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에 휩싸인 저녁, 골목이 낯설어지던 그때 “아무개야.” 하고 이름을 불러 나를 안심시키던 어머니의 다정한 음성이
환청처럼 들려온다. 이름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버지는 언니의 이름에는 소나무 ‘송松’을 넣고, 내 이름엔 난초 ‘난蘭’자를 넣었다. 이름에 ‘蘭’을 넣으면 고독한 팔자가
된다고 꺼리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80년을 써왔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인가, 신문에 적힌 ‘孟蘭子’를 보고 아버진 그걸
오려서 품속에 지니셨다고 한다. 황진이 시조에 답신을 모집하는 투고란이었다.
‘후세에 이름을 날려 부모의 명성을 드러냄이 효의 마지막’이라고 하는데 나는 정작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지 못했다.
그 후 글을 간혹 발표하게 되면서 ‘맹난자’는 지면에 따라서 ‘맹란자’로 표기되기도 했다. 또 어느 군인은 엽서로 당신의
이름 석 자가 본명인가? 필명인가? 불명佛名인가를 물어오기도 했었다.
‘난’이면 어떻고 ‘란’이면 어떤가? 다정한 음성으로 아버지가 불러주시던 ‘난자’가 내 이름이다. 아버지의 호명呼名으로
핏덩이는 ‘난자’가 되었다. 그것 아닌 다른 이름을 붙였다면 나는 다른 그 무엇이 되었을 터, 불리는 이름 말고 진짜 나는
무엇일까를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이름은 존재이다. 신의信義를 숭상한 사람은 그래서 목숨〔命〕보다 이름〔名〕을 더 중시했다. 중국의 개자추介子推는
진문공을 도왔으나 종내에는 산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그가 효자라 하니 임금은 산에 불을 놓아 나오기를
기다렸으나 노모를 끌어안고 버드나무 아래에서 타 죽었다. 자신의 공과나 명리名利 따위를 위해 밖으로 나오는 걸
부끄러워했다. 한식寒食의 유래가 된 그의 고결한 인품을 나는 얼마나 찬탄하였던가. 한편 관중管仲이 “자신이
전쟁터에서 전사하지 못하고 살아 돌아온 것은 노모 때문이었는데 그것을 포숙아가 알아주었다.” 라고 말했을 때
나는 그를 간단히 경멸해버렸다. 그의 어머니 나이쯤에 가깝게 된 탓일까, 공명심을 꺾고 욕되게나마 노모 앞에 살아
돌아온 관중의 깊은 마음이 더 장하게 헤아려지는 것이 아닌가.
호메로스는 아킬레우스의 분노와 복수로 《일리아드》를 만들었다. 죽마고우인 파트로골로스가 헥토르에게 죽임을
당하자 분연히 일어난 아킬레우스는 친구의 원수를 갚지만, 파리스가 쏜 독화살을 발 꿈치에 맞고 숨을 거둔다.
전쟁터는 내 이름을 불멸하게 해주는 그야말로 남자에게 영광을 주는 곳이라며 신의는 목숨을 내놓고 지켜야 하는
절대적인 가치라고 여겼다. 그러던 그가 하데스를 방문한 오디세우스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나는 세상을 떠난 모든 사자死者들을 통치하느니 차라리 지상에서 머슴이 되어 농토도 없고 재산도 많지 않은
가난한 사람 밑에서 품이라도 팔고 싶소이다.”
세속의 명예보다 살아있음 자체를 찬양하는 혼령 아킬레우스의 말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당신이 가진 생명
그 자체가 부럽다.”는 이 대목에서 나는 다시 한번 ‘명名보다 명命’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름이란 무엇인가? 이름 가문의 걸림돌이 로미오와 줄리엣을 죽게 하지 않았던가. 이름이 다만 원수일 뿐으로
그 사람의 본질은 아닐 터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장자莊子는 ‘이름이란 실질의 나그네(名 者實之賓也)’라고 말했던가.
그는 〈소요유〉에서 허유의 입을 빌려 이름이란 실질에 수반해서 찾아드는 일시적인 가상물假想物에 지나지 않는
다고 언급한다. 이때 유명론唯名論의 창시자 오컴(William of Ockham, Occam, 1280 ~ 1349)이 떠올랐다.
근대인식론을 확립한 영국의 철학자 오컴은 영국 서리의 작은 마을 오컴에서 태어났다. 이 오컴의 윌리엄은
프란체스코 수도회에 입문하여 신학을 공부한 수도사였으나 아비뇽의 교황 요한 22세와 대립하여 파문을 당했다.
중세의 스콜라 철학의 ‘보편普遍 논쟁’ 속에서 오컴은 “실재들은 필요 없이 증가되어서는 안 된다.”며 보편자의
실재를 주장하는 실재론자들에 맞서 유명론을 확립하였다.
유명론이란 모든 것이 이름뿐이라는 것이다. 나무, 교회, 절대자 이런 보편은 존재하지 않고 다만 사과나무,
삼성교회, 자연 속에 내재된 신神의 개별적 형상만이 존재할 뿐이라고 언급했다. 유명론은 실재론을 거부하고
보편은 이름뿐이며 개체만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실재론자들은 보편자가
우리의 사유에 독립해서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었다. 이에 반해 오컴은 보편자가 사유에 의해 생겨난다고 하며,
특히 우리가 사용하는 일반명사 이외에 보편적 실재란 없다고 주장한다. 플라톤은 《파이돈》에서 자신은 “언어
속에서 거처를 찾았으며, 그것을 통해서 사물에 관한 ‘진리’ 를 규명하기로 하였다.”고 술회한 바 있다. 그러나
실재론자인 그는 비 존재에 대해 답하지 못하고, 이데아를 증명하지 못했다. 오컴은 플라톤이 못 찾은
진리(이데아), 그런 건 없다고 딱 잘라 말하였다. 철학자들의 오류를 지적한 공격적인 반론 때문에 그는
배교자라는 판결로 파문을 당해 바바리아의 루드비히 황제에게로 도피하게 된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보편적인 개념은 말뿐이라는 것으로, 실제로 보편적인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플라톤의 이데아론(관념론)은 성립하기 어렵다고 한 것이다.
유일한 그의 주저主著 《논리학대전》에서 오컴은 “명제는 정신 속에 있거나 또는 발화發話되거나 씌어진 말들
가운데 있거나 둘 중 하나다. 결과적으로 그것의 부분들도 정신 속에 있거나 또는 말이나 글 속에 존재한다.
그런 것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수한 실체들이 아니다. 그러므로 어떤 명제도 실체들로 구성될 수 없음이
입증된다고 하였다. 명제는 보편자들로 구성되며 따라서 보편자들은 결코 실체가 아니다.”라고 책에 쓰고 있다.
장자의 “명자실지빈名者實之賓”과 “어떤 명제〔이름〕도 실체들로 구성될 수 없다.”는 오컴의 견해 일치가 반가웠다.
오컴은 보편자가 정신의 내부나 외부 어느 곳에도 존재하는 실제적인 것은 아니지만, 오직 정신 속에서 사유의
대상으로서만 존재하며, 그것은 정신 외부의 어떤 것이 그것의 참된 존재 속에서 가지고 있는 것과 유사한 어떤
존재를 사유-대상으로 가지고 있는 ‘일종의 정신적 그림(mental-picture)’이라는 것이다.
지성은 정신 외부의 사물을 볼 때, 정신 속에서 그것과 닮은 그림을 형성한다. 밖에서 무엇인가를 본 것으로부터
얻게 된 정신 속의 그림은 이후 하나의 본(pattern)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의미생성의
표상작용은 정신적 상상, 혹은 비실체라는 것이 다. 나 역시 자호自號를 지을 때, 중국의 흠산欽山 스님을
사모하여 그를 본보기로 삼았다. ‘어리석음을 안고 스스로 편안히 사는 방의 주인’이라는 뜻으로
‘우포자안실주인愚抱自安室主人’이라 지었다.
주자(朱熹)의 스승 유병산은 그에게 원회元晦라는 자字를 내렸다. 지화명이地火明夷 괘의 “그 밝은 것〔智德〕을
어둡게 하라.”는 ‘회장晦藏’을 취했던 것이다. 주자를 숭상한 안향은 주자의 자호 ‘회암晦庵’에서 ‘회晦’ 자를
가져와 ‘회헌晦軒’이라 했고, 중종 때의 성리학자 이언적은 ‘회재晦齋’라고 지었다. 주자가 본보기로
picturing(정신적 상상)된 것이다. 오컴에 의하면 보편자〔이름〕란 발생의 결과가 아니라 추상의 결과로서 단지
일종의 정신적 상상이라고 언급한 것이 그것이다.
사고思考가 문자 그대로 언어라는 것이 오컴의 생각이며 언어는 생각을 실어 나르기 위한 도구로서 존재할 뿐,
우리 정신이 만들어낸 허구일 뿐으로 실체가 없는 그 무엇이라고 한다. 사유=생각은 허구다. 추상된 개념도
그 본성상 보편자라는 사실을 그는 주장한다.
오컴과 600년의 시차를 두고 태어난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비트 겐슈타인 또한 그의 《논리철학 논고》에서 언어에
본질 같은 것은 없고 ‘세계의 모든 사실은 생각이라는 틀 안에 갇힌 논리적 그림’이라며 논리는 진정한 사실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뇌 안에 존재하는 기호들 사이의 형식적 꼬리물기라고 말한다. 따라서 모든 철학은
말장난이며,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오컴도 보편자는 추상어, 환幻이라는
것이다. 모든 사물은 단지 ‘개념적 명칭(nāmadheya)’에 지나지 않고 그들 명칭은 비실재이기 때문에, 그것들에
의해서 지시되는 사물도 비실재적인 것이다. 《대반야경大般 若經》에서는 “제행諸行은 모두가 분별分別이 지은
바이다. 일체의 모든 존재는 분별이 지은 것으로 공, 무소유, 허망, 부실不實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들의 생각을
포함한 모든 것들은 실체를 갖는 것이 아니라 의존적〔緣〕으로 발생〔起〕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가령 북과 북채와 공기와 귀와 주의력 등의 조건이 모여서 하나의 ‘북소리’가 발생할 때 거기에 실체란 없다.
인연으로 생겨났으니 모두가 ‘공空’인 것이다.
일체의 존재는 무자성無自性의 공空이지만 또한 임시방편적인 이름을 가지고 이 세상의 현상으로 존재한다.
존재의 요소들은 모두 인연에 따라 현상으로 존재하지만, 본체에서는 항상 공空이다. 실체 없는 내가 지금
명상名相〔이름과 모양〕을 갖추고 이 글을 쓰고 있다. 비 무비유非無非有의 기적 아닌가. 진공眞空이면서
묘유妙有이다.
묵은 편지함에서 50여 년 전, 서찰 한 통을 꺼내든다. 극락암의 경봉鏡峰 노사께서 보내신 다섯 쪽짜리의 글월이다.
… 보살의 이름이 蘭子라 하였으니… 어떤 난초인지 모르겠소. 난초에는 山蘭, 野蘭, 石蘭, 風蘭, 春蘭 등 수십 가지가
있는데 어떤 난초인지 이름을 蘭子라고만 하였으니 명백한 난초가 아니고 이름하니 내가 한번 물어보는 것이니 내
이 묻는 답을 잘하면 도인의 생활과 다름이 없으니 도는 진리요, 진리는 우리 인생의 생명이니 도를 찾는 것은
자기의 생명을 찾는 것이니 부디 도에 합치하여 진리적으로 살면 세상에 있더라도 출격대장부가 되는 법이니
멋지게 한세상 살라는 말이요…. (하략)
무슨 蘭인가? 이름만 ‘난자’라고 하였으니 본질은 명백한 난자가 아닐 터. 그냥 이름이 난자일 뿐이라는 답까지
묻어둔 노사의 친절에 다만 감읍할 따름이다. 이름 이전에 나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은 무엇이던 가? ‘도를 찾는
것은 자기의 생명을 찾는 것’이라는 노사의 말씀이 뒤늦게 간절하게 다가온다. 이 밤, 오롯하게 깨어 있는 본질.
그렇다! 바로 이것〔生命〕 아니겠는가. 현존現存과 마주하는 순수의식, 여기에 어찌 이름이 붙고 모양이 있을
것인가. ‘無名無相絶一切’ 의상대사의 〈법성게〉 구절이 떠올랐다.
법의 성품〔法性〕은 원융하여 두 모습이 아니며(法性圓融無二相)
모든 법은 부동으로 본래 고요하다.(諸法不動本來寂)
이름 없고 모습 없어 일체가 끊어지니(無名無相切一切)
깨닫는 지혜일 뿐, 지식으론 알 수가 없네.(證智所知非餘境) (하략)
의상義湘스님의 종지宗旨가 장자와 오컴을 아우른다. 그리하여 노자가 언급한 ‘도은무명道隱無名’
‘성인무명聖人無名’을 짐작이나마 하겠다. 도는 숨어서 이름이 없고, 성인도 이름이 없다. 이름은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절한 영국의 시인 존 키츠(John Keats 1795~1821)의 묘비명도 눈 앞을 스치고 지나간다.
Here lies one whose name was writ in water. (물로 자기 이름을 쓴 사람 여기 누워 있노라.)
그도 눈 밝은 납자衲子 같다. 나 또한 이름을 돌 위에 새기지 않고 물로 쓰리라. 인연 따라 주어진
이 명상名相을, 저 무주無住의 흐름에 맡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