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장(第十五章). 여자(女子)와 술과 도사(道士)들.
금몽추는 몹시 기분이 어색해 져서 몸둘 바를 몰라 주위를 두리
번거리다가 밖으로 걸음을 옮기며 소리쳐 말했다.
"무, 무슨 소리요? 우선 식사나 하도록 합시다. 만일 시간이 좀
더 늦어지게 되면 곤란해지겠소. 우리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은 아직
멀고 시간은 별로 없으니까. 서두릅시다!......"
확실히 왕산산은 간밤에 그렇게 소란을 피운 이후에 상당히 안정
을 되찾았고, 또한 이전보다도 더욱 밝고 차분해진 듯한 기색(氣
色)이었다.
아침식사를 마친 후에 간단하게 준비를 더 하고 일행은 다시 길
을 떠났는데, 이후로는 거의 현성이나 촌락이 보이지 않는 산속으
로 나아가는 험한 여정이었고, 게다가 금몽추는 자신의 어색해진
기분을 감추기라도 하듯이 빠르게 앞서서 나아갔기 때문에 그 나아
가는 속도가 빨라졌다.
더러는 산속에서 야숙을 하기도 하고, 혹은 운이 좋으면 어느 산
골의 작은 마을을 발견하여 그곳에서 묵어 가기도 하면서, 여러 날
이 지나자 일행은 구파일방(九派一 )의 하나이자 최근에 들어서
위세를 떨치기 시작하고 있다는 곤륜파(崑崙派)의 부근에 이르렀는
데, 느닷없이 어디선가 요란하고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으므로 잠
시 걸음을 멈추었다.
"어찌된 영문일까? 혹시 누가 지금 아기를 낳고 있는 것일까, 아
니면 혹시 이 부근의 어느 마을에서 지금 잔치를 벌이고 있는 것일
까? 제형! 당신은 대체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있겠소?"
제운우는 안색을 찌푸리며 뭔가 깊이 생각하는 표정이었는데 금
몽추를 바라 보며 천천히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무래도 일단 가서 알아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소."
금몽추는 궁구가의 엉덩이를 가볍게 치며 소리높혀 다시 말했다.
"과연 그 말은 내 의견과 동일하오. 가자, 가자, 가자! 아무리
바빠도 중요한 볼일이 있다면 일단은 그 일을 해결해야만 하지 않
겠느냐? 궁구가야, 궁구가야! 너는 비록 미물이라고도 할 수가 있
지만, 그러나 일단 나와 함께 지내는 것이라면 이 고귀하고도 드높
은 이 곤륜삼성(崑崙三聖)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만 할 것이다.
네가 만일 함부로 행동하거나 한다면, 누군가가 그것을 알아 보고
혹시 저 곤륜삼성이라는 분도 너처럼 지저분한 사람이 아닐까 하고
생각할 것이 아니냐? 어어? 이 녀석아, 이 쪽이 아니라 바로 저 쪽
이란 말이다. 이 쪽이 아니라니까......?"
왕산산이 소상자의 위에 올라탄 채로 뒤따라 오며 웃으며 입을
열어 말했다.
"상공(相公), 궁구가가 이 쪽으로 가는 데에는 아마도 나름대로
의 이유가 있을 테니 일단 두고 보기로 하지요. 혹시 무슨 귀한 보
물(寶物)이라도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르지 않겠어요?"
금몽추는 두어 번 고개를 가로젓다가 하는 수 없다는 듯이 한숨
을 내쉬며 말을 받았다.
"하긴 그 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오. 본래 이 궁구가라는 녀
석은 그 방면에 있어서는 어떤 사람들보다도 더욱 감각이 민감하다
고 할 수가 있지. 다만 유감스러운 것은 평소에는 이 녀석이 나의
이 주머니를 생각하지 않고 그 능력(能力)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
이오. 하 하 하, 그러니까 오늘은 저번 날에 텅텅 비게 되었던 나
의 주머니를 다시 채울 수 있게 될 지도 모르겠군."
궁구가가 가는 대로 몸을 내맡기다 보니 잠시 후에 일행은 어느
작은 계곡(溪谷)에 위치하고 있는 산골마을에 이르렀다.
"빌어먹을, 이 녀석아. 이런 곳에는 보물이 있을 리가 없단 말이
다. 혹시 너는 그 사이에 그런 놀라운 능력이 퇴보하고 만 것이 아
니냐? 대체 이런 작은 마을에 무슨 보물이 숨겨져 있겠느냐?"
왕산산이 뒤따라 와서 가볍게 미소를 짓고 있는데, 느닷없이 제
운우가 마을의 안쪽으로 신형(身形)을 날려 사라져 가는 바람에 공
심도 즉시 그 쪽으로 신법(身法)을 펼쳐 가 버렸다.
왕산산이 다가와서 그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웃으며 말했다.
"비록 어떤 보물은 구경할 수 없더라도 이 곳에서는 여자(女子)
는 만나 볼 수 있지 않겠어요? 아마도 역시 당신의 말대로 누군가
가 아이를 낳고 있는 것 같기도 하군요."
"여자라고? 으흠, 그것은...... 그것도 역시 보물이라고 할 수도
있는 일이겠지. 그러나 과연 이 작은 산골마을에 그런 미인(美人)
이 숨겨져 있을까?"
마을의 중앙쪽으로 다가가 보니 제법 널찍한 공터에는 거대한 장
작불이 타오르고 있었고, 수십명이나 되는 도복(道服)을 입은 사람
들이 사방으로 오가며 시끄럽게 웃으며 떠들어 대고 있었다.
사내들이 이렇게 한 번 질탕하게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이라면 당
연히 거기에는 술과 고기와 여자가 빠질 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상한 점은 그 사내들이 비록 얼굴은 험상궂게 생긴 남
자들이라고는 해도 하나같이 깨끗한 도복을 걸치고 있는 사람들이
라는 점이었다.
으레 도사(道士)들이라면 오히려 술과 고기와 여자 같은 그런 것
들을 멀리해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장작불속에는 크고 작은 가축들이 구워져서 짙은 냄새를 풍기고
있었고, 술병들은 사방에 지천으로 널려 있었으며 그리고, 여자(女
子)들은 서너 명이 여기저기에 앉아서 시중을 들고 있었고 또한 다
른 한 여자는 온 몸이 발가벗겨져서 모든 사람들의 눈요기가 되고
있었다.
'오호, 으으......! 과연 대단하군. 보물은 보물이라고도 말할
수가 있겠구나.'
제운우와 공심은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있었는데 벌써 뭔가 좋
지 않은 시비가 벌어져 있는 것 같았다.
"정말 그만두지 못하겠다는 말인가? 나는 허튼소리를 하는 사람
은 아니다!"
금몽추는 왕산산을 돌아 보며 짐짓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
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저 제대협은 언제나 무난한 성격이고 별로 화를 내지 않는 편인
데 어째서 지금은 저렇게 심하게 언성을 높이고 화를 내고 있는 것
이지? 평소에 나에게 무슨 불만이라도 있었던 것이 아닐까?"
왕산산은 자신도 눈앞의 발가벗겨진 여인의 모습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다소 시선을 외면하며 말했다.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그는 점잖은 사람이지만 이렇게 하는 데
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예요."
근처에서 맴돌던 한 도사가 두 사람에게 다가와서 음산(陰散)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 곳은 출입금지 구역이다. 하지만 너희들은 이미 이 안으로
들어왔으니 어쩔 수가 없는 일이로군? 그런데 너희들은 저 사람들
과 일행이겠지?"
이 도사는 발걸음도 가볍게 술에 취한 상태인데도 눈빛이 형형하
게 빛나는 것이, 무공(武功)을 기초부터 착실하게 배워 온 사람이
라고 할 수 있었다.
금몽추는 그 도사가 처음부터 마치 원수를 대하듯이 살기(殺氣)
어린 태도로 자신들을 대하는 것이 자못 이상스럽다는 듯이 바라보
다가 대꾸했다.
"당신은 그것을 잘 알고 있군. 하지만 이 곳이 출입금지 구역이
라니, 나는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그 어떤 팻말도 보지 못했는데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오?"
그 때 제운우가 다시 크게 언성을 높혀서 소리쳤다.
"그만두라는 내 말이 들리지도 않느냐? 나는 본래 살인(殺人)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너희들이 오늘 나로 하여금 피
를 보게 만들고야 말 것이다!"
공심은 그 옆에 있었지만 그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반쯤 눈을
내리감은 자세로 합장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을 상대하던 일단의 도사들이 일제히 등뒤에서 장검(長劍)을
뽑아 들며 호선(弧線)을 그리자, 문득 누군가가 그 흉흉(凶凶)해진
분위기를 깨고 느긋한 음성으로 입을 열어 이렇게 말했다.
"잠깐, 보아 하니 그들도 제법 무공(武功) 꽤나 배운 모양인데,
그렇게 살벌하게 대하지 말고 이리와서 고기나 먹어 보라고 해라.
그야말로 그 어디에서도 맛보기 어려운 진귀한 고기들이 있고 또한
술도 준비되어 있으니 만족하게 될 것이다. 흐흐흐!......"
옆에서 다가 들던 도사도 물러갔으므로 금몽추는 왕산산과 함께
그 쪽으로 가며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이건 약간 이상하군. 사내들이란 그저 만나서 하는 인사라
는 것이 이봐, 술이나 한 잔 하세, 라는 것인데 어째서 저 멀쩡하
게 생긴 도사녀석은 대신 고기나 먹어 보라는 것일까? 그것은 뭔가
앞뒤가 바뀐 것 같군. 게다가 그 어디에서도 맛보기 어려운 진귀한
것이라......? 이게 대체 어찌 된 영문인 지 모르겠군? 혹시 저 소
화상(少和尙)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 발가벗겨져서 사지(四肢)가 벌려져서 묶
여 있는 여자는 다른 여자들과는 달리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용모
나 몸매가 이런 산골에 살 것 같지 않게 아름다운 편이었다.
장작불에 가까이 있으므로 추위보다는 뜨거움을 더 느낄 텐데,
그 여자는 지나치게 공포(恐怖)에 질려서인지 전혀 그러한 것을 느
끼지 못하는 듯 표정이 아득하고 멍해진 것 같았다.
방금전에 말한 그 도사는 반대편 쪽에 다른 도사들에게 둘러싸여
마치 우두머리처럼 앉아서 술잔을 들고 있었는데, 나이도 다소 지
긋한 편이고 이런 경험이 적지 않은 듯 아주 태도가 느긋해 보였
다.
그 도사의 말을 듣고 다른 도사 하나가 마악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기를 찢어서 제운우에게 다가가 건네며 음흉(陰凶)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도장(道長)께서 너희들이 이 고기를 먹으면 살려준다고 했
으니 어서 먹도록 해라. 흐흐, 한 입만 먹어도 평생 그 맛을 잊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 도사가 그렇게 웃으며 말하자 다른 도사들도 일제히 그에 동
조하듯 음흉하고 시끄럽게 웃어 대기 시작했다.
그 때 문득 묶여 있던 그 여자가 갑자기 정신을 차리더니 소리쳐
비명을 질렀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제발 저를 좀 살려 주세요! 협객(俠
客)님들, 그건...... 그건 고기가 아니예요. 저의 남편이예
요......"
도사 하나가 달려들어 소리치는 그 여자의 따귀를 후려쳤다.
"이 더러운 년아, 네년도 이제 잠시 후면 그 황홀(恍惚)한 맛을
보게 해 줄 테니 입닥치고 가만히 있어! 만약 그렇지 않으면 먼저
아가리를 찢어 버릴 테다!"
금몽추가 그 광경을 바라 보다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정말 멍청한 녀석이로군! 그 아름다운 여인이 살려 달라고 했으
면 살려주면 되는 것이지 어째서 저렇듯 폭력(暴力)을 행사하는 것
일까? 으음, 게다가 보아하니 여인을 저렇듯 험하게 묶어 놓고 있
다니...... 저렇게 해도 과연 도사(道士)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일
까?"
그 옆의 다른 도사 하나가 음탕(淫蕩)하게 웃어 대며 나서서 입
을 열었다.
"우리는 먼저 이 계집을 구워 버리는 것이 어때? 아무래도 계집
이 더 맛이 있지 않을까? 난 역시 저기에 있는 계집을 보니 이 계
집을 상대하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어."
왕산산은 그들이 감히 자신을 향해 음탕하고 괴이(怪異)쩍은 시
선을 보내는 것을 보고 그만 화가 나서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당신들은 대체 어느 도관(道觀)에 소속된 사람들이죠? 이 부근
은 곤륜파의 관할하에 있는데 감히 이런 곳에서 이럴 수가 있나요?
그들이 두렵지도 않나요?"
그 도사가 음침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곤륜파? 곤륜파라......? 그런 거라면 우리들이 잘 알고 있지.
하지만 이 일이 끝나면 우리는 자연 이 모든 것들을 불태우고 흔적
을 없앨 텐데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으흐흐흐! 네년도 그렇게 떠
들지만 말고 나중을 위해서 차라리 먼저 우리 진인(眞人)들에게 옷
을 벗고 다가와서 다소곳이 시중을 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왕산산은 너무나도 어이가 없고 상대도 할 수가 없어서 얼굴이
빨개진 채로 고개를 돌려 금몽추를 바라 보며 말했다.
"상공, 이 사람들은 모두가 그야말로 짐승과도 같아요. 제가 이
런 부탁을 드리는 것은 잘못된 일이지만, 오늘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이들이 다시는 저런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해 주세요."
금몽추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저 사람들이 다시는 저런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기는 쉽지 않은
노릇이지. 다만 이 세상에서 보이지 않게 하는 방법은 가장 쉽다고
할 수가 있소. 으음, 저들은 사실 짐승보다도 더 못하다고 할 수가
있겠지."
제운우가 차갑게 굳어진 안색으로 다시 말했다.
"나는 이미 그만두라는 말을 했다! 나의 이러한 경고는 이것으로
마지막이니 너희들은 나의 손속이 잔혹(殘酷)하다고 원망하지 말아
야 할 것이다. 나는 지금부터 열을 세겠다. 만약 그 사이에 너희들
이 반성을 하지 않는다면 너희 모두의 제삿날은 오늘이 될 것이
다."
고기를 들고 있던 그 도사가 고개를 돌려 우두머리를 바라 보며
웃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이 녀석은 전혀 말을 듣지 않는데요? 흐흐, 이제 어떻
게 할까요?"
우두머리는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그럼 그것을 녀석에게 던져 주어라. 만일 그래도 말을 듣지 않
는다면 그 녀석의 코를 뭉게버리는 것이 좋겠지?"
그 도사는 즉시 그 고기를 제운우에게 던져 버리며 장검을 뽑아
들고 소리쳤다.
"이 미련스러운 후레자식! 하지만 차라리 잘 된 일이다. 우리도
사실은 저 기막히게 생긴 계집 때문이라도 네놈들을 그냥 돌려 보
낼 생각이 아니었다. 자, 지옥(地獄)에나 가라!"
도사가 던진 고기는 웬일인지 스스로 방향(方向)을 바꾸어 움직
이더니 다른 쪽으로 날아갔다.
도사는 그와 함께 이미 운기(運氣)한 내공(內功)으로 검법(劍法)
을 펼쳐 제운우를 공격했는데, 제운우는 그것을 보더니 그저 느릿
하게 손을 내밀어 상대방의 검날을 잡아 버렸다.
비단 어지럽고 눈에 거의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상대방의 검날을 잡아 낸다는 자체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일반적
으로 상승무공(上乘武功)을 연성한 사람은 검법을 펼친 때에 자연
그 검날에 검기진상(劍氣振傷)의 강기( 氣)류가 깃들어 있기 마련
인데, 그것을 손으로 잡는다는 자체가 마치 자살행위처럼 보여졌
다.
그 도사는 제운우가 자신의 장검을 잡아 버리는 것을 보자 아마
도 그 손이 박살이 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코웃음을 쳤지만,
그러나 의외로 제운우의 손은 상처하나 없이 멀쩡했고, 이어 제운
우는 그 도사를 향해 나직하고 힘있는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죽어라."
상대방이 그런 말을 한다고 해도 정말로 그 말처럼 죽으려고 하
는 사람은 아마 하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제운우가 별다른 행동도 없이 그저 그 말을
했을 뿐인데도, 그 도사는 일순 눈을 크게 뜨더니 입을 딱 벌리며
죽어서 뒤로 나동그라지는 것이었다.
도사들 가운데에서 한 사람이 놀라서 크게 소리치며 떠들어 댔
다.
"아니 저 미련스러운 녀석이 갑자기 무슨 사술(邪術)을 부리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저 사제(師弟)가 저렇게 맥없이 죽을
리는 없는데......?"
우두머리 역시 이제까지의 느긋하던 자세를 버리고 안색을 굳힌
채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소리쳤다.
"으음? 제법 한 수를 하는 모양이군! 그러나 흐흐, 감히 본파(本
派)에 대항하려고 하다니! 모두들 함께 공격해라!"
수십명이나 되는 술에 취한 도사들이 그 말을 듣자 갑자기 하나
같이 태도가 달라지더니, 장검을 휘두르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적(敵)이 어디에 있는 지도 살피지 않고 그저 허공(虛空)에 대고
장검을 휘두르는 것이 무슨 신들린 것 같기도 하고 미친 것 같기도
했지만, 그러나 그것은 전체적으로 기이(奇異)한 조화를 이루어 막
강한 위세를 느끼게 하므로 소위 말하는 검진(劍陣)이라고 하는 것
인 듯했다.
주위에서 시중을 들고 있던 다른 여자들은 그 광경을 보자 크게
놀라고 두려움을 느껴서 뿔뿔히 사방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제운우는 여전히 그 도사에게서 빼앗은 장검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먼저 손목을 놀려 장검의 손잡이로 바꾸어 잡더니, 마치 검
날 위의 먼지를 털어 내듯이 가볍게 전면(前面)을 향해 흔들었다.
그것은 그저 평범한 시골의 촌부(村夫)도 흉내낼 수 있는 일인
것 같았는데, 갑자기 그 위에서 우우우웅! 하는 벌떼들이 날아 다
니는 듯한 소음이 일어 나더니 앞에서 장검을 휘두르며 덮쳐들던
일단의 도사들이 급살이라도 맞은 듯이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벌렁
벌렁 나동그라졌다.
금몽추는 고개를 돌려 그러한 광경을 바라 보고 있던 왕산산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확실히 오늘은 저 제대협이 제정신이 아니로군! 어째서 그저 간
단한 수법이면 되는 것을 저렇게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자신의 모
든 밑천을 다 보여주려고 하는 것일까? 그도 혹시 갑자기 저 사람
들처럼 미쳐버린 것이 아닐까?"
왕산산도 어느 정도는 소잡는 칼로 닭을 잡고 있는 듯하다는 것
을 느끼고 있었으므로, 그를 마주보고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아무래도 그가 미쳤을 리는 없고
다만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그는 본래가 저렇게 자신
의 이성을 잃을 정도로 화를 내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금몽추는 눈살을 찌푸리다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쨌든 저 도사들은 그런 무공(武功)을 보았으니 호강을 한 셈
인데, 그러나 저 제대협은 이제는 자신의 대단한 무공을 본 저 사
람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죽여서 살인멸구(殺人滅口)를 하려고
할 것이다. 그들이 무공을 몰랐으면 차라리 좋았을 것을......"
아까는 어느 정도 사술(邪術)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그러나
이제는 그 제운우의 검법(劍法)이 사술이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는
일이었으므로, 우두머리는 그만 크게 놀라고 당혹스러워 져서 입을
딱 벌리며 주위를 둘러 보았다.
상황이 크게 좋지 못하다는 것을 간파하고 달아나 훗일을 도모하
려는 것이었지만, 그러나 제운우의 옆에는 공심이 있었고, 그 공심
은 그 자가 그렇게 하려는 것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아미타불, 오늘 살계(殺戒)를 열겠소이다!"
공심은 합장을 하며 가볍게 불호를 외우는 듯하다가, 즉시 신형
(身形)을 날려 그 쪽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우두머리는 마악 혼자 달아나기 위해 몸을 돌려 신법(身法)을 펼
치려다가 느닷없이 뒷쪽에 그 소화상이 나타나 있는 것을 보고 경
악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즉시 등뒤에서 장검(長劍)을 뽑아 들고
악독한 표정으로 소리치며 덮쳐갔다.
"좋다, 이 애숭이 중놈아! 오늘 이 도장(道長) 어르신의 매운 맛
을 한 번 봐야만 할 것이다!"
그 우두머리의 검법(劍法)은 과연 다른 도사들의 것과는 달라서
사뭇 삼엄하고 무시무시한 예기(銳氣)가 일어나고, 또한 맑고 푸른
빛의 검강(劍 )이 줄기줄기 내뻗치는 것이 전혀 근본이 없는 사이
비 도관(道觀) 사람의 실력이라고는 믿기지가 않을 정도였다.
아마도 공심은 그 순간에 혹시 무슨 착각을 했거나 아니면 방심
을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이전과는 다르게 그의 이번의 출수(出手)는 다소 느렸으며, 정말
로 그 때문에 한 순간 우두머리의 검세(劍勢)에 제압되어 버리는
양상이 일어났고, 그것을 무리하게 피하는 과정에서 그만 검강(劍
)을 맞아 한 쪽 팔의 옷소매가 붉은 피로 물들어 버리게 되고 말
았다.
우두머리는 일단 상대가 자신의 검초(劍招)를 무리한 상황에서도
거의 무난하게 피해 내자 다소 놀라기는 했지만, 그래도 일단 상대
방에게 상처를 입혔다는 것 때문인지 크게 득의한 표정으로 광소
(狂笑)를 터뜨리며 소리쳤다.
"알고보니 듣던대로 소림사(少林寺)의 소신승(少神僧)이었군? 흐
흐...... 하지만 소림소신승(少林少神僧) 공심(空心)의 실력도 별
거 아니었군 그래? 중원(中原)에서나 놀고 있을 일이지 대체 무슨
얻어먹을 것이 있다고 이런 곳까지 왔다는 말이오?"
공심은 자신의 상처는 별로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으나
웬지 안색이 굳어져 있었고, 엄숙한 어조로 합장(合掌)을 하며 대
꾸했다.
"시주의 이번 인생(人生)에는 오류가 있었고 또한 그 인연(因緣)
도 다한 것 같소이다. 부디 다음 생애에는 좀 더 마음을 가다듬고
바른 길로 나아가기를 바라겠소이다. 아미타불......"
뒤로 일 장여를 물러나 있었으나 불호를 외우는 순간 공심의 신
형(身形)은 어느새 다시 우두머리의 앞에 이르렀고, 역시 느릿하게
일권(一拳)을 내미는 듯했으나 우두머리가 그것을 인식했을 때에는
이미 하나의 주먹이 가슴 부위의 사혈(死穴)에 이르러 피할 여유가
전혀 없어진 것 같았다.
그것은 비단 소림사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나한권(羅漢拳) 가운데의 평범한 한 초식(招式)인 것 같았는
데, 그렇게 빠르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도무지 어떤 환상(幻像)
을 보는 것 같기도하여 믿을 수 없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우두머리는 그만 크게 놀라서 어쨌거나 대항해 보기 위해 급격히
신형(身形)을 좌우로 틀고 장검을 휘둘러 자신이 알고 있는 최강
(最强)의 초식을 펼쳐 반격을 가했으나, 그것도 잠시 뿐이었고 이
내 그의 입에서는 시뻘건 핏물이 분수처럼 터져 오르며 숨이 끊어
져 썩은 짚단처럼 뒤로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아미타불!......"
방금전에도 펄펄하게 살아서 날뛰던 우두머리를 죽여 저세상으로
보낸 이후 그 시신(屍身)을 바라 보며 불호를 외우는 공심의 표정
은 약간 우울해진 것 같았다.
제운우는 이제는 아까와는 달리 거의 평범한 수법으로 그 도사들
을 상대하고 있었는데, 그의 신형이 무시무시하고 위력적으로 보이
는 검진(劍陣)속으로 무모할 정도로 파고드는 순간 마치 장난처럼
도사들의 육신이 시신이 되어 나가떨어지는 것이었다.
검진은 그야말로 보기보다 위력적이어서 거의 모든 방위(方位)를
삼엄하게 점한 상태에서 움직이고 있었으며 그 전체의 힘이 일단
상대를 만나게 되면 한 쪽으로 집중되는 흐름이 있었으나, 이상하
게도 제운우가 그 흐름에 휘말리는 듯한 순간 마치 그가 갑자기 허
깨비가 되어 버린 것처럼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고, 어느새 그 뒤
로 돌아나와 그저 가볍게 장검을 휘둘러 도사들을 베어 넘기는 것
이었다.
이런 싸움은 대체 어찌된 영문인 지는 알 수가 없어도 전혀 상대
가 되지 않는 다는 것을 누구라도 알 수 있기 때문에, 벌써 도사들
은 공포(恐怖)에 젖어 달아날 궁리를 하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금몽추는 마치 방관자인 것처럼 그러한 광경들을 지켜보고 있다
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왕산산에게 말했다.
"정말 저 소화상은 마음씨가 너그럽기도 하군? 기왕에 죽일 작정
을 한 것이라면 어째서 저런 자에게 부상(負傷)을 당하는가 말이
야. 만일 나 같으면 그저 가볍게 처치해 버리고 나서 한바탕 웃어
버렸을 것을. 으음, 일단 그 시신을 조사해 보고 자신의 무공(武
功)이 틀림이 없는 지 확인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실로 이와
같은 상황이 아니라 적들이 많을 경우에는 저렇게 마음이 약해서
상처를 자주 입는다면 나중에는 어떻게 대처하겠느냐는 말이야. 내
가 보기에 지금 이 두 사람은 모두 다 갑자기 정신이 이상해 진 것
같군."
왕산산은 눈앞에 참혹한 도살극이 벌어지자 안색이 창백해져 있
다가 이내 그를 향해 웃으며 대꾸했다.
"우리는 아직 저 두 사람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어요. 아마
도 지금 이와 같은 일을 하는 데에는 다른 특별한 이유들이 있을
거예요."
금몽추는 눈살을 찌푸리며 두 손을 내저었다.
"아니 저 두 사람이 신비(神秘)하다고? 그렇지 않소. 그렇지 않
아. 신비한 것으로 치자면 오히려 내가 더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
지. 실로 나야말로 지금 이 세상(世上)에 있어서는 가장 신비한 편
이라고도 말할 수가 있을 것이오. 그러니 당신도 그들에게 너무 지
나친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소."
왕산산은 그를 향해 상냥한 표정이 되어 웃으며 손으로 아직도
묶여 있는 여자 쪽을 가리켰다.
"알겠어요. 그러니 우선 당신은 저 사람을 구해 주고 보살펴 주
는 것이 좋겠군요."
금몽추는 다시 그 여자의 벌거벗은 모습을 바라 보게 되자 절로
눈이 휘둥그래 져서 속으로 생각을 굴렸다.
'보, 보살펴 주라고? 으으...... 그거야 실로 나의 전문(專門)이
라고 할 수 있지. 나는, 나는 그저 즐기려는 것이 아니라 잠시 의
원(醫員)이 되어 그녀를 치료해 주려는 것이다. 으흠, 정말로 대단
하구나!......'
그 여자는 이미 조금전에 정신이 다시 돌아 온 상태였지만 대체
어떻게 돌아 가고 있는 상황인 지 알 수가 없어서인지, 여전히 얼
굴 가득 공포에 질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금몽추는 다가가서 느릿하게 그녀의 두 팔과 두 다리를 묶은 줄
을 풀어 주면서 다소 떨리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아, 안심하시오. 이제는 다, 다 된 것이오. 하지만 좀 더 침착
해야만 할 것이오. 나는 그대의 상처를 보살피기 위해서 천천히 하
도록 하겠소. 나는...... 나는 의원이오......"
'으음음, 정말로 대단하구나. 여자와...... 여자와 남자가 이렇
게 다르게 생겼으니...... 이는 실로 희한한 일이다. 나는 미처 왕
소저의 그것을...... 그것을 자세히 보지 못했다. 으으으, 그런데
이 여자는 어째서 이렇게 떨고 있는 것일까? 그러니 이렇게 내 손
도 덩달아 떨리고 있지 않은가?'
여자는 금몽추가 자신을 묶은 줄을 풀어 주면서 계속해서 자신의
은밀(隱密)한 부위들을 훔쳐보는 것을 보고, 약간 의아해 하다가
이내 웬지 표정이 다소 느긋하고 야릇하게 풀어졌다.
"고마와요. 저의 몸의 어딘가 잘못되었나요? 의원이시라면 좀 더
자세히 보아 주세요. 저는 약간 시간이 걸려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당신은 과연 의원이 틀림없나요?"
왕산산이 그 쪽에서 바라보고 있다가 다소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받았다.
"그가 의원이라는 것은 틀림이 없는 사실이예요. 그는 대단한 의
술(醫術)을 가지고 있어서 상당히 어려운 병(病)들도 치료할 수가
있죠. 하지만 그는 의원을 개업한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으니 서투
르게 보이는 것은 당신도 약간 이해해야 할 거예요."
금몽추는 두 여자가 그렇게 이야기를 하자 속으로 크게 뜨끔하여
밧줄을 푸는 속도를 빨리하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빌어먹을, 이거 입장이 난처해 지고 말았군. 게다가 이 여자는
별로 다친 곳도 없으니...... 이거 재수가 별로 없는 날이로구나.
만일 아까 저 녀석들이 이 여자의 이런 부위에 약간 어려운 상처라
도 입혀 놓았다면 나는...... 나는 핑계김에 좀 더 자세히 볼 수가
있지 않겠는가? 으음, 정말 이 여자는 대단하구나......'
난처해진 입장을 해소시키기 위해 금몽추는 짐짓 두 손에 안개와
도 같은 기운(氣運)을 일으켜 그녀의 몸을 안마해 주는 척하다가
몸을 일으켜 주며 한 숨을 내쉬고 말했다.
"이제, 이제 다 되었소. 당신은 이제 건강해지게 되었으니 그만
돌아가도 좋을 것이오. 으음, 돌아갈 곳이 없다고? 그렇다면 그것
은 내가 상관할 문제가 아니로소이다."
그 여자는 자유로운 몸이 되어 일어나게 되자 다소 부끄러운 듯
이 은밀한 부위들을 두 손으로 번갈아 가리더니, 금몽추를 향해 인
사를 했다.
"당신은 정말로 신통(神通)한 능력이 있는 의원이로군요. 저는
갑자기 몸도 건강해 지고 마음도 맑아진 것 같아요. 이렇게 감사를
드려요. 부디 시간이 있으시다면 저 쪽에 있는 저희 집에 잠시 들
렀다 가시기를 바래요."
이어 그녀가 벌거벗은 엉덩이를 흔들며 바삐 걸어가고 있는 광경
을 바라보고 있다가, 금몽추는 얼른 다시 왕산산을 향해 고개를 돌
리며 웃으며 말했다.
"휴우, 정말로 이 의원이라는 직업은 고되고도 어려운 것이오.
나는 당신이 조금전에 나를 의원이라고 소개할 때부터 이러한 고초
를 실로 생각했어야만 했던 것이오."
왕산산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는 듯하며 웃으며 대꾸했다.
"그렇다면 미안해요. 앞으로는 그럼 당신을 그 유명한 시인(詩
人)이라고 소개하도록 하겠어요. 그러면 되었나요?"
'시인...... 이라고? 으음, 시인이라는 직업은 이 상황에서는 별
로 쓸모가 없다. 나는 공연히 이런 말을 한 것일까? 으음, 당신은
앞으로도 이러한 상황이라면 나를 의원이라고 소개하는 것이 좋을
것이오.'
이미 그러는 동안에 장내의 상황은 이미 완전히 변하여 도사들은
비단 검진(劍陣)을 풀었을 뿐만 아니라, 서로 사방으로 뿔뿔이 달
아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제운우는 이 순간에는 갑자기 사람이 살귀(殺鬼)라도 되어 버린
것처럼 그들을 하나도 달아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고, 모두 다 추
격해서 죽여 버렸다.
우선 숫자가 적은 쪽은 지풍(指風)을 발출하여 사혈(死穴)을 짚
었고, 숫자가 많은 쪽은 쫓아가서 장검을 휘둘렀으며, 마지막으로
가장 멀리 달아난 사람을 향해서는 장검을 날려 그 사람의 숨통을
끊었다.
갑자기 그렇게 장내에 수십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죽
어 버리게 되자, 마치 아수라장(阿修羅場)이 되어 버린 것 같고 짙
은 피비릿내가 코를 찌르는 듯했다.
이어 제운우는 쉬지 않고 장작불을 보다 크게 지피더니 시신들을
모두 모아 불태우기 시작했다.
공심은 그 앞에 서서 죽은 이들의 극락왕생(極樂往生)을 기원하
는 듯 염불을 했다.
왕산산은 살벌했던 한 때가 지나가고 약간 평온(平穩)한 분위기
가 돌아온 듯하자, 다소 한숨을 내쉬더니 금몽추를 향해 말했다.
"우리는 지금 바쁘지만 기왕에 이 일에 끼어 들었으니 마무리를
하지 않을 수가 없겠군요. 이 곳에는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이 살 수
없을 테니 살아 남은 마을사람들에게 즉시 떠나도록 말해야 하겠어
요. 그 일은 바로 당신이 적격이겠죠? 마침 아까 그 여자가 자신의
집에 들러 달라고 했으니 어서 지금 그 여자에게 갔다 오도록 하세
요."
금몽추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꾸했다.
"으음, 또 다시 내게 어려운 일을 시키는군. 어째서 사람들은 가
장 어렵고 또한 중요한 일을 모두 나에게 시키는 것일까? 그건 내
가 너무나도 잘생겼기 때문일까, 아니면......?"
"만일 당신이 곤란하다면 그럼 내가 가서 말을 하도록 하겠어
요."
금몽추는 즉시 놀라서 발걸음을 옮기며 속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오. 아니오. 아니올시다.'
그 여자의 집은 마을의 가장 안쪽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언뜻 보
기에도 다른 가옥(家屋)들 보다 잘 꾸며져 있었고 또한 그동안 제
법 부유하게 지내왔던 것 같았다.
아이들은 없었고 그 여자 혼자 있었는데, 금몽추가 헛기침을 하
고 들어 가니 그 여자는 어느새 옷을 화사하게 차려입고 화장까지
엷게 한 뒤였다.
"그 무슨 후유증은 없소? 나는 마땅히 의원으로서 환자를 잘 보
살펴야 하는 의무가 있지만, 그러나 지금은 다른 해야 할 말이 있
어서 온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