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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년상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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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D Edu 박종윤
16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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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년상의 의미
상장의례는 토착・관습화되면 나름대로의 의미와 존재 이유를 가지면서 오랫동안 지속되는 속성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백일상이나 하루를 한달로 계산해서 치루는 역월단상제(易月短喪制)를 시행하였다. 또한 화장을 하거나 빈소를 사찰 내에 마련하여 추천제 올리거나, 초상이 나면 무당을 불러서 굿을 행했다.
조선이 시작되면서 고려말에 도입된 주가가례에 의거하여 점차 무불식(巫佛式) 상장요소가 배제되고 유교식 상장제가 보급되었다. 주자가례 의한 사례(관혼상제)가 시작되기 이전에는 주로 불교식과 무불식(巫佛式) 상장의례가 행해졌다.
주자가례의 도입・시행으로 무불식 상장제는 유교식 상장제로 전환되어 갔다. 주자가례의 의거한 유교식 상례는 수 백년을 내려오는 동안 우리 나라의 전통적 상례가 되어 일상생활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예나 지금이나 사회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원리가 있고, 이에 상응하는 윤리관이 있어서 그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기능을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의례란 이름을 빌려 질서를 세우고 풍속을 바로 잡고자 하였다. 그러한 의미에서 유교식 상례는 풍속을 교화시켜 질서를 세우고, 동시에 효사상을 세우는 수단으로 삼아 국가에서도 이의 시행을 적극 권장하였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유교식 상장례의 핵심은 3년상이라 할 수 있다.
수 백년 동안 우리 조상들은 부모가 돌아가시면 삼년상을 치루었는데 부모가 돌아가시면 애통한 마음이 너무 깊기 때문이다. 삼년상을 하는 것은 해가 한번 바뀌면 천도(天道)도 한번 변하고, 사람의 마음도 따라 변한다. 하지만 어버이 향한 효도는 1년에 지나도 오히려 잊지 못하는 것이고, 해가 두 번 바뀌어도 잊지 못하기 때문에, 1년을 더하여 3년이 지나면 어지간히 슬픔도 변해 일상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삼년상을 치르는 것이다.
한편 공자는 삼년상을 행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자식이 태어난 지 3년이 된 뒤에라야 비로소 부모의 품을 떠나는 것이다. 대체로 삼년상은 천하의 공통된 법이다.(《예기》권 58, 삼년간조)
공자는, 부모에 대한 자식의 지극 정성의 뜻이 담긴 삼년상은 천하의 공통된 법이기 때문에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며 누구나 지켜야 할 도리라고 했다.
한번은 공자의 제자 재아가 물었다. “삼년상은 너무 깁니다. 군자가 3년 동안 예를 익히지 않으면 예의가 무너지고, 3년 동안 음악을 연주하지 않으면 잃어버리게 됩니다. 나무도 철따라 바뀌니 일년이면 그칠만 합니다.” 그러자 공자는 “삼년도 안되어 흰 쌀밥먹고 화려한 옷을 입어도 네 마음이 편하냐. 군자는 상을 당하면 맛난 음식을 먹어도 단맛을 못 느끼고, 음악을 들어도 즐거움을 못 느끼고, 집안에 살아도 편안하지 못한다.” 재아가 물러가자 공자가 다른 제자에게 말했다. “재아는 정말 어질지 못하구나. 어린애가 태어나면 3년 이후라야 부모의 품을 벗어난다. 재아도 부모에게서 3년 동안 아낌을 받았을 거야”
다시 말해 삼년상이란 자식이 태어나 혼자 먹고 활동할 수 없는 젖먹이 때 2년 동안 부모의 품안에서 길러준 은혜에 대한 보답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육신은 땅에 묻고 혼령이 깃 든 신주를 모셔와 탈상 때까지 3년 동안 사당에 안치하여 갓 태어난 아기를 품안에서 보살피듯이 모시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유교적으로는 삼년상이 빈부귀천에 관계없이 천하의 공통적인 법이었지만, 불교를 국시로한 고려시대는 백일상이 일반적이었다. 조선시대에서도 모든 백성들에게 다 적용된 것은 아니었다. 서인과 군역에 종사하는 군인들은 백일상을 행했다. 군인들에게 삼년상을 허용할 경우 제도를 악용하여 상복만 입고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하고 음식을 먹는 등 군역의 회피 수단으로 삼아 군역체제에 악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삼년상 제도는 조선 후기로 내려오면서 점차 확대되어 양반이나 상민의 구별 없이 누구나 행하게 되었다.
비록 우리의 전통적인 상장례가 까다롭고 시행하기가 어려워 번문욕례라고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제도를 시행한 것은 다른 예는 다음에 기회가 주어지지만, 상례는 한번 지나가면 다시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에 들어와 이러한 삼년상은 거의 시행되지 않고 있다. 49제와 100일 탈상으로 1년상으로 상을 마치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는 부모의 시신을 매장한 다음날 3일 탈상을 하는 경우도 있다.
49제는 불교의 상장례의식이다. 고려시대 무불식(巫佛式) 상장제가 행해지면서 49제를 많이 행했다. 조선에서도 중종 이전까지는 국상이 나면 칠칠제(7일 x 7= 49일)를 행하였다. 이 기간동안은 혼이 방황을 하다가 49일째 되는 날 승천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현대사회가 급변하고 있고, 현실적으로 비좁은 아파트에서 방 한칸을 내어 상청을 마련한다거나, 매일 조석으로 찬은 올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부모를 생각하여 삼가하고 근신하는 마음가짐은 아무리 세월이 바뀌어도 변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효의 근본이요, 또 부모는 자기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소위 심상삼년(心喪三年) 제도를 만들어, 비록 상복을 벗더라도 상중에 있는 것처럼 행동을 삼가하고 마음속으로마 상기를 치루는 것과 같이 행동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형식적으로 상청을 차리고, 아침저녁으로 상식 올리고 곡을 하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예를 갖출 수 있는 행위는 얼마든지 있다. 바로 선조들 마음속으로나마 상기를 치르던 심상삼년(心喪三年)과 같은 제도인것이다.
의례는 시속에 맞게 변할 수 있지만 그 본질 자체는 변할 수 없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이같은 삼년상과 같은 본질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삼년상이 갖고 있는 의미를 안다면 결코 부모에게 소흘이 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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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실패했는가? 괜찮다. 다시 실행하라. 그리고 더 나은 실패를 하라. + 사회를 위해 내가 할 수있는일을 찾아 + 네 왼손이 한일을 온세상이 알도록 하라 + 나는 지금 가장 행복합니다 + 욕심은 죽음이다 + 孝泉 박종윤 + 교육학박사 + Ph.D. 효학박사 + 경영학석사 + 사회복지학석사 + 장례지도사국가자격증과정 + 한국어교원+평생교육사+청소년지도사+심리학전공+상담학전공+효부자봉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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