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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에서 7번 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오다 울산 북구를 지나 동천(東川)을 건너면 나타나는 곳이 ‘병영성’이다. 울산에는 왜(일본)의 침입과 이를 막기 위한 성곽이 많다. 병영성도 그 중 하나다. 이 성은 1417년(조선 태종 17년)부터 1894년(고종 31년)까지 존속했다. 옛 문헌인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병영성의 둘레가 9316척(尺·한 척=30.3㎝), 높이는 12척이라고 기록돼 있다. 이 성은 골짜기를 감싸고 있는 포곡식(包谷式)으로 구릉 정상부에 석축을 쌓은 것이다.
울산 삼호동 정상에서 바라본 중구. 태화강대공원이 펼쳐져 있고 뒤쪽으로 중구의 도심이 한 눈에 들어온다.
차를 몰아 남쪽으로 10여분을 더 내려가면 ‘울산 왜성’이 나타난다. 이 성은 정유재란 때인 1597년(선조 30년) 왜적 장수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왜적 1만6000여명을 동원해 40일 만에 당시 울산읍성과 병영성의 성곽을 헐어 급조한 성이다.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은 1597부터 1598년 사이에 두 차례 이 성을 공격했으나 빼앗지 못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죽고, 퇴각 명령이 내려지자 왜적은 1598년 11월 성을 불태우고 본국으로 도망쳤다. 이후 이 성은 조선 수군이 사용하면서 1624년(인조 2년)~1654년(효종 5년) 전선창(군함을 만드는 공장)을 두기도 했다. 울산왜성 인근에는 ‘충의사’가 자리잡고 있다.
충의사는 울산시가 선조들의 애국심과 충성심을 기리기 위해 2000년 6월 건립한 사당이다.
충의사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중 왜군을 격파한 울산지역 의사(義士)들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 위패를 모신 곳이다. 울산의 애국지사들은 1592년(선조 25년) 4월 분연히 일어나 왜적과 대항했다. 이들은 점령된 병영성 탈환을 위해 기습작전을 벌이거나, 울산 언양과 경주 등지의 성곽탈환에도 참가했다. 선조는 이들의 전공을 치하하고, 당시 울산군과 언양현을 통합한 울산도호부 승격을 허락했다. 울산시는 1994년 2월 사당 건립에 들어가 2000년 6월 모두 10동의 건물을 완공해 충의사라고 이름붙였다.
동학(東學) 창시와 한글사랑의 산실
수운 최제우는 도를 깨우치기 전 울산에서 머물려 수련했다. 천도교는 그를 기려 1997년 유허비를, 1999년 비각을 세웠다.
충의사에서 서북 방향으로 20여분을 거슬러 가면 수운 최제우 유허비가 나온다. 최제우(1824~1864)는 외세의 침략과 봉건 사회의 모순에 반대한 종교였던 동학의 창시자다. 그는 경주 출신이다. 울산은 최제우의 부인 박씨의 고향이다. 수운은 속칭 여시바윗골에 초가집을 짓고 수련했고, 1855년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이를 천도교에서는 ‘을묘천서’(乙卯天書)라고 한다. 최제우는 이듬해 포교를 시작해 1863년 경상도와 전라도 뿐 아니라 충청도와 경기도까지 교세를 떨쳤다. 그는 그러나 1864년 ‘좌도난정’(左道亂正)이란 죄목으로 죽임을 당했다. 중구 유곡동에는 1997년 세운 최제우 유허비와 함께 1999년 세운 비각이 있다. 중구의 동쪽 병영성 인근에는 외솔 최현배 선생(1894~1970) 생가터가 있다. 그는 대표적인 한글학자다. 생가는 이미 없어졌지만, 집터와 축대는 그대로 남아 있다. 선생은 이곳에서 태어나 17살에 서울로 유학하기까지 살았다. 선생은 1917년 주시경(1876~1914)이 운영한 조선어강습소에 다니며 우리말과 글을 지키고 가꾸기로 결심했다. 선생은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3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공공기관 밀집한 혁신도시
중구 우정동 함월산(해발 200m) 남쪽 기슭에는 중구의 미래성장 동력이 될 건설공사가 한창이다.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을 위한 혁신도시지구다. 지난 2007년 착공했고, 298만4000여㎡가 신도시가 형성될 곳이다. 혁신도시에는 공공기관과 공동주택(6326가구), 단독주택(796필지), 주상복합건물(363가구) 등 모두 2만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중이다. 10개의 이전대상 공공기관의 신축사업도 진행중이다. 한국석유공사와 고용노동부 고객상담센터 등 3개 기관은 이 올해 안에 착공하고, 나머지 7개 기관도 내년 상반기 중 착공할 예정이다. 혁신도시 건설로 연간 9120억여원의 생산유발과 4202억원의 부가가치, 5000여명의 고용효과를 낼 것으로 울산시는 분석했다. 중구는 동서로 뻗은 지리적 특성때문에 도심기능이 떨어졌다. 혁신도시가 조성되면 남북축과 기존 동서축이 타원 형태의 도로망을 갖추면서 균형잡힌 도심으로 발전할 것으로 중구는 기대하고 있다.
자연생태가 살아숨쉬는 태화강과 십리대밭, 그리고 복산공원
울산 남구와 접경을 이룬 중구의 태화강 일대는 대공원으로 변신했다. 태화동 일원(명전천~용금소)에 있는 태화강대공원은 서울 여의도 공원 면적의 2.3배(총면적 53만1000여㎡)나 된다. 지난해 5월27일 개장했다. 대공원에는 청보리와 유채꽃이 즐비한 초원, 느티나무길, 실개천 물놀이장, 야외공연장, 전망대 등이 있다. 십리(10리)대밭은 태화강의 명물이다. 태화교와 삼호교 사이 태화강 양쪽에 형성된 대밭은 길이가 무려 4㎞, 폭이 20~30m다. 이 대밭은 일제시대 잦은 홍수로 입은 농경지 피해를 막기 위해 주민들이 심었다. 태화강물은 울산의 중심을 흐른 뒤 울산만에서 동해로 빠져 나간다.
복산공원은 중구지역 ‘문화의 장’으로 통한다. 울산의 역사와 지역성 상징성을 고려한 조각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중구의 중심, 복산동에는 ‘문화의 장’으로 정평 난 복산공원이 있다. 동네 소공원이지만, 울산시와 중구의 역사와 지역적 상징성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조각품들이 전시돼 있다. 복산공원은 울산지역 최초의 조각공원이기도 하다. 작품들은 2009년 공모를 통해 엄선된 15점이 전시돼 있다. 반구대암각화·태화루·울산의 산업화 등이 반영된 작품들이다.
국내 최대 ‘젊음의 거리’ 아케이드
중구 성남동과 옥교동 일원에는 뉴코아아울렛~중부소방서~우정삼거리 구간에 초대형 아케이드가 있다. 2005년 7월 완공한 젊음의 거리 아케이드다. 길이가 542m, 높이가 12.9m이다. 중앙상가 아케이드와 연결된 총길이 724m의 국내 최대 규모이다. 시설이 웅장하고 섬세할 뿐 아니라 야간 조명도 화려하다. 서울의 명동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음식점과 장식품·의류·잡화 등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는 상권이다. 전국의 각 자치단체들이 재래시장이나 상가 리모델링을 위해 많이 벤치마킹하기도 한다. 인근에는 보세거리 아케이드도 있다. 울산에 만들어진 첫 아케이드(길이 118m, 폭 6m, 높이 9.6m)다. 바닥은 대리석으로 포장돼 깨끗하고, 여성의류판매점이 많아 젊은 여성들이 주로 찾는다. 옥교동 일대 번영로 곰장어골목~뉴코아아울렛 구간에도 아케이드가 설치돼 있다. 이곳은 울산 최초의 백화점과 재래시장이 어우러진 곳이다. 아케이드 내부에는 튀김닭집과 곰장어집이 즐비하다. 구 역전시장 아케이드는 매일 새벽 장이 열리면서 각종 농수산물이 저렴하게 거래되는 곳이다. 이곳 노점상들은 모두 실명제를 실시해 상품의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
감칠맛 나는 불고기와 막창
십리대밭과 구 삼호교 구간에는 불고기와 제주돼지·횟집 등 다양한 먹거리단지가 조성돼 가족단위의 외식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십리대밭과 구 삼호교 구간에는 먹거리단지가 들어서 있다. 1990년대 초반 울산 남구의 용연지역 주민들이 집단이주한 뒤 태화강변을 끼고 70여곳의 불고기 음식점을 연 곳이다. 언양·봉계·입실 등 울산지역 불고기단지와 함께 한때 성황을 이뤘지만, IMF 이후 다소 쇠퇴했다. 하지만 태화강과 십리대밭이 명소로 부각되면서 다시 부활하는 곳이다. 지금은 불고기 뿐 아니라 오리고기, 제주산 돼지고기, 횟집 등 다양한 음식점이 들어서 있다. 인근 태화강 둔치에는 각종 운동시설과 휴식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가족단위의 외식장소로 인기다. 중구 병영1동 일원의 ‘병영 막창골목’은 특화음식 시범거리로 지정된 곳이다. 선우시장~병영네거리 구간에 들어선 막창골목에는 막창구이와 손칼국수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10여년전 일부 식당이 막창구이를 다 먹은 손님에게 맛깔스런 손칼국수를 무료로 대접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이후 손님들이 크게 늘면서 새 식당들이 잇따라 문을 열었고, 지금은 16곳의 막창구이집이 성업중이다.
자료협조 울산 중구청
외솔기념관은 평생을 한글 사랑에 몸바친 최현배 선생을 기리기 위해 지난해 3월 완공해 문을 열었다.
중구 우정동 혁신도시 지구에는 한국석유공사 등 10개 공공기관이 옮겨온다.
울산동헌은 옛 울산읍성 내부의 중심 건물이다. 1900년 이전 당시 울산도호부의 수령이 거주하면서 업무를 관장하던 곳이다.
구강서원은 조선시대 울산지방의 최초 사립교육기관이다. 1678년(조선 숙종 4년)에 건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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