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칭찬하신 믿음
(마태복음 15:21-28)
설교 : 문성욱 목사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을 받거나 칭찬을 받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자기의 존재를 인정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많은 사람 앞에서, 또는 상당히 수준 있는 집단 속에서 칭찬을 받을 때에는 그 기쁨이 더없이 커집니다.
초등학교에서 개근상을 받는 것과 노벨상을 받는 것은 차이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칭찬하고 상을 주는 주체가 다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주는 상은 그 학교에서 자신을 인정해 주는 것이지만, 노벨상은 전 세계에서 인정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값지게 여겨집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기왕이면 칭찬 받는 신앙생활을 하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똑같이 예수를 믿고, 똑같이 예배당에 나오고, 똑같이 봉사를 해도 어떤 사람은 칭찬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열심히 하고도 칭찬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칭찬 받는 신앙생활을 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나오는 고넬료는 비록 이방인 백부장이었지만, 유대인들로부터 칭찬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행10:22) 초대교회 때에 처음으로 7명의 집사를 세울 때에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여 교회의 일군으로 세웠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행6:3)
오늘 본문에 보면 주님으로부터 칭찬 받은 한 가나안 여인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가나안 여인’이란 말은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바알과 아세라라는 우상을 섬기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런데 그런 이방 여인이 예수님으로부터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칭찬을 받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는 중에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을 만나셨지만, 그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 가운데 큰 믿음을 가졌다고 칭찬 받은 사람은 단 두 사람뿐이었습니다. 그 한 사람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가나안 여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마태복음 8장에 나오는 이방인 백부장입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이 있는데 둘 다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한 이방인들에게서 큰 믿음, 칭찬 받을만한 아름다운 믿음을 보신 것입니다. 그러면 가나안 여인의 믿음이 어떤 믿음이었기에 오랜 믿음의 전통 속에서 살아왔다고 자부하던 이스라엘 백성들보다도 훨씬 더 큰 믿음으로 칭찬 받았습니까?
첫 번째로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을 ‘바로 아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나이다.” 라고 소리쳤습니다. 이 여인은 자신의 딸을 위해서 자기가 믿는 신에게 하소연도 해보고, 제물도 바쳐보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지만 귀신들린 딸을 고쳐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었고, 비록 한 번도 만나본 적은 없지만, 예수님이야말로 참 신이신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이란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처음 만난 순간 “주 다윗의 자손이여!” 라고 불렀습니다. 이 말은 구약에 약속된 메시야라는 고백입니다. 이것은 대단한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라고 고백하기는커녕 예수님이 메시야 되심을 거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이 여인은 담대하게 주님을 메시아로 고백하며 간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여인의 믿음이 칭찬 받을만한 믿음입니다.
두 번째로 가나안 여인의 믿음은 ‘적극적인 믿음’ 이었기에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와서 “흉악한 귀신 들린 내 딸을 고쳐주십시오”라고 외쳐보았지만, 예수님은 그 여인의 외침을 무시했습니다. 목이 터져라 외쳤도 예수님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여인은 한두 번 외친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23절에 보니까 너무 큰 소리로 계속 간청하니까 옆에서 듣던 제자들이 고함치는 그 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어서 빨리 쫓아버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 때서야 예수님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전혀 고쳐주고 싶은 마음도 관심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물러서지 않습니다. 25절에 보면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가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절하며 다시 한 번 간청합니다.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이 자신을 모른 척하고 자신을 버리려할 것 같은 상황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섰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로는 주님이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간구를 외면하시는 것처럼 생각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더욱 적극적으로 주님께 가까이 다가서야 합니다. 주님께 가까이 다가설 때 주님은 우리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세 번째로, 가나안 여인의 믿음은 ‘시련을 인내하는 믿음’이었기에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습니다. 26절에 보면 지금 여인은 예수님으로부터 개취급을 당하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모독과 멸시와 천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인을 향하여 ‘개’라고 부른 예수님의 말씀보다 우리를 더 놀라게 하는 것은 그 여인의 대꾸입니다. 이 여인은 “주님, 저는 개입니다. 그러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지 않습니까? 저에게도 그런 부스러기 은혜라도 주십시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7절)
어쩌면 여인은 지금까지 예수님으로부터 시험(test)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그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시험을 통과한 마지막 말은 “주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지 않습니까? 개만도 못한 저에게도 그런 부스러기 은혜라도 주십시오” 라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예수님은 여인을 향해서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교회가 512 큰잔치를 준비하고 열심히 기도하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금번 512 큰 잔치를 통해서 이 가나안 여인처럼 우리도 주님을 바로 아는 믿음으로, 적극적으로 사모하고, 전도할 때 멸시와 수모를 당한다 하더라도 참고 인내함으로 마침내 주님께 칭찬받고 복을 받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댓글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