시는 현대 복음이 있다. 그 복음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세 천사가 공중을 날아가면서 전하는, 이 시대에 반드시 들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중대한 현대진리인 것이다. 1) 현대진리 - 세 천사의 복음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계 14:6~12). 첫째 천사는 심판하실 시간이 가까웠으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영광을 돌리며, 특히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둘째 천사는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셋째 천사는 짐승의 표를 받지 말라고, 짐승의 표를 받는 자는 쉼을 얻지 못하리라고 외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세 천사의 외치는 복음이 요한계시록 14장에 등장할 때에, 제일 먼저 시작되는 첫째 천사의 복음은 이 세 가지 복음의 근본이 되고 핵심적인 주제에 대해서 명확하게 밝히고 있는데, 그 핵심은 바로 이 메시지가 “영원한 복음”이라는 것이다.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계 14:6). 이 영원한 복음은 이 메시지들의 근간이 되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서, 모든 민족과 방언에게 마지막 때에 반드시 전파되어야 할, 마지막에 구원을 가져오는 복음이다. 그래서 이 영원한 복음이 현대진리가 되는 것이다. 영원한 복음에 대해서는 계속되는 다음 기사에서 공부하기로 하자. 그렇다면 우선, 지금이 현대진리가 반드시 전파되어야 할 시기인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세 천사의 복음이 왜 지금 필요한 것인가? 지금이 얼마나 급박한 시기이길래 하나님께서 세 천사로 하여금 공중에서 복음을 외치게 하시는가? 이 시대는 어떤 때인가? 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자. 2) 지금은 짐승의 우상이 세워지는 때이다 지금은 짐승의 우상이 세워지고 있는 때이다. 세 천사가 전하는 복음은 요한계시록 14장 6~12절에 나오는데, 앞 장인 요한계시록 13장의 짐승의 우상과 표에 대한 경고와 예언 직후에 모든 인류에게 주어지는 마지막 메시지로 기록되어 있다. 지금은 이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경배하도록 강요될 짐승의 우상이 세워지는 때이다. 그동안 월간지 “살아남는 이들”의 신앙기사를 통하여 우리는 짐승의 우상이 무엇인가 배워왔다. 우리 각 개인은 이 문제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확실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잠깐 복습을 하자면, 짐승의 우상이란 요한계시록 13장에 등장하는 첫 번째 짐승으로 표상된 교황권이 이전에 행하던 일이 그대로 재현되는 것으로, 두 번째 짐승인 미국이 옛날 교황권이 행했던 일을 똑같이 행할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즉, 교황권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참 교회와 자녀를 종교적으로 탄압하며 핍박하는 세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말이다. "짐승의 우상"에서, 우상은 영어로 "Image" 즉, 형상(모습)이라는 뜻으로서, 첫 번째 짐승의 모습(Image)을 닮았다는 뜻이며, 옛날에 짐승이 행하였던 일을 똑같이 행하는 것을 말한다. 즉, 짐승(교황권)의 우상은, 첫 번째 짐승(교황권) 자체는 아니지만, 첫 번째 짐승의 모습(특성)을 가지고 있는 독립된 개체로서, 첫 번째 짐승을 위하여 일하는 세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세기에 첫 번째 짐승(교황권)이 갖고 있던 권세와 모습이 어떤 것이었는가? 교황권의 세력은 정치, 종교적 세력으로서 국권의 힘을 가지고 다스리며 종교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것이었다. 마지막 시대에 형성되는 짐승의 우상도 짐승의 모습(Image)을 닮아서, 정치적 힘을 이용하여 인간이 만든 교리나 가르침을 강요할 것인데, 이를 거절하고 진리를 믿는 하나님의 백성은 가혹한 핍박을 받게 될 것이다. 미국은 머지않은 장래에 종교의 힘을 가지고 사람들을 강제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며, 먼저 나온 짐승을 위하여 일하게 될 것이다. 벌써 이 일을 위한 기반이 다 준비되어 있다. 특히 이 일은 미국의 국민이 사회의 혼란과 무질서를 막기 위하여 스스로 원하여서 종교적인 강제성을 입법화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예언의 중심이 되어 있는 미국의 경제적, 정치적 상황을 예의 주시하므로 이 예언 성취의 징조를 알아차려야 하며, 재난의 천연재해, 그리고 세계정세를 잘 살펴야 할 것이다. 성경의 예언은 앞으로 다시 중세기의 핍박이 이 세상에서 재현될 것이며, 하나님의 참 교회와 백성을 핍박하는 일에 미국이 선봉세력이 될 것을 가리키고 있다. 3) 짐승의 표가 강요되려고 하는 때이다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 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 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계 13:16, 17). 1. 개인의 자유가 감시된다 지금은 짐승의 표가 강요되기 위하여 모든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는 때이다. 특별히 이번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되자, 그가 주장하는 “오바마 헬스 케어”가 그리스도인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미국의 새로운 건강 보험법(The New Health Care), 일명 “Obamacare”로 알려진 이 법안에는 베리칩에 관한 항목이 들어 있다. 이 법안 “H.R. 3200 section 2521. pg 1001 paragraphed 1” 항목에는 모든 미국 시민이 법안이 인준된 지 3주년이 되는 2013년 3월 23일까지는 모두 “RFID”칩을 몸 안에 이식하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RFID”칩이란 “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무선 주파수 인식시스템)의 약자인데, 겨자씨만큼 작은 크기로 이 안에 엄청난 정보들이 들어가는 칩이다. 이것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사물 등의 다양한 개체의 정보를 관리할 수 있는 인식 기술로서, 그 대상의 모든 정보를 IC칩에 내장시켜, 이를 무선주파수로 추적할 수 있도록 한 기술이다. 또 인공위성이나 이동통신망과 연계하여 정보시스템과 통합하여 사용된다. 모든 사람이 의무적으로 건강보험을 들지 않으면 벌금을 물게 하는 제도와 복지와 건강을 내세워 각 개인의 모든 신상정보를 작은 칩에 집어넣어 인체에 주입하는 “베리칩” 이식 종목은, 모든 사람에게 짐승의 표를 강요하고 통제하려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경종이 되고 있다. 2014년부터 미국에서 베리칩이 시행되며 이것을 거부하면 벌금형이 부과된다고 하니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일부 종교계에서 주장하듯이 베리칩이 짐승의 표는 아니다. 그것이 짐승의 표를 강요하고 국민을 통제하는 수단이 되는 것은 확실하지만, 베리칩 자체가 짐승의 표라고 말하는 사람은 성경의 예언을 모르는 사람이다. 아무튼, 이 오바마 케어 건강보험 개혁안은 짐승의 표의 예언 성취를 앞두고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척 의미심장한 사건이 아닐 수 없는데,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성공과 함께 짐승의 표를 강요하고 강제할 준비가 다 갖추어졌다는 신호가 되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지막을 위해 준비하는 일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베리칩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살아남는 이들 156호를 참조하세요). 그런데 베리칩으로만 개인을 통제한다는 발상은 이미 구시대적인 것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요즈음은 언제 어디서든 자동적인 도청과 감시를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최근에는 미 공군에서 곤충 크기만 한 무선 사이보그 감시 장비가 실전에 배치돼 사용되고 있다. 영국 데일리메일 등 외신은 2012년 6월 19일 최근 몇 년간 제기돼 오던 소형 무선 정찰 장비들이 실전에 배치돼 있다고 밝혔다. 최근까지 미군은 공식적으로 소형 무선 무인 정찰기에 대해 부인해 왔다. 잠자리 모형을 한 소형 사이보그 정찰기도 개발에 실패했다는 식의 설명을 덧붙이기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다르다. 전직 미 공군 대령인 톰 에르하드(Tom Ehrhard)와 몇몇 전문가들은, 데일리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를 통해 "미국은 몰래 할 수 있는 일이 꽤 많다"고 설명하며, 최근에 공개된 “사이보그 파리” 등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밝혔다. 이 초소형 무인 정찰기들은 레이더 망에 걸리지도 않고 건물 내부 등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 사이보그 파리는 테러리스트에 대해 공격까지 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주립 대학의 GRASP 연구소는 작은 새 모양을 한 20기의 나노 쿼드로터 무인 항공장비가 비행하는 모습을 공개했다. 이 기술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람의 조작이 없어도 미리 짜인 명령에 따라 적을 공격하는 형태까지 진화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의 눈으로 식별하기도 어려운 작은 곤충 크기의 무인 정찰기들의 등장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 어디서든지 사생활의 자유가 없는 사회를 만들고 있으며, 이런 장비들은 짐승의 표를 거절하는 하나님의 참 백성이 감시와 핍박을 당할 짐승의 표 환란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2. 국가의 경제적 몰락은 짐승의 표의 지름길이 된다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되면서 경제적인 악재가 지속할 때에, 미국에 야기되는 문제와 무질서와 폭동들 때문에 국민이 치안과 리더쉽에 있어서 더 강력한 정치력을 원하게 될 것이며, 그리하여 우려한 대로 미국이 사회주의 성격을 띤 강한 국가로 변모하게 될 때 짐승의 표는 더 쉽게 강요될 수 있다. 현재 미국을 비롯하여 유럽 각국의 부채율이 급격하게 치솟고 있다. 세계화 전략으로 한 지구촌이 된 세계는 경제적으로 깊은 상관관계를 형성하게 되어 있고, 한 국가의 경제적인 부도와 몰락은 도미노 현상처럼 다른 국가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어 경제 하락과 몰락의 위기가 함께 일어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현재 유럽에 닥친 유로존의 위기와 유럽국가들의 경제적인 몰락이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지 않은가? 경제 위기와 몰락 때문에 그리스와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국가들에서 일어나는 시위와 폭동들은 심상치 않은 예언 성취의 징조가 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캘리포니아 주를 비롯한 미국의 주들이 파산선고를 하고 실업률이 치솟는 사실들 또한 예언 성취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짐승의 표는 특별히 경제적인 문제와 깊은 관계가 있다.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매매를 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 성경에 예언되어 있다. 사단은 마지막 짐승의 표 강요를 위해 모든 준비를 갖추고 있다. 세계의 경제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세력을 이용하여, 그리고 세계 경제와 각국의 경제를 몰락하게 한 후 그것을 구제하게 하는 시스템과 조직을 이용하여 세계의 경제를 통제하며 짐승의 표를 강요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인 위기의 때에 교황권의 부와 권력은 세계를 통제하는 세력으로 쉽게 부상하게 될 것이다. 이제 사단은 짐승의 표를 강요하고 선과 악의 대 쟁투의 접전을 벌이며 마지막 클라이맥스를 향해 질주하려고 하고 있다. 경제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면이나 정치적인 면을 살펴보아도 모든 준비는 다 되어 있다. 다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인을 받고 선과 악의 대 전쟁에서 하나님을 위해 싸울 군사들이 준비되는 일이다. 지금은 글로벌 시대이다. 이 세상이 하나가 되어 있고, 하나의 명령이 온 세상을 지배할 수 있도록 준비된 시대, 다니엘의 예언처럼 사람들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해진 마지막 때이다. 이제는 복음이 동시대에 갑자기 온 세상에 전파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고, 하나님께서 마지막 큰 성령의 운동에 참여할 준비된 일꾼들을 통해 그 일을 시작하려고 하고 계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는 참된 일꾼이 되기 위해, 우리는 지금 이 현대 시대에 주어진 복음, 그것에 의하여 모든 사람의 운명이 결정지어지는 그 엄숙한 복음을 받아들이고 연구하며 변화함을 받아야 한다. 신앙 2부: 현대 복음 – 구원을 가져오는 영원한 복음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계 14:6). 하나님께서 보내신 세 천사 중 첫째 천사가 외치는 복음의 시작 부분에는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보내시는 매우 중요한 핵심의 메시지가 들어있다. 거기에는 마지막 선과 악의 대 전쟁에서 승리하는 하나님의 군사가 될 수 있는 비결과 구원의 비밀이 숨겨져 있는데, 그 비밀은 바로 “영원한 복음”이며, 그 비결은 바로 영원한 복음을 이해하고 체험하는 것이다. 이 영원한 복음을 이해해야 심판을 위해 준비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애를 살 수 있으며, 또 바벨론에서 나와 구원을 받을 수 있고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이 메시지는 지금 현시대에 필요한 현대진리인 것이다. 그런데 이 세 천사 복음의 시작 부분에 나오는 “영원한 복음”의 결과는, 이 메시지의 끝 부분인 셋째 천사의 복음 마지막 부분에 나타난다. 그것은 바로 짐승의 표를 받지 말라는 언급 직후에 나온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계 14:12). 이 구절이야말로 세 천사가 전하는 복음인 현대진리를 듣고 영원한 복음을 받아들인 결과로 탄생한 남은 자손의 특징을 한 구절로 표현하고 있는 구절이다. 영원한 복음은 구원의 관건이 달린 매우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영원한 복음 때문에 하나님의 남은 무리가 준비되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14장에 나오는 세 명의 천사는 함께 날아가면서 순서대로 복음을 외친다. 그러나 이것은 다 같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지, 따로따로 떨어진 다른 세 가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마치 우리가 찬송을 부를 때에 같은 찬송을 1절, 2절, 3절을 부르듯이, 세 명의 천사들이 한가지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첫째 천사가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으니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며 준비하라고 외치는데, 만일 그 경고의 메시지를 거절하면 큰 성 바벨론이 무너진다고 둘째가 소리를 치는 것이며, 만일 이 세 천사의 복음의 핵심이 되는 영원한 복음을 거절하면 타락하여 멸망 당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 천사는 영원한 복음을 체험하지 못하면 할 수 없이 그 바벨론이 제시하는 짐승의 우상에게 절하거나 짐승의 표를 받을 수밖에 없고, 짐승의 표를 받으면 지옥불에 타서 멸망 당할 것이라고 외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첫째 천사가 외치고 있는 그 영원한 복음을 거절한 결과로 바벨론이 타락하여 무너지는 것이고, 바벨론이 무너진 결과로 짐승의 세력이 우상을 세우는 일이 생길 것이며, 영원한 복음을 거절한 결과로 사람들의 양심을 강요하는 짐승의 표를 받게 될 것인데, 그 표를 받으면 죽는다고 경고하며 외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영원한 복음이 지금 이 마지막 때에 제시되고 있는지 함께 공부해 보자. 1) 영원한 복음이 제시되어야 하는 이유 현재 기독교에서 가르쳐지는 오류가 섞인 복음으로는 구원을 위해 준비되기가 어렵다. 성경의 정확한 진리와 성경이 가르치는 명확한 교리에서 떠나 바벨론의 오류가 혼잡하게 섞인 가르침을 받으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군사, 곧 하나님의 인을 받고 하나님의 공의를 변호할 증인이 되는 일과 짐승의 표를 거절하는 믿음과 올바른 신앙의 좌표를 세우는 일에 실패하게 된다. 마지막에 구원을 받는 관건은 참된 복음을 알고 그 복음이 제시하는 대로 변화함을 받는 일이다. 현재 기독교에서 가르쳐지고 있는 가르침들은 사람들을 올바른 영적 경험으로 인도하여 준비시키기에 거의 불가능한 오류의 복음이다. “한번 구원을 받으면 영원히 구원을 받는다”는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 2:12)는 말씀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 15:4)는 말씀의 의미 즉, 항상 내 안에 거하고 나와 산 관계를 맺음으로 구원을 이룬다고 설명하신, 예수님의 구원 비결을 어떻게 깨달을 수 있겠는가? 또한, 예정설의 가르침을 배운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자유의지와 선택권을 이해하고 죄를 승리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영원 지옥설과 영혼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오류를 믿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깨닫고 죽기까지 충성하는 믿음을 나타내겠는가? 그뿐만이 아니다. 은혜로 구원을 얻으니 믿기만 하면 된다는 “칭의”의 가르침만을 배운 사람이, 어떻게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벧전 1:15)는 거룩하게 성화되라는 성경의 가르침과 “나(예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행 26:18)하시는, 죄를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거룩하게 하셔서 기업을 얻게 하시는 예수님의 사역을 어떻게 이해하고 거룩하게 변화함을 받을 수 있겠는가? 또한, 예수님의 신성 말고 예수께서 입으신 인성이 우리와 같다는 성경의 가르침, 곧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라는 가르침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마지막 남은 무리가 가져야 할 “예수 믿음”, 예수께서 가지셨던 똑같은 믿음을 가질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영원한 복음, 올바른 참된 복음을 알지 못하면 올바른 믿음을 가질 수 없고, 올바른 믿음을 가지지 못하면 올바른 영적 체험을 할 수 없고, 마지막 짐승의 표 강요와 환란을 이길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 마지막 때에 참된 복음인 영원한 복음을 세 천사를 통하여 제시하시는 것이다. 2) 영원한 복음의 비밀을 이룬 자들의 출현 죄지은 인류를 구원하시어 회복된 에덴에 옮겨 놓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구속 경륜이 들어있는 영원한 복음에는, 인간이 어떻게 믿음으로 의로워져 구원을 얻고 하늘에서 하나님과 함께 장막을 치고 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비밀이 들어 있다. 그런데 지금은 영원한 복음의 비밀을 이룬 자들이 많이 생겨나야 하는 때이다. 우리는 지금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부는 시기에 살고 있다. 즉 하나님의 비밀이 우리 각 개인 속에서 충만하게 이루어지고 마쳐져야 하는 때에 산다는 말이다. 이 비밀이 우리 속에서 충만히 이루어질 때에, 하나님께서 세 명의 천사를 통해 보내주신 복음들의 마지막 결과인 “남은 자손”들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고, 이 사람들이 준비되어야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힘차게 외칠 사람들이 생기는 것이며, 마지막 선과 악의 최후의 접전에서 승리할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과 증인들이 생기는 것이며, 그 백성만이 짐승의 표의 환란을 이길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되어야 예수께서 재림하시게 되어 있는 것이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계 12:17). 지금 사단이 짐승의 표를 강요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다 하고 있는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복음을 전파되게 하시고 이 복음의 비밀을 이룬 사람들을 기다리신다. 하나님의 남은 자손, 이 복음의 비밀을 깨닫고 마지막 때에 성령을 충만히 받고 나아가 적 그리스도의 비밀과 바벨론의 타락상을 큰 소리로 외치는 운동이 곧 일어날 터인데, 이것이 요한계시록 18장 1절에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신앙 3부: 영원한 복음 속에 숨겨진 비밀 영원한 복음이란 창세부터 세우시고 이 세상 끝까지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복음을 말한다. 이 복음은 옛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선포하였던 것과 같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신다는 기쁜 소식인데, 영원한 복음은 어떻게 타락한 인간이 죄로부터 구원을 받고 완전한 사람으로 회복되어, 다시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할 수 있는지 그 구원의 계획과 방법을 가르쳐주는 복음이다. 그런데 이 영원한 복음 속에는 비밀이 숨어있다. 이 영원한 복음의 비밀을 이해하고 이 비밀이 마음속에 이루어질 때, 사람은 구원을 받고 다시 완전한 사람으로 회복되게 되는 것이다. 영원한 복음의 비밀과 관련된 말씀을 몇 개 찾아보기로 하자.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계 10: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골 1:27). “이는 저희로…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골 2:2, 3). 요한계시록 10장 7절의 말씀처럼, 지금은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부는 마지막 시대, 하나님의 비밀이 하나님의 참 백성에게 이루어져야 하는 때이다. 그런데 골로새서에 보면 그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언급되어 있으며,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춰져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셋째 천사의 복음을 보면, 영원한 복음을 깨닫고 복음의 진리로 성화된 사람들의 결정체의 특징이 나온다. 그들은 남은 무리로서, 인내로 짐승의 표 핍박에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께서 가지셨던 똑같은 믿음을 가지고 죄를 승리하는 생애를 사는 사람들이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계 14:12). 그들은 하나님의 인을 받는 십사만 사천 인이며, 짐승의 표에 굴하지 않는 믿음과 인내를 가지고 죽기까지 충성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죄로 기울어지는 본성을 타고나 연약하고 타락한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으며, 예수께서 가지셨던 똑같은 믿음을 가진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가 될 수 있는가? 이 일이 어떻게 가능한 것이 되는가? 그렇게 되기 위해 깨달아야 할 비밀이 있다. 영원한 복음 속에 숨겨진 그 비밀을 깨닫고 이해한 사람만이 그렇게 될 수 있다. 1)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비밀의 공식 이 비밀 속에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라는 공식이 들어있는데, 이 일체의 비결을 깨달은 사람만이 남은 무리의 특성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다. 셋째 천사의 복음은 짐승의 표를 받지 말라는 것과 믿음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셋째 천사의 복음은 목적과 범위와 결과에서 같다. 1. 믿음의 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그것은 죄인들이 그들의 죄와 철저한 타락과 잃어버린 상태를 깨닫게 하고 회개하도록 하는 그분의 놀라운 방법이며, 또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때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율법의 정죄에서 구원해 주시며, 인간이 하나님과 그분의 계명 앞에서 새롭고 의로운 태도를 보일 수 있도록 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비밀이다. 그래서 세 천사의 복음을 영원한 복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셋째 천사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모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체험을 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롬 2:13)라고 성경은 말하는데, 분명한 것은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 3:20)라는 답이 나온다는 것이다. 율법은 거룩하고 선하지만, 죄인을 의롭게 해줄 수는 없다. 다시 말해 의로운 율법이지만 율법을 범한 자를 무죄하다고 선언할 수 없다. 하나님의 율법은 완전한 의이므로 하늘나라에 들어갈 사람들은 모두 율법에 완전히 일치하는 의를 가진 자들이어야 한다. 그러나 율법은 사람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의를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죄로 기울어지는 성향과 조상의 죄의 취약성을 유전으로 받고 태어난 인간이 완전한 율법의 요구에 도저히 따를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아무리 부지런히 일하고 열심히 행한다 하더라도 사람이 행하는 행위로는 율법이 요구하는 완전한 표준에 이를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면 어떻게 하여 그 나라에 들어가는 데에 필요한 의를 얻을 수 있는가? 문제의 해결책은 다시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으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한 직후에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롬 3:24~26). 여기에 인간이 의롭게 될 방법이 나오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는 믿음으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2. 의는 선물 “믿음으로 은혜로 의롭게 되었다!” 이 외에 의를 얻는 방법이 어디 또 있겠는가? 분명히 죄인이 의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은혜의 선물이다. 의가 선물이라는 것을 바울은 로마서 5장 17절에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의가 선물이기 때문에 의의 보상인 영생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화목 제물로 세우시고 그를 통하여 모든 죄가 용서받도록 하셨다. 그런데 이 용서는, 하나님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통하여 죄 없이함을 받는 것뿐이 아니라, 용서와 더불어 그리스도의 흠 없으신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는 것이며, 또한 우리를 의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이다. 사도는 덧붙여 말한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롬 3:21, 22).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의를 입혀 주신다. 그리고 회개한 죄인에게는 그리스도의 의로 덮어주셨기 때문에 더는 죄가 나타나지 않는다. 이제는 율법이 요구하는 의를 갖게 되었다. 의의 근원으로부터 얻었기 때문에 이것은 진짜 의인 것이다. 의를 선물로 받은 것이다. 3. 겉과 속이 같아야(?) 진짜 의로운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분이시다. 만일 하나님께서 의롭지 않은 사람을 의롭다고 간주하고 의로 살짝 덮어주신다면 하나님은 불의한 분이 되는 것이 아닌가? 의롭지 않은 사람을 어떻게 의롭다고 하시는가? 잠깐 다음의 성경 절을 보며 그 문제를 짚어보자.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슥 3:4). 이 성경 절을 통해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는 의의 옷으로 입혀주실 때에, 죄를 그냥 놓아두지 않고 없애버린 후에 의의 옷을 입혀 주신다는 사실이다. 죄의 용서는 한낱 하나의 형식에 지나는 것이 아니다. 죄의 용서는 엄연한 현실로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다. 실제로 깨끗하게 죄 씻음을 받는 것이다. 만일 죄 씻음을 받고 의롭다 하심을 받고 의로워지면 하나의 철저한 변화가 분명히 일어나게 된다. 아니, 변화가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그 변화가 무엇인가? 그것은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이 되는 변화이다. 다시 말해 겉에 의의 옷이 입혀진 것처럼, 속도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새 옷을 입기 위해 더러운 옷을 벗듯이 죄를 벗어 버려야 한다. 회개한 죄인은 진정으로 죄를 미워하게 되고, 그리하여 죄를 버리며 마음속에 다시는 그 악한 죄를 짓고 싶은 마음과 의도가 없어져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의 놀라운 희생과 사랑을 진정으로 깨달은 사람은 그것이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어떻게 거짓말하실 수 없고 불의가 없으신 하나님께서, 죄를 그대로 사랑하고 있고 버리지 않는 사람을 그냥 의롭다고 칭해 주실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는 회개하는 죄인을 의롭다고 하실 뿐 아니라 진짜 의롭게 해주신다. 성경에 나오는 명확한 개념처럼, 의의 옷을 입는다는 것에는 더러운 옷을 먼저 벗어버리는 것이 선제한다. 더러운 옷 위에 그냥 의의 옷을 덮어씌워 가리는 것이 아니다. 의는 회개하고 버리지 않은 죄를 덮는 가면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셔서 의롭다고 칭해 주시고(칭의) 의의 옷을 입혀주시면, 그는 의의 옷을 입은 사람으로 마음속의 의도와 모든 동기가 의로워질 수 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은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죄 없이함을 받고 흠 없고 순결한 의를 얻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그것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4. 믿음의 의는 은혜의 파워를 믿는 것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을 믿는 것이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하나님의 창조 능력을 믿는 것이며, 그것을 믿는 믿음으로 의로워지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죄인을 용서하실 때, 의의 옷을 입혀주실 뿐 아니라 마음속까지 의롭게 창조해주신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믿는 것이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라고 한 다윗의 기도처럼, 우리 마음속이 정결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새로운 마음을 창조해 주셔야 가능한 일이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용서하시고 의의 옷을 입혀주시고, 또한 정결한 마음마저 주시고 변화시키시는 일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는 용서받고 칭의를 받은 후, 같은 죄를 다시 반복하여 짓지 않도록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능력이다. 그뿐 아니라 주님 안에서 거룩하게 성화 되며 영적으로 더 성숙한 사람으로 자라나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성경에서 사도 바울이 말한 “은혜”라는 단어는 힘, 파워(Power) 라는 뜻으로 쓰여졌다. 은혜는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하게 하며, 새롭게 변화시키고 죄를 승리하게 하는 힘, 성령의 능력이다. 로마서 6장 14절은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라고 말하고 있으며, 디도서 2장 11, 12절에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롬 5: 20, 21). 이 성경절을 보면, 죄도 다스리는 권세(능력, 힘)를 가졌고, 은혜도 다스리는 권세(능력, 힘)를 가진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은혜가 우리를 다스리는 때에는 옳게 행하게 된다고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죄인으로 회개하여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 마음을 바치게 하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죄를 미워하고 악한 것과 세속적인 것을 싫어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바꾸어 준다. 회개하여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용서와 구원을 받아 새 마음으로 거듭난 사람의 생애에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늘 나타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은혜가 우리를 다스리는 역사이다. 그리고 이 은혜를 믿음으로 믿을 때에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비밀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2) 복음의 비밀을 체험한 사람들이 남은 무리가 된다 지금까지 우리는 세 천사 복음의 핵심 영원한 복음의 비밀인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해서 공부했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는 말씀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라는 말씀은, 바로 이 믿음의 의가 인간 속에 이루어지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난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떠나지 않고 임재하시는 것, 곧 마음속에 성령을 통해 예수께서 끊임없이 역사하시며 좌정하시는 삶으로 주님의 능력과 은혜로 죄를 승리하는 일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온전한 성품을 이루는 것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 비밀이라는 것이며, 우리 속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셔서 영광의 소망이 되신다는 말이다. 이 믿음의 의의 비밀을 이해하는 일을 통해 짐승의 표 강요에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남은 자손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 비밀이 이루어진 사람,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체험을 한 사람들이 바로 짐승의 표를 이기고 마지막 선악의 대 쟁투에서 승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세 천사의 복음이 더 널리 전해져야 한다. 그래서 이 복음을 듣고 영원한 복음을 이해하는 사람들, 믿음으로 의로워진 체험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생겨나야 한다. 그 사람들이 준비되어야 무너진 바벨론을 향해 용감하게 나아가 바벨론이 무너졌으니 거기서 나오라고 외치는 하나님의 마지막 예언을 성취할 일꾼과 종들이 생기는 것이다. 신앙 4부: 참된 안식을 경험해야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다 첫째 천사의 복음 시작 부분에 “영원한 복음”이 언급되었듯이, 셋째 천사 복음의 마지막 부분에는 매우 중요한 메시지가 들어있다. 세 천사의 복음을 연구할 때에 사람들이 간과하기 쉬운 관점이 있다. 그것은 짐승의 표만 강조하다가 놓치기 쉬운 관점으로서, 셋째 천사의 복음에는 짐승의 표를 받는 사람과 그것을 받지 않는 사람과의 차이가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곧 그 두 무리의 차이와 특징이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이 관점은 우리 구원의 관건이 달린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함께 연구해 보자. 1) 짐승의 표를 받는 사람의 특징: 밤낮 쉼을 얻지 못한다 셋째 천사는 짐승의 표를 받는 사람은 “밤낮 쉼을 얻지 못” 한다고 말하고 있다. 왜 짐승의 표를 받는 사람이 밤낮 쉼을 얻지 못하는가? 이 말씀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계 14:9~11). 성경은 악인들, 곧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과 법도를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의 특징을 쉼이 없다고 표현하고 있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시 1:4). “네 생명이 의심나는 곳에 달린 것 같아서 주야로 두려워하며, 네 생명을 확신할 수 없을 것이라. 네 마음의 두려움과 눈의 보는 것으로 인하여 아침에는 이르기를 아하 저녁이 되었으면 좋겠다 할 것이요, 저녁에는 이르기를 아하 아침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리라” (신 28:66, 67). “악인은 쫓아 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잠 28:1). 왜 악인은 밤낮 쉼이 없는가? 쉼이 없다는 말은 영적인 의미로 마음과 영혼에 평안함이 없다는 것이다. 쉼을 얻지 못한다는 것은 참된 안식의 경험을 하지 못한다는 증거이다. 왜 그런가? 교회를 오래 다닌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참된 거듭남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 즉 새 언약의 경험인 마음과 정신에 하나님의 법이 기록되는 경험을 하지 못하고 마음이 새롭게 변화되는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의 마음속에는 참된 안식이 없다. 모든 죄를 회개하고 모든 것을 주님께 굴복한 사람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계명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과 법도대로 살고 싶은 소망과 하늘의 평안이 충만하게 차고 넘친다. 그러나 거듭남과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체험을 하지 못한 사람, 자기 뜻을 하나님의 뜻 안에서 포기하는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거나 굴복한 적이 없는 사람, 세상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은 늘 자아의 채워지지 않는 욕망과 욕심을 좇아 살기 때문에 만족이 없고 평안함이 없다. 아무리 가져도 충분함이 없고, 아무리 보아도 마음이 차지 않고, 불행하고 불안하며, 평안하지 못하고 행복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 사람의 마음은 밤낮 쉼을 얻지 못한다. 물론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의 최후 형벌, 즉 천년기 이후에 있을 악인을 태울 형벌의 불에 들어갈 것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영적인 의미로 짐승의 표를 받는 악인의 마음 상태는 쉼과 안식의 경험이 없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신앙할 때에 곧잘 율법주의, 곧 자신의 행함으로 의롭게 되려는 시도에 빠지게 된다. 오랜 신앙생활을 한 사람 중에서 율법주의적인 신앙을 하는 사람을 얼마나 쉽게 목격할 수 있는가? 그런 사람들은, 남에게 보이고 싶은 욕망,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 자신의 평판과 인정을 교회를 통해 실현하고 싶은 욕망, 못 누린 명예를 더 얻고 싶어하는 욕망, 인간의 칭찬을 갈구하는 욕망을 신앙이라는 명목하에 감춘 채, 교회에서 열심히 활동을 펼치며 다른 신자들에게 시험거리가 되고 교회에 문제를 일으킨다. 아무리 오랜 신앙생활을 하고 아무리 교회에서 지도자적인 위치에 처해있다 해도, 진정으로 거듭나는 경험을 하지 못하고 그 욕망과 품성이 하나님 안에서 굴복되고 순화되지 않은 사람은, 항상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섬기고 이기적인 기복신앙을 추구하기 때문에 항상 두려움 속에서 신앙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영원한 복음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 사람은 결국 앞이마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지 못하고 짐승의 표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성경은 짐승의 표를 받는 사람, 밤낮 쉼이 없는 악인의 삶이라고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2) 짐승의 표는 인간이 만든 표와 제도이다 진리가 요구하는 대로 모든 것을 버리고 좁은 길을 걸으며, 하나님의 인정만을 구하며 주님께 영광 돌리는 참된 신앙을 갖지 못한 사람은, 그래서 인간의 인정과 인간적인 평판과 인간적인 제도와 관계를 늘 진리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짐승의 표를 받기가 매우 쉽다. 짐승의 표는 인간이 만든 표이며 인간이 만든 제도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복음이 언급되면서, 첫째 천사가 하늘과 땅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왜 제일 처음에 외치겠는가?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성경이 말하는 그대로의 방법과 시간에 따라 올바로 경배하는 일이 회복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창조주 하나님을 올바로 경배하는 것만이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 길이기 때문에 그렇다. 다니엘서에 나타난 예언을 보면, 사단은 작은 뿔의 세력을 통해서 하나님의 때와 법을 변경하는 일을 감행한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단 7:25).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계명 대신 인간이 만든 계명에 순종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기보다 인간의 제도를 따르는 것을 말한다. 곧, 성경에 짐승으로 표상된 교황권이 세운 계명을 지키고 순종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성경이 언급하지 않은 주일 중 첫째 날을 예수님의 부활하신 날로 기념하여 지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후 복 주시고 거룩하게 구별하신 날을 지키며 하나님을 올바로 경배하라는 첫째 천사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백성의 표징이 되도록 고안하신(겔 20:20)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영원한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유대인들처럼 안식일 날짜만 지키는 것은 소용이 없다. 참된 안식의 경험, 거룩함의 경험을 하는 사람이 참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다. 참고로, 천주교의 교리문답에는 다음의 사항이 있다. < 가톨릭교의 교리문답서 > * 질문: “어느 날이 안식일인가?” * 대답: “토요일이 안식일이다.” * 질문: “왜 우리는 토요일 대신 일요일을 지키는가?” * 대답: “우리는 천주교회가 라오디게아 종교 총회에서 (A. D. 336) 그 신성성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옮겼기 때문에 토요일 대신에 일요일을 지킨다.” (Peter Geiermann, The Convert's Catechism of Catholic Doctrine[1957 ed.], p. 50) 교황권은 공공연하게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안식일을 교황의 권위와 교회의 권위로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꿨다고 증언하고 있다. 지금 현재 진실한 많은 그리스도인이 일요일을 하나님의 안식일로 알고 지키고 있다. 지금은 일요일을 지키는 것이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계명이 온전히 회복되어야 할 때가 이르면 짐승의 우상이 세워지고 그것에게 경배하라는 강요와 핍박이 이를 것이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편, 아니면 사단의 편 중 어느 편을 선택해야 하는 때가 올 것이다. 그리고 일요일을 지키는 일이 강요될 때가 이르면, 그것은 짐승의 표가 될 것이며, 일요일을 지키는 것으로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만든 날인 일요일을 지킬 것을 강요당하고, 하나님의 표인 안식일을 부인하라는 강압적인 조치가 취해질 때, 일요일에 쉬라는 강제령이 내릴 때, 일요일을 지키는 것으로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이 될 것이다. 인간이 세운 안식일을 지키는 것, 즉 하나님의 인과 표가 들어있는 넷째 계명이 가리키는 대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제도가 만든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이 될 것이다. 3) 참된 안식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인과 안식의 경험은 서로 깊은 연관이 있다. 짐승의 표를 받는 사람은 밤낮 쉬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인을 받은 사람은 참된 안식일을 지킬 뿐만 아니라, 안식의 경험 속에서 인내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 믿음을 나타내어 짐승의 표 핍박 속에서도 승리하고 환난을 이기며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재림 때에 구원을 받는다. 그렇다면 참된 안식의 경험이 무엇인가? 히브리서 4장에서 우리는 그 주제를 연구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마지막 하나님의 백성이 가져야 할 특별한 안식의 경험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히 4:9, 10). 이 말씀은 날짜만의 안식일이 아닌, 참된 안식의 경험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루어져야 할 것을 시사하고 있다. 1.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 그런데 4장 앞부분에 보면 이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가 먼저 언급되어 있다.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히 4:1, 2).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참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참된 안식의 경험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왜 그런가? 그 이유는, 첫째로 믿음이 들음과 화합하지 않았다는 것, 둘째로 순종치 않았다는 것(6절)이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않았다는 말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성경 진리의 순수한 복음이 요구하는 참된 믿음을 가지지 못한 것을 가리킨다. 참된 믿음이란 예수님이 가지셨던 믿음, 곧 영혼을 구원하는 데 이르게 하는 믿음, 행함이 따르는 믿음, 주님의 은혜와 복음의 능력으로 죄를 승리하고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믿는 믿음, 그래서 생애에 죄를 다스리는 증거가 나타나는 믿음을 가리킨다. 또한, 순종치 않는다는 것은, 머리로는 믿지만, 실생활에서 변화가 없고 진리의 복음의 능력이 순종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을 말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안식 경험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고, 설사 이들이 성경이 말하는 참 안식일의 날짜를 지킨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인을 받을 수 없다. 2. 참된 안식, 쉼의 경험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히 4:10). 참된 안식을 경험하는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는 사람이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안식일에 쉬셨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만물이 하나님의 법칙대로 잘 운행되도록 모든 자연의 법칙을 만들어 놓으셨다. 그러므로 만물은 하나님의 법칙을 따라 순환되고 운행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이 잘 운행되는데 필요한 모든 법칙과 모든 준비를 다 이루어놓으시고 쉬신 것이다. 구속 사업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구원받기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다 취해 놓으셨다. 인간이 그 바른 복음의 진리를 듣고 그것에 그의 믿음을 합하기만 하면 넉넉히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모든 방편을 다 마련해 놓으신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명을 순종할 힘까지 준비해 놓으셨다. 복음에는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있는데, 죄의 권세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해방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이 들어 있는 것이다. “자기 일을 쉰다”는 뜻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은 인간의 일을 쉰다. 인간의 일, 즉 육체의 일은 쉰다는 말이다. 육체의 일이 무엇인가? 우리는 그 대답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갈 5:19, 20). 육체의 일은 이와 같은 악한 일들임을 성경은 열거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자기 일, 인간의 일, 즉 육체의 일을 쉰다는 것은 앞의 성경 절에 열거된 육체의 일을 행하지 않는다는 것, 즉 죄를 그치는 것을 말한다. 마음과 의도 속에 육체의 일이 아직 남아 있다면, 아직 육체의 일을 행하는 것에 기쁨을 느끼고 있다면, 그 사람은 참된 안식의 경험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비록 육신이 부족하고 연약할지라도, 그래서 타고난 성향과 유전자 때문에 죄로 기울어지기 쉬운 경향이 자꾸 나타나 실수를 범한다고 할지라도, 의도적인 고범죄를 짓는다든가, 육체의 일, 죄의 일을 하기를 즐거워하며 따르는 일은 우리 생애에서 근절되어야 한다. 예수님과 성령의 임재 속에 살므로 죄를 짓고 싶은 욕망이 사라진 사람, 용서받은 죄인으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광을 돌리는 생애를 살기를 너무나 소원하는 사람, 자신의 의지를 하나님께 굴복시키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아주 습관이 돼버린 사람, 세상에 대한 욕심도, 죄지을 욕망도 없이 생애의 방향이 하나님을 위해서 완전히 바뀐 사람의 마음속에는 없어지지 않는 하늘의 평안함이 깃들며, 그 사람의 생애에는 하나님의 성품이 온전히 이루어지게 된다. 그것이 참된 안식의 경험이며, 이런 경험을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인을 받는 것이다. **마치면서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선과 악의 대 쟁투에서 승리하는 하나님의 참 백성을 준비시키기 위해, 세 명의 천사를 통해 복음을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세 천사가 전하는 현대진리인 영원한 복음의 비밀을 이해하고, 참된 안식일을 지키며, 참된 안식의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속히 만들어지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이런 사람들이 준비되어야 온 세상을 복음의 빛으로 환하게 비치는 요한계시록 18장 1절에 예언된 영광스러운 성령의 운동과 바벨론을 향한 큰 소리 외침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영원한 복음의 비밀을 이해하고 체험하여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열심히 외치는 하나님의 신실하고 충성스러운 자녀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가? 이 일에 함께 하게 되는 독자들이 되기를 기도드린다. 진짜 거울 강영은 “사랑하는 자들아…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요일 3:2, 3). 조금 우습고 흥미로운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따뜻한 옷 한 벌이 필요해 들렀던 옷 가게에서 집어 든 옷을 집에 와서 입어보았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집 거울에 비친 사온 옷을 입은 나의 모습은, 옷 가게 거울에서 보던 모습과 사뭇 달랐습니다. 거울에 비친, 남의 것을 빌려 입은 듯 어울리지 않는 낯선 모습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정말 그 거울 때문이었습니다. 그 옷을 산 것은... 멋지게 보이도록 만들어진 그 옷 가게 거울 때문에… 예쁘고 날씬해 보이게 하는 옷 가게의 거울처럼 세상에는 틀린 거울들이 우리의 모습을 비춰줍니다. 그리고 그 가짜 거울이 말해준 모습을 보고, 그것에 비친 우리의 모습을 보고 우리는 웃고 울곤 합니다. 우리가 비쳐 보아야 하는 진짜 거울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호수같이 잔잔한 예수님의 거울에 당신을 비춰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 모습이 보입니다. 예수님의 거울에 비춰보고, 말씀의 거울에 비춰보아야 우리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머리가 헝클어져 추한지, 얼굴에 얼룩이 묻어 더러운지, 옷매무새가 흐트러져 지저분한지, 그래서 어디를 씻고 어디를 고쳐야 하는지, 예수님의 거울은 정직하게 말해줍니다. 때때로 너무 맑은 예수님의 거울은 숨기고 싶은 부분을 어김없이 비쳐내 회개하게 만들어 주고, 때때로 너무 따뜻한 예수님의 거울은 추한 허물을 감싸 사랑스러운 모습을 연출해 줍니다. 늘 들여다보는 예수님의 거울 때문에, 그리고 그분이 내미는 손길로 우리는 예쁘게 쓰다듬어집니다. 그리고 고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흔들리는 당신의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지 마십시오. 흔들리는 감정의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지 마십시오. 때로 격정의 파도 분노의 바람 일렁거려 잔잔한 호수처럼 당신의 모습 담담히 비쳐내지 못하고, 때로 열정의 물살 출렁거려 칠하지 않아야 할 색깔 덧입히기에…… 변하기 쉬운 다른 사람의 거울에도 당신을 비춰보지 마십시오. 가치 없는 인간의 칭찬과 값싼 아첨, 그리고 진실되지 않은 과한 칭송은 해로운 약처럼 영혼을 좀 먹을 뿐, 타인의 거울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허망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다만 그때의 자신의 감정과 필요에 따라 자기 눈에 보여지는 대로 당신의 모습을 말해줄 뿐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그 말 때문에 착한 사람이 되어 우쭐하고, 그 말 때문에 예쁜 사람이 되어 신이 나고, 때론 못난 사람이 되어 풀이 꺾입니다. 그것이 늘 변하는 변덕스런 인간의 거울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하나님의 사랑만이 당신을 비추는 거울이 되게 하십시오. 차가운 마음 따뜻하게 녹여 사랑의 화신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당신을 비추는 거울이 되게 하십시오. 더러운 영혼 맑게 씻어 거룩한 하늘빛으로 빛나게 하는… 진짜 거울을 매일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진짜 거울에 담긴 주님의 모습이 늘 그 거울을 들여다보던 우리 모습이 되어, 주님이 나인지, 내가 주님인지 분간할 수 없게 될 때까지… 훗날 문득 우리가 그와 같은 줄을 알게 될 때까지… 동행: 변화를 위한 몸부림 바쁜 도시생활을 접고 조용하고 한적하고 아름다운 시골에 가서 말씀 보고 기도하면 저절로 변화될 수 있을까? 불행히도 변화를 위한 간절한 몸부림이 없다면,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알고 그분의 뜻대로 살고자 목숨 걸고 하나님과 씨름하지 않는다면 변화는 결코 이르러 오지 않는다. 환경은 우리를 변화시켜주지 못한다. 오히려 시골 생활은 가족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서 자신과의 투쟁이 더욱 심할 수밖에 없다. 얼마 전 나는 어머니를 통해 아버지의 경험담을 듣게 되었다. 나의 아버지는 청년 시절과 결혼 초기에 문서전도를 하셨고 특별한 경험을 많이 하신 분이시다. 그리고 결혼을 하신 후 몇 교회에서 자급 사역자로 봉사하시다가 형과 내가 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자 전원 교육을 위해 시골생활을 가셨고 거기서 많은 고생을 하시면서 말씀대로 살고자 애쓰셨다. 수십 년간 시골생활을 하며 생활을 단순하게 하시고, 신앙도 남달리 하신 분이시다. 그런 어느 날 아버지는 자신이 오랜 세월 말씀대로 잘 살아보고자 시골생활을 했지만, 자신의 모습을 볼 때에 실망스럽고 낙망이 되셨다고 한다. 무엇보다 가족들에게 진정한 그리스도인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셨다. 말씀을 많이 알고 가르치셨고 누구보다 말씀의 원칙에 확고하신 아버지셨지만, 예수님의 성품(사랑)이 없다면 그 모든 것은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일 뿐이라는 것을 아버지는 잘 알고 계셨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급박한 소식들과 연달아 일어나는 예언의 성취들을 보며 아버지는 자신의 부족을 느끼고, 자신이 수십 년간 노력해 왔으나 자신의 힘으로는 변화가 전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깊이 느끼셨다. 적어도 수십 년 하나님을 믿고 시골생활을 했으면 지금은 천사처럼 변화되었어야 하지 않는가? 그래서 매일 새벽 정해진 기도장소에 가서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하셨다. "하나님, 나를 변화시켜주지 않으시려거든 차라리 나를 죽여주십시오. 내가 변화되지 못하면 어차피 하늘에 가지도 못할 텐데 그럴 바에는 이 죄악 세상에 오래 살고 싶지 않습니다. 내게도 희망이 있다면 나를 변화시켜주시든지 아니면 나를 당장 죽여주십시오." 하나님을 닮고자 하는 아버지의 간절함, 그리고 아버지의 기도는 진심이었다. 아버지는 정말로 하나님을 닮을 수 없다면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믿고 계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버지를 죽게 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기도를 드린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어느 날 아침 어머니가 부엌에서 아침밥을 하고 계셨는데 아버지가 밖에 기도의 장소에서 기도하시고 올라오셨다. 그리고 아침을 준비하시는 어머니를 부르시더니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그동안에 어머니께 잘못했다고 생각되는 것을 모두 다 털어놓으시며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좋은 모본이 되지 못한 것들에 대해 눈물을 흘리시며 용서를 구하셨다고 한다. 어머니는 그 후로 아버지의 모습에서 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변화를 보게 되셨다고 한다. 작은 것에도 더 오래 참게 되셨고,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되셨고, 작은 것에도 쉽게 감동하시고, 자신의 권위보다는 다른 사람을 더 많이 생각해주는 사람으로 변하고 계신 것이다. 지금도 아버지는 자신의 무뚝뚝한 성격을 거슬러 부드럽고 친절하고 용기 주는 말을 하려고 노력하시며, 시간만 있으면 말씀을 보시고, 앉으시면 늘 신앙적인 이야기밖에 할 줄 모르신다. 아버지의 "나를 변화시켜주지 않으시려거든 차라리 나를 죽여주십시오"라는 간절한 영혼의 울부짖음은 응답되고 있는 것이다. 난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나는 변화되고 있는가? 하나님께 대한 나의 갈망과 열정은 어떠한가? 일에 쫓기며, 나 자신의 일과 내 이익과 내 욕망을 위해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우리가 매일 예수님을 닮아가지 않는다면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없다. 내 삶을 돌아보면서 나도 아버지처럼 기도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하나님, 나를 변화시켜주십시오. 나를 변화시켜주지 않으시려거든 차라리 나를 죽여주십시오. 라이프 토크: 복부 두뇌 호르몬의 비밀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왜 배가 아픈 것일까? 뱃속에 제2의 또 다른 뇌가 있다는 것은, 일반인에게 굉장히 생소한 사실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과학자들은 위장기관도 뇌에서 제어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최근 위나 장도 일종의 고유 ‘지능’이 있어서 뇌처럼 사고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제2의 뇌는 ‘복부 두뇌’라 하며, 1억 개 이상의 신경세포 다발을 가지고 있고, 화학물질을 분비∙저장하는 기능이 있다. 기억 속에 저장해 놓은 음식 특성에 맞춰 소화속도와 소화액 분비 속도를 조절하는 기능이 있는 것이다. 제2의 두뇌인 복부 두뇌는 대뇌와 서로 연결이 되어 있어서 그 중 하나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하나도 영향을 받게 된다. 직장, 학교, 집안일 등의 스트레스와 소화불량이 서로 상관관계를 맺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사람의 감정에 관여하는 ‘세로토닌’은 ‘행복 호르몬’이라고도 알려졌는데, 이 세로토닌은 뇌뿐 아니라 ‘장 근육운동 제어’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소화기관에서 음식물을 이동시키는 ‘장 근육 연동운동’을 자극하는 것이 바로 세로토닌이 하는 일이다. 그러나 ‘행복 호르몬 세로토닌’도 그 수치가 심각하게 높아지면, 민감해진 대장 때문에 설사, 복통 또 복부 팽만감 같은 소화장애 과민성대장증후군이 발생한다. 복부 두뇌의 신경세포가 과도한 자극을 받아 세로토닌을 너무 많이 분비해서 나타나는 경우이다. 현대인들의 만병의 근원이 되는 스트레스를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자신만의 스트레스 해소방법을 가지는 것이 어떨까? 세로토닌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면, 세로토닌은, 쾌락의 정열적 움직임, 긍정적인 마음, 성욕과 식욕 등을 관장하는 도파민과 불안, 부정적 마음, 스트레스 반응 등을 관장하는 노르아드레날린, 이 두 가지 신경을 억제하여, 너무 흥분하지도 않고 불안한 감정도 갖지 않게 평온함을 유지하는 일을 한다. 여성은 남성보다 세로토닌 합성률이 낮아서 쉽게 고갈되기 때문에 유의해야 한다. 우리 몸이 세로토닌을 더 많이 생성하게 하려고, 쉽고도 간단한 일, 즉 맑은 공기 마시며 걷기, 햇빛 아래 웃으며 걷기, 맑은 물 천천히 마시기, 이런 기본적이고 긍정적인 일부터 시작해 보자. 가족과 이웃의 처지를 돌아보자. 또 이웃에게 먼저 미소로 다가가자.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나누어 주자. 그러면 행복 호르몬이 나와 건강한 사람이 될 것이다.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연약한 존재들인 것 같지만,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는 환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위대한 존재로 창조하셨던 사실을 기억하자. 또한, 인간이 환경을 다스리고 만들어가는 창조적인 존재임을 상기하자. 환경을 극복하고 행복하고 건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가능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