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륙 고조선-중앙 대륙삼국-동양 대륙고려-동방 대륙조선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황제국의 위상과 역사는 사그라 들고 동북방 변방에서 우리는 존재한다.이제 옛 화려한 영광과 역사를 찾아야 하며 그것이 우리의 미래이자 숙명이다.조선의 몰락은 서양과 동양의 패권에서 희생량으로 전락한 것이다.동방의 강자 조선은 다시 일어서야 하며 서양 문명을 이기도 새로운 동양문명을 창조해야 한다. 그 웅홍한 장대한 시작은 한류에서 뜨겁게 타 오르고 있다. 이제 옛 것을 회복하는 다물운동이 벌어저야 한다. 잃어버린 역사와 정신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며 그것이 우리의 밝은 미래인 것이다.
서북방의 위협
조선 초기 4군과 6진을 기반으로 광대한 황제국을 자랑하나 4군을 이내 곧 무너지게 되며 4군을 통한 유목족이 유입하는 계기가 된다. 이후 6진은 임진왜란 전후까지 강하게 버티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00년 동안 북방에서는 유목족의 이합집산이 일어나면서 여진족은 해서(海西) ·건주(建州) ·야인(野人)의 3부로 나누어진 세력을 하나로 통합하여 누루하치가 후금을 세워 신강성 일대와 내몽고에서 발흥하기 시작한다.임진왜란 이후에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위협하게 된다.
서남방의 배신
명나라는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어부지리 효과를 보고 양자강 이남과 상류지방에 머무는 활동 영역을 더욱 넓혀 양자강 하류지방까지 확대하는 계기가 된다. 전통적으로 동이족과 서이족은 형제관계를 통한 친선 교류의 나라였으며 중국을 양분하는 거대 세력이었다. 그러나 그 주도권을 서이족인 한족에게 한번도 빼앗기지 않은 황제국의 위상을 대대로 지켜왔다. 황하강 일대를 중심으로 중국 동해안을 중심으로 동양 역사의 주도적 역활을 해온 것이다.서이족은 남서방이나 서방 또는 남지나 해를 기반으로 하는 변방의 열국에 지나지 않았다.
동남방의 위협
왜는 해양세력을 말한다.왜(倭)는 외(外)이며 바깥을 의미하며 여인국을 의미한다.광동성과 복건성 그리고 동남아 일대를 대상으로 해적질을 하는 도적때이며 왜구라는 별칭으로 존재하였으며 일본과 또 다른 분류를 하고 있다. 일본이 왜가 아니며 단지 대륙왜의 근거지를 일본왜의 근거지로 바뀌는 것 이외는 없다.왜는 조선국의 제후국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임진왜란으로 표현한 것이다.즉 지방 체계로 보면 도 관찰사의 지위이며 지방 호족의 왕이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이상한 명나라와 이상한 조약이 체결되는데 일본이 점유한 탐라를 주고 조선이 점유한 대마도를 맞교환하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탐라는 제주이고 대마도는 쓰시나 섬이 아니다.탐라는 대만이고 쓰시마는 일본인 것이다.즉 대륙왜가 일본왜로 쫓겨 들어갔지만 왜는 일본을 완전히 장악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임진 왜란 당시에 일본은 해양도 소속이며 부속 도서일 뿐이다.임진왜란 이전에 일본은 교역이 거의 없는 변방이였으며 왜구들이 해외 포르투칼 세력과 해석과 해양 세력의 엽합을 통해 대륙 조선을 정벌하게 된 것이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을 완전 할양 받은 일본은 덕천가강에 의해 에도막부 [江戶幕府(강호막부)]가 열린다. 강호라 불리운 것은 양자강 일대를 형성한 대륙 왜 세력이기 때문이다. 도쿠가와 바쿠후(德川幕府)를 붕괴시키고 천황 친정 형태의 통일국가를 형성시키고 다시 조선을 침공한 것이다.두 번의 침공으로 조선은 완전 패망으로 전략하게 된다.
동북방의 피신
동북방인 간도와 한반도로 피신하는 과정은 서서히 여러 차례 과정을 통해 전개된다.1차는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많은 유민이 대륙을 떠나 간도로 진입하게 되며 2차로 청나라의 오르도스 지방인 서안 북부 내몽고 지방을 점령하게 되고 북경을 위협하자 한반도로 이주하게 된다.그리고 이 시기를 전후로 하여 대동법과 사회제도가 크게 비뀌게 된다.또한 대동여지도를 비롯한 많은 지리서가 출간된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정치적 분열은 당파 싸움이다. 당파는 단순히 정치적 견해가 틀리는 것에 따른 국론 분열이 아니다.지방 호족간에 이견과 이합집산인 것이다. 임진왜란을 통해 동인과 서인이 나누어 지고 다시 동인 남인과 북인이 나누어 지는데 남인과 북인이 나누어 지는 계기가 분조(分朝)활동이다. 그 시작은 광해군 때에 분조 활동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임진왜란 직후 토지결수가 1/10로 줄어들게 된다. 급격한 세입감소는 지방 호족의 이탈을 의미하는 것이지 전쟁을 통한 인구 감소나 농사 지을 인구 감소가 아니라 중앙 조선 황제국에서 이탈하는 지방 호족이 늘어남과 동시에 새로운 지방으로 이전하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대륙 조선은 동방조선국(중국 동해안)과 북방조선(만주국과 한반도)으로 나누어 지게 된다.이 이후 본토 조선이 멸망한 시기는 정확하게 추산하기 어려우나 명성황후 시해를 기점으로 추산된다.그 때까지 황후라는 말을 사용했다는 것은 황제국의 전통을 이었다는 것이다.
조선개국 480년에 한양시대가 끝나다!
북경과 서안을 기반으로 하는 한양시대가 끝나는 시기는 정확하게 추산하기 어려우나 1895년 10월8일(양력) 명성 황후 시해(을미사변)를 기점으로 열리는 시기로 본다.대륙 조선이 망하자 산동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많은 조선인이 한국으로 배를 통해 육지를 통해 건너오게 되거나 한족에 동화되거나 대량 학살이 된다.관동대학살 남경대학살. 중국 해남성 조선인 학살 사할린 대학살 그리고 만주 지방에 거주하는 많은 조선인을 이억만리 땅으로 이주 시킨다. 자세히 조사되지 않았지만 뿔뿔히 흩어지는 비극의 역사가 된 것이다. 수 많은 임시 정부가 상해임시정부-충칭 임시정부-북경 임시정부-만주 독립국이 들어선 것이 그 실 예이다.가장 극심한 타격이 된 이유는 일본의 대륙 진출과 정복 지역이 정확히 대륙조선과 만주 한반도 조선과 일치하기 때문이다.일본이 동남아 제국을 침공한 것은 해양도 백제의 영역이며 해양조선의 영역이다. 중국 동부와 만주 그리고 한반도를 침공한 것은 대륙조선과 만주조선의 영역이다.
중국에서는 서울을 한성이라 부르고 일본에서는 경성이라고 부른다.우리나라는 그냥 서울이라고 부른다. 왜 이렇게 다르게 부르는 것인가!
중국에서는 전신이 명나라와 청나라이므로 조선에 대하 잘 안다. 한양과 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륙에서 망한 조선인이 건설한 수도이기 때문이다.그래서 한성이라고 부른다.한성 중에 황제가 사는 곳이 한양인 것이다.한민족은 동대문을 낙양으로 서대문을 서안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새롭게 만들어 동대문 서대문을 일본인이 강제로 부르게 해도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서울의 동대문과 서대문으로 부르는 것은 일본인 일뿐..우리는 그냥 서대문을 서문으로 불렀다고 한다.
덕수궁 대안문이 일제시대 대한문으로 바뀌었다.서울 한 복판에 일어난 사실도 아는 이가 거의 없었다.어떤 학자의 주장과 근거가 나와 얼마전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하물며 이런 상황인데 임진왜란 이후에 벌어지는 엄청난 대륙조선의 수난사를 왜곡하는 것은 아주 쉬운 것이다.거기에 36년 동안 일제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충분한 시간이다.또한 근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스탬이 비로서 일본에 의해 본격 실시되었기 때문이다. 건립 당시 이름인 대안문(大安門)에서 1906년 지금의 대한문(大漢門)으로 바뀐 것을 둘러싸고 여러 억측이 있었다. 왜 대안문이라고 했는가! 북경은 천안문이다. 즉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안(安) 을 쓰는 것은 황제국에서만 쓰기 때문에 안을 못 쓰게 만드는 것이다.그렇다면 왜 대한(大漢)과 대한(大韓)중에 대한을 쓴 것인가! 그것은 한나라의 피지배 민족을 심어주기 위한 의도이거나 우리가 원래 한문을 쓰는 주도국이라는 의도인데 확실히 단정하기는 어럽다. 다만 안북-안남-안동-안서를 쓰는 것은 대대로 환인제국 안파견의 정통맥이자 천손민족이기 때문이다. 북경이 천안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한민족이 세운 건물과 말인 것이다.
일본에서는 왜 경성이라고 부른 것인가! 옛날부터 경성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그대로 부른 것이다.경성은 무엇인가! 전통적으로 조선은 3경 5부제도를 유지해 왔다.즉 복수의 수도를 두고 그 수도를 지키는 주변 도시를 세우는 것이다. 한성을 둔다면 3개의 한성이 있고 그 중에 임금이 계시는 곳을 한양이고 나머지는 한성외 된다. 그것이 3경제도나 수도제도다. 그리고 그 수도를 중심으로 전후좌우 포진된 도시가 경성인 것이다. 경을 지키는 성이 경성이며 양을 지키는 성이 한성인 것이다. 경성이라고 하는 것은 3개의 성을 지키는 하나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왜 서울이라고 했는가! 새로운 울이기 때문이다.새로운 터전기반이기 때문이다. 즉 변방의 한반도 주도세력이 이주한 것에 불과하는 것이다. 물론 그 이전도 조선인이 살았지만 주도세력이 대량으로 들어오지 않았지만 해방을 전후로 하여 엄청나게 서울로 들어 온 것이다.1960년대만 하더라도 서울은 강북 일부를 제외하고 허허 벌판이였으며 논과 밭이 가득한 한적한 도시였을 뿐이다. 조선 500년을 이어온 수도가 아닌 그저 경성이였다.현 경복궁에 완벽한 왕궁이 있는데 무슨 소리며 조선 개국시기부터 건설한 대들보 상량 기록과 흔적이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반문 할 수 있다. 고려 말 강화도 천도가 임시로 되는 계기가 경성에 왕궁이 들어선 내력이다.즉 강화도가 한반도인 것이다.고려 역사에서 강화도 섬은 한반도 이며 대륙에는 한반도를 섬으로 인식한 것이다.그래서 간도도 사이섬이라 하여 대룩을 섬으로 본다. 동쪽 바다에 작은 섬 황하강(한강) 하류에 작은 섬이 강화도인 것이다. 강화도가 천혜의 피난지인 것은 여러가지 이유에서 비롯된다.
첫째 한반도 대룩과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완전 분리돤 지역이다. 그리고 그 위는 장백산맥으로 험난하게 장막이 처진 상황이다. 그리고 한반도 북부는 산이 많기 때문에 대륙을 통한 침공은 대단히 힘들다. 한반도 산은 대단히 특이해서 작은 산이 뽀쪽하게 여러겹 존재하여 대룩의 산과 다르다. 대륙의 산은 크고 웅장하지만 말이나 마차로 넘기 쉬운 구도를 가진다. 그러나 한반도 산은 불가능한 구조가 된다.그래서 그리고 경성(서울) 주변에 농사 지을 땅이 역사 기록에 나온 내용과 부합한다. 역사 기록에 보면 강화도 내에 여러 왕궁을 짓고 여러 절터를 세웠다고 나온다.현 강화도 내에서는 불가능한 구조를 보인다. 그리고 강화도에서 제작한 팔만대장경이 유일하게 남은 것은 한반도의 지리적 이점인 것이다. 한반도는 황하강 하류에 존재하는 작은 섬에 불과하며 날씨 맑은 산동 반도에서 산 위에서 보면 한반도가 작은 섬처럼 보인다.
한반도는 대대로 대륙 조선국의 피난지이며 유배지이며 휴양지이며 변방으로 그 역활을 해 왔기 때문에 삼국과 고려와 조선의 역사 위에 유적도 그대로 연동돤 것이다.그것이 우리가 믿는 허상의 반도사관이자 식민사관의 실체이다. 현 한반도 지명은 1차적으로 대륙조선에서 건너와 반도 조선에 그대로 포게지게 되었으며 2차적으로 일제시대 의도된 목적으로 다시 포게지게 되었다.중국 본토는 명나라 이후 청나라 이후 중국정부 이후 여러 차례 지명이 바뀌게 된 것이다.물론 그 이전은 기원 후 5세기 전후로 하는 중국 고구려 백제 신라 3국 세력의 한반도 유입이 그것이다.또한 독자적으로 인도에서 일본과 한반도로 직접 들어온 세력도 존재한다.
중국에서는 대륙에 존재한 동이족의 흔적을 지우고 조작하는 혁명에서 비롯된 누적된 결과이며 일본에서는 식민지 교육을 통한 영구 지배 목적으로 조작한 것이다. 또한 대륙조선을 뺀 만주와 간도 지방의 땅도 러시아에게 연해주와 사할린을 빠앗기고 청나라에게 일방적으로 만주 철도 부설권을 얻기 위해 간도 협약을 맺은 것이다.
또한 조선말은 그 당시 말세와 같기 때문에 많은 도참사상이 유행하였다. 특히 남조선 사상이다.중국 본토에 남은 조선사람은 살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학살의 대상이 되거나 강제 이주가 되거나 한족에 동화되는 멸문이 된 것이다.그 중에 하나가 산맥이 끊어진 섬에 들어가라는 말도 있었으며 십승지를 찾아라는 말도 있었다.비록 해방 이후에 남북전쟁의 아품이 있었지만 한민족으로 살아가는 유일한 피난지이자 생존지가 한반도가 되었으며 그것도 남쪽이 되었다.이제 위대한 황제국 후손으로 다시 새롭게 일어서야 한다.다시 세계제국을 건설하는 시간대가 다가오고 있으며 다시 찾아오는 위대한 동양문명과 한국의 문명이 열리고 있다.
중국 대륙조선 한양운이 480년으로 끝났으며 간도조선운이 1875년 이후 108년인 1983년에 새롭게 시작한 것이다.서울 한양이 끝난 것이 아닌 중국 조선 한양운이 끝난 것이다.1984년이 새로운 갑자년이며 하원갑자 마지막 바퀴를 돌고 있다.
특히 국제법상 100년이 되는 시한을 넘겨서는 안된다. 일단 국제법을 통해 소송을 걸어 놓고 보아야 한다.간도 협약 만료시기가 2007년이니 이제부터 준비해야 한다. 차기 정부가 아닌 현 정부에서 문제 제기를 통해 차기 정부로 해결을 넘겨야 한다.
영토 회복 대세와 프로젝트
일단 중국과 소련으로 부터 소송을 걸어 놓아야 한다. 반드시 우리에게 좋은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된다.역사 회복에서 국제 명분에서 승리해야 한다. 국제적으로 불점 점유한 영토에 대한 엄청난 부도덕의 낙인을 찍어야 한다. 언젠가는 스스로 포기를 하든 국제적 환경이 우호적으로 바뀐다.중국 자체도 민족 단위로 되면서 자체 분열된다.중국 통일시대는 끝난 것이다.
청나라가 조선국 대륙을 정벌한 루트 그대로 신강성에서 그대로 재현된다.위구르 독립투쟁에서 내몽고와 몽고 통일 투쟁에서 티멧트의 독립에서 동북 삼성의 민족운동에서 들불처럼 번질 것이다.
소련은 한국을 경제 협력 파트로 생각해 장기적 안목에서 포기 할 수 있다. 그렇게 나온다면 중국도 변화를 가져 올 것이며 중국 자체의 각 소수 민족변화와 미중의 파워 게임에서 어부지리를 보일 수 있다.
아시아 거대한 중앙에 유목제국의 위대한 연맹체를 만들어야 한다.단군조선이 건국한 카스피해에서 바이칼까지 중앙 제국을 만들어야 한다.카자흐와 우즈베키스탄 그리고 몽고와 만주를 아우르는 단군조선을 건설하자!
간도 문제는 북한의 권한이 아니다.사할린도 마찬가지며 통일이 되기 전에도 충분히 가능하다.통일이후에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닌 우리의 현실이다.역사 부흥운동으로 국내적 관심충만과 국제적 우호가 일단 선결과제다.
16세기까지만 해도 한반도는... 황진이 06/12/12 [10:58]
서양 고지도에서 섬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반도=강화도 설은 검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컨대, 백제유적지라 해도 더 파보면 고구려 유적과 신라유적이 섞여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초에 해당 성을 누가 쌓았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후 지배세력이 바뀌면서 다른 유물이 남게 되며, 이들은 섞여 나오게 됩니다. 이런 점도 역사조작에 도움이 되어 버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잖아도 역사조작을 위해 유물을 파묻어야 할 판이었는데....
고종의 황제등극이 모든걸 설명합니다. 궐한 06/12/12 [11:24]
당시는 일제가 조선을 사실상 다 먹은 시대입니다.
고로...세상에 황제는 하나이어야 합니다.
이런 동양적 세계관을 무시하고...일게 패망한 왕조의 왕이...황제등극식을 하는 것을...
일제가 그대로 놔 두었을까여?
대신 일왕은...황제보다 더 거창한...천황이라 뻥을 칩니다.
역사 어디에도 왜왕이 천황으로 칭제된 적은 없습니다...명,왜 모두 중원 남부의 조선 제후국들입니다.
이런 역사를 지우기 위해...중노들은 문화혁명을 일으켜야 하는 것이며...
일억(?)에 가까운 조선지식층들이 인종청소됩니다.
고종이 황제로 추존된게 아니고...조선이란 황제국을 상실하고...한반도를 유배되어...
당연히...우리 고려는 원래가 한이라 했으니...
국호를 대한제국이라 하니라~~했을 수 밖에 없었을겁니다.
그 한반도를 조선이라 일제가 조작질을 하는 겁니다.
이해가 안 되는 점들,,, 나참 06/12/12 [11:28]
1. 조선이 황제국이고, 대룩의 태반을 지배하는 대제국이었다면,
'친명 사대주의'는 뭔가? 그리고 조광조의 개혁의 의미는 뭐고?
또한 소위 17세기 '진경시대'의 작품들은 뭐고,,,
정조가 정약용에 명해 완공한 수원성은 뭔가?
2. '왜'가 '외'이고, '여인국'이라는데,,,
최소한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왜'는 일본 고어에서 '사람'이라는 뜻이라는데,,,
3. '서울'이 새로운 물?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서울'은 본래 부여-백제어인 '사비'에서 온 말인데,,
이 말이 우리에겐 '서울'이 되고, 불가리아에선 '소피아'가 되었다고 한다.
4. 그리고,, 아시아의 거대한 유목제국에 대한 판타지에 대해서,,,
이거 말할 때, 조심해야 한다. 왜냐면, 이 판타지의 원작자는
일본의 '대동아 공영권 주의자'이고, 지금도 일본에서 난리부르스를 추니까,,,
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시원에서부터 '농경과 유목이 결합된'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었다고 나온다. 이는 단순한 유목국가도, 농경국가도 아니라는 말이다.
최소한의 고고학적 바탕도 없이 이렇게 마구잡이로 썰을 만들면,,, 휴,,,
비파형 청동검, 고인돌,, 그리고 최근의 홍산문명 까지,,,
이런 황당한 판타지 때문에 다 놓치게 생겼다.
--지나 대륙 호남성 강화현[江華縣] 동남쪽, ---옛 영주부[永州府][중국 고금지명사전 기록]
1]강화의 풍년
고려사절요 22대 고종 44년 9월 기록
강화전이천결속[江華田二千結屬] 공[共] 속삼천결속[粟三千結屬] 최의가[崔 家]우이[又以]
하음진강해령지전분급제왕재추[河陰,鎭江,海寧之田分給諸王宰樞]이하유차[以下有差]
강화의 공공 전답에서 쌀 2000섬, 조 3000섬을 수확했다. 또 똑같이 [우이]최의의 가정에서 수확했다.
하음,진강,해령의 전답에서 [수확물을] 제[후]왕, 재상인 추밀원 그리고 그 이하[사람]에게 차별 있게
나눠줬다.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우이[又以]라는 글자가 뜻하는 바다.
또, 우[又]자와 어조사 이[以]자. 또 똑같이란 뜻--공공 전답에서 5000섬, 또 똑같이 최의 가정에서 5000섬
합계 1만섬을 수확했다는 말인데, 1만섬을 수확하려면 농지가 얼마나 필요한지 계산해보자....
1섬은 20마지기, 1마지기는 200평이므로, 1만섬×20마지기×200평은=4000만평의 농토가 있어야만 1만섬을
수확할 수 있다. 과연 한반도 강화도에 4000만평의 농토가 있는지??!!
고려사절요는 엄연히 대륙 고려의 기록을 하고있는 데도 그 누가 감히 한반도 고려를 날조,
조작하였단 말인가??!!
또한 고려사절요 어느 곳을 눈 씻고 뒤져봐도 대몽항쟁으로 강화 천도했다는 기록이 없는데,
반도=식민사관은 잘도 지어냈고, 대학교수들조차 한문 1쪽을 번역하지 못하는 현실에는
이러한 날조가 방치되어 왔을 수밖에 없다.
위의 진강[鎭江]은 강소성 단도현[江蘇省 丹徒縣] 동남, 해령[海寧] 절강성 항주부[浙江省 抗州府]
---중국고금지명사전 기록
논 한마지기에서 벼 2~3섬 생산된다. 강바람 06/12/12 [15:21]
그러므로 계산법은 5000섬/2섬=2500마지기*200평=500,000평
즉 37만평에서 50만평이라는 말입니다.
논 한마지기는 어떤곳은 150평, 어떤곳은 200평으로 계산합니다.
설령 만섬이라 해도 즉 75만평에서 100만평 정도인데...
강화도에는 그 정도의 논과 밭은 있을 겁니다.
강화도는 작은 섬이 아닙니다. 한국의 섬 중에서 5위 정도의 큰 섬입니다.
제주도의 6분의 1입니다.
그리고 농촌에서의 일반적인 한마지기 당 몇섬이 산출되는가 라는 것은
도정한 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도정 전의 벼를 두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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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경(頃)은 1결(結)의 토지 단위와 같았다. 고려시대의 경우 토지 1결당 생산량은 수전(水田)일 때 상급의 토지가 15-18석, 중급의 토지가 11-14석, 하급의 토지는 7-10석이었다.24) 상급의 토지는 대개 중앙의 고위 관리들이 다 차지하고 있었고 농민들의 대부분은 하급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1년 동안 많아야 10석을 소출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 6석을 조세로 바치고 나면 4석이 남는 것이었다. 흉작일 경우는 거의 대부분을 조세로 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계산법 : 지금 보통 200평인 한마지기 2석,
5000결*15석=75000석/2석=37500마지기*200평=7,500,000평
지금 강화도의 넓이 300 여 제곱km 하여 사방 1제곱km는 약 30만평
그러므로 강화도는 약 9000만평이다.
그러므로 5000결 750만평을 넘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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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1결은 보통 4000평~13000평이다...그러므로 5000*4000혹은*13000=2000만평~6500만평...그러나 강화도는 9000만평이다.
대륙조선설을 주장하는 자들은 한문해석도 문장해석도 마음의 균형도 부족함을 발견하였다.
아마 불순한 동기, 외세의 미끼일 것이다. 대부분의 그 설을 따르는 자들은 맹목적인 애국심 때문일테고,,대륙조선설의 주창자는 지독한 중화문명의 숭배자임이 밝혀질 것이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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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면 적 411㎢
농경지 166㎢(41%), 임야 182㎢(44%), 기타 63㎢(15%)
인 구 65,698명 (전년대비 0.4% 증가)
남 32,576명, 여 32,813명
지역특성 단군성조의 유적과 수 많은 외침에도 불구하고 국가를 지킨 역사성과고려조 39년의 왕도. 서구제국의 개방압력에 얼킨 한민족 현대사의 역사의 현장
수도권에 위치하며 서해안시대의 중추적인 역할이 기대되며 천혜의 자연경관이 수려한 역사관광지
인삼, 화문석, 순무, 약쑥 등 지역특산물이 풍부한 친환경농업을 구현하는 청정지역
GaeDock must not speak for our History chiwoo 06/12/12 [17:38]
강바람<===Hey...Fucking GaeDock....you don't even know 한문 번역 .
All you know is Fucking Bible fantasy....Shut up you fucking GaeDock
정말 모르겠는데,,, 나참 06/12/12 [19:03]
한산/ 보통 보면, 조선왕조실록은 조작되었다고들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식이면, '고려사 절요'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제가 이해가 안 가는 태도는, 우리에게 구미가 맞는 거은 다 정확한 거고, 우리에게 맞지 않는 것은 죄다 조작되었다고 하는, 태도상의 편협함입니다.
그나 저나,,, 그 '고려서 절요' 번역판은 어디 없나요? 어디서 구할 수 있다면, 당장 읽어보고 싶네요,,,
나참/ 태도상의 편협함.....우리에게는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편협하지 않는 나라는 없습니다. 나그네 06/12/12 [19:46]
모든 걸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해서 논리를 구축한 다음 다른 논리와 겨루어야지요. 겨루어서 지면 승복하면 되는 겁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객관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객관적이라고 해서 칭찬할 사람은 지나인일까요? 왜인들일까요? 미국인들일까요? 겉으로는 칭찬하겠지요. 그러나 속으로는 등신이라고 비웃습니다.
또 우리가 객관적이지 않다면 물론 욕이야 들어 먹겠지요. 그러나 그런 욕 좀 들어 먹으면 어떻습니까? 손해 볼 거 없습니다. 세월 지나면 다 유야무야 됩니다.
한 마디로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처음부터 객관적으로 나가는 것은 이적행위입니다. 역사연구를 학문의 차원에서만 봐서는 안됩니다.
이제 진짜 민족사 연구의 시작입니다.
나참/ 역사서를 비롯한 모든 기록은 일제의 검열을 받았다고 봐야 합니다. 나그네 06/12/12 [20:00]
조선왕조실록은 물론이요 고려사 절요도 마찬가지라고 봐야지요.
나참님이 만약 일제의 고위관리였다면 그냥 놓아 두시겠습니까? 상식으로 생각하면 답이 나옵니다.
사실 상식적으로 해방직후 역사 연구에서 가장 먼저 했어야 할 일이 바로 조작된 기록이나 유물은 없는가 하는 것이었지만 그런 일이 완전 생략된 채로 역사 연구하고 교육해 왔으니 이 얼마나 황당한 일입니까?
다~~조작됐다면서...우리에게 유리한 거만 취한다고여? 궐한 06/12/12 [21:45]
우리 할아버지가...장군이셔서 칼을 잘 다루셨었다...라는 역사를...
적들이...너의 할아버지는 대장간 머슴이라 칼을 잘 다루셨다...라고 조작했다면...
너의 할아버지가 대장간 머슴이란... 개 조작질은 검증하여 장군으로 되찾고...
그러기에 칼을 잘 다루셨었다는...그대로 취하는 논리인데...
무조건 적들이 조작했다고...문자 하나하나가 다 바뀌였다 생각하는것 자체가 아마추어입니다.
적들이 조작한 내용을 여러게 비교하면...진실이 나오는 이치입니다...
수사에선...이를 대질심문이라 합니다....나참님.
궐한님 질문입니다. 강바람 06/12/12 [22:26]
님의 주장 부정하지 않습니다. 정확하나 그렇지 못하난 간에 보는 곳이 다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 진나라때 진시황이 유학 등의 많은 책을 불에 태웠습니다.
그러나 그후 공자의 후손의 집의 벽에서 공자가 편찬한 죽간본이 즉 진본이 나왔습니다.
우리나라의 단군사는 고래의 타락한 한국인도 그 기록을 없앴고, 중국도, 일본도 그 기록을 없앴습니다. 이러므로 역사조작이라고 하는 의문의 근원이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진실한 자료가 거의 없습니다. 역사도 오래이었고요. 이것은 세계사에서 유래를 보기 힘든 희귀한 예입니다.
하지만 이씨조선이란 우리와 가장 가까운 시대입니다. 일본이 조작할 때 그 진본을 감추어 둔 한국인도 분명이 있을 겁니다. 그 당시의 한국인은 적어도 한 2천만은 되지 안았을까요?
그리고 외국에도 갈 수 있었습니다.
독립세력도 있었고 많은 동조자도 있었습니다.
일제식민지를 벗어나 제법 많은 세월 흘렀습니다.
그런데도 그 진본이 아직 한권도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많은 숙고와 머뭇거림이 있어야 될 겁니다.
그러므로 주장하는 내용을 담은 그러한 진본이 나와야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진본이 나오기 힘든 이유가 있습니다. 궐한 06/12/12 [22:52]
일제와 친일파들이 36년간 역사서적을 수거한 방식은 상상을 초월한 치밀한 작전같았답니다.
일단 한반도로 이주한 대륙조선인들의 수가 토박이들보단 작았을 겁니다.
이들의 인적사항과...서적회수는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겄입니다.
일부 남아있던 서적들도...가난에 찌든 백성들이 엿장수들에게 넘기게 됩니다.
족보도...한반도 거주 토박이들의 족보 외에는...모두 수거 검열 조작됬답니다.
한반도 70%가 다 양반이란 족보가 돼는 아이러니의 탄생입니다.
일본에서 먼저 출간됐으나...환단고기...삼일신고..태백일사...참전계정...천부경...등등...슬슬 발굴돼고 있습니다.
더 많은 기록들이...혹...무덤같은 데서 나오더라도...한자를 모르는 학자들때문에...
휴지취급받을 확률도 많아 걱정입니다.
차라리 양키들의 기록을 조합하는게 답 같습니다.
이도 어느정도의 조작은 돼었으나...전부 비교해 보면...모순된 점이 나오고...
공통점도 나올겁니다...공통점을 객관적 사실로 보면 될겁니다.
수사기법의 대질심문입니다.
무었보다...중원...대륙조선의 본거지인 중원에서 나올 확률이 많은데...
중노들이 다 장악한 중원에서 이런 기록이 나오더라도...바로 쓰레기통행이 될 겁니다.
문화혁명은...조선의 지식인...유적...서적을 지우기 위한...
인종,역사청소의 개수작이라 보면 될 겁니다.
당시 다 못죽인 조선인들을...
한국전쟁에 동원...꾕가리만들고 앞에 나가고...떼늠덜은 뒤에서 이탈자 쏴 죽이고...
이런 식으로 또 인종청소 합니다.
만주에서 이집트 피라밋보다 시대가 앞선 피라밋들이 나오는데도...
중노들은...이를 철저히 통제합니다.
일단 고구려가 지네 역사가 돼야 공개할겁니다...
아님 내부 유물들을 죄다 조작할겁니다....인류사의 비극입니다.
중원과 한반도의 역사서적만...원본을 다시 해석해도...
그냥 역사는 들어난답니다...그 해설서들이...일제와 친일파들 입맛대로 해석됐을 뿐이랍니다.
중노들의 언어로는...고대 중국사서 해석이 않됩답니다...
한국어로 한자풀이를 해야...고대 사서가 해석된답니다...
한학자님들이 할일이 태산입니다.
그냥 현제 있는 사서들만 다..대질수사하고...원본의 한자만 제대로 해석 비교해도...
단군이래...삼국...고려...조선의 간역은 중원대륙과 유라시아로 나온답니다.
양키들의 고지도는...조선지도를 베껴 간것이랍니다. 궐한 06/12/12 [22:58]
옛날에...지도 한장 그리는데 어떤 공력이 들어 가는진 잘 아실겁니다.
양키들은...쉽게 조선의 지도를 베껴간 흔적이 전문가들이 보면 금방 나온답니다.
이 지도들이 지금 슬슬 나타나고 있습니다.
해설서들도...영어나 화란어를 원문 그대로 다시 해석하면...
조선이 황제국이요...중국이라고 나온답니다.
일예로...중종은...쭝뎡(?)..이런 식의 표기도 나온답니다.
대륙조선의 언어는...한국어식 중국발음같습니다.
단군시대 즉 고조선과 이씨조선의 차이 강바람 06/12/12 [23:05]
궐한님이 말한 것은 단군시대에 속한 것입니다.
이씨조선의 시대의 것이 아닙니다.
저가 보는 단군시대의 강역은 우랄산맥 이동의 거의 모든 땅이었습니다. 즉 후퇴조선설의 영역보다 더 광대합니다. 하지만 이씨조선은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그러한 국토 그러한 역사입니다.
일본이나 중국이나 없애고 싶고 왜곡하고 싶은 것은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요, 동양문화의 시원이요, 종주국이요, 광대한 강역과 문화와 신앙을 가진 그런 두려운 단군시대이지 이씨조선이 아닙니다.
역사란 기록이란 구전이란 그렇게 마음대로 조작되지 않습니다. 조작할 수는 있어도 곧 들통이 납니다.
궐한님 누차 말한대로 정신력과 국토의 넓이는 비례합니다. 한국사는 자랑스러운 단군시대 이후 고구려가 다물을 국시로 하여 단군시대의 강역의 일부를 중국에 걸쳐서 회복하였지만 그 이후는 약소국과 민족정신의 왜소함으로 흘러왔습니다.
저도 이쯤에서 궐한님에게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다시 한번 긴 호흡 하시면 어떨까요. 그리고 눈도 좌우로 다시 돌려보시면서요.
저의 말은 님의 마음에 스며들지 않고 있는 것 같군요.
저도 저 딴에는 귀중하다고 해서 말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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궐한님이 말한 "일본에서 먼저 출간됐으나...환단고기...삼일신고..태백일사...참전계정...천부경...등등...슬슬 발굴돼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군시대의 흔적이지 이씨조선의 흔적이 아닙니다.
단군조선과 이씨조선은 적어도 1500년정도의 간격이 있습니다. 이씨조선은 중국을 사대주의로 섬긴 그런 못난 나라입니다.
위 기사의 원출전은 와전된 것입니다. 국민의 소리 06/12/12 [23:10]
국민의 소리 임상현 칼럼리스트가 쓴 이전글의 씨리즈 4부작 마지막 글내용인데.. 내용이 길어 4부작으로 쓴 것입니다. 여기에 소개된 임진왜란 때 북관대첩비나 만주의 비밀에 대한 글 3부작이 이미 연재된 적이 있습니다. 참고 하시기 바라며.. 조만간 4부 마지막 결론 부분을 정리 재기고 예정입니다.
단군조선은...타클라마칸의 천산일대...그리고 중앙아시아 서쪽까지로 봅니다. 궐한 06/12/12 [23:22]
조만간 제 허접한 가설을 올려 보이겠습니다.
강바람/역사서를 비롯한 모든 기록은 일제의 검열(조작)을 받음 도사 06/12/13 [08:21]
35년 족발이들의 가공할 엄청난 역사조작과 양자강 이남의 중노 출신인 장개돌, 못된똥과 똥소평의 역사조작을 알아야 합니다. 못된똥과 똥소평의 통치이념이 '수 천번을 거짓말하라, 그러면 진실이 될 것이다' 입니다. 현재의 권력집단인 유퉤인과 양퀴와 개독들도 한민족을 보잘것 없는 민족으로 만들기 위해 역사왜곡에 전력을 기울여왔습니다.
아..골아파 무식천재 06/12/13 [10:32]
얼마전까진 이씨조선이 전부 은폐 왜곡 조작하엿따하여 그뒤에 일제가 마무리 하고...로 알앗는데.
그럴경우 충분하지요...500여년에다가.36년에 긴시간에...헌데 그거이 아니고 이조말에...일제초라...허.어지러워라
어차피 바꾸려면 가능이야 하겟지만..그렇다면 이거 장난 아닌데요
왜냐..
친할아버지정도만 해도 그걸 알테고 증조까지만 가면 실화 아닙니까 증거고 자료 보다 더 확실한 증언도 있을텐데....
다시 나의 개인 이야깁니다
안동김씨 구안동 군사공파 몇대손이고 몇대가 무얼햇고 그다음 어떻고...어릴적 귀아프게 들엇던 얘기. 그때는 어려서 먼소린지 몰랏지만
펜촉을 갈아서 쓰고 십리길을 걸어다녓던 아버님 얘기와 더불어 지겹게 들엇던 회상.
그때 조선이 망햇단다 는 얘기가 어렵프시 기억나긴나는데....
중원까지엿는지 만주까지엿는지 북경에서 이사왓는지는 아마 아셧을텐데요.
할아버지가 1890년대생이셧으니 아마 증조한테서라도 자세히 듣지않앗을까요?
지금은 아무도 안계시니..
정말오래전......집에 고서들도많고 일제부터의 신문도 모아두시걸(아버님 취미)
이 못난놈이 중핵교때 몰래 다 팔앗으니...당시 한관에 150원인가 350원인가에.....쩝
하여튼 이조때가아니라...일제때왜곡이라..
혹시 이조때부터 왜곡하던걸 일제가 자연스레 이어받진 않앗는지
이조에 의한 1 2 3루 주자 만루에 일제에의한 조작 만루 홈런.......
진 경기에 관중은 없고 외로운 관중 궐한님. 맞던 틀리던 이리저리 힘내시길.
분명히 있었는데도 폴 권 06/12/14 [13:51]
분명히 있었는데도 아무도 기억하지 않고 역사속에 사라져간 대사건들이 한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나마 한 조각 기억이라도 남아서 쓸데없는 거 뒤져보기 좋아하는 저 같은 사람의 눈에 뜨이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건들도 상당히 많지요.
강바람님의 눈에는 하음진강해령땅이 강화도 안에 있는것 같이 보이시나 본데 한산 07/01/03 [09:25]
하음진강해령지전분급제왕재추[河陰,鎭江,海寧之田分給諸王宰樞]이하유차[以下有差]
하음 진강 해령땅이 경기도 강화군 안에 있는지?
어찌 보는것이 전부 안되는 방향으로 보는 슬릿사고를 가졌는지 한탄이 절로난다.
평양이고 함양이었던 지금의 서안에 고 피라미드군이 엄청많습니다. 구글어스로 검색해 보시면 수백기도 넘습니다. 이것 지나 짱골라들이 왜 발굴 안하는지 아십니까? 몇개 파보니 전부 단군임금시대 유물이라서 발굴 못하고 쉬쉬하는 것입니다.
일본사람이 역사왜곡하고는 그것을 증빙할만한 역사유물이 없자 고분군이 발굴되면 내시경 카메라로 들여다 보고 이것은 백제거네, 이것은 신라계열이군, 이것은 가야계일이고 이것은 고구리계열이네 이러고 발굴 안하고 덮어버리는 것과 같은 맥락이죠.
진시황 병마용이라고 나온것도 그 많은 유물중 병장기 "극"하나에 진시황시대 명문이 들어 있어서 진시황 병마용이라고 떠벌리는 짱골라의 역사빈약에 대하여 한마디 해보시죠?
그 큰 무덤을 발굴했는데 진시황 묘지명이라도 나오던지 아니면 다른 명문이라도 나와야 할터인데 기껏 낫뒷편에 진시황시대 명문이 나왔다고 이것이 진시황 병마용이라고 선전하고 그것을 그대로 믿는 등신들 지천이니 세상이 이렇게 혼란한 겁니다.
예의 그길에 강바람님도 동참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딴건 몰라도 중국,일본이 억지(뻥잘까는)부리는 족속들임은 확실하다... 황금호랑이 07/01/12 [03:57]
한때 나 어릴적 꿈은 인류사상 마지막 고고학 불모지라 할수있는 대한민국고고학의
(대한민국고대역사의)진실을 발혀내는 유능하고 뛰어난 역사학자가 꿈이었다... 그러나
지금 일본이 역사를 완전 탈바꿈 시켜넣은데다가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중국대륙에선
때놈들이 모든 흔적들을 없애거나 때놈화 시켜버려서 거기다 중국고서들도 "구라의극치"
를 달리고 있기 때문에... 참으로 서글픈 우리민족의 현실인 것이다 에휴~ 요즘 조상들의
흔적,기록들이 속속들이 나오고 학자들의 주장들이 제기 되지만 워낙에 확실한 증거?가
없으니 안믿자니 때놈,족바리들이 의심스럽고 믿자니 여태껏 받아온 역사지식(물론 족바리들이 조작해놨지만)을 완전초월하는 차원이 판이하게 다른듯한 놀라운 것들이기에 혼란스러울수 밖에 없다 그치만 난 "한국인은 안돼~"하는 일재의 흔적 따윈 애초 내머리속에 없었다 오히려 우리민족이 세계제일의 민족 중 다섯손가락에 든다고 생각한다 어쨋든
정말 고대에서 조선대까지 우리역사의 진실이 확실히 밣혀져 세계만방의 모든사람들에게 우리역사의 참된모습을 알려주고 똑바로 머리속에 각인시켜주길 바랄뿐이다. . . . .
첫댓글지금 역사 공부에 심취해 있는데 윗 글이 맞습니다. 고조선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한반도가 아니라 우랄산맥 이동 전역이 맞습니다. 부여에서 고구려가 나왔죠. 그 부여가 페르시아-러시아 일대 라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 부여에서 나온 고구려(러시아,몽고,한반도),돌궐(터키),당(우즈베키스탄.키르키스탄,,, 등 탄으로 끝나는 나라-일대),백제(현 중국 동부)방.한반도),신라(중국남방),왜(중국왜-일본과 구분됨, 해적집단)와 아시아 전역을 아우르는 것입니다. 그러다 고려(중국 전역-몽골 제외)-조선 이 현 중국,한반도. 그러다 조선 후기에 왜가 영국과 아편 밀무역을 하며 쌓은 돈으로 태평양전쟁을 일으키죠. 그 와중에 왜(해적집단)
의 주 세력이 현 일본열도로 근거지를 옮기게 됩니다. 현 중국의 문화혁명과 대학살 같은 것도 다 조선의 뿌리를 뽑아버리기 위한 한 방편이었고. ... 다 어거지로 들려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인식의 차이니까요. 몇 년이 걸릴 지는 모르지만 조만간 아시아 전체 아니 동양사가 제대로 설 날이 오겠지요...
대륙조선은 없다. 단, 대륙고려가 있었는데 화교놈 이성계가 명나라와 내통하여 위화도 반역을 이르킨 후 고려가 압록강이남으로 한민족의 영토가 축소 되었다. 이조말 까지 명나라를 조상으로 궁궐에서 제사지냈으며, 옥새(국새)마져 명나라가 하사해야 사용이 가능했다. 이것은 이조정권이 짱개출신이라는 것을 명백한 증거이며, 기타 이조정신이 이를 말해준다. 어디서 대륙조선을 말하는가, 더구나 이조의 소굴 전주이씨 족보에 보면 그 뿌리가 대륙 호남성 전주라는 것이 명백히 나와 있다. 이조는 새끼번식과 자신의 안위만을 지키고 짱개농경민족 답게 무를 천시하고 문을 숭상하여, 실사구시 주인정신을
내팽개친 결과,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일본이 감히 넘보지 못한 한민족을 일본에게 나라째 들어 바친 결과를 초래했다. 중공과 일제가 조작한 가짜국사를 먹고 자란 현 세대는 제정신이 아니다. 중공 화교놈들의 정신이 대부분이며, 일제식민지 문화정신으로 대부분 매국노 문화에 젖어 있다. 재벌 3세들 모두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아는가, 이조말엽 이씨가 주축이 된 매국노들이 일제시대엔 부일매국노로, 정치적 해방이후에는 친일매국노로 자리를 굳히고 이것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재벌,대기업 종자들 모두 매국노 정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국적은 미국인인데 돈은 한국에서벌어가고 있는가, 한국, 지배세력 모두 친일청산
첫댓글 지금 역사 공부에 심취해 있는데 윗 글이 맞습니다. 고조선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한반도가 아니라 우랄산맥 이동 전역이 맞습니다. 부여에서 고구려가 나왔죠. 그 부여가 페르시아-러시아 일대 라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 부여에서 나온 고구려(러시아,몽고,한반도),돌궐(터키),당(우즈베키스탄.키르키스탄,,, 등 탄으로 끝나는 나라-일대),백제(현 중국 동부)방.한반도),신라(중국남방),왜(중국왜-일본과 구분됨, 해적집단)와 아시아 전역을 아우르는 것입니다. 그러다 고려(중국 전역-몽골 제외)-조선 이 현 중국,한반도. 그러다 조선 후기에 왜가 영국과 아편 밀무역을 하며 쌓은 돈으로 태평양전쟁을 일으키죠. 그 와중에 왜(해적집단)
의 주 세력이 현 일본열도로 근거지를 옮기게 됩니다. 현 중국의 문화혁명과 대학살 같은 것도 다 조선의 뿌리를 뽑아버리기 위한 한 방편이었고. ... 다 어거지로 들려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인식의 차이니까요. 몇 년이 걸릴 지는 모르지만 조만간 아시아 전체 아니 동양사가 제대로 설 날이 오겠지요...
제가 검토해 본바로도 위글이 맞습니다. 몽고침입시 강화도로 피신하여 팔만대장경을 만들어 강화도에 보관해온것이 현 해인사 팔만대장경입니다. 식민사관처럼 강화섬에서 만들어 경주까지 불탔는데 적의 점령지에 대장경을 옮겨 놓을 바보들은 없지요.
중국의 문화혁명과 대학살 같은 것도 다 조선의 뿌리를 뽑아버리기 위한 한 방편....100%
6.26, Communism, 중국의 문화혁명과 대학살 같은 것도 다 조선의 뿌리를 뽑아버리기 위한 한 방편
대륙조선은 없다. 단, 대륙고려가 있었는데 화교놈 이성계가 명나라와 내통하여 위화도 반역을 이르킨 후 고려가 압록강이남으로 한민족의 영토가 축소 되었다. 이조말 까지 명나라를 조상으로 궁궐에서 제사지냈으며, 옥새(국새)마져 명나라가 하사해야 사용이 가능했다. 이것은 이조정권이 짱개출신이라는 것을 명백한 증거이며, 기타 이조정신이 이를 말해준다. 어디서 대륙조선을 말하는가, 더구나 이조의 소굴 전주이씨 족보에 보면 그 뿌리가 대륙 호남성 전주라는 것이 명백히 나와 있다. 이조는 새끼번식과 자신의 안위만을 지키고 짱개농경민족 답게 무를 천시하고 문을 숭상하여, 실사구시 주인정신을
내팽개친 결과,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일본이 감히 넘보지 못한 한민족을 일본에게 나라째 들어 바친 결과를 초래했다. 중공과 일제가 조작한 가짜국사를 먹고 자란 현 세대는 제정신이 아니다. 중공 화교놈들의 정신이 대부분이며, 일제식민지 문화정신으로 대부분 매국노 문화에 젖어 있다. 재벌 3세들 모두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아는가, 이조말엽 이씨가 주축이 된 매국노들이 일제시대엔 부일매국노로, 정치적 해방이후에는 친일매국노로 자리를 굳히고 이것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재벌,대기업 종자들 모두 매국노 정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국적은 미국인인데 돈은 한국에서벌어가고 있는가, 한국, 지배세력 모두 친일청산
안해 이 토록 혼돈의 극치, 모순의 극치를 드러내는 것이다. 대륙조선은 화교놈 이성계가 위화도 반역으로 잠시 고려가 있을 때가 가능하지 이방원때부터는 반도조선외에는 없다. 더 자세한 것은 다음까페 삼태극 (까페검색창, 검색)에서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재벌 3세들 90% 미국인들,,,,,일제시대엔 부일매국노로, 정치적 해방이후에는 친미매국노로 자리를 굳히고 이것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