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근대문화의 발상지라고 불리는 이곳은 많은 유적지가 산재해 있다.
많게는 100여년 짧게는 수십 년인 유적지들은 세월이 지나면서부터 무관심속에 온전하게 보전되지 못했다.
점점 황폐해져가는 모습을 보고 10여 년 전부터 좋은 동네를 만들기 위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일어섰다.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프로그램을 만들어 마을을 둘러보며 곳곳의 숨어있는 역사를 찾아 나서고,
양림동산을 ‘역사의 숲‘으로 이름 붙였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주민들은 양림동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 양림동문화지도다.
30여명이 조를 나눠 직접 걸어 다니며 거리를 측정해 만들었고
22곳의 유적지를 선정해 표지판도 설치했다.
평양에서 태어난 후 양림교회 목사가 된 아버지를 따라 광주로 내려와 생활한
김현승 시인은 숭일학교를 다니고 양림교회를 다녔다.
선교사 사택이 있는 현 호남신학대학의 언덕길을 자주 산책하며 사색을 즐겼다고 한다.
시비는 그가 근무하던 조선대학교와 무등산 광주도심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양림동산 능선에 세워져있다
목사이자 의사였던 우월순 (Robert M. Willson) 선교사가 1920년대 무렵 지은 이곳은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네덜란드양식) 건축물로 자리잡고 있다.
1908년 지금의 기독병원인 제중원의 원장을 역임하면서
나환자들을 돌보며 결핵 예방에 힘쓰는 등 의료 선교에 평생을 바쳤다.
특히 나병원을 개원하여 하늘이 내린 벌로 알려져 있던 한센병 환자들을 치료하고
양림동 뿐만 아니라 전남지역 순회 의료진료를 하는 등 봉사와 희생, 생명 존중의 정신을 일깨웠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전쟁고아들을 수용하는 시설로도 이용했다.
사택 한쪽에는 대나무숲이 우거져 있는데 개경에 화살을 만드는 재료를 보내기도 하고 죽제품으로 유명했음을 의미한다.
호랑가시나무/광주시 지정 기념물 제17호
우월순 선교사 사택 아래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다 보면 수령이 400년이 넘는 호랑가시나무가 있다.
잎이 두껍고 광택이 있는 가죽질이며 잎가에는 다섯 개의 가시모양 톱니가 있어서 호랑이가 등을 긁었다는 속설도 있다.
기독교에서는 이 호랑가시나무를 신성시 했으며 크리스마스카드에 붙여 장식으로 이용했다고도 한다.
1904년 처음 터를 잡을 때 이 호랑가시나무가 자리를 잡고 있어 그 후로도 선교사들의 보호를 받아왔다.
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피를 상징하는 붉은 열매 때문에 ‘예수나무’로도 불린다.
불우이웃돕기를 상징하는 ‘사랑의 열매’ 도안이 바로 이 호랑가시나무 열매에서 나왔다.
그 밖에도 이 양림숲에는 은단풍나무, 페칸 같은 다양한 외국수종의 나무들이 많이 있다.
선교사들이 가져와 심어놓고 향수를 달래기도 하고 보릿고개시절 비상식량으로 쓰였다.
이장우 가옥은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공간과
광주 최고의 부자들이 살았던 공간을 분리하는 기준이 되는 집이었다.
1899년에 지어진 전통가옥으로 일자형이 주를 이루는 남부 지방의 가옥과 달리 한양의 가옥처럼 ‘ㄱ’자 구조다.
나름 부를 과시하고 멋을 부린 것이다.
이장우 가옥은 1899년 정병호가 건축하였고 1965년 동강학원과 나주 동신대학교의 창립자인 이장우가 사들였다.
이장우 가옥을 건축한 정병호의 부친인 정낙교가 고려말 광주천의 강 가운데 건축되어
홍수를 다스린 석서정을 추억하며 일제강점기인 1914년 양림산 바위 언덕에 건축한 것이다.
시간이 없어서 구석구석 못가봐서 아쉽다 ㅠㅠ
다음에는 꼭~~ 다시 가서 천천히 한번 걸어보고싶다
첫댓글 선교사 묘역~우월순 선교사 사택~수피아여고 등을 둘러보는 코스와
정율성 생가~오웬기념각~이장우 가옥 등을 돌아보는 코스가 있다.
양림커뮤니티센터/펭귄마을 문화쉼터-펭귄마을
백년버스/광주종합버스터미널(유스퀘어) → 광주 시내 버스투어(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광주천·광주극장·광주학생독립운동발상지·광주제일고·양동시장·광주공원) → 근대역사문화마을 양림동 도보투어 → 오월광장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우월의 버스/광주종합버스터미널 → 광천동 성당/시민아파트 → 국군광주병원 옛 터 → 대인시장 지하도 → 오월광장 → 5.18민주화운동기록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