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문예대학 출신 작가 작품>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장병문
초등학교 다닐 때 학예발표회가 있었다. 매년 어린이날을 기념하는 큰 행사다. 지역에서 하나밖에 없는 극장에서 개최된다. 발표는 두 번 하는데 학부모를 초대해서 한 번, 재학생들이 관람하는 한 번이 있다. 노래, 무용, 웅변, 연극과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나는 한 번도 무대에 올라가지 못했다. 특별한 재주도 없는 터에 운도 따르지 않았다. 무대에 올라서 자신 있게 발표하는 애들 때문에 항상 열등의식이 있었다. 부모님 보기도 미안했다.
6학년 때에는 친한 친구 3명이 무대에 올랐다. 각 반에 3명씩 뽑아서 연극을 했는데, 반마다 3명씩 보내달라는 연락은 방과 후에 왔던 것 같다. 아니면 아침 교무회의 때 담임 선생님이 전달받았는데 잊어버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연습 장소에 우리 반 애들이 보이지 않자 연극 담당 선생님이 급히 우리 반에 사람을 보냈을 것이다. 교실에서 잔무를 보던 담임 선생님은 별다른 고민 없이 눈에 보이는 3명을 보냈다. 당시 우리는 수업이 끝나면 운동장에서 축구 하다가 집에 가곤 했다. 내가 운동장에 있는 사이 마침 교실에 있던 친구가 선정되었다. 그들은 방과 후 매일 연극 연습하러 갔다. 발표회가 있던 날 친구는 부모님이 새로 사준 하얀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왔다.
6학년 연극의 제목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이다. 외딴 시골집에 북한 무장 공비가 침입했을 때 어린 이승복 군은 당당히 맞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하고 외쳤다. 그는 입이 찢기고 돌에 맞아 온 가족과 함께 죽임을 당했다. 이를 추모하기 위한 내용이다. 그 당시에는 학교마다 지금 단군왕검 동상이 있는 것처럼, 오른쪽 주먹을 불끈 쥐고 앞으로 쳐들며 결연하게 외치는 이승복의 동상이 있었다. 숫자로는 이순신 장군 동상보다 많았을 것이다. 그를 기리는 연극, 노래, 웅변, 글짓기, 사행대회가 크리스마스이브에 아기 예수 탄생을 기념하는 행사만큼 많이 개최되었다.
막이 오르고 경쾌한 동요가 흘러나오면서 4명의 소년이 어깨동무하고 무대로 나온다. 큰 무대라서 조그맣게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내 친구 3명과 이승복이었다.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가는 길이다. ‘잘 가! 내일 또 만나’ 하고는 각자 집으로 향하는데, 내 친구들은 그 이후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어떤 애는 검은 치마를 입고 흰 두건을 쓰고 승복이 엄마역도 했고, 어떤 애는 예비군이 되어 공비 소탕전에 참여했다. 총격전 중에 적을 쏘지 않고 어둑한 곳에서 돌로 화약을 두드려 소리만 내는 애도 있었다. 딱총이 고장 났나 보다. 공비를 완전히 소탕하고 거수경례하면서 상황 보고 하는 친구의 절도 있는 행동이 멋있었다. 큰 키에 짝다리 짚고 구부정하게 마주 서서 보고받는 애도 실은 다 내 친구들이다. 마지막에는 치마 입은 친구나 무장 공비나, 아버지나 사령관이나 모두 촛불을 들고 고인을 추모하면서 ‘~~~ 구름도 울고 가~~는 운모령 고개~~~ 하늘이 성이 났다 오랑캐들아’하는 노래를 불렀다. 남녀공학이라 여학생들도 있는데, 굳이 남자들만 뽑아 치마 입혀서 출연시킨 점에서 진지함보다 다소 코믹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늘 궁금한 게 있었다. 가족들이 모두 죽었는데 이승복이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했는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이웃집에 아주머니가 집 뒤쪽에서 몰래 들었다는 말도 있다. 그 사람이 경찰서에 신고했을지도 모른다. 상황을 설정해 보니 어색하다. 조작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 그런 상황이었다면 이승복이는 그런 말 하지 말고 살았어야 했다. 공산당이 좋은지 나쁜지가 어린아이의 목숨보다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한참 후에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모순’에 대해서 이해하고 나서, 어떤 면은 공감이 가고 어떤 면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 공산당이 무조건 악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전도(ideological inversion)이다. 북한 괴뢰도당을 대신하는 말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당시는 남한도 체제 유지가 중요한 시기였다. 사상적 동요로 내분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어린아이도 이 정도로 반공 의식이 투철한데 하물며 상식 있는 성인들이 공산당의 속임수에 빠져서는 되겠느냐’고 국민을 계몽하고 싶었을 듯하다.
일방적인 교육이 신념이 되어 어린 목숨이 죽었다면 잘못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정부와 교육 당국은 스스로 치부가 될 사건을 날조하고 대대적으로 선전하였다. 그런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되는 시기도 있었다. 먼 훗날 지금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실 중에 납득하기 힘들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도 있겠지. 이제는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이승복이가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생각난다.
(《수필문예》 제22집, 2023. 수필문예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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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프로필
수필문예회 회원
대구수필문예대학 36기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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