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문예대학 출신 작가 작품>
목련화
조갑식
흙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봄이 찾아오면 목련꽃 아기 몽우리가 부풀어 오른다, 꽃망울로 뽀송뽀송한 솜털 같은 껍질을 터트리며 곧 얼굴을 내밀 것만 같은 나뭇가지를 바라보면 덩달아 내 마음도 부풀어져 왠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매주 수요일은 정다운 가곡 포럼(정가포)으로 가서 가곡을 배웠다, 오늘 수업은 조영식 작시 김동진 작곡 엄정행 테너가 부른 목련화를 배우며 1교시가 끝났다. 2교시 사이에 항상 정가포의 공지사항을 성악 지도선생이 아니라 운영자 김 대표에게서 듣는다, 김 대표는 젊은 시절 모 방송국 여성 합창단으로 활동 중 우연히 오페라 콩쿠르에 입상하여 가곡에 입문하였다.
기획력이 뛰어난 것에는 작은 교회 사모로서 연간 기획과 월간 기획 주간 기획을 해야 하는 교회를 운영해서인지 기획력과 베풂과 나눔이 접목되어 많은 사람을 모이게 한다, 기쁨에 가득 찬 모습으로 마이크를 잡더니 큰 소리로 조금 전 테너 엄정행 교수와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이달 중 양산시에서 건립한 엄정행 뮤즈엄으로 가곡 여행을 가게 되니 어느 날짜가 좋을지 물었다,
나는 봄이면 항상 양산으로 찾아가는 곳이 있어 얼른 손을 들고 2월 마지막 주 수요일에 잡자고 말했다, 봄이 시작되면 통도사 스님들의 마음을 다 빼앗아 간다는 홍매화 아가씨가 나타나는 시기임을 얘기하였다, 수년째 새봄이 오면 전 국민에 마음 밭을 가꾸게 해 준 테너 엄정행 선생을 겸하여 만나러 가던 날, 월드컵 주차장에 집결하여 승용차는 두고 버스로 편하게 양산으로 가게 되었다. 버스에 한차 가득 함께 가는 사람들은 성악 가르치는 선생과 가곡 애호가들로 구성된 대구 정다운 가곡 팀의 정다운 가곡 여행이다. 미술 전시회를 찾아가는 미술 여행은 더러 보았지만, 가곡 여행은 처음이다.
나는 시 낭송을 배우다가 아름다운 詩에 곡을 붙여 만든 노래에 매료되어 우리 가곡 부르기에 입문해서 배워보니 듣기는 쉬웠으나 내가 불러보면 쉽지 않다. 몸이 악기가 되어 연주해 보면 제각각 타고 난 체형에 따라 소리가 달라서 열 명이 같은 노래를 불러도 그 소리는 모두가 다르기에 어쩌면 목소리는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인 듯하다.
버스가 양산을 향해 가던 중 청도를 지날 즈음에 성악으로 이탈리아 유학 중인 친구의 딸아이 진아가 카톡을 보내왔다. 인사말과 함께 이탈리아에서는 성악으로 많이 알려진 선배 부부가 한국에 잠시 체류하며 며칠 뒤 대구 콘서트하우스에 ‘토스카’가 올라가는데 주연하는 선생 세 사람이 안경이 필요하다며 대구에 잘 아는 안경원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는 말에 우리 매장을 소개했다면서, ‘오늘 가면 잘해주세요.’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지금 여행 가는 중이라고 말을 못 하고 알겠다며 감사의 답글을 보내고 매장으로 전화를 걸어 소개받은 사람이 찾아오면 잘해 드리라고 이름을 알려 주었다.
버스는 엄정행 뮤즈엄에 도착하였다. 엄정행 선생께서는 오늘 우리를 맞이하려고 서울에서 내려와 입구에 서서 버스에서 내려 들어오는 우리를 향해 인사를 하며 한 사람 한 사람씩 모두 들어설 때까지 인사를 건넨다. 안으로 들어가니 소설가의 문학관처럼 만들어져 당시 공연 포스트와 초창기 LP판을 들을 수 있는 귀하고 오래된 물건들과 각종 표창패와 감사패 등 귀한 소장품들도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여기서 가곡 애호가 중 한 사람이 봄의 애창곡인 목련화를 대표로 부르고는 엄정행 선생에게 성악의 단발 지도를 다 함께 학생이 강의실에서 배우듯 잘 부르기 한 수 가르침을 받았다.
그리고 성악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고3 시절, 배구선수로 체육학과를 지망하려 준비했으나, 그해 전국 체전에서는 9명이 뛰던 시합이 6명으로 바뀌면서 키 작은 자신이 주전에서 밀려 대학에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당시 양산에서 음악 선생을 하셨던 아버지는 나를 음대에 보내려고 단기간 성악학원에 가게 하였다. 서울 경희대학교로 지원하여 실기 면접관의 심사 표정에서 떨어졌다고 느끼고 고향으로 내려와서 아버지께 고향에서 농사를 짓겠다고 말하며 대학을 못 갈 줄 알았었는데 집으로 합격의 통지서가 배달되어 왔을 때 체육에서 성악가로 인생이 바뀐 얘기를 들려주셨다.
끝으로 엄정행 교수님께 한 곡을 신청하자, 예전에 불러 녹음 두셨던 ‘그네’를 들려주셨다,
이 곡의 작곡하신 분이 1956년 통영고 교장을 지낸 금수현 (1919~1992) 이며 시를 쓴 사람은 작곡자의 장모이니 금난새의 외할머니 (김말봉)와 부친이 만드셨다.
세모시 옥색 치마 금박 물린
저 댕기가 창공을 차고 나가
구름 속에 나부낀다.
제비도 놀란 양 나래 쉬고 보더라
한 번 구르니 나무 끝에
아련하고 두 번을 거듭차니
사바가 발 아래라 마음의 일만 근심은 바람이 실어가네.
마치 호젓한 숲길을 걸을 때 들려오는 새들의 소리처럼 아름다웠다. ‘그네’라는 노래가 만들어지기까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려다 점심 예약 시간 때문에 말씀을 다 이어가지는 못하신 듯하다. 함께 버스를 타고 엄정행 선생의 단골 맛집인 복어탕 집으로 가서 식사를 마치고 나와 작별의 인사를 하였다. 건강하셔서 다음에 또 뵙자고 인사말을 나눌 때는 노 교수의 맑은 눈에서 눈물이 어른거렸고 주변 사람 모두가 눈시울이 붉어졌다. 모두가 버스를 타고 통도사 향해 떠날 때 한 손에는 받으신 꽃을 들고 손을 흔들어 주셨다. 통도사 가는 길 버스 안에서 목청껏 함께 목련화를 합창하였다.
통도사에 도착한 오후 시간은 홍매화가 햇볕을 받아 반짝반짝 그린다. 오후에 빛을 받아 연분홍 속살이 보일 듯 말 듯 한 꽃잎 속에 숨어 있는 연분홍 화분까지 아빠 백통(하얀색) 카메라 렌즈에 담았다, 첫 만남이 좋으니, 끝도 아름다웠다. 각자 지닌 휴대전화로 홍매화 앞에서 사진을 찍고 대구로 돌아갈 시간이 되어 버스에 올랐다.
홍매화에 흠뻑 빠져 잊고 있던 이탈리아에서 온 성악가들이 매장을 다녀는 갔는지 체크를 해 보니 안경을 잘 맞추고 갔다고 했다.
자리를 비워 송구한 마음으로 고객 카드에 남기고 간 연락처로 방문해 주심에 감사하다는 인사말과 양산의 엄정행 박물관 가곡 여행 선약 때문에 후배의 소개에도 자리를 비웠다며 맞춰간 안경은 잘 맞고 편한지 인사의 말을 카톡으로 보냈다, 엄정행 테너 음반에서 많이 들었던 가곡을 다 함께 부르며 대구에 도착하여 해산하고 매장에 도착하니 카톡으로 토스카의 주연을 맡은 성악가의 댓글이 와 있었다.
(댓글 복사 붙임)
안녕하세요. 오늘 따님께서 너무 잘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안경 잘 맞추고 왔습니다.^^ 사진을 보니 엄정행 선생님도 계시네요. 제가 엄정행 선생님이 경희대에 계실 때 학부생이었습니다^^ 아버님께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해 주셔서 너무 감사한 마음입니다. 조만간 한 번 더 찾아갈 것 같아요. 연락드리고 찾아뵐게요. 감사합니다 ~
(《수필문예》 제22집, 2023. 수필문예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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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프로필
수필문예회 회원
대구수필문예대학 28기 수료.
eyeplus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