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닝
손현숙
자라던 키가 정지됐다
23.5˚ 기울어진 지구여서
내 걸음은 피곤했다
신발 속에서 발가락 휘는 사이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애인은 떠나고 내 허리둘레는 반 인치 줄었다
헐렁해진 바지는 늘 나를 긴장시켰다
그러거나 말거나 꽃들은 바람에
제 몸을 얹어서 난분분 꽃잎을 털어낸다
저 바람을 어떻게 꽃잎에 담아낼까
바람과 꽃잎은 가는 길이 달랐다
고개를 꺾어서 키 높은 꽃나무
바라보기란 오지 않는 애인을 기다리는 것처럼
지루했다 바람에 꽃잎 속절없이 흘러갈 때
카메라의 눈도 따라 흘러갈 수 있다면
신발의 굽은 자꾸 높아졌다
꽃잎이 떨어지는 방향도 그 속도
바지를 줄이고 나서야 편안해진 허리처럼
느리게, 꽃잎을 따라가며 바람을 찍어내는
움직이는 중심이 편안하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지 않겠니?
———
*팬닝: 카메라를 흔들어서 흔들리는 사물과 속도를 맞추는 사진 기법.
—《현대시학》2013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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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숙 / 1959년 서울 출생. 1999년 「꽃 터진다, 도망가자」외 9편으로 《현대시학》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손』. 사진 산문집 『시인박물관』.
출처: 시와 image 원문보기 글쓴이: 경문(鏡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