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실력 구조 헬기
한 소녀가 망망대해茫茫大海 영어 무인도에서 혼자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영어 실력을 키워 탈출해야 한다. 그나마 반팔, 반바지 차림인 걸 보아 여름이라 다행이다. 헬리콥터가 무인도 위를 날아간다. 그런데 인명 구조 헬기가 아니었다. 새로운 임무를 수행하는 헬기, 영어 실력 구조 헬기인 것이다. 헬기가 날아가는 항로를 따라 알파벳글자들이 흩어지며 떨어진다.
절벽 그늘진 곳에 지쳐 누워 있던 영어 조난자, 소녀가 헬기 소리를 듣고 일어난다. "저 소리는...?" 더러운 얼굴로 눈부신 하늘을 보면서 비틀거리며 걸어간다. "날 구해 줘, 날 구해 줘!" 소리 지르며 손을 흔들다가 막대기로 모래사장에 SOS를 쓴다. 화면 아래로 '영어 조난 20년', "영어 무인도에 있는 당신을 구하러 갑니다. 영어 무인도에서 탈출할 수 있는 마지막 찬스"라는 자막이 흘러가고 SOS를 쓴 모래사장, 화면 중앙에 큰 글자로 EBSe가 오버랩된다.
EBSe의 영어 강좌 광고 방송인데 볼 때마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을 조난자로 취급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씁쓸하다. 우리 사회가 영어 학습에 대한 강박관념强迫觀念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우리가 겪을 수 있는 재난과 부족한 영어 실력을 동격으로 본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사실 구조한다라는 말은 '재난 따위를 당하여 어려운 처지에 빠진 사람을 구하여 줌'인데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것을 일종의 재난으로 간주한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는가. 광고 내용을 볼 때마다 '이거 너무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방송국에 전화해서 광고 내용을 좀 자극적이 아닌 말로 바꾸면 좋겠다는 의견을 말하고 싶었다. 웃어 넘길 수도 있지만 방송을 보는, 예민한 학생들의 경우에 따라서는 낙오자나 패배자라는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방송 광고을 긍정적으로 본다면 우리나라의 외국어 교육 현실을 잘 지적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엄연한 현실은, 영어 때문에 생활의 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취업 과정에서나 국제화 시대를 적응하는 생활의 폭이라는 면에서 많은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김하수 교수가 쓴 '언어 사회학'에 관한 책을 본 적이 있는데 조선시대에는 한문을 아는 사람이 양반이었고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양반에 해당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 있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이 들었다. 내 경우도 그런 계층 향상의 욕구 때문에 영어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외국인과 자유롭게 영어 대화를 나누는 걸 보면 부럽기 때문이다.
나 자신도 그 소녀와 마찬가지로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긴 EBSe에는 돌을 한 줄로 쌓아 올리려고 애를 쓰다 무너지는, 다른 광고도 있다. 그 내용대로 초등에서 대학까지 4년, 6년. 4년을 영어를 공부했지만 그야말로 막돌로는 탑으로 쌓기는 어려운 것이다. 아무 돌로나 마구 쌓으면 영어 실력이라는 탑을 쌓을 수 없는 것이다. 유아 영어, 초등학교 3학년부터 매 시간 착실하게 공부해야 초등 영어 실력이라는, 큰 돌덩이가 바탕이 되고 그 위에 중등과 고등이라는, 단단한 영어 실력 돌덩이를 잘 다듬어 올려놓을 수 있고 그 위에 대학으로 마무리하는 마지막 돌덩이-어학 연수-까지 올릴 수 있으리라. 그러니 누구든지 유창한 영어를 구사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성실하고 꾸준하게 공부를 안한 탓으로 탄탄한 영어 실력을 갖지 못한 나는 나이가 든 요즘도 영어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하게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주로 EBSe 텔레비전 방송에 의지해서 중학교 영어를 중점적으로 공부하고 있는데 요즘은 그 공부 목적이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간단한 운동이라고 생각하면서 하는데 혼자 있는 시간을 의미있게 보내다는 측면이 크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대화가 부족하기 때문에 외국어지만 따라 읽다 보면 뭔가 성취감도 있고 외로움이 반감됨을 느끼고 잡생각도 안 하게 된다. 그리고 치매 예방을 위해서 외국어 공부를 권하지 않는가. 공부를 하다 보면 온몸을 움직이게 된다. 말하기는 온몸 운동이라고 하지 않는가. 화면을 보면서 선생님을 따라 여러 번 크게 따라 읽으면 한국어와는 다른 입안 근육을 사용하기 때문에 운동이 좀 더 되는 것 같다.
첫댓글 영화의 한자락이 흘러갑니다. 영화의 긍정적인 힘은 마지막의 희망으로의 귀결이지요. 문화생활도 다양하시고 아주 좋습니다.
Evergreen님, 방문 감사!
영어 공부가 온몸 운동으로 치매 예방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