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신문♤시가 있는 공간] 이 씨 할머니의 하루 / 김동규
심상숙 추천
이 씨 할머니의 하루
김동규
버스 정류장에 놓고 간 손녀
할머니가 아이의 손을 철컥 잡았다
할머니는 밥상을 놓고 방문 걸고
밭을 못 가고 서성인다
문구멍으로 방을 보다
아이와 눈이 마주친다
놀이처럼 아이가 웃는다
머뭇거리던 봄 햇살 마루에 꽂히고
헛기침 서성이는 걸음 반복되고
쏘아붙이는 아이 눈과 다시 부딪힌다
저것이 눈에 힘주는 게
지 아비를 꼭 닮았다며
이 씨 할머니가 비켜선다
젖은 내복바지가 처진 채
문구멍에 걸린 눈망울
흙담이 어스름에 잠길 무렵
대문이 열리고
할머니의 종종걸음소리
목이 쉰 아이 울음소리
자물쇠 여는 손이 떤다
(김포문학 40호 154쪽, (사) 한국문인협회 김포지부, 2023)
[작가소개]
김동규 시인, 김포문인협회 이사(전), 언론인(전)
[시향]
김동규 시인은 이웃 할머니의 하루를 詩로 말합니다. 어린 자녀들을 키워오며 축복된 시간 속에 때때로 애환 또한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사랑과 정성으로 어린 자녀들이 삶의 중심이 되어 최우선으로 돌보고 가르치는 일은 당연한 일이며 삶의 근본이 되는 일입니다.
때로는 어떤 연유로 조부모가 손자녀를 맡아 돌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때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린 손자녀가 기쁨과 위로가 되지만 온전히 책임을 지기에는 힘든 경우도 많습니다.
어린아이를 기르는 일은 세상의 고유한 우주 하나를 탄생시키는 일이니 아무리 공들여도 넘치지 않겠습니다. 이는 사회적 관심과 연대가 요구되는 최우선의 과제입니다.
시인은 본문에서 안타까운 한 장면을 보여줍니다. 차마 어린아이를 방치할 수밖에 없는 할머니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이웃과 사회의 협조를 구해야 합니다. 공공연한 대책을 세우도록 협력받아야 하겠습니다.
필자는 평소 급히 아이들을 맡기는 사람이 있으면 돌봐 줄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런 일은 별로 없습니다.
물건은 잘못 제작되면 고쳐 쓰거나 버리면 되지만, 세상에서 가장 섬세하고 정교한 우주, 사람은 어느 한때의 불안과 초조, 불신과 불만족한 성장의 흔적이 자칫 회로를 순조롭게 하는 데에 장애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성장기의 가소성이 중요합니다.
본문에서
/저것이 눈에 힘주는 게// 지 아비를 꼭 닮았다며//이 씨 할머니가 비켜선다/
시인은 써나가던 시를 한번 발 굴러줍니다. 아직은 할머니 맘대로 할 수 있다고도 보는 아이지만, 불안해하는 아이의 정면을 대하는 순간 아이, 아니 한 사람의 눈이 두려워 멈칫 비켜섭니다.
기르기 힘들고 가르치고 세워주기 어렵더라도, 기다려 준비된 국가와 사회를 믿고 자신의 책임감을 북돋워 자녀를 출산하여 길러준다면 세상이 얼마나 고마워하겠습니까? 이는 내가 나를 살도록 기쁘게 하는 일입니다. 나를 낳아 길러준 부모님께 보답하는 길입니다. 이 세상에 나 자신이 사람으로 태어난 값을 치르는 일입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나를 닮은 2세가 궁금하지 않습니까? 다 함께 꿈꾸는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하여,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아보는 지금입니다.
글: 심상숙(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