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머뭇거리는 사이 미-EU-일은 법으로 자국 AI기업 지원 / 5/6(월) / 중앙일보 일본어판
한국에서 인공지능(AI) 기본법 통과가 미뤄지는 사이 세계 각국은 규제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각국별 규제가 AI의 무분별한 활용을 막는 한편 자국에 유리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 규제부터 착수한 EU
올해 3월 유럽의회는 EU AI법(AI Act)을 통과시켰다. 근저에는, 미중이 주도하고 있는 글로벌 AI 산업에서 빅 테크를 견제해, 지역내의 기업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있다.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MS)·구글(Google), 중국 알리바바 같은 빅테크 AI 기업이 유럽에는 없다. 이 법률 전체 113개 조항 중 7개 조항은 혁신기업 지원조치에 관한 내용이고, 나머지는 규제 및 감시에 관련돼 있다.
EU AI법의 가장 큰 특징은 유럽 내에 사용되는 AI 시스템의 위험도를 4단계(허용 불가능한 위험, 고위험, 제한적 위험, 최소 위험)로 분류하고 이에 따른 의무사항을 각각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소 위험으로 분류된 경우 특별한 규제는 없다. 반면 빅테크가 만든 대규모언어모델(LLM)과 같은 범용 AI 모델에 대해서는 엄격한 규정을 두고 있다. EU AI법 제53조는 범용 AI 모델 공급자에게 AI 모델 학습에 사용한 데이터에 대한 세부 내용을 공개하게 하고 있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한국인공지능법학회장)는 "한국에서도 위험성에 따라 AI 기술에 차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면서도 "다만 어떤 AI가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갖는지 아직 정확하게 분류하기 어렵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지원 근거로 마련한 미국
미국은 2020년 일찌감치 '국가 AI 이니셔티브' 법을 제정해 AI 산업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2022년에만 AI 분야에 17억 달러(현 환율로 약 2600억엔)를 투자했다. 진흥에 초점을 둔 미국은 지난해 생성 AI 열풍 이후 부작용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바로 규제안도 만들었다.
지난해 10월 바이든 정부는 AI를 규제하는 첫 행정명령을 내렸다.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AI 모델 개발 기업은 정부가 검증한 전문가팀의 안전평가를 받아 결과를 정부에 고지해야 한다. 특히 미국 기업의 AI 기술을 이용하는 외국인(기업)도 적용 대상에 포함시켜 국경 너머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동안 AI 개발을 기업 자율에 맡겨온 일본도 이달 열리는 'AI 전략회의'에서 법 규제를 제안할 계획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민간의 자주적 대응에 맡겨온 방침에서의 전환에 정부 내에는 신중론도 있다"면서도 "그럼에도 법 규제를 논의하는 것은 일본만 규제 강화로 지연되면 사회적 리스크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 한국은 주도권 다툼
반면 한국 기업들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사업 예측 가능성에 도움이 되는 'AI 기본법' 도입은 국회에서 무기한 미뤄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부처 간 주도권 다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기반 조성 등에 관한 법률'(AI 기본법) 제정을 추진하는 가운데 방송통신위원회는 올해 3월 업무계획 브리핑에서 연말까지 'AI 서비스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가칭)'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개인정보위원회도 2월 업무계획을 통해 연내 AI 원칙과 기준을 구체화한 '6대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 업계 "국가 AI 산업 컨트롤타워 필요"
정부가 부처별로 규제를 내놓자 업계에서는 "AI기본법에 따라 국가 전체의 AI 전략을 컨트롤할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관된 AI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종합적으로 조정을 하는 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정우 네이버 퓨처AI센터장은 각 부서의 이해에 따라 법이 만들어지고 있어 전쟁터나 다름없는 생성 AI 시장에서 매일 싸우는 기업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며 국가 전체의 AI 전략을 세우고 부서 간 조율을 하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