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제스쳐 그로버
어딜보나 보나 제스쳐 그로버는 이상한 아이였다. 우선 그의 이름이 "제스쳐 그로버" 라는 사실이 이상했다. 그는 하루에 세끼를 다 먹는 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말라있었고, 네 번이나 부러진 다리를 스카치테이프로 감싼 안경을 쓰고 있었으며 머리는 강한 샴푸로 여러 번 되 깜은 듯이 뻣뻣하게 서있었다. 그의 눈은 황금빛 비슷한 특이한 색의 눈에 안경을 썼고, 달걀 모양의 얼굴에 이목구비 깎아 놓은 듯 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의 코는 길쭉하게 쏟아있어 약간 거만한 남세를 풍겼지만 그로버의 얇은 입술이 그 거만함을 막아주는 것 같았다. 제스쳐는 또 고아원에 살았으며 한때 하얀색 이였지만 지금은 거의 노란빛으로 변한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상한 것은,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새 학기가 시작한지 십오일이나 지났음에도 중학교에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고아원의 모든 선생님들이 시키는 온갖 잡다한 일을 끝내고 그는 자신의 삐그덕 거리는 침대에 덩그러니 누워있었다. 그의 방은 열리지 않는 창이 달린 하나뿐인 창문과 하얀색의 벽지와 진갈색의 장판에 침대와 벽장, 선반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방이었다. 어제는 그의 생일 이였다. 하지만 뭐가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생일이란 으레 파티와 케이크가 나오기 마련이지만 전원수가 백 명이 넘어가는 고아원에서 모든 아이들의 생일 파티를 열어준다는 것은 무리한 일 이였다. 이 딜런 고아원의 원장 루시 엘런은 아이들의 흥미를 고려해 두 달에 한번 생일 파티를 열어 주곤 했다. 하지만 고아원이 빈곤에 허덕이는 지금은 거의 여섯 달에 한번 파티가 열리곤 하였다. 제스쳐의 생일은 두 개의 생일파티의 중간에 어정쩡하게 놓여있다 보니 본이 아니게 그는 두 파티에 모두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다.
“휴.” 제스쳐가 나지막한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예전에는 제스쳐가 바라는 ‘것과 매우 유사한’ 선물이 그에게 오기도 했었다. 그가 삼거리 왼편에 사는 아이작의 외투를 보고 그의 외투를 빼앗는 꿈을 꾼 후 그는 생일 선물로 외투 ‘옷걸이’를 받았다. 또한 상점에서 계피사탕 한 움큼을 사가는 루머를 봤을 때는 ―의 맛 나는 이라고 쓰인 진한 버터냄새가 풍기는 사탕 ‘통’을 받았다.
“휴우” 제스쳐가 또다시 낮은 신음소리를 냈다. 그가 기다리는 생일 선물을 따로 있었다. 아무짝에 쓸모없는 옷걸이나 통이 아니라 - 그는 한번 화장실 세척용 솔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생일 선물로 받은 물건 중에서 가장 높은 평점을 받은 정말 쓸모 있는 물건 이였다. 그는 지난 4년 동안 화장실 청소를 담당하고 있었다 -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서 오는 깜짝 선물 이였다. 그가6살이 되었을 때 그는 처음으로 초콜릿을 맛보았다. 그 초콜릿은 보통 상점에서 파는 싸구려 초콜릿이 아니라 속에 부드러운 크림과 딸기시럽이 들어있는 아몬드 초콜릿 이였다. 또 제스쳐는 8살이 되었을 때는 거대한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받았는데 그는 거의 일주일 동안 이상하게 녹지 않는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먹었었다. 제스쳐는 언제나 누가 이 선물을 주는 것 일까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선물은 언제가 그가 잠자고 있을 때 그의 침대 머리 오른쪽에 놓여있었다. 도대체 누구지? 그가 생각했다. 그에게 이런 호화스러운 선물을 가져다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고아이고, 그에게 있어서 부모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고아원의 선생님들이? 그럴 리도 없었다. 많고 많은 고아원 아이들 중에 오직 제스쳐에게만 고급 선물을 준단 말인가? 그것도 꼭 생일 이십사시간 후에? 하지만 누군가 선물을 가져다주는 건 확실했다. 제스쳐의 선물은 언제나 그가 잠든 후에 놓여졌다. 그는 전에 선물 주는 사람을 확인하기 위해 – 그 날치 화장실 청소를 일찍 끝내고 – 낮잠을 3시간이나 잔 후 옷을 갈아입지 않고 벽에 일부러 불편하게 기대어 있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다음날 그는 잠옷을 입고 이불까지 푹 뒤집어 쓴 채 침대에서 자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뿐 이였다. 그의 왼쪽 벽에 드리워진 시계는 이제 막 열한 시 오십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번엔 결단코 선물의 실체를 밝혀내고 말리라라고 결심하며 제스쳐는 계속해서 몰려오는 졸음을 참기 위해 세수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삐걱거리는 침대에서 일어나 나무문을 열고 복도 저편의 세면대로 터벅거리며 걸어갔다. 그가 수도꼭지를 틀려는 순간 기분 나쁜 끼기긱 소리가 울려 왔다.
"무슨?." 제스쳐는 황급히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의 눈엔 밤중에 복도를 걷고 있는 누구의 모습도 볼 수 없었다.
"누구세요?" 제스쳐가 이상스럽게 물었다. 그러곤 물이 넘치는 세숫대야의 물을 보며 수도꼭지를 껐다. 제스쳐가 손을 차가운 물에 넣자 또다시 끼기기긱 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누구세······." 제스쳐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겁난 얼굴을 막 돌리려는 순간 한 가지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쳐 갔다. 선물. 그는 열려있는 자신의 방으로 쏜살같이 달려 들어갔다. 그의 침대 오른편에 편지처럼 보이는 양피지 한 장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그는 다급하게 편지를 집어 들었다. 편지는 아주 짤막했다.
수요일
저녁 7시에
널 찾아 가겠다
P.S 보냄
제스쳐는 편지를 두 번 더 읽어 봤다. 수요일 저녁에 날 찾아 오겠다고? 이 딜런 고아원에? 그는 약간 짜증나는 기분으로 편지를 침대에 던져 놓았다. 결국 선물은 없었군. 제스쳐는 자신이 알 수 없는 선물이 오는 것을 이런 식으로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사실에 약간 움찔했다. 제스쳐는 편지를 받아 본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이런식의 편지는 본적도 없었다. 그는 편지를 치우고 허탈감과 우울한 느낌으로 잠자리에 들려 하였다. 그러나 제스쳐는 편지를 들고 쓰레기통 쪽으로 걸어가는 도중 갑작스럽게 멈춰 서고 말았다. 양피지의 잉크가 사라져 있었다. 그는 양피지의 뒷면을 살폈다. 그곳엔 아무 것도 쓰여있지 않았다. 말도 않되. 그는 자신의 침대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아무런 종이가 없었다. 제스쳐가 다시 양피지를 보자 양피지에 잉크 자국이 있었다. 잘못 봤군. 제스쳐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양피지를 쓰레기통에 넣으려 했다. 하지만 제스쳐는 또다시 멈춰 설 수 밖에 없었다. 양피지의 글씨에 변화가 일어난 것 같았다.
지금 너의
오른쪽
벽장을 살펴라
널 찾아갈 P. S 보냄
제스쳐는 느릿느릿 고개를 들어 오른쪽을 봤다. 그곳엔 자신의 벽장이 있었다. 벽장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쓰레기통 오른쪽에 있었다. 한번이라도 그의 방에 들린 사람이라면 편지에 쓰여진 것과 같은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상황에 맞는 글을 쓸 수 있을까? 그가 양피지를 들고 쓰레기통에 다가가는 순간 변화될 수 있도록? 오래 전 제스쳐는 식초에 넣으면 나오는 글을 본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경우는 달라. 그는 생각했다. 어떻게 지금 상황과 완전히 맞아 떨어지게 변할 수 있지? 제스쳐는 양피지 뒤를 다시 돌려 보았다. 양피지엔 아무런 장치도 되어있지 않았다. 결국 그는 벽장을 열어 글이 사실인지 살펴보는 것이 가장 최선의 방편이라고 생각하고 양피지를 꼭 쥔 채로 벽장 앞으로 살며시 다가갔다. 그리곤 벽장을 확 잡아 열었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군. 이 편지는 그냥 장난 인 것일 거야. 제스쳐는 벽장을 휘 둘러 보았다. 외투용 옷걸이를 구부려 만든 코끼리 모형, 사탕 통 밑을 자르고 구부려 만든 작은 모자, 아침마다 배달되는 신문에서 한 장을 빼돌려 만들고 하도 가지고 놀아 밑 부분이 쭈글쭈글해진 종이배, 그 위의 철봉에 걸려있는 바지 하나와 검은색과 노란색의 티셔츠, 두 번이나 기운 파란색 파카, 그리고······ 그리고 지금까지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누런 천으로 싼 길쭉한 무언가. 제스쳐는 거기서 죽은 쥐라도 나올까 주의 깊게 살펴보고는 뒤로 돌아 양피지를 침대에 올려놓고 누런 천을 풀기 시작했다. 순간 제스쳐는 약간 토라진 표정을 지었다. 누런 천속에서 나온 것은 길쭉한 밤색 막대기였다. 그는 약간 낙심한 표정으로 막대기를 허공에서 돌렸다. 막대기는 약간 유연하고 부드러운 촉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침대위의 양피지를 손가락으로 쳐내곤 막대기를 침대 옆에 비스듬히 새어놓았다. 제스쳐는 이불을 푹 뒤집어쓰더니 닭털 베개를 두드려 댔다. 더 이상 잠자는 시간을 미룰 필요는 없었다. 시간은 벌써 열두시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그는 내일 루시원장에게 도대체 P.S가 누구냐고, 또 양피지의 잉크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있냐고 캐물을 생각을 하며 이불로 얼굴을 가렸다. 그때 바닥에 떨어진 양피지의 잉크가 사라지더니 또 다른 글씨를 만들어냈다.
안녕, 제스쳐 그로버?
나는 네가 이 편지를 받고 놀랐을 거라고 상상 한단다
부디 놀라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난 수요일 저녁 7시에 널 데리러 갈 거란다
넌 너의 세계로 돌아갈거야
기본B교수 P.S
추신 - 편지가 12시에 전달됐니?
그때 제스쳐가 벌떡 일어나 형광등 스위치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