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문예대학 출신 작가 작품>
약식동원(藥食同源)
차홍희
흙으로 쌓은 낮은 담장 너머 그녀가 좋아하던 마루가 보인다. 그녀의 집임을 짐작했다. 이웃의 집들과 달리 작은 터에 자그마한 마당까지 내어주고 주거 공간은 겨우 방과 부엌뿐이다. 머리를 숙여야 드나들 수 있도록 낮은 문이며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천정이 주인의 소박한 마음을 담은 듯하다. 앞마당 건너 저 멀리 팔공산이 구름 위로 봉우리를 드러낸다. 맑은 날 노을이 아름답다고 한다.
우리는 갓 스무 살에 만나 어느새 사십년지기가 되었다. 청춘 시절을 함께 지냈다. 대구를 중심으로 지역에 흩어져 살다 보니 자주 만나지 못한다. 오늘은 대구 인근에 사는 친구 집에서 넷이 모였다. 추억 보따리는 눈물과 웃음꽃으로 연이어진다. 서울에 사는 친구는 심장 수술 후 회복 중이라 참석하지 못했다. 안타깝다. 빠른 회복을 빌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아픈 곳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지난해 봄이었나. 그녀가 ‘백혈병’이라며 울먹이면서 전화가 왔다. 천둥소리가 가슴으로 내리쳤다. 전화기를 붙잡고 같이 울고 또 울면서 해답을 찾으려 애썼다. 그 이후 친구는 급하게 직장을 정리하고 여기 시골집으로 내려왔다. 세상과 단절하다시피 혼자 지냈다. 유기농 먹거리로 식이요법을 하면서 운동을 꾸준히 했다고 한다. 약은 전혀 먹지 않는다고 한다. 자주 전화 통화로 안부를 주고받았지만 그래도 약물치료를 하지 않아 내심 불안했다. 점차 밝은 목소리가 들려와서 다행이다 싶었다. 가끔 식단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푸성귀 가득한 밥상이었다. 자연치유로 건강을 되찾기 시작했다. 이제는 평범한 식사도 가능하단다.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이 누구에게는 보통 일이나 지금 우리에게는 기적 같은 순간이다. 그녀는 말했다. 예쁜 암이 내게 찾아와서 다행이라고.
만년의 엄마는 오랫동안 무릎관절염으로 고생했다. 끝내는 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여기저기 병원을 옮겨 다니며 치료했지만 별 차도가 없었다. 어느 날 온천욕이 좋다는 소문을 어디에서 듣고 내게 귀띔 주었다. 그때부터 주말마다 엄마와 함께 온천을 다녔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지팡이에 의지해 걷는 모습을 보고 기적을 만난 것 같아 온천욕을 믿게 되었다. 몇 달 후 엄마는 혼자서 온천을 다닐 수 있게 되었고 이후 온천욕은 엄마에게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일주일에 두어 번은 꼭 찾았고 기력이 다하는 그 날까지 온천을 다녔다. 당신은 약에 의지하기보다 온천욕으로 치유될 것을 믿었다.
작년 어느 늦여름 무렵에 갑자기 어지럼증이 왔다. 순간 정신을 잃었다. 깨어보니 응급실이었다. 의사는 갖가지 검사를 하더니 이상 없다고 한다. 다행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약 처방을 받고서야 퇴원을 했다. 그 이후 지금껏 그 약을 끊지 못하고 있다. 겨우 알약 한 알에 내 몸을 온종일 맡기고 있는 셈이다. 어쩌다 잊고 못 먹는 날은 종일 안절부절못한다. 괜스레 두통이 있는 것 같고 속도 울렁거리며 몸속 어느 한구석에서 피가 멈출 수 있겠다는 불안감이 밀려온다.
약도 먹는 것도 그 근원은 하나라는 생각을 말할 때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고 한다. 고대로부터 중국에서 식품 재료를 음양오행설에 기초하여 배합하고 이것을 약선으로 하였다고 전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약도 그 원재료는 거의 식물에서 추출하여 만든 것이다. 음식이 곧 식물이고 약인 셈이다.
그녀의 자연치유는 병든 몸을 낫게 했고 지친 마음까지도 위로가 되었다. 일상적인 생활을 하다 보면 고뇌의 짐으로 양쪽 어깨는 가벼울 날이 없다. 어느 날은 발을 끌기조차 걸음이 무겁고 머리를 숙이면 곧 엎어질 듯 몸이 땅으로 쏟아진다. 그때는 다 내려놓고 산다는 것은 거짓말처럼 다가온다. 그녀처럼 어쩔 수 없는 순간을 맞닥뜨리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되뇌어 본다. 도시를 떠나 시골로 내려간 선택이 그녀가 살 수 있었던 답이었다.
병을 낫게 하는 것은 알약 한 알이 아니라 약(藥)속에 스며든 심산 구곡의 자연이다. 깊은 산속의 물을 머금은 뿌리와 맑은 공기를 마신 잎과 줄기, 그것으로 수년간 달이고 또 달여 만들어 낸 알약 한 알이 아닌가. 내가 먹은 것은 겨우 한 알이 아니었다. 자연이 주는 수많은 약을 한꺼번에 먹은 것이다.
사람의 몸은 자연과 더불어 생겨났고 자연 속에 사라져간다. 자연은 무한한 생명의 근원이다. 그 자연과 함께 있을 때 만병의 근원을 뿌리 뽑을 수 있지 않을까. 심신이 지친 현대인에게 자연은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생명의 힘을 주는가 보다. 인간은 이 무한한 생명의 근원을 버리고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친구의 집에서 바라본 노을이 더욱 붉게 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붉은 노을 아래에는 생명의 기운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수필문예》 제22집, 2023. 수필문예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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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프로필
수필문예회 회원
대구수필문예대학 22기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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