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부
1.蓮,연들
내가 처음 연꽃을 본 것은 중학교 일학년 때였다.
외가 가는 큰 길 가에 연못이 하나 있었는데
동갑내기 외사촌은 발을 걷어 부치고 거머리가 둥둥 떠 있는 못에 들어가
연꽃을 몇 송이 꺽어 나에게 주었다.
연꽃은 충격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큰 꽃이 있었다는 사실과
그 향과 꽃모양은 나를 놀라게 했다.
해마다 연꽃 피는 계절이 오면
꽃을 보러 전국을 돌아 다녔다.
대구 인근 경산의 갑 못, 남매지, 영대 공대 못, 울진의 연호정, 상주 공검지, 의성 단밀 벼락 지, 전주, 무안....지금은 이루 다 기억할 수 없지만 신문에 어디 연꽃이 피었다는 기사가 실리면 꼭 가서 보아야 마음이 풀렸다.
경주 서출지 부근으로 이사를 한 이유 중 하나는 연꽃을 실컷 보기 위함이었다.
유월 말부터 피기 시작하는 연꽃은 두 달 가까이 피고 진다.
서출지의 이요당과 연꽃의 풍경은 잘 어울린다.
나만 연꽃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가
누구나 연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연꽃에 관한 옛 시를 찾아보니
수십 首가 되었다.
혼자 보기 아까워 그림과 함께
영역을 곁들여 책을 한권 만들어 보기로 했다.
우선 가까운 지인들에게 한 권씩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다.
모자라는 실력이지만
주위의 도움을 받아 첫 번째 책을 조심스럽게 내어 본다.
경주에 관한 시와 이야기도 곁들였다.
또 이곳에서의 아름다운 만남과
꽃을 가꾸는 등 사소한 일상생활의 자잘한 이야기도 함께 싣는다.
이 책은 아마도 연꽃 시 만을 모은 최초의 책이기도 하지만
연꽃한시를 최초로 영역한 것이 아닐까 한다.
이것을 나의 졸작에 대한 변명으로 삼으려 한다.
2.연꽃 향기
젊은 날,
넓은 땅에 연꽃을 심어 줄 사람이 있다면
그와 결혼하겠다고 생각했었다.
죽은 왕비를 위해서 타지마할을 세운 왕도 있었고
사랑하는 여자가 좋아하는 과일을 남방에서 머나 먼 북쪽까지
파발을 띄워 공수한 황제도 있는데,
그까짓 연꽃쯤이야 하면서.
꿈이야 누군들 한번쯤 가져보는 것이 인지상정일진데
나의 발칙한(?) 상상은 꿈으로 끝이 났다.
꽃을 심어주는 사람 없은들 어떠리.
이 세상 모든 연꽃을
내가 가서
보면 되는 것이지.
연꽃 향기
둥글둥글 푸른 잎이 점점 쌓이더니 (田田綠葉漸成堆)
어여쁜 붉은 꽃이 뺨을 반쯤 드러내네( 艶艶紅華半露)
누각 위서 나와 함께 한참을 서성이자 (徙倚同余樓上久)
미풍은 끊임없이 암향(暗香)을 불어온다( 微風不斷暗香來)
Lotus fragrance
Round and round are green leaves covering the pond gradually,
Barely half cheeks are seen revealing the beautiful red lotus petals.
Hovering around with me in the pavilion,
Balmy wind ceaselessly brings faint fragrance.
3.연꽃 감상
연꽃을 사랑하여
세 번이나 삼지를 찾아 온 남자
비오는 날,
비취 우산(연잎)을 쓰고
홍장미인(연꽃)을 바라보며
맨발로 연못주위를 서성이는 모습이 보인다.
곽 예.
그와
내가
이 세상에서 만났더라면
평생을 연꽃 이야기만 하여도
한 세상
지루하지 않았을 것을.
賞蓮
연꽃을 구경하며 郭預(곽예)
賞蓮三度到三池(상연삼도도삼지) : 연꽃을 보려 세 번이나 삼지연못에 왔었네,
翠蓋紅粧似舊時(취개홍장사구시) : 푸른 덮개, 붉은 화장 옛날과 같은데.
唯有看花玉堂老(유유간화옥당노) : 오직 꽃을 바라보는 옥당의 노인만이
風情不減鬢如絲(풍정불감빈여사) : 풍정은 여전한데 귀밑머리 희어졌네 .
Looking at lotus flowers
For a sight of lotus flowers for the third time we arrive at Samji Pond,
The blue canopy and heavy makeup remain the same as before.
This beauty is seen only by an elderly man in the cottage,
With the flavor undiminished like his sideburns.
4.연못가 창문에서
어제 중국여행에서 돌아왔다.
낙양의 용문석굴과 伊水를 건너 마주하고 있는
백거이의 白園에서의 감회는 깊어서 말로 형용하기 힘들었다.
낙천의 아름다운 시들이 강물처럼 머릿속 에서 흘러 내렸다.
장상사
비파행
장한가
모란방
석모란화
지는 모란이 안타까워
한 밤에 등불 들고 바라 본 시인
모란꽃의 도시 낙양은 20년만의 폭설에 덮혀 있었지만
나는 그를 만났다.
지창(池窓)
연못가 창문에서 백거이(白居易)
연꽃 향기 흐드러진 연못가의 저녁 (池晩蓮芳謝,지만연방사)
가을 창가에 대나무의 마음도 깊어(窓秋竹意深,창추죽의심)
같이 할 사람 아무도 없어 (更無人作伴,갱무인작반)
거문고 하나만을 마주하는 이 마음. (唯對一彈琴,유대일탄금)
From a window facing lotus pond by Bai Juyi
Toward the eventide at the pond the lotus fragrance fades,
Autumnal scene from the window makes me feel for bamboo branches.
Again there is no company there,
Only a zither and I.
5.연당에 내리는 밤 비
연꽃이 피는 계절이 오면
하루에 두세 번 연당으로 달려간다.
밤비 내리는 날,
연잎에 듯는 빗소리를 들으려
한걸음에 달아간다.
후두둑, 후두둑
굵은 빗방울이 넓은 잎에 떨어지면
마치 포탄을 맞은 듯한 소리와
호수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빗물, 빗물
연당야우(蓮堂夜雨)
연당에 내리는 밤 비 윤휴
옥 오리 화로에 침향이 차갑고 (玉鴨沈栴冷,옥압침전냉)
은빛 침상에 대자리 시원하구나.(銀床枕簞凉,은상침단량)
깊은 밤 푸른 연잎에 비 내리니 (三更綠荷雨,삼경록하우)
잠자던 원앙새 놀라서 일어나네.(驚起睡鴛鴦,경기수원앙)
Night rain in the lotus cottage
In the duck-carved jade censer, the incense has burnt away,
The bamboo mat over a silver flat-bench is cooling me.
Midnight rain starts to pour on green lotus,
Awakening the slumbering lovebirds to fly.
6.석련지
해마다 여름이면 어렵사리 연잎을 구해 와서 연잎 밥을 만든다.
찹쌀. 밤. 콩. 팥. 연자육을 섞어 연잎에 싸서 찌면 연향이 은은하게 밴 맛있는 별식이 된다. 서출지의 이요당에서 연잎 밥을 펼쳐 놓고 만개한 꽃을 바라보며 먹는 낭만은 꽤 그럴 듯하다. 꽃으로는 차를 만드는데 연꽃은 해가 뜨면 피고, 해가 지면 꽃잎을 다물기를 세 번 한다. 꽃이 반쯤 피었을 때 차를 비단헝겊에 싸서 넣어두고 하룻밤이 지나면 꺼내어 차로 우려낸다. 백련만을 쓸 수 있는데 이 고장에선 백련이 귀하다.
지난여름, 이요당에서 연차회가 있었다. 색색의 한복으로 꽃을 뿌려 놓은 듯한 여인들의 차 시중을 받으며 차를 마셨다. 바람은 연향을 불어 보내고 차를 마시는 사람들의 숨결조차 향그럽고, 정자는 행복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향기로운 차에 화답하여
옛 시 한 수 읊조린다.
石蓮池 석련지
이요당 앞 쌍 석분은(二樂堂前雙石盆)
어느 해 옥녀가 머리감던 그릇인가(何年玉女洗頭盆)
옛사람은 가도 연꽃은 피어나(洗頭人去蓮花發)
헛되이 남은 향기 빈 그릇에 가득하네(空有餘香滿舊盆)
戊子流頭 蘇湖 李敎方
Stone casks by 'Soho' Gyobang Lee
In front of Yeeyo Dang(Double Joy Manor) are a pair of stone casks,
When did a fairy wash her hair?
She was gone long ago but the lotus bloom again,
Only the remaining fragrance fills the cask in vain.
경주 박물관 대학 입구에 커다란 석연지가 하나 놓여 있는데 본래 흥륜사에 있던 것으로 절이 폐사가 되어 가시밭 속에 버려져 있던 것을 조선조 인조 당시 경주 부윤이었던 만회 이필영이 경주 동헌으로 옮겨와 연을 심어 감상했다는 내력을 석연지의 가장자리에 윗 시와 함께 음각해 놓았다. 시의 저자가 이필영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필자가 소호 이교방의 시로 바로 잡는다.이필영이 각자한 50년 전에 쓰여 진 것을 간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의 내용에 쌍 석분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본래 석련지는 두개였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경주의 골목골목을 다 누벼 보아도 찾을 길 없으니 아쉬운 마음이다.
此乃羅代興輪舊物 寺廢抛在荊棘中者.
幾千餘載崇禎戊寅冬 運入植蓮以爲賞玩之
具顯< >有數< > < >廣陵後人晩悔識
There is a large stone cask used as a miniature lotus pond in front of Gyeongju Museum College, which originally belonged to the old and now-perished Heung-Ryoon Temple, consequently afterwards was left in the field of thornbush for a long time, until Pilyoung Lee(Penname Manhuey), the Gyeongju magistrate, during the reign of Injo in the Cho Sun Dynasty (AD 1623-1642) ordered to move to the premises and to plant lotus flowers in for him to enjoy its viewing. Nowadays we find the history of this cask from the above writing and the above poem engraved in the stone edge of the cask, with the poet being Pilyoung Lee written there.
However with my personal investigation on this subject, the poet of the above poem was Gyobang Lee with Penname Soho, which was verified by tracing with the traditional Korean chronological information and by finding that it was only fifty years ago when the engraving was made by Pilyoung Lee. Furthermore mentioning of 'a pair of stone casks' in the poem indicated existence of two casks, but only one cask has been in exhibition. I personally tried to find the other cask through the city of Gyeongju by treading from one alley to another to no avail. Somehow the lost one of the precious pair must be buried in history. I only regret it.
'Maegyeong' Chang Hyanggyu.
7.임평을 지나다가 연꽃을 구경하다
옛날하고도 먼 옛날
하늘에서 연 씨가 날아와서
못에 내려앉았다.
이듬해부터 그곳에서는
연꽃이 피기 시작했다.
의성 단밀 벼락지의 전설이다.
벼락같이 빠르게 연 밭이 만들어 졌다고 해서 붙은 이름일 테지.
경주 서면의 浮雲池에도 3년 전 갑자기 연꽃이 피기 시작해서
이제는 볼만하게 못에 꽃이 가득하다.
아마도 벼락지와 같은 사연이 있을 듯하다.
연의 씨앗이
'오즈의 마법사'의 돌개바람 같은
그 바람을 타고
인연 있는 땅에 내려 앉아
싹을 틔운 것이리라.
중국에서 발견된 3천 년 전 연 씨에서 꽃을 피웠다는 신문기사에서
그 영속성에의 본능을 본다.
臨平藕花(임평우화)
임평을 지나다가 연꽃을 구경하다.
바람에 창포꽃 한들한들(風蒲獵獵弄輕柔,풍포렵렵롱경유)
물잠자리 한 마리 앉을락 말락(欲立蜻蜓不自由,욕립청정부자유)
오월의 임평 산 아래 길가(五月臨平山下路,오월임평산하로)
물에 가득 핀 무수한 연꽃들(藕花無數滿汀洲,우화무수만정주)
Lotus flower in the Im-Pyung pond by Do Jam
Cattails are wavering on a windy pond,
A dragonfly tries to stand up on a leaf uneasily.
Around the downhill road of Im-Pyung in May,
Innumerable lotus flowers fill the sandy shores.
8.옥봉집 작은 연못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 인생의 중요한 부분,
즉 내가 무엇을 가장 많이 생각하고 살았는지를 알게 된다.
꽃이었다.
봄의 매화, 벚꽃, 모란,
이름 모를 들풀, 들꽃을 보러 다니느라
짧은 봄이 가는 줄 몰랐고
여름의 연꽃,
그 밖의 여름 꽃을 만나느라
더운 계절은 어느 듯 지나 가버렸다.
주변의 지인들은 거의 꽃과 연관된 사람들이다.
그 계절의 꽃이 가장 아름다운 장소에 가보지 못하고
꽃 피는 시절이 지나가 버리면
괜히 서글퍼진다.
여름이면 실컷 연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새벽녁의 연지에서 피어나는 안개
꽃잎이 열리는 소리
비오는 날의 춤추는 연 잎들
수정구슬처럼 연잎에서 떨어지는 물방울과
물고기의 도약
연잎 위를 걸어 다니는 빨간 머리 물 닭
해 질 무렵,
못가에 앉으면
건들바람이 선듯 선듯 연향을 불어 보내고
바람에 흔들리는 연꽃
늦은 가을엔
말라버린 연잎이
님의 사랑을 잃은 옥봉처럼 보이지.
겨울이면
까맣게 익은 연밥
빛바랜 연잎이 보여주는 쓸쓸한 해 거름녁.
옥봉집 작은 연못
이옥봉(李玉峯, 玉峯涵小池,옥봉함소지)
옥봉집 작은 연못
물 위엔 은은한 달빛(池面月涓涓,지면월연연)
원앙새 한 쌍이여!(鴛鴦一雙鳥,원앙일쌍조)
내 거울 속 하늘로 내려앉으라 (飛下鏡中天,비하경중천)
A small lotus pond
In a small lotus pond of Ok-Bong cottage
Moon beam reflects dimly on the surface.
A pair of mandarin ducks
Descend from mirror-like sky.
9.연못의 가을 새벽
녹색이던
지당의 물빛이
흰빛을 띄기 시작하면
가을의 시작이다.
물빛이 때때로
또 계절마다 바뀌는 것을
예전엔 몰랐었다.
시골생활은
나를 자연과 통하게 한다.
꽃은 일생에 단 한 번의 정사를 언제 벌이는지
별빛이 왜 고운지
바람은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바람
이곳에 와서 바람을 사랑하게 되었다.
나도 바람 따라가
바람의 색시나 될까
지당추효(池塘秋曉) 강지재당(姜只在堂)
연못의 가을 새벽
가을 연 못 물은 희고 차가운 새벽 별(秋塘水白曉星寒,추당수백효성한)
낱낱의 밝은 구슬 옥쟁반에 구르네(箇箇明珠擎玉盤,개개명주경옥반)
하늘이 밝아오면 어디로 가는가 (到得天明何處去,도득천명하처거)
연잎에 정 옮기니 동그란 이슬방울(移情荷葉露團團,이정하엽로단단)
Autumnal dawn at a pond
Autumnal pond water is clear while stars at the dawn are cold,
Which are like shining jewels held by a jade tray.
Where would they go at the first light of day?
Then my heart moves to lotus leaves holding round drops of dews.
10.채련가
연꽃은 오래도록 시의 소재가 되어왔다.
채련가 혹은 채련곡
채련귀, 채련부라고 하는 시가 많이 있으며
수많은 시인들이 즐겨 연밥 따는 노래를 불렀다.
황보 송, 허난설헌, 최국보, 이 달,이 백. 왕창령. 유방평.
하지장. 충선왕의 정인, 홍만종, 오국륜, 곽 예, 등
고죽 최경창은 이달, 백광훈과 더불어 조선 중기의 삼당시인으로 불렸는데,
'묏 버들 갈헤 것거
보내노라 님의 손대
자시는 창 밖에 심거 두고 보소서'의
작가 홍랑의 연인이다.
평생 그를 연모하다 죽은 홍랑의 제사를 백광훈의 가문에서 지내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그녀는 죽어서 경기도 고양에 있는 고죽의 묘 바로 아래 묻혔다.
몇 백 년을 이어져 오는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이다.
연밥을 채취하는 일이 어떻게 하여 많은 문학작품의 소재가 되었는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연꽃 만개한
옥돌 같은 호수에 목란배를 띄우고
오희와 월녀 같이 예쁜 처녀가 상앗대 같은 흰 팔로
연밥을 따면서 노래를 부르면
그 노래 소리
호수언덕에 아련히 울려 퍼져
꽃이 있는 곳에 나비가 날아오듯,
여인의 향기를 맡은 귀공자들이 몰려와서
사랑의 이야기가 시작된 것은 아닐 런지
채련가(采蓮歌) 최경창(崔慶昌)
연밥 따는 노래
언덕에 아물아물 버드나무 푸르러고 (水岸依依楊柳多,수안의의양류다)
작은 배위에서 아련히 채련가를 부르네 (小船遙唱采蓮歌,소선요창채연가)
붉은 꽃 다 지고 서풍이 불어오면 (紅衣落盡西風起,홍의낙진서풍기)
해 지는 모래톱에 흰 물결 일렁이네(日暮芳洲生白波,일모방주생백파)
Picking lotus pips
River bank looks dim with many willows,
Lotus-picking songs ring from small boats.
Red costumes fall down and westerly wind arises,
At dusk white waves are seen around the fragrant island.
11.곡지의 연꽃
요즘은 시와 노래가
분화되어 있지만
예전엔
시는
곧 노래였다.
그래서 詩歌라고 했다.
지금도 좋은 곡은 가사가 거의 詩이다.
중국이나
우리나라를 막론하고
당대 유명한 시인의 시가
市井에 나돌면
시는 곧 노래가 되었다.
당시의 유행가가 지금의 클래식이다.
기성품의 시대가 되니
노래도 이미 작곡된 것을
악보대로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매스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유행하는 시에 부쳐
자기 조대로 노래를 부르지 않았을까?
예술에도 정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요즘처럼
악보대로 부르는 노래가 아닌
진짜 자기만의 노래를
듣고 싶다.
한시 창
시조 창
시에 노래를 부친 가곡창도
'made by myself' 'song by myself'인 노래
조선시대 歌客
박효관이나 안민영 같은 이는
연꽃노래를 어떻게 불렀을까?
曲池荷(곡지하) 盧照隣(노조린)
곡지의 연꽃
연못가에 연꽃 향기 맴돌고 (浮香繞曲岸,부향요곡안)
둥근 연 그림자 못을 덮고 있어라 ( 圓影覆華池,,원영복화지)
가을바람 일찍 불까 두려워 하네 (常恐秋風早,상공추풍조)
시들어 날려도 임은 모르실거야 (飄零君不知,표령군부지)
Lotus in the curved pond
Floating fragrance surrounds the curved shore,
Round shadows covers the lotus pond,
Always fearing autumn winds to arrive prematurely,
And you still don't know if the withered flowers are blown away.
12.연꽃
윤 석 중
연꽃은
해만 뜨면 부시시 깨지요.
연 꽃은 연 꽃은
세수를 안 해도 곱지요.
Lotus flowers by Yoon Suk Joong
Lotus flowers
wake up quietly when sun rises,
Lotus flowers, oh lotus flowers,
You are beautiful even without face washing.
어린이의 세상은 그대로 자연이다.
때 묻지 않은 눈으로
자연을 바라보니
자연과 통역 없이 통한다.
한시와 동시는
닮은 점이 많다.
자연과 통하면
모든 것은 하나이다.
13.사지의 연을 보다
중국 청대의 선비 심복(沈復)이 쓴
중국문학사의 가장 빛나는 여인,
그의 아내
운(芸)과의 사랑을 그린 책 <부생육기>에 있는
차와 관련된 내용이다.
그의 아내 운은 가세가 넉넉지 못하여
좋은 차를 마실 형편이 되지 못했는데
차를 비단주머니에 넣어 저녁때
연꽃 속에 넣어 두었다가 아침에 꺼내어 연꽃향이
배인 차를 남편에게 대접했다고 하는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그녀는
남편의
첩조차 진정으로 용인한
부덕을 갖춘 여인이었다.
사지의 연을 보다 羅世纘(나세찬)
누가 태화지에 옮겨 심었나 (太華誰移種,태화수이종)
천연스럽게 물속에서 나왔네 (天然出水中,천연출수중)
바람 일지 않아도 향기 저절로 퍼지니 (無風香自遠,무풍향자원)
따고자 하는 생각 어찌 다 하리 (欲採思何窮,욕채사하궁)
Admiring lotus flowers in the sandy pond
Who has ever transplanted lotus flowers to Taewha Pond?
Already being grown out of water on their own.
Fragrance spread far on its own without wind,
When would the desire to pick them end?
14.연지에 샘물을 대다
蓮池注泉(연지주천) 慧諶(혜심)
연지에 샘물을 대다
금모래 땅에 맑은 못 열고 (金沙地面開淸沼,금사지면개청소)
벽옥간두 하늘에 걸어놓았네 (碧玉竿頭掛落天,벽옥간두괘락천)
옥같이 맑은 구슬 연잎에 내리어 (明珠瀉荷葉,민력명주사하엽)
하늘에 구름 없는데, 비 내리는 것을 본다 (相看雨下不雲天,상간우하불운천)
Spring-fed lotus pond by Hyaeshim
Golden sand was dug into a clear swamp,
Jade-like bamboo was pointing to the sky.
Jade beads are pouring on the lotus leaves,
I now see rain-falling without cloudy sky.
연으로 즐길 수 있는 호사가
여러 가지 있지만
그중에서 제일 멋스러운 것이
이른 새벽에
연당으로 가서
연꽃이 피는 소리를 들으며
연 이슬을 받아
차를 끓이거나
연잎에 고인 이슬에
연꽃 줄기를 꽂아
마시는 것이다
연꽃 줄기에는
연뿌리와 같이 여덟 개의
구멍이 뚫려있는데
연 줄기를 빨대로 해서
蓮露茶를 마신다
이슬은
달면서도
연의 향기 뿐 아니라
잎과 줄기의 향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옛 시를 보면
연꽃에 떨어지는
이슬방울을
연꽃잎으로 되는 듯 하다하여
연잎을 벽옥두(碧玉斗)라 한다
연잎을
푸른 옥으로 만든 됫박으로 보는 것은
시인의 마음이어서 가능하다.
비 내리는 날
연잎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벽옥두로 되고 또 되는
아름다운 정경을
떠올려 본다.
15.그대가 보내 주신 연꽃 한 송이
贈送蓮花片
贈送蓮花片 初日灼灼紅
離枝幾何日 憔悴如妾身
증송연화편
증송연화편하니, 초일작작홍을
이지기하일고? 초최여첩신을
元 妓女 作
보내주신 연꽃 한 송이,
첫날 타는 듯 붉었었네.
가지 떠나 몇 날인고?
이 몸 같이 여위었네.
A Lotus Flower
A lotus flower in full bloom,
At the first sight presented by you.
How many days have gone after having left its stem?
As much withered as my body!
By an unknown courtesan in Beijing during the Yuan Dynasty.
고려 충선왕이
세자시절 원나라에 볼모로 잡혀 있을 때
그곳의 기녀와 친하게 지냈는데
연꽃 한 송이를 그녀에게 보냈다.
갑작스런 부왕 충렬왕의
승하 소식을 듣고
이별의 말도 하지 못한 채
고려로 돌아오게 되었다.
기녀는
이 시를 왕의 시신에게
주었는데
그는 문장가로 유명한
익제 이제현이다.
이제현은
후일에야
이 사실을 왕에게 고하니
충선왕은
눈물을 흘리며
당시에 이 시를 받았더라면
자기는 다시 원나라로
돌아갔을 것이라고 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그녀는
궁정의 지체 높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수준 있는 기녀였다고 전한다.
16.서 주 곡
憶梅下西洲, 折梅寄江北. 억매하서주하니, 절매기강북을.
매화 꽃 떨어지니 서주로 가셨음을 기억하여, 매화가지 꺾어 당신 계신 장강 북쪽으로 부치고 싶어요.
單衫杏子黃, 雙鬢雅雛色. 단삼행자황하니, 쌍빈아추색을.
내가 입은 홑적삼은 은행열매같이 누르러고, 귀밑 머리카락은 갈가마귀 새끼 색이예요.
西洲在何處, 兩漿橋頭渡. 서주재하처오? 양장교두도를.
서주가 도대체 어느 곳에 있나요? 방황하다가 양장교 다리 머리 나루에 이르렀네요.
日暮伯勞飛, 風吹烏臼樹. 일모백로비하니, 풍취오구수를.
날은 저물어 백로가 날고, 바람이 쓸쓸히 오구수 나무에 불어요.
樹下卽門前, 門中露翠鈿. 수하즉문전이니, 문중노취전을.
오구수 나무아래가 곧 문 앞이니, 문안에는 어떤 여인의 비취비녀가 보이네요.
開門郎不至, 出門採紅蓮. 개문낭부지하니, 출문채홍련을.
문이 열려도 당신이 나오지 않으니, 문을 나가 붉은 연꽃을 따네요.
採蓮南塘秋, 蓮花過人頭. 채련남당추하니, 연화과인두를.
연꽃을 딸 때 남쪽 연못에 이미 가을이 와서, 연꽃은 자라 키가 사람의 머리를 지나요.
低頭弄蓮子, 蓮子靑如水. 저두농연자하니, 연자청여수를.
머리를 숙여 연밥을 희롱하고 있으니, 연밥은 물과 같이 푸르러요.
置蓮懷袖中, 蓮心徹底紅. 치련회수중하니, 연심철저홍을.
연밥을 따서 소매속에 품었으니, 연꽃 속은 아주 붉어요.
憶郞郎不至, 仰首望飛鴻. 억낭낭부지하니, 앙수망비홍을.
당신을 생각하나 당신은 오지 않으니, 머리를 들어 날아가는 기러기를 쳐다 보아요.
鴻飛滿西洲, 望郞上靑樓. 홍비만서주하니, 망낭상청루를.
기러기는 날아서 서주를 가득 채우니, 당신을 바라보고자 푸른 누각으로 올라갔어요.
樓高望不見, 盡日欄杆頭. 누고망불견하니, 진일난간두를.
누각는 높으나 바라보아도 (당신은) 보이지 않으니, 하루 종일 난간머리에 서 있어요.
欄杆十二曲, 垂手明如玉. 난간십이곡하니, 수수명여옥을.
난간은 열두 구비, 내려뜨린 손은 옥과 같이 희어요.
卷簾天自高, 海水遙空綠. 권렴천자고하니, 해수요공록을.
구슬발을 걷으니 하늘은 저절로 높고, 바다물은 출렁거리며 광활하게 푸르러요.
海水夢悠悠, 君愁我亦愁. 해수몽유유하니, 군수아역수를.
바다물에 나의 꿈이 유유하니, 당신이 근심함에 나도 역시 근심하네요.
南風知我意, 吹夢到西洲. 남풍지아의하니, 취몽도서주를.
남녘 바람이 내 뜻을 알아서, 내 꿈을 불어 당신 계신 서주에 이르게 해 주었으면.
The Western Province Song by an unknown poet
Remembering your departure for the Western Province upon seeing fallen magnolia flowers;
I wish to cut and send a branch to the country north of Yangtze River.
My unlined single blouse is red like Ginko seeds;
My temple simply black like the hair color of raven.
Where on earth is the Western Province?
I finally arrive at a ferry crossing near the Twin Oar Bridge.
Near sunset the egrets are flying;
And wind blows a Wu Chiu tree.
Under the tree is a gate right there;
And a jade rod hairpin (of a woman) is seen inside.
Through the open gate you are not seen;
I finally come out of the gate to pick red lotus flowers.
To pick the flowers in the autumnal southern pond;
The lotus has already grown taller than I.
Lowering my head I play with the lotus seeds;
They are blue like the pond water.
The lotus is placed in my sleeve;
Its core is thoroughly red.
Thinking of you but you do not return;
Looking my head up I only see flying wild geese.
The geese fly and fill the Western Province;
I now climb the blue pavilion to take a view of you (in vain).
I cannot still see you despite the height of the upper deck where I am;
All day long I keep standing at a corner of the balustrade.
The balustrade has twelve angles all around the deck;
And my hands hung down are as white as jades.
On raising a blind with strings of beads the sky is clear on its own;
The sea water is blue faraway.
My dream is boundless to the sea water;
You are worried and then so am I.
The southerly wind reads my heart;
Blowing my dream to the Western Province where you are gone.
해설
이는 한 여인이 멀리 가버린 낭군을 생각하여 지은 시이며,
거의 현실성 없는 상상의 세계에서
낭군을 찾아 방황하는 보습을 보여 준다.
이 시에는 사계절이 鮮明히 나타나니,
매화꽃이 피었다가 떨어지는 겨울부터 시작하여
홑적삼을 입는 늦은 봄,
연꽃을 따는 여름,
연꽃의 키가 자란 팔, 구월 등,
일 년 사계절을 보이며,
여인의 방황을 묘사하였다.
그리던 낭군이 가버린 서주는 어디 있는가?
이 여인이 어디 인지도 알지 못했던 서주를 찾아 방황하다가,
도저히 도달할 수 없음을 깨닫고,
높은 누에 올라 낭군을 찾아 바라보았다.
찾아보아도, 바라보아도 만날 수 없는 낭군!
마지막 애절한 소원은 "남녁 바람에게 내 꿈을 실어,
꿈에 그리던 서주에 이르기"를 간청하며 끝을 맺는다.
남풍이 내 뜻을 알아서,
내 꿈을 불어 서주에 이르게 하기를 기원하는
마지막 구절은 너무도 애절하고, 아름답다.
마치 Franz Schubert의 'Winterreise'
즉 영어로 Winter Journey,
한국어로 '겨울 나그네'를 들을 때
"눈 위에 흘린 나의 눈물이 눈과 함께 녹아 흘러
사랑하는 사람의 집 앞을 지나는 Creek을 따라
내 눈물을 전하고자" 하는 연인의 마음과 일맥상통한다.
그런데 이 "西州"는 어디 있는가?
그 여인이 아무리 방황해도 찾을 수 없었던 서주는 어디에 있는가?
천 육 칠 백년이 지난 지금에도 필자는 서주가 어디인지 전혀 알 길이 없다.
古詩選集에도 역시 地名未詳이라고만 했다.
唐詩人 劉禹錫 詩에 "西州風光好 遙望武昌樓" 라고 하여
혹시 武昌近方이 아닌가 추측한다.
그런데 武昌은 內陸地方이니 시의 "해수요공록"의 바다를 설명할 수 없다.
들으니 古代人은 海水와 江水를 그다지 엄격히 구분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곳의 강물을 바다 물로 표현하지 않았던가 한다.
<재미있는 한시 이야기>의 저자 우송 정관호 님의 추천시
17.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서정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이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Like a wind having encountered lotus flowers by Seo Jungjoo
Regretable,
but not too sad,
Just a little sorry.
Parting,
but not forever,
Somehow coming across even our next life.
Parting to be reunited again.
Not like a wind heading for an encounter,
Rather like a wind departing after an encounter.
Not like a wind leaving after meeting yesterday or the day before,
But like a wind meeting one or two seasons ago.
시인도
나처럼
연꽃과
바람을
사랑하였나보다.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
엊그제 만나고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
정월 초 사흩 날
올해의 연꽃을
기다리며
비어있는
연당에
가고 또 가는
이 마음
18.강 남 곡
꽃에도 품계가 매겼으니
호사가들이나 할 일이지만
사람들마다의 취향이 각각일진데
주돈이는 '애련설'에서
역시 꽃 중의 군자는
연꽃이라 했다
그는
진흙에서 나왔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아니하며,
맑고 출렁이는 물에 씻기어도 요염하지 않고, 속은 비었고, 밖은 곧으며
넝쿨은 뻗지 않고 가지는 치지 아니하며,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꼿꼿하고 깨끗하게 서 있어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으나,
함부로 가지고 놀 수 없는 연꽃을 유독 사랑한다고 했다.
향원익청(香遠益淸)이라 하여
연꽃은 멀수록 그 향기가 더욱 그윽하여
선비들의 청담과 교우의 상징으로 쓰이는 말도 있다.
이집트가 원산인 연꽃은
인도에 들어와 대중화 되고
불교적 의미의 상징이 되었다.
연은
꽃과 잎은 하늘에,
뿌리는 땅 속에,
줄기는 물속에 산다.
꽃 심에는 미리
씨앗이 들어 앉아 있고
씨앗과
뿌리로
동시 생식한다.
江南 古詩 作者未詳
江南可採蓮 강남가채련하니
蓮葉何田田 연엽하전전고
魚戱蓮葉間.어희연엽간이로다.
魚戱蓮葉東 어희연엽동이요
魚戱蓮葉西 어희연엽서를
魚戱蓮葉南 어희연엽남이요
魚戱蓮葉北 어희연엽북을
강남 고시 작자미상
강남에 가히 연을 딸 수 있으니,
연잎이 어찌 이다지도 동동 떠있는가?
물고기는 연잎 사이에서 놀고 있으니.
물고기는 연잎 동쪽에서 놀고,
물고기는 연잎 서쪽에서 노네.
물고기는 연잎 남쪽에서 놀고,
물고기는 연잎 북쪽에서 노네.
The South of the River
Lotus flowers are picked up in the Southern Land,
How are lotus leaves floating buoyantly?
Fish plays among lotus leaves.
Fish plays east of lotus leaves,
Fish plays west of lotus leaves,
Fish plays south of lotus leaves,
And fish plays north of lotus leaves.
19.雜 曲 歌 辭 十 五에서
採 荷 調 채하조
梁, 江 從 簡
欲 持 荷 作 柱 욕지하작주하니
荷 弱 不 勝 梁 하약불승량을.
欲 持 荷 作 鏡 욕지하작경하니
荷 暗 本 無 光 하암본무광을.
연줄기로 기둥을 만들려하니,
연 줄기는 약해서 대들보를 이기지 못하네.
연잎으로 거울을 만들려하니,
연잎은 어두워서 본래 빛이 없도다.
Picking lotus song
Trying to build a pillar out of a lotus stalk,
the stalk is too weak to support a crossbeam.
Trying to make a mirror out of a lotus leaf,
the leaf is too dark without a glimmer.
오십을 넘기고 나니
가끔 내가 살아 온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여유가 생긴다.
잘못한 일
후회스러운 일
부끄러운 일들이
너무 많아
회한에 잠기기도 하고
얼굴을 붉히기도 한다.
하고 싶었던 일
하고 싶었던 말
보고 싶은 사람들도
많았었다.
그러나
하고 살았던
시간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남은 평생
연꽃 이야기만 하고
보고 싶은 이들과 같이
꽃 보며 살고 싶다.
20.연꽃 따는 처녀
채련곡(采蓮曲) 홍만종(洪萬宗)
저 아름다운 연꽃 따는 아가씨 (彼美采蓮女,피미채연여)
배 매어 놓고 못을 가로 저어가네 (繫舟橫塘渚,계주횡당저)
말 탄 낭군 보고는 부끄러워 (羞見馬上郎,수견마상낭)
웃으며 연꽃 속으로 들어가네 (笑入荷花去,소입하화거)
Lotus-picking girl
There is a beautiful girl picking lotus flowers,
Tying her boat in the Heng-T'ang shore.
Too bashful to face the young man on a horse,
She hides herself in the midst of the flowers.
조그만 연못에
연꽃이 피면
호들갑을 떨어대는
나를 보고
누군가 일러 주었다
중국 장강 아래
강남에는
아마 제주도보다 더 큰 섬 전체에
연꽃이 가득하다고
연을 따도, 따도
끝이 없다는 詩가 있었지
가보지 못해도
상상만으로
가슴이 두근거린다
역시 중국은
연꽃의 대국이기도 한가보다
21.옥산에게
기옥산(寄玉山) 수향각원씨(繡香閣元氏)
옥산에게
맑은 가을 연못 누대, 마음은 배회하고 (秋淸池閣意徘徊,추청지각의배회)
밤에 난간에 기대니 달이 홀로 떠오른다 (向夜憑欄月獨來,향야빙난월독래)
물에 가득한 연꽃 삼백 그루 (滿水芙蓉三百本,만수부용삼백본)
임 보낸 이곳에서 누굴 위해 피어났는가 (送君從此爲誰開,송군종차위수개)
To Oksan by Mrs. Won of Su-Hyang Gag.
With wandering thoughts in a pond pavilion on a clear autumn day,
Near eventide I lean on a balustrade while the lonely moon comes near me.
There are three hundred lotus flowers covering the pond water,
For whom will they blossom once you leave here.
님을 보내고 나니
달이 떠도
연꽃이 피어도 모두 시들하다
청명한 가을밤에 누대에 올랐으나
떠도는 허전한 마음
같이 볼 사람 없는
연꽃은
누굴 위해 피어났는가.
22.무제(無題)2 이상은(李商隱)
颯颯東風細雨來, 삽삽동풍세우래
쌀쌀한 봄바람에 가랑비 내리니,
芙蓉塘外有輕雷, 부용당외유경뢰
부용 꽃 못 밖에 가벼운 우레 소리.
金蟾齧鏁燒香入, 금섬설쇄소향입
장막 위에 걸린 향로가 태운 향기는 천천히 휘장 안으로 들어오고,
玉虎牽絲汲井回, 옥호견사급정회
우물 위의 도르래는 비단실 당겨 물 긷네.
賈氏窺簾韓掾少, 가씨규렴한연소
당년에 가씨 소저는 문의 주렴을 통하여 미소년 연리 한수를 몰래 보았고,
宓妃留枕魏王才, 복비류침위왕재
복비가 남긴 옥장식의 금 띠 베개는 재기 발랄한 진사왕 조식에게 주었도다.
春心莫共花爭發, 춘심막공화쟁발
한 조각 봄 마음은 한 번에 다투어 핀 꽃을 따라가지 말아라;
一寸相思一寸灰, 일촌상사일촌회
한 마디 상사는 네 마음속에 한 마디의 죽은 재를 주리니!
To one unnamed II by Li Shangyin
A misty rain comes blowing with a wind from the east,
And wheels faintly thunder beyond Lotus Pond.
Round the golden-toad lock, incense is creeping;
The jade tiger tells, on its cord, of water being drawn
A great lady once, from behind a screen, favoured a poor youth;
A fairy queen brought a bridal mat once for the ease of a prince and then vanished.
Must human hearts blossom in spring, like all other flowers?
And of even this bright flame of love, shall there be only ashes?
洛神賦序曰 ...[魏東阿王(曹植)求甄逸女不遂 . 太祖(曹操)囘(회),
與五官中郎將(曹丕), 植不平. 黃初中入朝, 帝(曹丕)示甄后玉鏤金
帶枕, 植見之, 不覺泣, 時爲已郭后讒死.
帝仍以枕賚植. 植還息於洛水上, 思甄后, 忽見女自來云
[我本託心君王, 其心不遂, 此枕今與君王.] 遂用薦枕席,言訖不見.
後明帝見之改爲洛神賦.
위 글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낙신부 서에 가로되: 조조의 제삼자
조식이 삼국지에 나왔던 발해태수 원소의 둘째 아들 원희의 부인
진씨를 갖고 싶어 하였으나, 조조가 허락하지 아니하였고, 그 후
태자 조비에게 주어서 결혼하여 결국 황후가 되었다. 그리하여
조식은 불평하였다. 그 후 조비는 곽황후의 참소를 듣고 진황후
에게 사약을 내려 진 황후는 죽는다. 그런데 사약을 받고
塘 上 行 을 써서 조비에게 받혔다. 그 후 조비는 진황후 죽인
것을 후회한 듯 동생 조식에게 진황후의 옥장식한 금 띠 베개를
보이니, 조식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하여 조비는 조식에게
그 베개를 주었다. 조식은 그 후 낙수를 지나면서 진후 생각을
할 때 홀연히 여인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나는 본래 군왕 당신
에게 마음을 바쳤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여 이 베개를 지금 군왕
에게 드림니다." 그리고 베개와 자리를 주었으며, 말이 끝나자
그녀는 사라졌다. 그 후 명제 즉 조예가 낙신부라고 변경하였다.
그러니 재기 발랄했던 진사왕 조식은 자신의 형수를 항상
사모하지 않았는지요?
*<재미있는 한시이야기>의 저자 정관호님의 추천 시
23.蓮 시조
연 심어 실을 뽑아
노 부여 걸었다가
사랑이 그쳐갈 제
찬찬 감아 매오리다
우리는 마음으로 맺었으니
그칠 줄이 있으리
Lotus ( Three stanza poem ) by Kim Young
Threads from lotus stalks are twisted into strings hung on a peg,
To tighten our love whenever cooling down.
Though the love from tying our hearts would never end.
작가 김영(金煐)은 생몰미상으로
字는 景明
조선조 정조
때의 무신으로
벼슬이 형조판서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연 줄기와 뿌리에서 뽑아지는
긴 실로 노끈을 부비어 놓았다가
그대와의 사랑이
식어갈 때
그 실로 사랑이 떠나지 못하도록
찬찬이 감아 매리다.
그러나 우리 사랑은
마음과 마음으로 궂게 맺은
언약 이상의 것이기에
연실로 묶을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다소 자위하는 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어디 그러 한가
속절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요
뜬구름과도 같은 것이 사랑의 언약이기에
요즘 사람들은
이렇게 말 한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고
사랑의 유통기간이 얼마동안이라고?
인간사에
사랑과 이별이 없다면
시도
노래도
없었을 것이다.
24.別離 劉禹錫
茨菰葉暖別西灣(자고엽난별서만)
蓮子花開不復還(연자화개불부환)
妾夢不離江上水(첩몽불리강상수)
人傳郎在鳳凰山(인전낭재봉황산)
별리 유우석
자고 잎 따뜻할 때 서쪽 물 구비에서 이별하니,
연꽃이 피어도 돌아오지 않네.
이 내 꿈은 강물위에서 떠나지 않건만,
전하는 말이 낭군은 봉황산에 있다고.
Parting by Liu Yu Hsi
I parted with you at the Western Bay when the waterweed leaves were warm;
You haven't returned now that the lotus pips are blooming.
My dreams haven't left the river water yet;
People only say that you have been seen in the Phoenix Mountain.
竹枝詞로 유명한 유우석의 시이다
그의 시는 낭만적이며
대중적이어서
시에 숨어있는 뜻이 깊지 않아
감정이입이 쉽게 된다
서쪽 물 구비에서 이별한 님
계절이 바뀌어
아름다운 연꽃은
처처에 무성해도
떠난 님은 봉황산에서
돌아 올 줄 모르네.
내 마음은 아직도
그대와 이별한 물위에
떠돌고 있는데
25.연향차
연향차를 마시는 일은
대단한 호사여서
한 송이 연꽃으로
차를 마실 때
십여 명 이상이 모인 날에나
行茶를한다
예전에는
홍련차도 마셨는데
근래에는 홍련에 독성이 있다고 하여
백련차만 마신다.
도자기로 만든 작은 연지에
홍련을 심고
따뜻한 물을 부으면
꽃잎이 하나 둘
벌어지는 모양이
꽃이 피어날 때와 흡사하지만
백련은
꽃잎이 부드러워서인지
연지에 펴져 있을 때
좀 널부러진 모양이 된다
홍련의 향은 좀 진하고
백련의 향은
은은하고 그윽하여
백련차를 마셔 본 사람은
평생을 두고
그 향을 잊지 못할 것이다
한 겨울에
연지에 활짝 핀
연꽃을 보는 기쁨을
어찌 글로서 다할 수 있을까
중국에서 가져 온
연차를 보니
꽃은 작은데
색깔이 매우 다양하여
빨강, 노랑, 보라, 하양
등의 색이었다.
아마도 색색의 수련을
불로 그을려서
수분을 제거한 후에
차로 만든 것이려니 생각된다.
26.강남곡
여름 별식으로
연잎 밥을 만들기 위해
연잎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다.
안압지주변에, 서출지에 연잎이 무수해도
한 장이라도 쉽사리 따지 못한다.
대구 인근의
청도 유등지나 경산 갑못에서
조그만 쪽배를 저어가서
꽃과 잎을 따서
파는 이가 있었다
마침 스님께서 동이에 키우는 백련 잎을 몇 장 주셔서
지난 여름에도 거르지 않고
별식을 맛볼 수 있었다.
江南曲 2 吳國倫 (樂府詩集) (明 興國人 河南佐參政)
江南行採蓮,강남행채련하니
蓮花曜朝日.연화요조일을
素腕刺船來,소완자선래요
朱脣唱歌出.주순창가출을
강남곡에 부치어
강남에서 연꽃을 따러 가니,
연꽃은 아침 해를 비추네.
흰 팔은 배를 저어 오며,
붉은 입술에서 노래가 나오네.
To the tune of the River South 2
Trying to pick lotus flowers on my trip to the River South;
The flowers are shone on by the Sun.
A boat is rowed by the white arms of a beauty toward me;
A song is sung from her sweet red lips.
27.연꽃 따는 노래
집안에 자그마한
인공연못을 만들었다.
연못이라 하지만
흔한 플라스틱의
큰 물통 연못이다.
연뿌리를 묻고
질소성분이 많은
거름을 넣었다.
연은 생명력이 강해서
3천 년 전의 연 씨가
발아해서
꽃을 피운다고 한다.
밖에 나가면
연 밭이 지천인데
내 마당 안에
작으나마
연지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
행여 욕심일 것 같아
많이 생각했다.
시골 장 날
봄 장을 보려 나간 길에
반찬감으로
연뿌리를 사온 것이
화근이었다.
(꽃의 뿌리이니 정말 花根)
이왕 심었으니
오래 묵은 기와로
물통 주위를 둘러서
붉은 고무의 색을 감춘다.
채련곡(採蓮曲) 최국보(崔國輔)
연꽃 따는 노래
옥 같은 섬에 꽃이 다투어 피고 玉嶼花爭發(옥서화쟁발)
금당에는 물이 어지럽게 흐른다. 金塘水亂流(금당수난류)
서로 만나 다시 잃을까 두려워 相逢畏相失(상봉외상실)
목란주를 서로 매어 놓았네. 竝着採蓮舟(병착채련주)
Lotus-picking Song by Ts'ui Kuo Fu
Flowers compete to bloom in beautiful islands;
Water streams are turbulent in the golden pond.
Fearful of separation following the short meeting each other;
The lotus-gathering boats are attached together.
28.연꽃 핀 언덕
皇甫岳雲溪雜題五首 중에서 王維 (왕유)
蓮花塢 연꽃 핀 언덕
날마다 연꽃 따러가서는 :日日採蓮去(일일채련거)
모래톱이 길어 늘 저물어 온다네: 洲長多暮歸(주장다모귀)
상앗대 놀려도 물 튀기지 말게나:弄莫濺水(농고막천수)
붉은 연꽃에 옷 적실까 두렵다네: 畏濕紅蓮衣(외습홍련의)
Lotus Ridge
Every day I visit to pick lotus flowers up;
The long sandy beach would make me stay until eventide.
Please don't splash water while playing with your boat pole;
Out of worry to get my beautiful red-lotus dress wet.
29.鸕鶿堰 가마우지 나는 언덕
잠깐 붉은 연꽃 향했다가 사라지고
다시 맑은 포구 나와서는 날아 오른다
홀로 서니 깃털 어찌나 파르르 터는지
고목 뗏목 위에서 물고기를 물고 있다
乍向紅蓮沒(사향홍련몰)
復出淸浦颺(복출청포양)
獨立何褵褷(독립하리시)
銜魚古査上(함어고사상)
Cormorants' Bank
Disappearing after briefly heading for red lotus;
Next moment they fly up out of a clear creek.
How trembling are their feathers on standing alone?
Still holding fish in the mouth on an old raft.
제 2 부
1.경주 병
나에겐 오래 묵은 병이 있다.
30년간 경주를 그리다가
이제 경주에 살게 되었는데도 경주를 그리워하는
경주 병이다.
경주 병의 증세는 그리움이다.
그 위력은 대단해서
주변의 사람들은 거의
경주 병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었다.
무언가 못 견디게 그리우면
황룡사 빈 터로
천관사 터로
반월성 뒷길로
달려간다.
그 텅 빈 옛 터에서
휭 하니 지나가는 바람과 만나고
돌아 와야지.
고려 말 민사평의 시를 정 민 교수가 번역한 시이다.
옛 님 생각
고운 님 보고픈 생각이 나면(情人相見意如存,정인상견의여존)
황룡사 문 앞으로 달려오소서(須到黃龍佛寺門,수도황룡불사문)
빙설 같은 얼굴이야 볼 수 없지만(氷雪容顔雖未覩,빙설용안수미도)
그 목소린 그대로 여태 들려요(聲音彷彿尙能聞,성음방불상능문)
Thinking of my bygone love by Min Sapyung
When I am reminded of my old sweetheart,
I would rush to the gate of the Yellow Dragon Buddhist Temple.
Though your icily pure and beautiful face cannot be seen,
your voices still linger on to my ears.
2.경주부윤 송덕비
무작정하고 나서는 답사 길에
예기치 못한 유물, 유적과
만나는 일은 드물지 않다.
우연히 발견한
통일 전의 신라 고총과
원교 이광사의 비문,
그리고 지금으로 치면 경주 시장격인
조선시대 경주 부윤의 송덕비(혹은 영세불망비라고도 한다)를
여러 장소에서 찾아내었다.
조선조 고종 때 부윤을 지낸 노영경의 비문은
1892년에 건립되었으나 불과 1세기 만에
시골집 마당에 부서진 체 쓰러져 쓰레기 속에 방치되어 있었고
또 몇 몇 개의 비문들은 반쯤 묻힌 채
외로운 산길에 서 있는 것도 있었다.
신라왕국이 사라진 후
1천년만의 경사라고 하는
방폐장, 양성자가속기 ,KTX등이 유치됨으로써
경주는 새로운 역사적 도약의 기회를 맞았다.
백상승 시장의 인기와 지지도는
전국 단체장 중에서
단연 으뜸이다.
백시장의 송덕비 건립도 당연히 추진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백시장의 공덕으로 보아서는
천년이 흘러도 세인들에게
기억되고 회자될 가치가 충분하건만
지난 부윤들의 행적처럼
백년의 세월도 이기지 못하고
세상에서 잊혀 진다면
송덕비 건립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우선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송덕비를 한 곳에 모으고
선조들의 뜻을
다시 한 번 기리는 범시민적 의례가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우뚝한 것은
백시장의 공덕비가 될 것이다.
3.애프트눈 레이디
어릴 때부터 흔하게 보던 분꽃이
요즈음엔 오히려 보기 귀해졌다.
해가 지기 전 그늘에서부터 피기 시작하는데
짙게 화장한 여인의 분 내음을 풍긴다.
그래서 분꽃이라 부르는가보다.
꽃과 잎의 모양이 수수한 대신에
짙은 자주색의 꽃잎과
짙은 향을 자랑한다.
까맣게 영근 씨앗을 부수면 나오는 하얀 속살을 말린 가루로
옛 여인들은 분단장을 했다고 한다.
분꽃을 영어로는 'an Afternoon Lady'라고 하는데
우리말로 '밤의 여인'이라고 하면 어울리는 해석일 것 같다.
혹은 '밤에 외출하는 여자'면 어떨까
동서양이 공통적으로
분꽃에 대한 이미지가 같아서 놀랍다.
짙은 화장을 한 여인이
밤 외출을 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의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참으로 매력적인 이름이다.
'Afternoon Lady'
4.상사화는 어디로 갔을까
작년 여름
대밭에서 상사화가
불쑥 꽃대를 뽑아 올렸다.
우아한 분홍 꽃이 진초록의 댓잎 사이에서
아른아른 보인다.
심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옛날 자랄 때 시골에서는
상사화를 집에 심으면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다고 했다.
당시 몹시 몸이 좋지 않았었기에
마음속으로
그런 것 믿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꽃은 꽃일 뿐이라고
자위를 하기도 했다.
올해 봄 상사화가 역시 그 자리에서
잎을 길게 늘어 뜨렷다.
개체수가 작년보다 좀 더 번진 것으로 보였다.
꽃이 피면 좀 더 잘 보이라고
주변의 대나무를 잘라 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상사화 잎이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물론 자연현상이겠지만
신기한 일이다.
상사화는 꽃과 잎이 따로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잎이 먼저 나서 진 후 잎의 잔해가 전혀 보이지 않을 때 꽃이 핀다.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해서 서로를 그리워한다고 한다.
바로 곁의 맥문동은 꽃을 피웠는데
상사화는 어디로 갔을까?
5.나원리 5층 석탑
나원리 석탑을 찾아 가는 길은
어느 유적지를 찾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겨울에는 수목이 우거져 있지 않아서
멀리서도 눈에 잘 띄는데
여름에는 갈 때마다 헤매다가 찾는다.
학생시절에 답사를 한 후
아름다운 탑이 늘 생각나서
몇 번이나 찾아 왔던 곳이다.
흰 화강암의 탑은 이 지역에서 드문 5층이며
비례미와 균형미가 뛰어난 미탑이다.
멀리서 보면 하얗게 보여 나원백탑이라고도 불린다.
6.나도 재즈로빅 한다
오후 8시 30분부터 한 시간 동안
서천 고수부지에서는 흥겨운 최신가요가 울려 퍼진다.
주로 젊은 여성들이 모여서
강사의 가르침에 따라
음악에 맞춰 신나게 몸을 흔드는데
이름 하여 재즈로빅이란다
재즈 댄스와 에어로빅의 합성어인데
몸이 불편한 내가 따라 하기에는 무리가 되지만
힘이 자라는 만큼만 따라 해도 땀이 촉촉이 흐른다.
20여분 하면 벌써 다리가 아파오니 그만 멈추고
강변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
서천으로 불어오는 바람의
상쾌함이 코끝으로 얼굴로 느껴진다.
장마가 끝나가는 계절이라
서천의 수량은 더욱 풍부해지고
물이 맑다.
아름다운 강을 따라
빨리 걷기를 하는 사람도 있고
가벼운 조깅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남들이 열심히 운동을 하니
나도 덩달아 하고자하는 마음이 생겨난다.
몸 상태가 이만해진 것도
경주의 깨끗한 바람과 물의 혜택이 아닌가 한다.
7.진덕여왕릉 가는 길
현곡면 오류리에 있는,
몇 번이나 벼르다가 못가 본
진덕여왕릉 답사에 나섰다.
호젓한 산길을 여자 둘이서는 무리라는
결론을 내리고 나서
일주일을 망설이다 다시 가기로 했다.
오늘은 명희 씨, 매화 씨, 나와 셋이다.
왕릉 아래쪽은 달성 서 씨 가문의 가족묘가 몇 기 있고
왕릉 바로 아래는 신안 주 씨 부부의 합장묘가 있다.
왕릉 주변에는 어디나 소나무가 많지만
이곳처럼 울창한 숲은 처음이다.
서악동 무열왕릉 지역처럼 남쪽을 향하고
앞에는 안산이 있고
시야가 앞으로 트이면서
좌우로 청룡. 백호의 비보가 잘된 자리이다.
여러 가지 야생화가 피었다.
잎이 톱같이 생긴 하얀색의 톱 풀 꽃
보라색의 산 도라지꽃
자주색 타래 난초
삽주
그리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독버섯들
여왕 릉은 중간 크기의 원형의 석실분인데
무덤의 판석을 십이지의 부조로 얕게 조각한 양식이어서
후대에 개보수를 하지 않았다면
양식상의 연대도 맞지 않고
사량부에 장사지냈다는 기록과도 일치되지 않는다.
보너스로
소나무 향내와
꽃을 즐기며
여왕에게 배례를 올린 후
산을 내려왔다.
8.Lakeside Watlz
현곡면 가정리에 있는
동학 즉 천도교의 발상지인
용담정 가는 지방도 왼쪽으로
'호반의 왈츠'라는 펜션. 카페로 가는 길이 눈에 띄었다.
이름과 어울리는 아름다운 집이다.
이왕 왔으니
커피라도 한잔 마시려고 호숫가 벤취에 앉았다.
녹색의 물위로
하얀 물새가 날고
수면에 떨어지는 빗방울의 합창
비온 후의 산에서 운무가 피어 오르니
옛 사람의 시 한수를 떠올린다.
조선조 천민출신의 시인 유희경의(劉希慶, 1545-1636)의 월계도중(月溪途中)이다.
그는 부안 명기 매창의 情人이었다.
빗기 머금은 산, 물에선 안개 피어오르고
푸른 풀 호숫가에 백로가 졸고 있네.
해당화 꽃 아래서 발길 돌리니
가지 가득 향그런 눈꽃송이 채찍질에 휘날리네.
山含雨氣水生烟 (산함우기수생연)
靑草湖邊白鷺眠(청초호변백로면)
路入海棠花下轉 (로입해당화하전)
滿枝香雪落揮鞭(만지향설락휘편)
9.금오산 무량사
금오산은 남산의 별칭이다.
김시습의 '금오신화'가 바로 남산에서 쓰여 졌다.
남산의 불교 유적지는
골짜기마다의 절터와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 등이 무수히 많아서
폐사지만 해도 140여 곳이 넘는다고 한다.
금오산 무량사는 서출지를 앞에 두고
울창한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신라시대의 절터로 추정되는 자리에 있다.
조선조 후기에 세워진 고택을 절로 개수해서
고색창연한 古寺처럼 보인다.
맞배지붕의 일주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범종각이 있는데
신라종의 양식을 답습한 범종은
크기에 비해
소리가 예사롭지 않게 그윽하고 은은하다.
범종각에는 운판을 달아
하늘을 나는 짐승의 천도를 기원하고 있는데
운판의 모양도 매우 아름다우며 무늬 또한 그러하다.
이끼 낀 마당에는 쌍사자 석등과 또 한 기의 석등이 있고
신라의 우물같이 보이는 샘은 井자형의 우물 돌 위에
또 다른 둥근 우물 돌을 얹어 놓은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근래의 재현품인 듯 했다.
마당에는 오래된 돌절구와 주춧돌, 기와 등이 널려 있고
나름대로의 운치를 가지고 있어서 고사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대웅전 앞 석탑은 불국사 석가탑 양식을 충분히 따랐으나
규모는 축소되어 있었고
탑의 기단부 네 귀퉁이를 연화무늬를 조각한 돌을 배치했다.
남향의 건물은 '부석정'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었는데
남산의 부석에서 따온 당호이리라는 짐작이 간다.
어느 날 절을 방문했을 때 주지스님께서 종을 한번 쳐 보겠냐고 하시기에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어 당목을 잡고 당좌를 힘껏 두드리니
소리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잊을 수 없는 멋진 체험학습을 한 셈이다.
조지훈 '古寺'
목어를 두드리다
졸음에 겨워
고오운
상좌아이는
잠이 들었다.
부처님은
말이 없이
웃으시는데
서역 만 리 길
눈부신 노을 아래
모란이 진다.
10.비오는 날의 드라이브
장마가 시작된 지 여러 날이 되었지만
비가 흔하지 않으니 습하지 않아 삽상한 가을날 같다.
두 사람은 비오는 날의
운치를 즐기려 드라이브 길에 나섰다.
내남에서 외동으로 가는 길에는
정씨 시조인 지백호의 사당과 묘가 있고
길가에 어마하게 큰 정자나무가 있는 동네도 있다.
명계초등학교를 개조한 다도예절원 '자우산방'이 잇고
남산의 반대편 입구로 올라가는 백운암, 열암계곡, 금천사가 있다.
열암 계곡에서는 얼마 전에 새로운 마애석불이 발견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좀 더 가면 서라벌 C .C가 오른쪽으로 자리했는데
골프장 가는 길은 멋지고 한적하다.
양 길가에 무수한 흰색 꽃이 비에 젖어서 한들거렸다.
차를 멈추고 자세히 보니 '루드 파키아'엿다.
요즘 큰 길 가에는 노란색의 꽃이 한창인데
흰색은 처음이다.
비와 안개에 젖은 골프장은
동양화 한 폭을 펼쳐 놓은 듯한 절경이었다.
골퍼들이 짙은 초록 위에서
경기를 하는 모습이 영화 속 장면같이 선명하다.
그린을 마주하고 있는 클럽 하우스에서
식사와 차를 즐기고 돌아오는 길에
어제부터 내리던 장맛비는 그치고
서쪽하늘이 밝아오고 있었다.
11.에덴동산
무열왕릉 가는 길에서 충효동 방면으로 좌회전해서 가다가
냇물을 건너면 아름다운 레스토랑이 하나 있다.
수도산을 끼고
기차가 지나가는 풍경을 앞에 두고
맑은 시냇물 가에 자리했다.
갖가지 야생화를 키우며
그 꽃으로 실내를 장식한다.
어제는 도라지꽃이 식탁위에 올랐다.
샐러드와 과일도 꽃으로 꾸몄다.
소박하면서
멋진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곳
그곳은
'에덴동산'이다.
12.경주 교동 최 영 식 고택
경주 교동은 향교가 있음으로 해서 생긴 동네 이름이다.
어느 고을이던 향교가 있으면 교리, 교촌, 교동으로 불린다.
경주 향교는 신라 신문왕 때 설립된 학교 '국학'이 있던 장소에 건립되었다.
경주 최씨 종가와 경주 교동 법주 본가와 같은 곳에 있고
한정식집 '요석궁' '월정교' '사마소' '반월성'
그리고 '내물왕릉' '첨성대' '재매정' 등이 지척에 있다.
남천을 건너면 '천관사'지와 '왕정골' '도당산'이 있으며
요즘 발굴이 한창인 '인용사지'도 가까이 있다.
경주 최씨 댁 가는 입구 길가에 '최 영 식 고택'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집안에는 독특한 문화재가 있다.
기단부에 연꽃 문양과 십이지를 조각한 석등이 그것이다.
조각기법이 너무나 미려해서 보는 이들을 놀라게 한다.
이 등(燈)은 대석 등을 흥륜사지(興輪寺址)에서 가져왔다고 전해지며
문화재자료로 지정될 정도로 잘 다듬어진 석등이다.
개인소유로 고택 안에 있어서 일반인들은 잘 알지 못한다.
대석은 방형으로 된 복련 지대석이며, 사면에는 12지상 좌상이 부각되어 있다.
지대석 상부에는 간주가 있고 또 그 위에 앙련대석이 있다.
그리고 9세기경의 석탑 1기가 있고
여름이면 오래된 연지에 붉은 수련이 핀다.
한국 전통 정원의 양식을 잘 보여주는 뜰에는
300년 이상 된 산수유 , 배롱나무, 후박나무 등이
고택의 분위기를 더욱 고색창연하게 한다.
최 영 식 님은 교직생활을 하신 후 퇴임하시고
고택을 지키며
집을 다녀간 손님들의 방명록을 간직하고 있었는데
당대의 유명 인사들의 친필 시와 그림들이 많았다.
그곳에 가는 것을 나는 너무 좋아한다.
몇 번이나 갔었지만
지난 달 '이 윤 정'의 그림전시회가 있었던 날을 잊지 못한다.
오픈하는 날,
오시는 손님들을 위해 음식준비를 하고
우리 가곡을 부르는 가수를 초빙했다.
오래된 정원에서 퍼지는 아름다운 노래와
천년의 탑과 석등에
섬돌위에 배치한 그림들이
얼마나 환상적이던지
초대된 손님들은 너무나 행복해했다.
또 남산과 도당산이 보이는 정자 마루에 앉아
정담을 나누며 맘껏 풍류를 즐겼다.
13.경 사 모
객지사람이면서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더러 만난다.
주로 예술계에 종사하는 이들이 많았고
이곳 사람과 결혼하여 살게 된 사람
혹은 직장일로 오게 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경주를 너무나 사랑한다는 것이다.
경주의 자연
경주의 역사
경주사람
모두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경주를 사랑하는 사람들'
약칭 '경 사 모'라는 모임이 내가 알기에도
너덧 개가 있고
심지어 대구나 외지 사람들도
경주 사랑에 빠져서
짝사랑을 하는 이가 많은 줄 알고 있다.
대구 친구들만 해도
경주를 제 집 드나들 듯 하고 있고
이사 오기 전의 나도
한 달이면 두어 번 다녀갔었다.
숨 막히는 도시를 피해
이곳에 왔다 가면
숨통이 트였다.
불탑사 마당에 앉아
별을 보기도 하고
어느 해 시월의 마지막 밤에는
나를 배웅하시는 스님과
손을 잡고 걸으며 노래도 불렀다.
나의 도라지꽃
경주의 바람
황룡사 들판
반월성 뒷길
남산
아름다운 사람들
어이 두고 떠날까
가슴이 먹먹해진다.
14.표형 쌍분
경주지역의 대형 고분 중에
위에서 내려다 볼 때
표주박형의 무덤이 있다.
현재 지표상에 나타나는 이러한 고분의 형태는
7기 정도이며
부부를 합장한 묘라고 할 수 있다.
고대 알타이족의 활동무대이던
중앙 아시아지역의 초원에 기원전 3세기경의
적석목곽분이 발견되는데
신라에서는 마립간 시대 기원 후 5세기경에
같은 형태의 고분이 나타난다.
8백년의 시차를 두고 나타나는 이러한 현상으로써
신라 김씨 왕족의 이동과정을 추정할 수 있겠다.
거대한 무덤을 볼 때마다
몇 가지 의문을 가졌는데
동부 유적지의 쌍형분 1기가 동서로 자리 잡은 경우를 제외하고
나머지 쌍분의 방향이 남북을 향하고 있는 이유,
북분이 더 큰 이유,
왜 여자가 북분의 주인공일까,
다른 부부들은 왜 쌍분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내 나름대로의 추론은,
북분이 더 크고 남분에서
더 화려하고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는 이유는
북분 피장자인 여성의 신분이
남쪽 피장자인 남성의 신분보다 높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황남대총의 북분 에서는 '부인대'라는 명문이 쓰여 진 은제 허리띠 드리개와
화려한 금관이 출토됨으로써 금관이 왕의 전유물이었다는 사실과
남자가 썼으리라는 상식을 여지없이 깨고 있다.
남분에서는 무기류와 금동관이 나왔으므로 남자의 무덤으로 보인다.
엄격한 혈통 중심적 신라사회에서
여성의 신분이 높을 경우에만
죽어서 남편과 함께 묻히는 권리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표형의 쌍분은
여성의 지위가 높을 경우
부부를 합장한 경우일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조선시대 왕의 사위들도
아내가 죽으면
재취를 할 수 없었다.
철종의 부마도위 박영효도
공주가 죽자
공식적인 독신으로 살았다.
역사는 해석의 학문이다.
문헌, 고고학적 유적이나 유물을 보고
그 시대상을 복원하는 것이다.
15.서악동 고분군
태종 무열왕은 신라 최초의 진골왕이다.
그의 할아버지 진지왕은 황음하여 폐위되었으므로
그의 아들 용춘과 손자 김춘추는 성골에서 진골로 격하되어
왕위계승권의 서열에서 배제되었다.
선덕왕과 진덕왕, 두 여왕을 잘 보필했으며
뛰어난 외교술로 나당동맹을 맺어
김유신과 함께 삼국통일의 기틀을 마련하고
성골의 혈통이 끝난 후에 비로소 왕위에 올랐다.
마립간 시대에 지금의 대릉원 지역과 동부 사적지구등에 만들어졌던 적석목곽분은
법흥왕 이후 선도산 서악동 쪽으로 이동하여 새로운 형태의 무덤양식인 석실분으로 바뀐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원형봉토분의 크기나 형태로 보아서는 적석목곽분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선도산은 혁거세의 어머니 사소부인의 성모사가 있어
신라인들에게 성역시 되던 산이었는데
불교의 공인과 함께
서방정토라는 새로운 사상과 함께 왕경의 서쪽으로
왕릉이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 통설이다.
무열왕이 즉위한 후
아마도 먼저 한 일은
직계조상들의 묘역을 정리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아버지 용춘의 묘와
폐위되어 능이라고도 불리지 못한 조부 진지왕의 묘
증조부 진흥왕릉
고조부 법흥왕릉을 한 곳에 차례대로 배열한 것이
무열왕릉 뒤편의 네 개의 능으로 추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시 당나라의 천자는 7대 조상의 廟를 썼으며
신라는 제후국이라 4廟를 썼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리고 용춘의 묘 앞에서 망배단이나 사당을 지어
직계 4대를 배향했을 것이다.
지금도 그 터로 추정되는 유구가 무열왕릉 바로 뒤에 있다
법흥왕릉은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해 애공사의 북쪽이라고 하여
현재의 효현동이라고 비정해 놓았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또 진지왕릉과 진흥왕릉이
서악동 고분군에 따로 비정되어 있으나
상식적으로 믿기 힘든 장소여서
더 자세한 연구가 필요한 실정이다.
참고로 신라왕릉 중에서
주인공이 거의 확실시되는 것은 5기 정도이고
선덕왕릉, 무열왕릉, 흥덕왕릉, 원성왕릉, 경기도 연천에 있는 경순왕릉이 그것이다.
이 또한 고고학적 발굴이나 연구를 통하지 않고는
단정할 수 없다.
16.태종 무열왕릉비
장마가 시작된 다음 날
비가 잦아진 틈을 타서
태종 무열왕릉 뒤편의
서악동 고분군 답사를 나섰다.
먼저 무열왕릉 앞에서 예를 행하고
여태 일견만 하고 지나쳤던
비석 돌을 꼼꼼히 살폈다.
돌 거북에서
삼국통일을 위해 비상하려는 듯 힘찬 기운과
신라왕족의 비밀을 간직한 신비로움이 느껴졌다.
코와 입에서는
뜨거운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정교한
영기문(靈氣紋)이 조각되었고
실제 거북이 기운차게 비상할 때
붉은 기운이 턱 아래 서리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철분이 함유된 자연석을 턱밑에 배치시켰다.
뒷발가락은 힘차게 땅을 딛는 표현을 하기 위해
네 발가락만을 조각했다.
비신은 없어지고
비신의 머릿돌(이수)만 남아 있는데
여섯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감싸고 있는 뛰어난 조각품이다.
정교하게 조각하기 위해 붉은 사암을 이용했다.
왜 하필 여섯 마리의 용인가?
학자들의 설이 많으나 내가 보기에는 신라가 6부족의
통합으로 아루어 진 나라라는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길 건너편에 있는 무열왕의 둘째아들
김인문의 묘비석도
정교하고 아름다웠으나
아버지의 그것과는 달리
기운이 빠져 맥없이 보인다.
아버지 대의 양식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었지만
통일 후 효소왕 때 조성된 것이어서인지 힘찬 기상이 없다.
문무왕 원년에 조성된
태종 무열왕비가 국보 25호로 지정된 이유를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당나라의 영향을 받아서 우리나라 최초 비석 양식의 전형이 되었으며
중국에 비해 크기나 화려함에 뒤지지만 동양최대의 아름답고 생동감 있는 거북의 조각이다.
17.경주 발전 프로젝트
경주에 새로운 바람이 분다.
신라 천년 역사 이후
최대의 변화라고 할 수 있는
방폐장 유치와
양성자 가속기 사업
KTX 역사 설립 등의 호재로 인해
경주의 부동산 가치 상승율이 경북도내 최고이다.
변화의 체감지수는 통계를 앞지른다.
세계적 역사유적 도시로의 도약을 위해
미리 인프라가 구축되면 큰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다.
경주에 살면서
나름대로 생각하는
경주의 발전 프로젝트를 구상해 보았다.
세계적인 관광 유적지이면서
손꼽히는 국내의 여행지인 경주는 누구나 좋아하고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도시이다.
그러나 경주는 오래 머무는 도시도 아니고
관광객이 와서 돈을 쓸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여행에는
볼 것
먹을 것
살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로, 볼 것에 대하여...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평생을 살아도
볼 것이 넘치는 경주이지만
일반적인 내국인이나 외국인들에게
석굴암 ,불국사, 대릉원 정도가 볼 것의 전부이다.
유명한 유적지는 복원하고
방치된 곳은 중수와 중건을 해야 한다.
학자들의 주장대로라면
80미터 높이의 황룡사 목탑을 복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1400여 전에 가능했던 일이
어째서 최첨단의 건축술과 과학이 발달한 현재에 힘든 일일까?
반월성과 월정교
교동 등은 복원이 된다고 하니 다행한 일이다.
남산 일대의 불교 유적지도
복원하면 좋을 것이다.
복원과 중수를 거치지 않는
문화재는 없다.
두 번째로,
먹을 것에 대해서이다.
맛의 기억은 여행지의 추억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경주를 대표하는 음식은 무엇인가?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발효음식과 떡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경주의 특색이 아니라
한국의 일반적인 음식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
'술과 떡 잔치'가 매년 봄 열리지만
전국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음식들이 많고
인근사람들의 동네잔치 수준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경순왕이 나라를 들어
고려로 귀부할 때
따르는 무리들이 수십만에 이르렀다는 기록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신라지배층의 음식이 개성으로 이동한 탓인지
'경상도 음식은 맛이 없다'는 통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퓨전 음식이나 웰빙식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 요즘,
신라천년의 맛과 조화를 이룬 세계적인 맛을 개발해야 한다.
경주를
먹을 것이 풍성한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
세 째로 살 것,
어느 관광지를 가면
들뜬 기분에서
기념품을 사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경주의 특산품이 몇 가지 있기는 하나
우리나라 관광지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는 비슷한 기념품들이 많다.
단순 조잡하며
전혀 특별하지 않는 것들이다.
경주적인 기념품을 만드는 것에 제약이 많다면
세계적 명품가게를 열어
시민이나 관광객에게
면세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한다면
경주는 계적인 쇼핑의 명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한다.
우리는 바야흐로 무한경쟁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
신라천년의 역사는
선조들이 변화의 물결을 잘 탔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주가 세계적 도시로 발전하는 만큼
그 혜택이 경주에 사는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로만 경주가 대단한 도시라고 떠들면서
개발이 억제되어 시민들의 재산권이나 생계에 불이익이 초래되면 옳지않다.
현재 지금 경주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삶이
지나간 역사의 어떤 중요함보다 더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과거는 오래된 미래이지만
현재는 더욱 더 가까운 미래이기 때문이다.
18.나정의 산뽕나무
담벼락을 뚫고 돋아난
뽕잎을 따서 깨끗이 씻어
잘게 썬 후
채반에 쪄 말리니
훌륭한 차가 되었다.
뽕나무는 당뇨와 성인병에 좋다고 해서
뽕잎을 먹고 사는 누에까지 먹는다고 한다.
신라의 건국 시조인 박혁거세의 전설이 어린
경주 나정에는
산뽕나무가 몇그 루 있는데
작년 오디열매가 익었을 때
딸과 둘이서 입술을 검붉게 물들이며
열매를 따 먹었다.
19.꽃들의 아우성
작은 그릇에 심은 꽃들이
어느 듯 자라서
그릇을 빽빽이 채웠다.
분무기로 뿌리는 물이 부족했던지
외출에서 돌아오면
항상 이끼가 바싹 말라 있곤 했다.
그래도 쉴 새 없이 꽃을 피우는 것이 어여뻐서
창가에 두고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편치 않다.
드디어 넓은 곳으로 옮겨 주기로 하고
절구 화분에는 풍로초를 심고
좀 더 큰 곳에 백정화를 옮겼다.
은방울꽃은 아예 땅에 부엽토를 듬뿍 넣어 심었다.
내 숨통이 트인다.
꽃들이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늘 심기 불편했었는데
이제 후우하고 한숨이 쉬어진다.
20.은방울꽃
은방울꽃 한 다발을
크리스탈 화병에 꽂아본다
거실은 금방 은은한 꽃향기로 가득해진다.
길고 넓다란 잎 새 사이사이로
방울같이 작고 앙징스러운
하얀 꽃들이 조로롱 달려있다.
해마다 5월이 오면
나만이 알고 있는 곳에 가서
은방울꽃을 보고 돌아오곤 하기를
10여년이 지났다.
친구들에게
비밀 장소를 가르쳐 주었더니
한 친구가
서슴없이 꺽 어서 나에게 건넨다.
순간 후회하는 마음이 생겼다.
역시 나 혼자 알고 있어야 할 것을
'산새들 몰래 몰래 꺽 어 갈래도
쪼로롱 소리 날까 그냥 둡니다.'
집안에 향기는 가득하지만
마음 한 구석은 어쩐지 찜찜하다.
21.부드럽고 약한 것이 진짜?
모란이 지고
서운한 마음도 잠깐
작약과 장미, 사랑초가 피었다.
내가 없는 사이
혼자서 꽃을 피운 것이다.
내일 폭우와 강풍이 온다는데
오늘 밤 미리 실컷 봐 두어야지
부드럽고 연약한 꽃잎은
내일이면 다 지고 말리라.
밤에 등불 켜 들고
꽃 앞에서 서성인다.
진짜 꽃잎이 부드럽고 약하듯이
나도 그러한 사람일까?
22.찔레꽃 피는 산 길
봄날이 다 가도록 기척도 없는 오솔길
호젓한 산길을 나 홀로 오고 갈적에
마른 검불 헝클어진 넝쿨 사이로
피는 찔레나무 싱그럽게 새싹을 피우던 곳
내 고향 뒷동산 그 산길이
그리워지네
그리워지네
초록 잎 하얀 꽃이 혼자 어여뻐서
홀로서 찾아가도 괜시리 설레던 산길
산꿩이 꿩꿩 우는 외진 길을
열고 아지랑이 꿈속에서 그 님이 손짓하던
발그레 웃음 짓는 우리 님
찾아 오려나
찾아 오려나
송문헌 시,윤교생 곡
통일암에서 남산 산책로로 난 샛길을 걷는다.
하루 종일 아무도 오지 않음직한 한적한 길이다.
짙은 녹음 아래
찔레꽃이 몰래 몰래 피었다.
어릴 때
기억을 떠올리며
꽃잎 한 장 따 먹고
찔레꽃차를 만들어 보려
꽃송이 몇 개 꺽어 온다.
23.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오월에
오월을 누가 계절의 여왕이라 했는가.
꽃들은 다투어 피고 지고
춥지도 덥지도 않는 날씨에
바람은 포근하고
햇살은 따사롭다.
오월의 캠퍼스는 눈부시다.
시원한 옷차림을 한
어여쁜 아이들의 활보, 재잘거림
교정은 젊음의 열기로 일렁인다.
오월의 첫날에는
강의 시작 전에
비지스의 노래를 들려준다.
24.풀잎의 반란
손바닥만한 잔디밭과 꽃밭의
잡초를 제거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돌아서면 다시 돋아나는
잡초의 생명력은 놀랍다.
그렇게 살고자하는 본능을
여지없이 발본색원하는 일은
나로서도 쉬운 일은 아니다.
늘 마음에 거리끼고
내게 그럴 자격이 있는가하고 반문하게 한다.
들며 나는 길에
맨손으로 풀을 뽑다보니
손 껍질이 벗겨진다.
의사는 내 손을 꼼꼼히 살피더니
"나훈아의 잡초가 생각납니다"하며 웃었다.
풀을 베고 뽑는 일은
그들의 피를 흘리게 하는 일인가 보다.
손에 생긴 피부병은
풀잎들의 반란인가?
25.송홧가루 황사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주의보가
끝났다는 방송이 있었다.
그러나 경주의 하늘은 아직도
누렇게 보인다.
이른바 송홧가루 황사인 셈이다.
하늘도 땅도 호수 물까지도
노란 송홧가루로 덮혔다.
이번 황사도 중국의 황사 못지않게
호흡기와 눈에 알러지를 일으킨다.
송홧가루 황사는 밉지 않다.
소나무의 생명력이기 때문이다.
50여년 후에 한반도안의 소나무는
5분의 1만 남게 될 것이라는 예고가 있었기 때문은 아니다.
다식과 차를 만들어 먹을 수 있기 때문도 아니다.
모든 생명의 역사를
보는 듯해서이다.
26.도경네 모란
지난해 심은 모란이
올해는 더 많은 꽃을 피웠다.
서툰 솜씨로 피운
12송이 모란을 자랑하려니
한 나무에서 200여송이 피운
도경네 모란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남산 통일전에서 칠불암으로 가는 길
동네 끝에 위치한 도경씨 집은
내가 남산에서 좋아하는 장소 중의 하나이다.
남산의 3면이 바라보이는 그 집 뜰에는
매화,불두화,능소화,산사,취꽃,수련,분홍 작약, 장미 등
많은 꽃들이 철철이 피어난다.
그 중에서 압권은 역시 모란이다.
엊그제는 도경네 모란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또 한 송이의 나의 모란 (김용호 작시, 김진균 곡)
모란꽃 피는 유월이 오면
또 한 송이의 꽃 나의 모란
추억은 아름다워
밉도록 아름다워
해 마다 해 마다 유월을 안고 피는 꽃
또 한 송이의
또 한 송이의 나의 모란
행여나 올까 창문을 열면
또 한 송이의 나의 모란
기다려 마음 졸여
애타게 마음 졸여
이 밤도 이 밤도
달빛을 안고 피는 꽃
또 한 송이의 나의 모란
기다려 마음 졸여
애타게 마음 졸여
27.꽃밭에 거름주기
꽃밭을 거루기 위해
농협에서 부엽토 몇 포대 사왔다.
이미 꽃을 피운 나무와
한창인 꽃나무
이제 싹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초목을 구별하여
거름의 양을 조절한다.
작년에 구덩이를 파고 심은
수련과 올해 절구에 심은 백련에게도
시비를 한다.
대밭에 있는 상사화는
작년에 처음 꽃대를 뽑아 올렸는데
올해는 대나무 새순이 기승하여
그늘 속에 묻힌 것을
죽순을 제거하고 나니
길다란 잎을 드러낸다.
상사화는 잎과 꽃이 같이
하지 않는 식물이다.
잎이 지고나면
긴 꽃대를 올린다.
그 깢 거름 주고
대나무 잘라 낸 후
몸살로 며칠 고생했다.
28.오래된 그릇에 야생화를 심다
오래된 밥사발에
야생화를 심어 본다.
백자사기에 격자무늬가 둘러지고 壽자나 福자가 그려진
당시에는 귀하지 않던 그릇이다.
필요한 사람 주려고
신문지에 둘둘 말아 놓았던 것인데
어쩌다가 꺼내어
한 그릇에는 설란을 심고
또 하나는 은방울꽃과 풍로초를 곁들인다
국그릇에는 백정화를 심어
푸른 이끼를 곱게 잘라 얹어 놓았다.
거의 100년이 된 골동품 그릇을
재활용하니
오래된 세월의 깊고 묵은 멋이
여간 아니다.
옛 것을 좋아하는 것은 고상한 아취이다
굳이 골동가게에서 사지 않아도
조부모님이나 부모님의 물건을 버리지 않는다면
30년만 지나면
귀한 대접을 하게 된다.
29.봄은 언제나 새 봄
꽃샘추위가 유난히 맹위를 떨쳤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새 봄이 왔다.
바람 불고
우뢰를 동반한 폭우와
4월인데도
때 아닌 우박이 쏟아지고
주먹만 한 눈송이가 날리기도 했다.
지난 해 에도
꽃 보러 다니느라 바빴지만
새봄이 오면
작년에 본 꽃은 이미 잊어버리고
다시 꽃구경 하느라
어김없이 분주해진다.
오늘의 꽃은 어제의 꽃이 아니라는
변명을 하며
일 년 365일 중
춥지도 덥지도 않고
비오고 바람 불지 않는 날이
며칠이나 될까.
인생도 그와 같아서
살다 보면
좋지 않은 일이
더 많은 것 같다.
꽃샘을 이겨내고 봄꽃들이 피어나듯
우리들도
모진 고통과 풍파를 이겨내고
꽃을 피우는 것이
참된 인생이 아닐 런지
***벚꽃 그림을 베다 신 종 범
달도 푸르게 익는 봄밤
한지 같은 고요가 소리 없이 툭 번지네
먹물이 선지에서 그러하듯이
점으로
점에서 선으로
나무는 온통 활달한 수묵,
만 호
십만 호
아아,
저 혼자 절경인
그림 속을
섬뜩섬뜩
나 혼자 베고 지나네
30.뭉개 구름 한 스푼
커피를 마시게 되면서
제대로 알고 싶어
핸드 드립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얼마 전에는
라떼와 카푸치노, 아일뤼시 커피 만드는 법을 배웠다.
유리로 된 커피 잔에 시럽을 넣고
에스프레소 커피를 추출하여 시럽위에 붓는다.
우유를 60도 정도로 데워서
거품을 내어 살그머니 커피위에 올리고
마지막으로 초콜릿이나 계피가루를 거품위에 살짝 뿌려 준다.
먼저 우유거품 한 입 떠서 먹으면
마치 하늘의 뭉개구름이 입 안으로 들어 와
내 몸속에 살살 퍼지는 것 같다.
뭉개구름 밑으로
사랑처럼 달콤하고
악마와도 같이 검고 쓰고
지옥같이 뜨거운
인간 세상의 맛이
나를 설레이게 한다.
31.겨울 이야기
계절이 주는
여러 가지의 선물을 마음껏
즐기면서 살아가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다.
봄의 신록과 용솟음치는 기운
여름의 무성함과 풍요로운 들 길
가을의 황금빛과 바람
속옷만 입은 겨울나무의 진솔함
바람, 물, 빛이
조화로운 이곳은
시간의 흐름이 멈춘 듯하다.
인간만이 시간을 만들어
나누고 쪼개어
의미를 부여한다.
새 천년의 시작
새해의 시작
그것과 무관해진 나의 시간은
천년의 시공을 넘나든다.
반월성, 계림
첨성대 길을 걸으면서
바람결에 들려오는
옛 이야기를 듣는다.
32.쟈메이카 블루 마운틴
커피를 알게 된지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커피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시고 싶어 하는
'블루 마운틴'이
드디어 나에게
첫 키스를 허락하였다.
그동안
여러 가지 종류를 음미해 가며
언젠가는 먹어 보리라는
기대를 가졌었다.
커피가 생산되는 각 국의 커피를 두루 맛본 후
쟈메이카 '블루 마운틴'을 마시려고
미뤄 두었던 대망의 순간을 맞이한 것이다.
'블루 마운틴'은
이제까지 먹어 본 커피 맛의
종합이면서도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용의 맛이다.
극도로 정제되어 있으며
술로 비유하자면
증류주의 최고봉인
위스키나 코냑의 경지이다.
경인 씨는
깊은 산 속 '풀잎에
맺힌 이슬' 같다고 했다.
그것은 쟈메이카의 해발 2천 미터 이상의
고산에서 재배되며
대량생산이 되지도 않으며
사람의 손으로 채취하여
빨갛게 잘 익은 열매만을 선별하여
오크통에 보관한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품질관리를 위해
엄청난 재정적 후원을 하고 있으며
생산량의 90%를 그들이
수매를 하고 나면 나머지가 전 세계에
공급이 된다고 하니
그 희소성을 짐작할 수 있다.
고지의 일교차가 크고
온갖 기후 조건을 견뎌 낸
'블루 마운틴'이
최상의 향과 맛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사람도
커피와 같이
여러 가지 풍파와 고통을 이겨 낸 후
중용의 도를 지니게 되면 좋을 것이다.
33.국화차
시골에서는 자연 상태의
식물 거의 모두가 차의 재료가 된다.
꽃, 뿌리, 잎, 열매
절 뒷마당에서
따 온 국화꽃을
정갈히 다듬어
살짝 쪄 채반에 말려서
가을 향기 가득한
국화차를 만든다.
친구들과의 모임에
말린 국화꽃으로
차를 우려
대접을 했더니
모두 좋아라 한다.
웰빙 바람을 타고
자연친화적으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34.바람의 나라
바람이 붑니다.
몇 번의 계절이 지나갔습니다.
계절이 바뀔 때 마다
이곳에는 늘
바람이 붑니다.
성터에서
절터에서
바람을 맞으며
서 있다가
돌아오곤 합니다.
옛날에, 옛날에
바람 많은 서라벌의
땅에서
살았던 사람들도
나처럼
바람 속에 서서
행복했을까를
생각합니다.
'바람의 나라'
경주
바람 불지 않는 날은
오히려
쓸쓸합니다.
35.로열 코펜하겐
가끔 가는 커피 집에서는
세계 각국의 명품 도자기 잔으로 서빙을 한다.
그 이름도 다 알지 못하는
명품 앤틱 잔으로 커피를 마시면
커피향기와 잔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분위기는 더욱 고조된다.
어제는 대망의 로열 코펜하겐으로
마타리 미디움을 마셨다.
중국에서 시작된 도자기
청화백자의 백미가
아이러니하게도
서구의 덴막에서 재현되었다.
full lace의 잔은 blue flower(청화)로
율리안네 여왕이 직접
디자인 했으며
100%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이름 하여
'여왕의 레이스'라 하리라.
아직 아무에게도
허락되지 않았던 처녀 잔이다.
잔 하나에 몇 십 만원 하는
명품 중의 명품을
최초로 즐긴 사람이
구입해야 하지 않을까?
36.자우산방
경주 내남에서 외동 쪽으로
좌회전해서 한참을 가면
길 왼쪽으로 폐교가 된
명계초등학교가 '자우산방'이다.
답사 길에 몇 번 지나치며
전통찻집이나
도자기 공방이려니 했는데
막상 들어 가보니
북쪽으로는 남산이 둘러져 있고
동남으로 트인
아늑하고 편안하게 자리 잡은
갤러리 겸
다도예절원이었다.
마침
어느 스님의 '瓦片刻篆'(와편각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스님의 인생역정만큼이나
篆體가
깊이 있고
뜻이 깊었다.
그곳의 주인은,
언니는 예절과 다도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시고
갤러리를 경영하는 동생은
건축학도라고 했는데
두 자매의 문화적 안목이
높아 보였다.
국향씨와 나는 추석을 며칠 앞둔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며
식사와 차를 즐겼다.
황금 들녁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
전혀 엉뚱한 곳에서 찾아 낸
통일 전 신라의 古塚(고총)
가을의 한가운데서
마음껏
이렇게 즐거움을 누린
적이 있었던가.
37.커피를 마신다
경주 동국대학교 앞
커피전문점
'슈만과 클라라'에서
커피를 마셨다.
지하의 음습함과 함께
풍기는 커피냄새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구운지 3일이면
최고의 맛을 낸다는
치즈 케익과 함께
'쿠바 크리스탈 마운틴'을 마셨다.
시고, 떫고, 쓰고 ,단
생전 처음 마셔 보는
맛이다.
전망 좋은 곳이 많은
드넓은 경주에서
하필 지하에서
비싸게 마신다고
투덜댔더니
딸이 선뜻
값을 지불했다.
그 이후, 학교의
공짜 자판기를 주로 애용하고
어쩌다 길모퉁이의
전문점 커피를 마시던 내가
어느새
그곳을 자주 찾게 되었다.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햇 커피콩을
금방 볶고 갈아서
100그램에 8천원하는 초보자용에서
8만원한다는 고급까지
다양한 원두를 고루 맛본 후
언젠가 대망의
'블루 마운틴'에 도전하려고 한다.
38.능소화, 담을 넘으면
6월의 장마가 시작되면 피기 시작하는 능소화는
8월이 되어도 계속 피고 진다.
농염해 보이는 능소화의 주홍빛 강렬한 색은
석달 이상을 시골의 흙 담장을
화려하게 휘감는다.
예전엔
사대부가의 담장에만 심을 수 있다고 하였는데
요즘은 어디서나 보기 흔한 꽃이 되었다.
오래 피는 그 끈질김만큼 삽목만 하여도
어떤 악조건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넝쿨을 뻗는다.
능소화를 보면 어쩐지 '카르멘'이 생각난다.
능소화, 담을 넘으면/ 목필균
주홍빛 네 순정은 거칠게 없구나
성급한 그리움에 담을 타다가
나뭇가지에 걸려도
허공이라도 잡고 올라서서
천지에 염문을 뿌려 대는 너
무성한 여름 뜨겁게 묶어내며
영그러진 사랑 하나 까만 씨알로 품는
능소화 담을 타고 넘으면
7월은 주홍빛으로 익어간다
39.도라지꽃은 눈부시다
책상에 앉아
창문을 열면
뜰에 도라지꽃이 가득하다.
6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하더니
장마와 태풍을 맞고도
꿋꿋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외출에서 돌아와
대문을 열면
먼저 도라지꽃에 눈이 간다.
내가 없는 동안 얼마나 피었을까
비바람에 쓰러지지는 않았을까.
심은 첫해에는 성글게 피어
엉성하더니
이제 보기 좋게 어우러져
한 무리의 꽃동산을 이룬다.
꽃 앞에서
가만히 노래를 불러본다.
*도라지 꽃
박판길 작곡, 유경환 작시
산속에 핀 도라지꽃 하늘빛이 물들었네
옥색치마 여민자락 기다림에 젖어있네
비취이슬 눈 설미에 고운햇살 입 맞추네
꽃 입술에 물든 하늘 산바람이 비켜가네
도라지꽃 봉오리에 한줌하늘 담겨있네
눈빛 맑은 산짐승만 목축이고 지나갔네
저녁노을 지기 전에 꽃봉오리 오므리네
꽃송이에 담긴 하늘 산그늘이 젖어있네
40.꽃 욕심
상치와 쑥갓을 뽑아 낸 자리에
코스모스와 접시꽃, 족두리 꽃, 목화꽃씨를 넣었다.
뒤뜰에는 분꽃 씨를 묻었는데
햇볕이 잘 들지 않아서 걱정이다.
창문을 열면
작약꽃 조팝꽃, 자란,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노란색과 보라색의 야생화
매경의 뜰에 식구들이 늘어날 때마다
마음이 설레어
하루에도 몇 번을 나가 보곤 한다.
누군가 올것 같아
창문을 열면
종일 꾀꼬리 울고
나비만 노니는
적막한 봄 날
41.봄에게
그대는 어이
여릿하고
수줍은 여인과도 같이
나의 속을 이리도
태우는가
오라하면 오지 않고
가라 하기도 전에
슬며시 가버리는
속절없는
그대
봄
42.꽃밭에서
비 내리는 날
남쪽으로 난
마루에 앉아
꽃을 바라본다.
지난해의
비바람 눈보라에도
계절을 어기지 않고
어김없이 찾아 온
나의 봄
봄보다 더 아름다운
그대들이여!
춥지도
바람 불지도,
눈이 오지 않는 날은
그 몇 날이던가
참고
견디며
짧디 짧은
생애 최고의 날을
기다렸구나
나보다 더
귀한 그대들을
바라보노라
43.매화차
올해의 첫 매화꽃
향기를 맡는다.
그윽한
초봄의 향기가
차가운 바람결을 타고
코끝을 맴 돈다
3월의 눈 속을 뚫고 나온 꽃잎을
몇 장 곱게 따서
차를 만든다
찻잔에 차를 따르니
남산의 개울물
소리가 난다.
연 노랑색 찻물에
매화꽃 한 송이 띄우고
고요히 앉아
차를 마신다.
44.이별의 노래 위성곡
送元二使安西'.
渭城曲 위성곡
渭城朝雨浥輕塵 客舍靑靑柳色新 위성조우읍경진하니 객사청청유색신을
勸君更盡一盃酒 西出陽關無故人 권군갱진일배주하라 서출양관무고인을
위성의 아침비가 가벼운 먼지를 적시니,
여관의 푸르고 푸른 버드나무 색이 새로워라.
그대에게 권하노니 이 한잔 술 다시 비우게나,
서쪽 양관을 떠나면 그대 다시 만나지 못하리.
Folk-song-styled-verse
Wang Wei
A SONG AT WEICHENG
A morning-rain has settled the dust in Weicheng;
Willows are green again in the tavern dooryard....
Wait till we empty one more cup --
West of Yang Gate there'll be no old friends.
이 글은 당 현종 당시의 대시인 왕유가 친우 원이를 위성에서 마지막 작별하며 쓴 시이다.
당나라 때의 송별시 중 가장 정이 깊고 뜻이 담긴 시로서 이후 선비들이 친우를 송별할 때 부르는 送別歌가 되었다고 한다.
위성은 현재 중국 섬서성 서안시 서북이고
양관은 감숙성 돈황현 서남에 있다.
나는 이 시를 미국친구와 기약 없는 작별을 하면서 둘이
마지막으로 차를 마신 경주의 봉황대 앞 '카페 테라스'에서 주고받았다.
45.바람이 불어오는 곳...自作 詩
바람은
별이 뜨는 곳에서
흙도 털지 않고
일어나
해 뜨는 동쪽으로
산을 하나 넘으며
부처님 얼굴 한번
쓰다듬고
소나무가지 살짝 흔들어 보고
뜬 바위 사이로도 지나가지
작은
나의 초려에
불어 와서는
도라지꽃
원추리 꽃
가장 깊숙한 곳
애무하고
별이 지는 곳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리지.
Where the wind blows from by Chang Hyanggiu
The wind,
Arising from the places where stars appear without shaking dirt off,
Crossing a mountain over toward the sun-arising east,
Stroking the benevolent Buddha's face,
Shaking pine branches lightly,
Finally passes between steep rocks.
The wind,
Blowing to my small cottage,
Again stroking the deepest parts of bell flowers and day lilies,
Goes away toward the places where stars are setting without looking back.
46.춘 강 곡
알고 지내던 스님께서
화두를 하나 내리셨는데
'長江不知春'
'긴 강은 봄을 알지 못 한다' 는 뜻이다.
중국의 양쯔강을 장강이라 하는데
장강이 봄을 알지 못한다?
스님은 가신지
오래되었는데
그 公案을 풀지 못한 채
십 수 년의 시간이 흘렀다.
날이 풀리면
서천 강가에 서서
나도 강물과 함께
흐르고 흘러
저절로 깊어지는
강물처럼
긴 강이 봄을 알지 못하는
사연을
알고 돌아오리니.
春 江 曲
唐 郭 元 振
江 水 春 沈 沈 , 上 有 雙 竹 林 。
강수춘침침하니, 상유쌍죽림을.
竹 葉 壞 水 色 , 郞 亦 壞 人 心。
죽엽괴수색이요, 낭역괴인심을.
춘강곡 당. 곽원진
봄날의 강물은 깊고도 깊고,
양쪽 강 언덕엔 대나무 숲을 이루네.
댓잎은 물빛을 무너뜨리고,
그대는 내 마음을 무너지게 한다오.
To the tune of spring river by Kuo Yuan Chen
River water becomes deeper on a spring day; (or is about to flood on a spring day;
Bamboo groves are afresh on both shores.
As the leaves break down the color of river water;
You break my heart likewise.
47.시인들에게
시인들은 참 위대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꿈꾸는 대로 세상은 변해 온 것이라고,
가장 앞서가는 사람이 시인이라고 믿는다.
인간은 시인이 꿈꾸는 세상을 향해 미래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아닐런지.
그들이 달을 노래함으로써
인간은 달에 발자욱을 남겼고
그들이 날고자 해서
우리도 하늘을 날게 되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여건들이 평안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신적, 물질적으로 궁핍했기에
늘 이상향을 꿈꾸고 노래했으므로
우리가 이만큼의 자유와 평등을 누리고 있으며,
그들이 누설한 천기로 인해
우주와 생명의 비밀을 하나씩 알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시인들이여!
평안하지 않음을 노래하고
궁해서 울어라.
천기누설죄에 걸려라.
그리고 맘껏 꿈꾸고 춤추고 노래하라.
우리, 그대들의 뒤를 따르리니.
48.저무는 푸른 산 그대 보내고
한자는 가장 축약된 문자이다.
대학시절 집에서 보낸 한통의 전보에 <화급>이라는 단 두 글자를 보고
불문곡직 짐을 싸서 내려가니 과연 화급한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는 한자로 된 문장을 더욱 축약된 것이다.
컴퓨터 축약어가 많이 있지만 더 간결하고 함축적이다.
한시는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그림이다.
시를 읽으면 한 폭의 그림을 그려 볼 수 있다.
저무는 푸른 산 그대 보내고(送人蒼山暮,송인창산모)
돌아 와 흰 구름 속에 누웠습니다(歸來白雲臥,귀래백운와)
벽에는 울리는 거문고 서 있고(古壁有鳴琴,고벽유명금)
솔바람이 때때로 혼자 지나갑니다(松風時自過,송풍시자과)
<서영수각의 송인>
Lovelorn farewell
Grieving after farewell to my love and lying on a mattress,
There is the path he trod over blue hills under white clouds.
The tune of a lute played together seems still ringing,
A wind through pines desolately passes by me in the quiet eventide.
임을 보내고 돌아와 너무 슬퍼져서
누워버린 여인의 모습
푸른 산
흰 구름
그와 함께 하던 거문고는 아직도 울리는 듯한데
무심한 솔바람도 이별의 아픔을 아는 듯
쓸쓸히 지나는 적막한 저물녁
눈물이 난다.
옛 시를 읽으면 눈물이 난다.
49.살아봐야 3만 일
하루하루가 쏜 화살과 같이 지나갑니다.
일 년 헐어 놓으면 쓸 것이 없다는 군요.
내일이 오면 또 내일의 태양은 떠오르겠지만
어제도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같이 산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사람의 인생이 고작 3만일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십년이면 3650일 100년이면 36500일이니까 백년을 사는 사람은 아직은 드물지만
여러분의 시대는 분명 100년 이상을 살 수 있을 것이기에 평균 3만일을 산다고 가정하면
될 것입니다. 부모님의 보살핌 아래 10대와 20대를 보내고 30대가 되면 여러분은 결혼도
하고 경제활동을 할 것입니다.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기간은 길어야 30년 정도입니다.
30년 벌어서 자식을 교육시켜서 결혼 시키고 남은 것으로 자신의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데
남은 30년을 살아가야 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물론 자식이 여러분의 여생을 책임질 수도 있고 국가가 사회보장혜택을 주어서 노후를
보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바램 일 뿐 실제로 부모를 봉양할 수 있는
자식은 많지 않고 국가도 국민 모두를 책임지지 못합니다.
결국 나 자신만이 나를 책임질 수 있을 뿐입니다.
이 쯤 되면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의도를 눈치 챘을 것입니다.
청춘을 낭비하지 말자는 뜻입니다.
개미와 배장이의 우화를 생각해 봅시다.
젊은 날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여 일생의 마무리를 잘 하도록 해야겠지요.
이 글은 나의 반성문이기도 합니다.
*2006년 스승의 날에 보내는 글
50.Dear Professor and Mrs. Dierker:
I believe that you must have returned home by this time following your trip to
Korea called the Country of Morning Calm and so I decided to write to both of you while enjoying your restful period at home.
Your visit to my house was not expected, but nonetheless very special and leaving us a lasting memory since we were impressed with your dignified and intellectual attitudes.
Do you still remember the conversation you shared with us as well as the Korean green teas and rice cakes?
I hope you remember the beautiful lotus flowers in the Su-Chool pond for a long time since it must be a pleasant memory to you.
The title of our dwelling is the Fragrant Cottage, which implies the final destination of our journey, where we want to conduct our serene and happy life for a long time.
When the time comes, I would like to visit Austria, the Country of Music, where I wish to have a chance to dance to the tune of some of the Vienna Waltz, especially to that of the Blue Danube!
I hope you both remain to be healthy and happy.
With best wishes,
Hyang Gyu from Kyongju
52.Dear Professor Chang,
Thank you so much for your email. When we came back from Korea we did
not stay
long in Vienna. After six days we went to the US to see our son and his
wife Joonhee.
They just bought a town house in Houston. From Houston we went to
Boston, where we
rented a car. We spent two weeks visiting New England. It was very
pleasant, although
the weather was quite hot.
Now we are again back to Vienna and have some rest. We look at the
pictures from Korea
and remember the nice days we spent in Kyongju.
It was especially nice of you to invite us to your beautiful house and
offer us green tea and
rice cakes. Thank you again and, please, say hallo to your girlfriends.
When you come to Vienna, please, let us know. It would be nice to meet
here.
We wish you all the best,
Egbert and Hildegard Dierker
친애하는 장 교수님:
당신의 이메일에 대단히 감사합니다. 우리가 한국으로부터 돌아와서 비엔나에 오래 머물지 않았지요. 6일 후 우리는 우리 아들과 그의 아내 준희를 보려고 미국에 갔어요.
그들은 방금 휴스턴에서 타운 하우스를 샀지요. 휴스턴에서 우리는 보스턴으로 갔고, 거기서 차를 렌트했지요. 우리는 뉴잉글랜드 방문하는데 2주를 보냈지요. 비록 날씨가 상당히 더웠어도 대단히 유쾌하였어요.
지금 우리는 다시 비엔나에 돌아와서 휴식을 취하고 있어요. 우리는 한국으로부터 온 사진을 보며 우리가 경주에서 보냈던 좋은 날들을 기억하고 있지요.
당신은 우리를 당신의 아름다운 집에 초청하여 우리에게 녹차와 떡을 제공하는 등 특별히 잘해주었어요.
거듭 감사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친구 분들에게 우리의 인사(Hello)를 전해주세요.
당신이 비엔나에 오시면, 아무쪼록 우리에게 알려주세요. 이곳에서 만나면 즐겁겠습니다.
우리는 당신에게 가장 좋은 소망을 바랍니다.
에그버트와 힐테가드 디어커 드림
53.Dear Professor Chang:
Thank you very much for your email and the nice picture of the autumn
sky in Kyongju.
It is true that our son is married to a Korean woman. They married in
Seoul on July 10, just before we went to Kyongju. We took part in the
wedding ceremony and this was the reason why we made the trip to Korea.
Now they live in Houston in an area which cannot be flooded. We are
very
thankful that they were not harmed by the two hurricanes Katerina and
Rita.
But also Houston is hurricane country. Two years ago we visited New
Orleans and saw all the beautiful houses in the French Quater, which
has
been hit so badly. We feel so sorry.
Also here the semester started and we are back to teaching again.
Already the winter is approaching. We hope to visit Martin and Joonhee
around Christmas time.
We wish you all the best.
Kind regards from
Egbert and Hildegard Dierker
54.Dear Professor Dierkers:
Thank you for your kind and warm letter.
I am glad to know that you had a pleasant trip to the United States following your Korean visit. I wonder if your son living in Houston suffered any damages from the terrible hurricane, Katrina, by any chance. I am worried after having heard of the devastation from Katrina from the news. I also wonder if your daughter-in-law is a Korean nationality since her name, Joonhee, is a common Korean female name. If that is true, did it motivate both of you to visit Korea to know more about the native Country of your daughter-in-law?
This is only my unfounded guess.
We have pleasant autumn days in Korea now, with clear sky and nice weather.
Here in Daegu University, the campus is filled with youthful romance and passion of our young students, whom I love so much.
I believe that both of you share the same love to your students.
I hope that you have a great fall.
Best regards,
에그버트 힐데가트 디어커 교수님 부부께...
보내주신 친절하고도 따뜻한 편지 감사합니다.
한국여행을 마치고 즐거운 미국여행을 하셨다니 저도 기쁩니다.
아드님이 휴스턴에 있다면 이번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피해는 없는지요?
혹시나 해서 염려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분의 며느리는 '준희'라고 하셨는데 혹시 한국인이 아닌가 궁금합니다.
그래서 한국여행을 하러 오신건지요?
요즘 한국은 아름다운 가을날입니다.
한국의 가을은 특히 맑고, 높고, 상쾌하답니다.
그리고 대구대학교는 2학기 개강을 해서 캠퍼스가 젊음의 낭만과 열기로
가득합니다. 저는 그들을 무척 사랑합니다.
두 분도 역시 그러시리라 생각합니다.
언제나 아름다운 나날 되시기를 바라며
경주의 Fragrant Cottage에서
장 향 규 드림
Hyanggyu from fragrant cottage in Kyongju
55.Dear Professor Chang:
Thank you very much for your email and the nice picture of the autumn
sky in Kyongju.
It is true that our son is married to a Korean woman. They married in
Seoul on July 10, just before we went to Kyongju. We took part in the
wedding ceremony and this was the reason why we made the trip to Korea.
Now they live in Houston in an area which cannot be flooded. We are
very
thankful that they were not harmed by the two hurricanes Katerina and
Rita.
But also Houston is hurricane country. Two years ago we visited New
Orleans and saw all the beautiful houses in the French Quater, which
has
been hit so badly. We feel so sorry.
Also here the semester started and we are back to teaching again.
Already the winter is approaching. We hope to visit Martin and Joonhee
around Christmas time.
We wish you all the best.
Kind regards from
Egbert and Hildegard Dierker
*비엔나 대학 경제학부 디어커 교수 내외와 왕래한 서신의 일부
56.향기로운 작은 나의 오두막
저의 초라한 여름 집이 '堂號' 를 받았습니다.
어제 다녀간 외국 손님이 'Fragrant cottage' 즉 '향기로운 소 별장'이라 명명 하시고
또 부연해서 'The final Destination of our journey' 즉 '우리들 여정의 최종 귀착지'라고
설명하셨습니다.(자기네들 여정을 말하겠지요)
이로써 저의 집은 국제무대에 데뷰를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언젠가 돌이나 나무에 새겨 문에 걸어 둘 생각입니다.
향기로운 풀 집 : 우리 여정의 종착역
香草廬 : 旅程終着地
Fragrant Cottage : The final destination of our journey
국제화 시대에 걸 맞는 이름이죠?
장마의 끝
며칠을 물에 젖어 고개를 숙이고 있던 도라지꽃이 오늘은 물기를 털고 고개를 듭니다.
하얀 나비 한 쌍이 비가 그치기 무섭게 어디선가 날아 와서 꿀을 탐합니다.
모든 것이 정지된 것 같은 한 낮의 뜰에서 나비와 벌만이 시간이 정지되지 않았다고 일러 줍니다.
책상에 앉아 마당에 있는 꽃들을 좀 더 많이 보려고 창을 열어젖힙니다.
이 한가하고
고요한 나의 뜰에서 오래 오래 머물고 싶습니다.
57.매경의 뜨락에서
梅坰宅은 천년 고도 경주 남산동에 위치하여 있으며,
통일전 아래에 있는 서출지를 지나 동네 차도로 조금
남행하면 길이 두 갈래로 나누어지는데 우측은 재실못
방향으로 갈라지고, 原來 道路를 따라 가면 곧 三層石塔과
그 뒤에 佛塔寺가 나온다. 삼층 석탑에서 동네 보행로로
몇 발짝 남행하다가 좌회전 그리고 우회전하자마자 남산동
梅坰宅이 나온다. 꽃과 나무, 새와 나비를 사랑하는
佳人의 집답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집, 담장 가운데의
문을 통해 들어가면, 마주 보이는 비교적 현대식 일층
집이 아담하고 정답게 서 있고, 그 우측에는 오래전에
지었던 옛날식 별채가 있다.
문에서 본채로 들어가자면 잔디로 덮인 마당을 걸어야
하는데 이는 Kentucky Blue Grass가 아닌 한국 토종의
잔디인 듯하다. 왼쪽으로 온갖 꽃이 자라고 있는 밭이
있으니, 매경의 정성이 어린 花壇이다. 전문인의 손길로
다듬은 정교함이 아니고, 밭일에 경험이 부족한 매경이
정성껏 가꾼 소박하고 진실하게 보이는 꽃밭이다. 꽃밭과
담장 사이에 몇몇 그루의 꽃피는 나무가 자라고 있으니,
모두 중간 정도의 키로서 집 건물, 밭, 담장과 조화를 잘
이룬다.
이 오래된 별채 툇마루에 앉아 남쪽을 향하여 꽃밭을
바라보니, 사방이 적막한 한 여름날 이른 오후에 시간이
멈춘 듯 하지만 오로지 새 소리와 벌, 나비의 나는
모습만이 완전한 정지가 아님을 알려준다. 매경이 열심히
알려주는 꽃 이름, 꽃나무 이름을 다 외울 수 없어 箇箇히
그 이름 나열치 않겠다. 그저 시골 색시같이 순박한 화단,
정다운 나무, 아담한 집, 그리고 고요한 정취, 이 모두
매경의 향기가 배여 있는 듯하다.
가인 매경은 이 아름답고 순수하고 또 소박한 댁을
오래오래 즐기기를 기원하며 총총히 발걸음을 떼었다.
58.봄날의 규중에서
春閨
閨中小婦不知愁 규중소부부지수하니
春日凝粧上翠樓 춘일응장상취루를
忽見陌頭楊柳色 홀견맥두양류색하니
悔敎夫胥覓封候 회교부서멱봉후를
봄날 규중에서
규중의 젊은 여인이 근심을 몰랐더니,
봄날 곱게 단장하고 푸른 누각으로 올라 갔도다.
문득 길머리에 버드나무 색이 새로워 졌음을 보니,
외지에 공명을 찾으라고 낭군을 가르쳤음을 후회하네.
Wang Changling
IN HER QUIET WINDOW
Too young to have learned what sorrow means,
Attired for spring, she climbs to her high chamber....
The new green of the street-willows is wounding her heart --
Just for a title she sent him to war.
59.초여름 날의 우수
장마가 시작된 오늘, 오 마던 비는 오지 않고 바람이 심하게 붑니다.
원래 바람이 심한 고장이지만 한여름의 바람이 음력 2월의 바람 같습니다.
잠 못 이루는 밤에 후두둑 후두둑 뭔가 떨어지는 소리에 놀라 뜰을 내다보니
막 익기 시작한 살구가 강풍에 속절없이 떨어집니다.
먹기가 차마 아까워서 눈으로만 먹으려고 했는데,
친구에게 마당의 원추리 꽃과 댓잎, 그리고 도라지꽃을 곁들여
참외, 산딸기. 토마토, 살구 등의 과일 모듬을 대접했더니 감탄을 연발했습니다.
‘이 집엔 모두가 있는 그대로를 쓰는 구나’ 했지요.
친구는 마당에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꽃과 과일들의 사진을 찍고 돌아갔습니다.
해마다 도라지꽃은 피고
살구는 익어 가겠지만
만 리 밖에 있는 친구는 언제나 다시 올까요?
이제 누구와 더불어 오늘의 이야기를 할까요?
60.언제 다시 파산의 밤비를 이야기 하리
李商隱 夜雨寄北
君問歸期未有期 巴山夜雨漲秋池
군문귀기미유기 파산야우창추지
何當共剪西窗燭 卻話巴山夜雨時
하당공전서창촉 각화파산야우시
밤비를 북쪽 친우에게 부치니.
그대가 묻기를 언제 오는가 하니 아직은 아니라고,
파산의 밤비가 가을 못 물 넘도다.
언제나 함께 서창의 촛불 돋우며
파산의 밤비오던 때를 이야기 하리오
You ask when I'm coming, I do not know
It's autumn and the night rain has drenched the pool.
When can we trim wicks again by the window
When can we talk all night while the mountain rains?
오늘 친구를 이별하고 돌아오는 길에 울고 또 울었습니다.
차를 되돌려 같이 갔던 장소를 다시 한 번 찾아 가서 눈물짓다가 돌아 왔지요.
미국서 살다가 돌아 와 10년간 한국에서 살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는 친구는
나와는 취향, 취미가 같고 어떤 이야기든지 잘 통했는데 이제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나를 만나러 이곳까지 온 것이지요.
수많았던 얘기들
함께 갔던 장소
함께 먹은 음식
함께 듣던 음악
오랫동안 잊히지 않고 나를 추억에 젖게 할 것입니다.
한국에 있는 부동산을 처분하기 위해 3년 후 쯤에야 다시 올 것이라며
친구의 눈도 물기로 젖어 있었습니다.
장마가 시작되는 오늘,
갑작스레 쏟아지던 소나기에 당황했던 일을 기억하며 오늘의 일을
같이 얘기할 날이 올 런지요.
61.동화사 스님을 만나러 가며
桐寺尋僧 徐居正
遠上招提石從層 층층이 돌길 더듬어 절 찾아 가는 길은
靑전白襪又烏藤 푸른 행전 흰 버선에 검은 등 막대 짚고
此時有興無人識 아무도 내 흥을 모른들 어떠리
興在靑山不在僧 흥은 청산에 있지 중에 있는 것이 아니네
Seeking a monk in the Temple Paulownia
Far away and loftily situated is the Temple with its path leading
to the entrance by stone staircases:
I wear blue puttees and white socks while carrying a black wisteria cane.
At this moment I am overcome with such a great joy that anyone
can hardly imagine:
Since it resides with blue mountains, not with a monk!
대구 동화사 가는 옛 길로 조금 올라 가다보면 길 왼편에
이 지방 출신의 문인 서거정의 시비가 있다.
한적한 오솔길이라
거의 모두가 무심히 지나친다.
오래 전에 일부러
옛 길을 택해 천천히 올라 가다가
눈에 띄어 옮겨본다.
62.청산은 나를 보고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진흙에 더렵혀지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Blue hills wave at me by saying to live silently;
Blue sky likewise tells me to live without a flaw.
Getting rid of greed and anger as well;
Like running waters and winds I should live and die.
Like a lion not frightened by a roaring sound;
Like a wind not trapped by a net.
Like a lotus flower not soiled by muds;
Walk alone like a horn of a rhinoceros.
懶翁스님
靑山見我無語居
蒼空視我無垢生
貪慾離脫怒亦棄
水如風居歸天命 如水如風歸天命)
제 3부
1.아름다운 경주 사람들
경주에 살면서
만난 사람들 중에
가장 경주적인 미인인 국향 씨
화가의 아내
도공의 아내
불탑사의 스님
그밖에도 몇몇 사람들이 있지만,
이 곳 사람들의 모습은 다른 지방 사람들과
다른 독특한 면이 있다.
석굴암 부처, 관음보살상
불국사부처님
불곡 감실 부처의 모습을 닮아있는 것일까?
신라의 부처들은 이상적인 신라인들의 모습을 새긴 것이라고 생각된다.
시장을 가거나
은행, 병원에 가면
경주사람들은 단번에 내가 경주사람이 아닌 것을 알아차린다.
낯가림이 있는 이 도시에서는
도움 되는 일은 아니다.
경주에서 만난 사람들은
왜 거의가 부처의 모습을 하고 있는가?
2.국향
남산자락에 자리 잡고 살면서
자연과 같이
사람과 함께
꿈꾸는 듯 시간이 흘러갔다.
경주의
꽃과 새와
바람, 물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지만
그 중 최고는
역시 경주사람과의 만남이다.
중국여행길에서 알게 된 국향씨는
석굴암 11면 관음보살을 닮았다고
혼자 생각하며 웃는다.
그녀와 일주일에 한두 번 만나
들길을 달리며
꽃 보러
유적지 보러
맛있는 것 먹으러 다닌다.
아주, 아주 가끔은
술 먹고 노래도 부른다.
일이 있어 바쁜 그녀를
내가 주로 꼬드기는 편이라
미안한 적도 많았지만
어쩌랴!
내겐 그녀밖에 없는 것을...!!!!!
3.도경
남산 칠불암 가는 길
동네 끝자락에
도경 씨가 산다
척박한 객지에서
터전을 잡은 그녀의 삶은
고단하지만
두 아이를 공부시키려는 의지가 결연한
강한 어머니의 상이다.
농사짓는 틈틈이
꽃밭 가구는 취미가 있어
그녀의 뜰은 언제나 꽃향기 가득하다.
오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도경 네 꽃을 보며 행복하리라.
4.모밀꽃 닮은 여인
어느 여인의 슬픈 넋이 실린 양
햇쪽이 웃고 쓸쓸한 모밀꽃
모밀꽃은 하이얀 꽃
그 여인의 마음인 양 깨끗이 피는 꽃
모밀꽃은 가난한 꽃
그 여인의 마음인 양 외로이 피는 꽃
해마다 가을이 와 하이얀이 피어나도
그 마음 달랠 길 없어 햇쪽이 웃고 시드는 꽃
세모진 주머니를 지어 까만 주머니 가득
하이얀 비밀을 담어 놓고
아모 말없이 아모 말없이 시드는 꽃
정호승 시, 정태준 곡
충주 출신의 월북시인으로 알려진 정호승의 대표 시이다.
장남인 정태준이 아버지의 시에 곡을 붙였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노래가 되었다.
이 시는 두 편의 모밀꽃 시 중
첫 번째 시이다.
작년에 뒷밭에
메밀 씨앗을 넣었지만
햇볕이 잘 들지 않아
적당치 않았다.
나는 거의 매일 모밀로 된 음식을 먹는다.
강릉 출신의 식당 주인이 직접 뽑는 국수를 2년을 먹으러 다녔다.
옆집에는
모밀꽃을 닮은 여인이 산다.
어느 날 담을 넘어 온 그녀는
정말 모밀꽃 같다.
5.사브리나
사브리나에서
커피와 케익을 먹는다.
프랑스 정통 요리 전문학교
'꼬르동 블뢰'에서 수학한 젊은 여성이
좀처럼 먹기 힘든
맛난 케익을 굽는다.
경주 시청을 지나 직진하면
청동제 12지신 상과 토용이 출토되어 유명해진
용강동 고분이 마주 보이는 곳에
사브리나가 자리 잡았다.
파리의 한 복판에 와 있는 것 같은
가게의 외양과
넓지 않은 실내의 인테리어가 아늑하다.
고분을 마주하고 앞으로 트인
한가롭고 평화로운 정경을 바라보며
치즈 케익이나 티라미수.쇼콜라를
한 입 떠먹는 멋은
머지않아 경주의 명품이 되리라 믿는다.
고요하고 겸손한 주인은
나를 열손가락 안에 꼽히는
손님이라고 한다.
그녀는 알고 있을까?
나 혼자 부르는 이름이
'사브리나'임을.
6.화가 최용대
우연히 들린 골동가게에서
그의 그림을 보고
지인을 통해
전갈을 넣었더니
같이 식사 할 기회가 생겼다.
서 남산자락의
'연화'에서
저녁노을을 보며 저녁을 먹고
용장에 있는 그의 집으로 향했다.
아름다운 화가의 아내가
손님을 맞는다.
크지는 않지만
잔디가 깔린
마당에는 오래된 석물들이 가득하고
거실 앞 연지에는
수련이 만발하였다.
12년 전에 지었다는 집의 외양은
마치 갤러리와 같다.
2층 화실은
경주의 풍광을 그린 작품들로 가득하다.
그 중에서 눈에 띄는 작품은
반월성 뒷길 남천의 한 장소를 잡아
계절 별로 여러 작품을 만든 것과
물천리의 도라지꽃밭 그림이었다.
그는
신라 와당을 수집하고 있었는데
한 눈에 보아도
뛰어난 수집가이며 전문가임을 알 수 있었다.
경주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면서
경주와 사랑에 빠진 이들과 만나는 것은
나의 행운이다.
화가 최용대
그는 조용하고 겸손하며
소박하게
자기의 길을 가며
경지에 이른 경주의 인물이다.
7.무량심 김계연
선도산 가는 길
무열왕릉 옆 작은 찻집
禪茶園(선다원)
연지 두 개
정갈하고 아담한 마당에
갖가지의 꽃이 피었다.
그대는 사소인가?
벽을 차고 나온 연화 보살인가?
고요한 아미
조요(窕窈)한 자태
무량심 김계연
속정을 주지 않기에
의아하더니
몇 년 만에 그 비밀을 풀었다.
지병으로
하루하루를 살얼음 밟듯
살아 온 그녀에게
우정은 사치였다
자신이 잘못될 경우
남겨진 사람의 아픔을 헤아려
가까이 올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가 손수 심어 준
꽃들은 아직도
내 뜰에 만발한데
나는 아직 그녀의 생사도
알지 못한다.
8.양지면옥 유미
경주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이곳에서 둥지를 틀고 사는 사람들을 만나면
별스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처럼 경주를 얼마나 좋아하기에
살게 되었나 해서이다.
강릉 선교장 안주인의 제자인 그녀는
울산 총각과 첫사랑을 하고
결혼에까지 이르렀다.
남매를 낳아 기르며
원앙과도 같이 남편과 늘
머리를 맞대고 소곤거린다.
메밀음식 전문점을 하는 부부는
모든 면에서 모범적이며 건실하다.
나이는 한참 아래이지만
나보다 더 성숙하고
신중하고 사려 깊은 유미를
좋아한다.
또 한 가지
사랑을 키우고 가꾸는 마음이
어여쁜 사람이다.
9.계산 임 운 식 선생
계산 임 운 식 선생과의 인연은
오래 전에 시작되었으나
잘 알지 못하다가
그분의 본가 바로 뒷집에 살게 되면서
가까이서 뵈올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1926년생이시며 풍천을 본관으로 하신다.
경주시 공무원, 김천시 부시장 등의 공직생활을 거쳐
여러 사회활동을 하시며
경주사회에 공헌한 바가 크신 분이다.
두 번의 대통령상과
경주시 문화상, 녹조근정훈장도 수상하셨다.
경주향교 전교와
경북 유도회 부회장을 거쳐
현재는 담수회 회장직을 맡고 계신다.
선생의 팔순 잔치에서
한시 창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백제문화제에서 국창부 1등을 하실 정도의 절창이셨다.
가정생활에서는 부부가 화목하게 해로하시고
4남매를 당신처럼 사회에 공헌하는 인물로 만드셨으니
次子는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 밖에도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일을 하셨으나
무엇보다 기록될 만한 것은
역대 경주 부윤의 기록인
'경주 선생안'을 발굴하신 일이다.
하마터면 쓰레기로 버려질 뻔한
소중한 기록유산을 후세에 물려줄 수 있도록 하셨다.
계산 임 운 식 선생의
언행과 업적은
경주사회에서 길이 칭송될 것이다.
오늘 문득 선생의
단아하고
품위 있는 모습이 그립다.
선생의 시 한 수를 올린다.
桂林消暑 계림소서 계림에서 더위를 삭이며
始林消暑綠陰浮(시림소서녹음부) 시림에서 피서하니 녹음이 떠오르네
宿契相尋信有由(숙계상심신유유) 전생의 약속을 찾음은 믿음으로 인함일세.
六部邊芳熙호地(육부변방희호지) 육부촌 꽃다웁고 밝게 빛나는 이 땅은
千年盛業帝王州(천년성업제왕주) 천년의 업이 융성한 제왕의 곳이로다.
淸談款款樽如海(청담관관준여해) 청아한 담소가 정성되니 술두루미 바다 같고
爽塏深沈夏似秋(상개심심하사추) 높고 트인 시원한 숲이 울창하니 여름이 가을 같다.
弄博圍棋隣老事(농박위기인로사) 장기와 바둑 둠은 이웃노인들의 할 일이요.
我耽佳句遣閑愁(아탐가구견한수) 나는 시 한 수로 한가한 심회를 날리리라.
*宿契.相尋,熙호,淸談,款款,爽塏,深沈,隣老,佳句,閑愁 등은 고어체라 다시 의역하였음을 밝힌다.
영역을 덧 붙인다
Whiling heat away in the forest of Kye-Lim by Rim Woon Shik
To while heat away in the forest of Kye-Lim I stay in the shady green;
I believe that this search was possible due to my wish in the former life.
Fragrant six village borders are sunny and bright lands;
Successful accomplishments for a thousand years occurred in this royal place.
Distinct talks were amusing while holding a drinking vessel like a sea;
In a high and dry ground in a deep forest summer feels like fall season.
Since playing Chinese games is for elderly neighbors;
I shall enjoy some beautiful verses, dissipating leisurely anxiety.
10.서예가 심천 한 영 구
경주교육문화회관 1층 로비에 걸린 그의 글씨
河西 金麟厚의 '東都懷古'를 보고 불현듯
심천 선생을 떠올렸다.
경주를 대표하는 서예가라 하기에는
더 화려한 수식어가 많겠으나
달리 적합한 말을 찾을 수 없기에
그대로 하기로 한다.
명절 때나 찾아뵙고
몇 번의 식사를 같이 한 것 밖에 깊은 인연을 쌓지는 못했으나
이곳 사람들의 입을 빌리자면
그의 인품과 예술에 대한 평판은
'자랑스러운 경주인'이었다.
다른 예술과 달리
서예는 고매한 인품이 함께 했을 때
세인들은 그를 명필이라 한다.
선생이 내리신 황진이의 시'奉別蘇判書世讓'을
2003년 미 8군에서의 크리스마스 파티 때
'지넷 에즈먼즈'사령관에게
영역을 곁들여 선물했다.
사령관 (당시 소장)이 한국에서 가장 뜻 깊은 이별의 선물을 받았다며
기뻐하는 모습이 아직도 선연하다.
중장으로 진급하면서 본국으로 귀국한 뒤의 소식은 끊어졌으나
선생의 서예작품에 감동하던 기억이
이 글을 쓰면서 감회가 새롭다.
奉別蘇判書世讓 黃眞伊 판서 소세양과 이별하며 황진이
月下庭梧盡(월하정오진) 달빛 뜰아래 오동잎 다 지고
霜中野菊黃(상중야국황) 가을 서리에도 들국화는 피었네
樓高天一尺(루고천일척) 누각은 높아 하늘과 한 뼘 사이로
人醉酒千觴(인취주천상) 우리는 천 잔의 술에 취하네
流水和琴冷(유수화금냉) 흐르는 물소리 서늘히 내 거문고 줄에 들고
梅花入笛香(매화입적향) 그대 부는 피리소리 매향이 스미네
明朝相別後(명조상별후) 내일 아침 우리 서로 헤어지면은
情與碧波長(정여벽파장) 그리움만 홀로 물결쳐 갈 것을.
Bidding farewell to Minister Soh
Jinee Whang the Poetess
Pawlonia leaves are falling down in the court-yard shone by the moon;
Wild chrysanthemums turn yellow in the midst of frost.
The tower chamber rises far high, just a foot short of heaven;
Men there is already intoxicated from drinking a thousand glasses of wine.
Running streams are in harmony with the crisp strings of Oriental harps;
The fragrance of apricot flowers permeates into the flute.
After bidding farewell to each other tomorrow morning;
Our love will remain unchanged forever as those blue waves in the ri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